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엇일까.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일까.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고 알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할머니를 직접 세상에 나가 알아보라고 말한다. 오래 살았던 할머니도 선뜻 말해줄 수 없는 것. 사랑은 직접 느껴보는 거다.

 

소년은 답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길에서 만난 어부, 연극배우, 고양이, 목수, 농부, 병사, 병사, 마부, 시인 등 사람들은 각자 다른 답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소년에게 사랑의 정의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온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말이다.

 

돌아온 부쩍 소년의 키는 자라 있었다. 할머니는 떠날 때 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나이 들어 소년은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답을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물었고, 소년은 그제서야 답을 알 수 있었다.

책은 2017년 칼데콧 수상작 《홀라홀라 추추추》 등으로 유명한 카슨 엘리스의 신작이다. 미국에서는 12월 말 출간 예정이지만 한국이 전 세계 최초로 10월 20일 출간한다. 짧은 그림책이지만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사랑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질문과 사유를 제공하는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책이다. 스토리텔링 작가 맥 바넷과 일러스트레이터 카슨 엘리스의 콜라보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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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변론 - 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강금실 지음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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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물로 받은 지리산 공기캔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누가 물을 용기에 담아 파냐고 했던 게 이제는 당연해진 오늘. 몇 년이 지나면 공기도 캔에 담겨 사 마셔야 할지 모른다. 나와 먼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내 일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다다라있다. 이제 기후 변화는 공포가 되어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왔다.

 

오늘도 친환경, 아니 필(必) 환경 생활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일회용품을 줄이기로 다짐한 지 몇 년째 장바구니와 텀블러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배달 음식은 단 한 번도 시켜 먹지 않았다. 외출할 때마다 짐은 늘어나고 부주의로 담긴 내용물이 흘러나와 난감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외부 음식을 포장해야 한다면 미리 포장 용기를 준비해 다녔다. 누구는 유난 떤다고 비아냥거렸고, 누구는 너 하나 그런다고 달리지는 게 있냐고 말했다.

 

"지구적 지질 시간에서 지구와 상호 작용하는 이 새로운 공동체는 ‘지구 공동체’라 불릴 것이다. ‘생태대’는 지구 공동체의 또 다른 뜻이다. 여기에서 발전한 개념이 자연과의 조화이며 자연의 권리다. 새로운 지구 공동체는 진화의 서사인 우주론과 거기에 터 잡은 지구-인간의 관계를 공동체 정신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지구법학의 철학을 형성한다. " P133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법(기후대응법)제정을 웊앞에 두고 있다. 책은 문명 전환의 원인과 배경,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환경을 소재로 책을 쓴 사람의 이력이 궁금할 것이다. 최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이다.

 

지난 10년간 공부한 사유적 생태학 세계관과 지구 거버넌스를 제시한 책이다. 정치, 사람과 지구라는 공동체 세계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지금 상황을 이야기한다. 자연에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팔을 걷어붙이고 지구를 위해 변론에 나섰다. 그동안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전반부에 있다. 환경 관련 소재의 책을 읽어 봤다면 앞부분 보다 후반부의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올해 개봉한 영화 <그레타 툰베리>를 봤다면 심도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또한 영화 <듄>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스파이스라는 지금으로 따지면 석유 같은 물질을 놓고 행성과 가문 간의 전쟁이 발발하는데, 지구에서 벌어지는 석유 전쟁과 생태학적 접근까지 담겨 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니 훨씬 우리 행성 지구의 입장이 궁금해졌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변론이 인상적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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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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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체중계에 올라간다. 몇 년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철저하게는 아니지만 몇 몸무게를 관리하고 전날 먹는 음식과 운동을 생각한다. 전날 저녁 과식했다면 다음날 체중계의 숫자는 불어 나 있다. 예정된 절차처럼 죄책감이 몰려온다. 더 걷고 요가도 충실히 한다. 먹는 양을 의식적으로 줄인다. 그러면 숫자는 줄어들어 있다.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연예인의 후덕해진 모습만으로도 관리 소홀을 탓하며 비난하는 사례는 흔하다. 그저 좀 먹고 싶었을 뿐이고, 더 게으르고 싶었을 뿐이지만 용납되지 않는다. 화면에 비치는 V라인 얼굴과 마른 몸은 내가 갖지 못한 환상이고 이를 비춰주는 연예인은 환상이다.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아플 때도 있다. 이는 일상에도 이어져있다. "너 좀 살찐 거 같다?"라는 말은 공공연한 안부 인사기도 하다. 그 말은 같은 유독 여성에게 듣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어 외모를 관리하고 채근하는 차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는 자기 몸을 사회의 규정에 맞추지 않고 주체적으로 들여다보는 페미니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에서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외모에서 벗어나 스스로 예쁨다는 것을 알아가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용기라 볼 수 있다.

