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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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딱정벌레, 도널드 트럼프의 나방, 찰스 다윈의 따개비, 데이비드 보위의 거미, 비욘세의 파리, 스펀지밥의 곰팡이 그리핀도르의 모자 거미 등. 이거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모두가 사람의 이름을 가진 생물이다. 책은 사람의 학명이 붙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인간의 선과 악의 이면을 들춘다. 이름을 지은 과학자, 이름을 빌려준 사람과 종과의 삼각관계를 또 다른 관계로 설명한다.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라틴어 학명이 아닌 재미있는 학명이 가진 이야기를 탐구하는 시간이다.

 

 

 

동식물에는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 순전히 인간의 필요로 알기 쉽게 분류하기 위한 수단이 이름이다. 인간은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름은 부모나 하늘에서 준 것이며, 죽을 때까지 정체성으로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내 육신은 나이 들어 세상에 없지만 이름은 남아 시간을 거슬러 영원성을 갖는다. 자식을 낳는 본성도 자기 DNA를 세상에 남기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나는 사라지지만 나와 비슷한 존재는 해를 거듭해 살아간다는 약간의 위로가 지금의 인류를 발전케 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종의 이름을 지정함으로써 그 존재에서 위안을 얻고, 또 그 종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라고. 이름 짓기는 한 종으로서 인간 안에 깊이 자리 잡은 행위기에 대상을 지배한다는 기분까지 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면 추적할 수 있고 분류가 간편하다.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생물이 공식 이름인 학명은 18세기 스웨덴의 박물학자 '칼 린네'가 고안한 분리 방법인 '이명법'을 따른다.

 

 

 

모든 종은 각각 한 단어로 된 속명과 종소명을 갖는다. 예를 들면 인간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인간) 속의 사피엔스(지혜로운) 의미다. 린네 때문에 과학자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딴 학명을 지을 수 있었고 작명의 자유, 창조성,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박물학자, 탐험가, 영웅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하면서 후원자나 스승에게 보내는 감사, 가족에게 애정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을 모욕하는 구체적으로는 개인적인 원한의 사람의 이름을 붙여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 예로 '지게스베키아 오리엔탈리스'라는 신종에 붙인 보복이 재미있다. 당시 암술과 수술, 꽃잎을 에로틱하게 표현한 린네의 분류 체계를 프로이센의 식물학자 '요한 지게스베크'는 공식적으로 비난했다. 과거 둘 사람은 좋은 관계였지만 그의 비판에 린네는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공식 석상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작고 매력 없는 잡초이면서도 유난히 꽃이 작은 식물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린네가 인간과 식물의 생식기관을 연관 지었던 만큼 아주 노골적인 보복이라 할 수 있다.

 

 

 

"동명의 학명은 사람을 영예롭게 할 수도 있지만, 불명예를 일깨우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학명들이 해당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인간 대다수가 성자와 죄인의 얼굴을 모두 갖고 있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

 

P114

 

 

 

데이비드 보위의 거미로 알려진 '헤테로포다 데이비드 보위'는 1970년대 활동했던 세션 밴드 '화성에서 온 거미들'과 함께 가늘고 긴 다리에 주황색으로 염색한 머리로 무대 공연을 했었다. 종에서 특정인을 연상케 하는 특징이나 연관성을 찾아 붙여진 작명이다. '슈워제네거의 딱정벌레'는 다리의 체절이 부풀어 올라 있어 이두박근처럼 보인다.

 

 

 

저자는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는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쪽이지만 대중으로서는 확실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홍보 수단이 아닐 수 없다. 히틀러를 숭배한 학명을 붙인 오스트리아의 아마추어 곤충학자 샤이벨,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 제임스 브라운 이름을 딴 응애(진드기), 인종 차별한 조르주 퀴비에의 이름을 딴 '퀴비에의 가젤' 등 한번 붙여진 학명은 불멸성을 갖는다. '아놉탈무스 히틀러리'라는 이름의 딱정벌레는 과학자들도 인간이며, 유혹과 악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샤이벨은 히틀러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일을 계기로 시대의 변화에 달라질 수 있는 유명인의 이름은 재해석이 필요함을 꼬집는다. 마블의 어벤져스가 고민했던 부분이 떠오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도시를 파괴하고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한 일을 두고 캡틴 파와 아이언맨 파가 나뉜 사례를 떠올리며,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영웅이지만 희생된 자의 가족에게는 살인자일지 모를 일이다.

 

 

 

학명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추한 면을 들추기도 하고, 슬픈 감정이 들기도 한다. 책을 통해 학명을 어떻게 짓는지, 생물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김춘추의 시처럼 누군가 이름으로 불러 주었을 때 생명력을 얻는 것일까. 좋은 이유로든 나쁜 이유로든 자신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게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며 읽어갔던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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