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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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체중계에 올라간다. 몇 년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철저하게는 아니지만 몇 몸무게를 관리하고 전날 먹는 음식과 운동을 생각한다. 전날 저녁 과식했다면 다음날 체중계의 숫자는 불어 나 있다. 예정된 절차처럼 죄책감이 몰려온다. 더 걷고 요가도 충실히 한다. 먹는 양을 의식적으로 줄인다. 그러면 숫자는 줄어들어 있다.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연예인의 후덕해진 모습만으로도 관리 소홀을 탓하며 비난하는 사례는 흔하다. 그저 좀 먹고 싶었을 뿐이고, 더 게으르고 싶었을 뿐이지만 용납되지 않는다. 화면에 비치는 V라인 얼굴과 마른 몸은 내가 갖지 못한 환상이고 이를 비춰주는 연예인은 환상이다.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아플 때도 있다. 이는 일상에도 이어져있다. "너 좀 살찐 거 같다?"라는 말은 공공연한 안부 인사기도 하다. 그 말은 같은 유독 여성에게 듣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어 외모를 관리하고 채근하는 차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는 자기 몸을 사회의 규정에 맞추지 않고 주체적으로 들여다보는 페미니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에서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외모에서 벗어나 스스로 예쁨다는 것을 알아가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용기라 볼 수 있다.

"​현대 소비문화에서 여성은 욕망의 주체-스스로 대상을 욕망하도록 부추김 당하는 사람-인 동시에 욕망의 주요 대상이며, 관능적이로 날씬하고 육체적으로 완벽한, 대대적으로 유포되는 이미지의 핵심 판매 도구라는 기묘한 임장에 처한다. " P41


이는 비단 식이장애뿐만이 아니다. 음식중독,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성욕, 야망, 채워지지 않는 쇼핑 중독 등. 풍족한 세상에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개인의 문제(낮은 자존감)라기 보다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다. 비만인이 많은 미국인의 허리둘레가 자제력을 잃는 그들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식품(가공식품, 인스턴트)를 쉽고 더 많이 소비하게 유도하는 문제점, 가난할수록 싼 패스트푸드를 구하고, 의료, 운동시설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저체중으로 태어나 유모의 묽게 탄 분유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최초의 포만을 누리지 못한 허기일지 모르지만 이후 다양한 갈등과 두려움이 커져 굶기로 이어진 듯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이후 '굶으면 어떻게 될까? 낮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커피만 마신다면?'이란 호기심을 실험에 옮겨왔고, 이는 자제력이 만든 약간의 희열과 섞여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싶다.

​이로써 세상을 향한 불안함과 자아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어른 여성은 '굶기'를 통해 충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옆으로 누우면 갈비뼈가 옆구리를 찔러 냈고, 생리도 끊겼다. 쪼그라들고 변화되는 몸을 보며 이룰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책은 2002년 41세에 요절한 '캐럴라인 냅'의 자전적이고 인문학적인 에세이다. 24세 때 체중 41kg를 맴돌며 거식증을 진단받았다. 식욕은 불안한 단어였고 이는 알코올 의존으로까지 이어져 삶을 지배했다. 이후 폐암 진단을 받아 투병했으며 책은 이후 세상에 나왔다. 캐럴라인은 암 진단받기 2개월 전 책을 탈고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인지했던 걸까.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이번만은 달랐던 것 같다. 마치 출산의 고통처럼 책을 집필했고 여성들은 이 책을 읽으며 한 뼘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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