"​현대 소비문화에서 여성은 욕망의 주체-스스로 대상을 욕망하도록 부추김 당하는 사람-인 동시에 욕망의 주요 대상이며, 관능적이로 날씬하고 육체적으로 완벽한, 대대적으로 유포되는 이미지의 핵심 판매 도구라는 기묘한 임장에 처한다. " P41


이는 비단 식이장애뿐만이 아니다. 음식중독,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성욕, 야망, 채워지지 않는 쇼핑 중독 등. 풍족한 세상에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개인의 문제(낮은 자존감)라기 보다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다. 비만인이 많은 미국인의 허리둘레가 자제력을 잃는 그들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식품(가공식품, 인스턴트)를 쉽고 더 많이 소비하게 유도하는 문제점, 가난할수록 싼 패스트푸드를 구하고, 의료, 운동시설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저체중으로 태어나 유모의 묽게 탄 분유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최초의 포만을 누리지 못한 허기일지 모르지만 이후 다양한 갈등과 두려움이 커져 굶기로 이어진 듯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이후 '굶으면 어떻게 될까? 낮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커피만 마신다면?'이란 호기심을 실험에 옮겨왔고, 이는 자제력이 만든 약간의 희열과 섞여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싶다.

​이로써 세상을 향한 불안함과 자아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어른 여성은 '굶기'를 통해 충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옆으로 누우면 갈비뼈가 옆구리를 찔러 냈고, 생리도 끊겼다. 쪼그라들고 변화되는 몸을 보며 이룰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책은 2002년 41세에 요절한 '캐럴라인 냅'의 자전적이고 인문학적인 에세이다. 24세 때 체중 41kg를 맴돌며 거식증을 진단받았다. 식욕은 불안한 단어였고 이는 알코올 의존으로까지 이어져 삶을 지배했다. 이후 폐암 진단을 받아 투병했으며 책은 이후 세상에 나왔다. 캐럴라인은 암 진단받기 2개월 전 책을 탈고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인지했던 걸까.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이번만은 달랐던 것 같다. 마치 출산의 고통처럼 책을 집필했고 여성들은 이 책을 읽으며 한 뼘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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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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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논나 선생님의 책이 벌써 두 번째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자 멋진 여성, 청년들의 롤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항상 '차오 아미치(안녕, 친구들)'하며 친근하고 정중하게 불러주면 가까운 사람인 거 같아 기분 좋다.

 

 

 

첫 번째 책은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였다.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패션 컨설턴트로 일단 30년의 인생이 압축된 에세이다. 더불어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문화 차이를 설명한 문화교류서이기도 했다. 굉장히 술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지혜를 간접 경험했다.

 

 

 

나도 이렇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나도 당신을 닮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폐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부족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이만 들었지 어른이 되지 못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힘쓰고 있다. 그 길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돌아볼 때면 밀라논나 선생님을 떠올리곤 한다.

