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에 대하여 #밑줄긋기 #요약 #적바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피리를 불 줄 모르지만 남들이 연주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아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플라톤은 또한 이런 말을 남겼다, ˝도구들을 제각각 독립적으로 만드는 것은 악취미이자 야바위짓이다.˝
˝합창단 지휘가 오케스트라 지휘보다 어렵나?˝
이본 구베르네: 방금 잘 지적해주셨듯이 합창에서는 목소리들이 일체를 이루면서도 항상 구별되어야 해요. 사실 오케스트라도 그 점은 마찬가지고요. 가장 큰 차이는 합창단원들이 다루는 악기는 그들 안에 있다는 거죠. 그들의 악기를 운용하려면 그 사람 자체에 다가가야 해요. 그래서 합창단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의 관계는 아주 특별하고 한결 더 긴밀하죠. 한마디로, 우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보다 단원들과 더 가깝다.
합창단은 공동체로서의 힘에 기반을 두거든요. 최상의 합창단에서 모든 일이 착착 풀릴 때에는 지휘자와 단원들이 그야말로 한마음, 한뜻이 된답니다.(60)
1. 오르가눔
다성음악, 즉 여러 성주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9~12 세기 사이의 중세에 출현했다. 당대 음악가들은 이걸 오르가눔(Organum)이라고 불렀다. (공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짐)
초기 오르가눔은 자연 공명의 원리를 무의식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남성, 여성, 어린이들이 똑같은 멜로디를 노래한다고 치자. 남성들이 제창을 하고, 남성에 비해 여성과 어린이는 목소리의 높이차 때문에 첫번째 부분음 높이에서 한 옥타브를 높여서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은 옥타브를 달리하여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합창단에서 중간 성역대는 본능적으로 두번째 부분음, 다시 말해 5도 위의 음을 기준으로 노래할 수 있었다. 초기 오르가눔은 바로 이 용법을 확고히 하고 체계로 만든 것이다. 똑같은 멜로디를 옥타브를 달리하거나 5도 음정 차이로 병행 진행한다.
2. 디스칸투스
실제로 사람들은 단조로움에 싫증을 느꼈다. 그래서 이 병행 진행을 깨뜨게 된다. 목소리들은 제창에서 벗어나 어떤 목소리는 위로 올라가고 어떤 목소리는아래로 내려가는 식으로 분리되었다. 이리하여 디스칸투스(Discantus)[1]는 병행 진행을 깨뜨렸다. 이로써 12 세기경에 대위법이 탄생하였다.
3. 대위법
대위법은 주어진 하나 혹은 여러 멜로디를 중첩시켜 함께 나아가게 하는 기법이다. 대위법을 도입하면 한 음표를 다른 음표와 비교해서 파악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음표를 점으로 표시하였다. 그래서 ‘점 대 점(Punctum contra Punctum)‘이라는 관계에서 ‘대위법(Contrepoint)‘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대위법을 사용하는 진정한 다성음악이 프랑스에서, 그러니까 12 세기 말 파리에서 탄생하였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파리악파(레오니우스 레오냉, 페로탱, 필립 드 비트리)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4. 다성음악의 발전
다성음악 자체는 성가에서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위법은 중세 말에는 교회 뿐만 아니라 궁정에서도 모든 음악 형식들을 비옥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15 세기에는 정점에 달하게 되었다. 15 세기 초에 부르고뉴공국 궁정음악사들은 대부분 벨기에 에노 지방 아니면 프랑스 북부 출신이었다. 그들은 작곡가뿐만 아니라 연주가로서 재능도 전제되어야 하는, 꽤 대담하면서도 우아한 다성 음악곡들을 만들었다. (그 시대 음악은 매우 우울했다.)
