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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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언제나 부럽다. 내 손은 똥손이라 그림에는 젬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지나쳤을 여러 들풀의 이름을 꼼꼼히 알게 되었다. 참 예쁜 이름과 독특한 형태를 가진 식물이 지구에서 공존한다. 인류가 생기기 전에 지구의 지배자였을 식물을 생각하니 공손해진다. 인류보다 지구 경력 선배이니까.

 

특히 고사리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보다 지구에 오래 사신 식물님이다. 영국 식물학자에 따르면 식물원 근처 고사리 서식지에 봄철만 되면 고사리를 꺾는 아시아인이 많다고 한다. 고사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서양 사람들은 고사리의 참맛을 모르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고사리는 오랜 세월 지구에 살아가면서 새로운 기후와 지형에 적응해왔다. 고사리를 보면서 변화에 적응 잘하는 모습을 배워야겠다고 느꼈다. 온고지신의 콜라보레이션. 옛것은 지키면서 새로운 점을 받아들여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연함이 장수 비결이다.

 

최근에 본 영화 <리틀 조>가 생각나기도 했다. 자연 본성(생식)을 제거 당한 식물이 인간을 번식 매개로 쓰는 이야기다. 꽃가루를 뿌려 인간의 코로 흡입, 뇌를 조종당한 인간은 오로지 '리틀 조'만 돌본다. 바람, 물, 동물을 이용해 번식하는 식물이니 충분히 인간을 매개체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오싹했다.

 

몇 해전 능소화 꽃가루가 망막을 손상시킨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고 한다. 처음 듣는 소리여서 당황했던 것도 잠시. 여름철 예쁘게 피는 능소화의 꽃가루는 갈고리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능소화 꽃가루는 독성이 없고 표면이 매끈하다. 마지막 그림의 꽃가루를 강아지 코를 아래서 봤을 때의 모습 같아 귀여웠다.(나만 그런가)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식물은 섬뜩함보다는 아름답다에 가깝다. 신혜우 식물학자는 과학 일러스트를 그린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림도 잘 그려 수상도 어려번 했다. 이 그림들은 국외의 컬렉션으로 선정된 바 있다. 국내에는 생소한 '생물 일러스트레이션'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물분류학과 생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를 융합한 국내외 전시, 식물 상담소, 강연, 어린이 교육 등 다재다능한 분이다. 영국왕립원예협해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 2013,2014,2018 금메달. 최고전시상을 받았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1년에서 3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식물 그림에 진심인 편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쓸쓸한 느낌이 든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강렬하게 떠올라서 인건 아닐까. 내친김에 《마지막 잎새》을 다시 곱씹어 보기까지 했다. 다시 찾아보니 소녀가 아니라 뉴욕에 사는 무명 화가였던 것. 마지막 달려 있던 잎은 '담쟁이덩굴 잎'이었다는 것 나만 몰랐던 사실인가. 마지막 남은 잎새를 그리기 위해 모진 비바람을 뚫고 그림을 그렸던 베이먼 씨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듯하다. 일생일대의 예술작품은 죽기 전에 만들어지는 것인가. 안타깝고 잔혹스럽기도 했다.

                                    

잔인한 동물이라면 '인간'이 최고지. 앞서 말한 <리틀 조>에서도 박람회에 내놓을 요량으로 육종개량한 꽃 '리틀 조'를 만들다가 일어난 참사를 다룬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원예용으로 인기 좋은 수국 꽃잎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수국은 산성에서 푸른 꽃을, 염기성에서 붉은 꽃을, 중성에서 하얀 꽃을 피운다.

 

꽃을 자세히 보면 진짜와 가짜가 있다. 가장자리 화려한 꽃을 무성화 가짜 꽃이라 부르고 암술 수술이 있는 진짜 꽃이 안쪽에 숨겨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보는 관상용 수국은 이 산수국을 가짜 꽃으로만 만든 원예종이라는 거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수국을 자세히 보면 수술, 암술이 없다. 겹꽃잎이 예쁜 장미도 자연 종이 아닌 인위적인 원예종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뿐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잎새가 떨어진다고 해서 인생이 끝났다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끼지 말자는 말.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떨어져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량이 많아진다. 고로 차분해지거나 멜랑꼴리해지는 것일 뿐. 괜한 낙엽 타령하며 우울해하지 말고 기분 탓이니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자.

 

책은 잔인한, 강력한, 혹독한, 그러나 이타적인 식물들도 소개하고 있다. 리뷰에서 모든 내용을 다룰 수 없기에 궁금한 독자는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식물에 관심이 많다면 소장용으로도 손색없고, 그림에 관심 있어도 매우 유용하다. 이름도 생소한 식물들의 생애가 영화로 치면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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