 

 

 

요즘은 인스타와 유튜버로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다. 활자로 된 또 다른 친근함.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질곡을 경험한 세대가 현세대에게 나눠 주고자 한 인상이 크다. 젊은 세대에게 솔직히 비혼을 권한다거나, 두 아들을 얻었지만 유년 시절 옆에 있어주지 못해 자식 낳는 일에 신중했으면 하는 등. 멋쟁이 할머니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그러니 꼭 이럴 필요는 없겠다"라는 말을 전해준다.

 

 

 

결혼은 선택사항이지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말, 살다 보니 남편과 식성이 달라 고생했지만 사상의학을 공부하며 합의점을 찾았던 일, 한국인이지만 매운 김치를 먹지 못하고 커피 최대 소비국인 이탈리아에서도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체질, 직장이었던 삼풍 백화점에서 동료들을 잃고 실의에 빠졌지만 이겨낼 수밖에 없었던 일화 등. 영화 같았던 일들이 차근차근 쓰여 있다.

 

 

 

논나 선생님이 살던 시절은 누구나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해야 할 도리를 해야 했다. 자신은 좋아하는 패션 일을 하고 싶어 부모님의 말씀을 따랐지만 지금은 남 눈치 볼 것 없이 너의 삶을 살 것을 권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 나이 들었어도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 꾸준함이 부럽다. 어른의 지혜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을 논나 선생님을 보면서 되새긴다."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

 

늘 어머니에게 너는 얼굴이 작고 입이 커서 뭘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핀잔을 듣고 자랐는데, 외국 나가보니 아름다운 얼굴로 인기가 많았다. 세상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2년 전만 해도 인류가 팬데믹으로 고통과 환희를 맛보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중국과 일본 사이의 작은 나라가 세계 문화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창구가 될지 누가 알았을까. 때문에 언제나 준비된 커리어와 적재적소에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 그리고 약간의 운이 따라야 함을 밀라논나 선생님을 보며 깨닫는다.

 

 

 

당당하고 기품 있는 품격을 갖춘 할머니, 어른, 인생의 선배가 아낌없이 후배에게 조언해준다. 첫 번째 에세이와 겹치는 이야기도 있지만 최대한 개인사를 많이 담았다. 살면서 터득한 경험을 한 톨도 흘리지 않고 나눠 주고 싶은 어른의 마음이 전달된다. 멋있어지겠다는 신조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탐구할 수 있는 책이다. 힘들거나 지칠 때마다 어른의 말씀으로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의 선택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읽는 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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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2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나님 덕분에, 두번째 책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분 우아한 몸놀림이 발레리나 같다고 누가 쓰셨더라고요. 유연한 마음이 유연한 몸짓으로 드러나나봐요. 아직 두번째 책 안 읽었는데, 첫번째 책부터 찾아봐야겠네요

doona09 2021-10-18 14:27   좋아요 1 | URL
오호 ^^ 그 표현 정말 아름답네요. 저도 알라알라북사랑님 덕에 논나 선생님을 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답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요! ^^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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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딱정벌레, 도널드 트럼프의 나방, 찰스 다윈의 따개비, 데이비드 보위의 거미, 비욘세의 파리, 스펀지밥의 곰팡이 그리핀도르의 모자 거미 등. 이거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모두가 사람의 이름을 가진 생물이다. 책은 사람의 학명이 붙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인간의 선과 악의 이면을 들춘다. 이름을 지은 과학자, 이름을 빌려준 사람과 종과의 삼각관계를 또 다른 관계로 설명한다.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라틴어 학명이 아닌 재미있는 학명이 가진 이야기를 탐구하는 시간이다.

 

 

 

동식물에는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 순전히 인간의 필요로 알기 쉽게 분류하기 위한 수단이 이름이다. 인간은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름은 부모나 하늘에서 준 것이며, 죽을 때까지 정체성으로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내 육신은 나이 들어 세상에 없지만 이름은 남아 시간을 거슬러 영원성을 갖는다. 자식을 낳는 본성도 자기 DNA를 세상에 남기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나는 사라지지만 나와 비슷한 존재는 해를 거듭해 살아간다는 약간의 위로가 지금의 인류를 발전케 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종의 이름을 지정함으로써 그 존재에서 위안을 얻고, 또 그 종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라고. 이름 짓기는 한 종으로서 인간 안에 깊이 자리 잡은 행위기에 대상을 지배한다는 기분까지 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면 추적할 수 있고 분류가 간편하다.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생물이 공식 이름인 학명은 18세기 스웨덴의 박물학자 '칼 린네'가 고안한 분리 방법인 '이명법'을 따른다.

 

 

 

모든 종은 각각 한 단어로 된 속명과 종소명을 갖는다. 예를 들면 인간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인간) 속의 사피엔스(지혜로운) 의미다. 린네 때문에 과학자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딴 학명을 지을 수 있었고 작명의 자유, 창조성,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박물학자, 탐험가, 영웅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하면서 후원자나 스승에게 보내는 감사, 가족에게 애정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을 모욕하는 구체적으로는 개인적인 원한의 사람의 이름을 붙여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 예로 '지게스베키아 오리엔탈리스'라는 신종에 붙인 보복이 재미있다. 당시 암술과 수술, 꽃잎을 에로틱하게 표현한 린네의 분류 체계를 프로이센의 식물학자 '요한 지게스베크'는 공식적으로 비난했다. 과거 둘 사람은 좋은 관계였지만 그의 비판에 린네는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공식 석상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작고 매력 없는 잡초이면서도 유난히 꽃이 작은 식물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린네가 인간과 식물의 생식기관을 연관 지었던 만큼 아주 노골적인 보복이라 할 수 있다.

 

 

 

"동명의 학명은 사람을 영예롭게 할 수도 있지만, 불명예를 일깨우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학명들이 해당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인간 대다수가 성자와 죄인의 얼굴을 모두 갖고 있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

 

P114

 

 

 

데이비드 보위의 거미로 알려진 '헤테로포다 데이비드 보위'는 1970년대 활동했던 세션 밴드 '화성에서 온 거미들'과 함께 가늘고 긴 다리에 주황색으로 염색한 머리로 무대 공연을 했었다. 종에서 특정인을 연상케 하는 특징이나 연관성을 찾아 붙여진 작명이다. '슈워제네거의 딱정벌레'는 다리의 체절이 부풀어 올라 있어 이두박근처럼 보인다.

 

 

 

저자는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는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쪽이지만 대중으로서는 확실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홍보 수단이 아닐 수 없다. 히틀러를 숭배한 학명을 붙인 오스트리아의 아마추어 곤충학자 샤이벨,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 제임스 브라운 이름을 딴 응애(진드기), 인종 차별한 조르주 퀴비에의 이름을 딴 '퀴비에의 가젤' 등 한번 붙여진 학명은 불멸성을 갖는다. '아놉탈무스 히틀러리'라는 이름의 딱정벌레는 과학자들도 인간이며, 유혹과 악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샤이벨은 히틀러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일을 계기로 시대의 변화에 달라질 수 있는 유명인의 이름은 재해석이 필요함을 꼬집는다. 마블의 어벤져스가 고민했던 부분이 떠오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도시를 파괴하고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한 일을 두고 캡틴 파와 아이언맨 파가 나뉜 사례를 떠올리며,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영웅이지만 희생된 자의 가족에게는 살인자일지 모를 일이다.

 

 

 

학명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추한 면을 들추기도 하고, 슬픈 감정이 들기도 한다. 책을 통해 학명을 어떻게 짓는지, 생물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김춘추의 시처럼 누군가 이름으로 불러 주었을 때 생명력을 얻는 것일까. 좋은 이유로든 나쁜 이유로든 자신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게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며 읽어갔던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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