15 세기에는 프랑스-벨기에악파가 음악계를 꽉 잡고 있었지만, 영국에는 독창적인 악파도 조직되었다. 존 던스터블이 대표적이다. 나중에 스페인악파도 수립됐다. 초기에 자국의 민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다른 악파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이 있었다. 프랑스-벨기에악파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고 거친 대위법을 썼지만, 스페인악파의 투박하면서도 화끈한 감각 덕분에 목소리들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의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융통성, 화려한 수사, 우아함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지만 흥취, 분방함, 생기발랄한 소박함은 곧잘 잃고 만다. 옛 스페인 사람들의 칸시오네로(Cancionero)[2]는 조스캥 데프레가 가명으로 작곡한 모테트가 슬쩍 끼어들어가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비슷한 데가 있다. 데 프레의 기법은 놀라운 균형과 유연함을 보여준다. 순수한 고전주의로 규정되는 이 기법에서 서툴고 촌스러운 원시성을 느낄 수 있을까?
5. 조스캥 데 프레의 음악
데 프레의 작품에서 음악은 ‘화음‘ 개념에 가까이 있다. (이 위대한 음악가는 음악의 모든 수단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아직 풍부한 세련미를 갖추진 못했다. 화음은 16 세기 음악의 특징이 된다. 데 프레의 합창곡에서 목소리들은 참으로 유유히 노래한다. 곡조가 성부들 사이를 순환하는, 아주 투명하고 경쾌하고 순수한 음악이다. 〈깊은 회한〉을 예로 들면, 제목이 주제를 다 말해준다. 이때부터 나오게 되는 합창곡들이 으레 그렇듯 이 곡도 4성부 합창곡이다. 4성부는 목소리가 고음에서 저음까지 4개의 조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소프라노가 가장 고음부를 차지하고, 그 아래는 콘트랄토, 그 다음은 테너, 베이스이다.
6. 16 세기 프랑스 음악과 드뷔시
잔캥과 역시 벨기에 에노 출신의 ‘신적인‘ 오를란도 디 라소가 있다. 16 세기로 더 가면 노르망디 출신의 기욤 코틀레가 있다. 섬세하고 경쾌하고 공기처럼 가벼우면서 음절을 살려 가사를 돋보이게 하는, 정말로 프랑스적인 음악이다. 역시 16세기에는 자크 모뒤도 있었다. 파리의 양갓집 자제였던 모뒤는 장 앙투안 바이프가 주축이 된 모임에 들어갔다. 바이프는 롱사르와 함께 플레야드 시파에 속하는 시인이다. 이 모임에서 작곡가들은 그리스어나 라틴어 시 같은 운율을 지닌 옛날식 프랑스 정형시에 맞추어 곡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모뒤는 이러한 제약에서도 새로운 매혹의 비법을 찾았다.
˝모뒤의 음악을 들을 때면 드뷔시가 생각나요.˝
드뷔시는 때때로 프랑스 르네상스 다성음악의 직통 후계와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옛 것에 대한 모방이나 케케묵은 발상을 끔찍이도 혐오했지만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앞선 전통의 비법들을 되찾곤 했다. 그것도 스테인드글라스 제작법처럼 이젠 잃어버린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그런 비법들을요. 드뷔시는 다성 성악곡도 썼다. 그냥 쓴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열정과 영감에 애정을 기울였다. 〈샤를 도를레앙의 세 노래〉와 〈성 세바스티앵의 순교〉가 그 증거들이다. 드뷔시는 그 정신을 보나 문장이나 편지에 나타난 내용을 보나 베토벤과 슈만보다는 코틀레와 모뒤에 더 가까운 음악가이다.
7. 멜로디와 화음의 융합, 마드리갈
다성 성악곡은 프랑스에서 탄생해서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특히 발전하여 16 세기에 완벽의 경지, 이른바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16 세기에 이 장르는 프랑스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까지 사로잡는다. 이탈리아인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멜로디가 높은 성부를 지배하게 했다. 다른 성부들은 멜로디에 화음을 맞춰주는 정도에 그쳤다. 이탈리아인들은 주선율이 전체 속에 묻히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복잡한 대위법을 꺼렸다. 이리하여 두 장르가 일종의 융합을 이루었다. 여기서 마드리갈이 탄생했다. 마드리갈은 시적인 가사에서 분명히 영감을 구하는 음악이다.
8. 화음이 음악의 중심이 되다
그리고 위대한 베르디와 더불어 음악은 작곡가의 정념과 감성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개인적 표현수단이 되었다. 이제 멜로디들을 함께 진행시키기보다는 표현력이 풍부한 화음들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때부터 음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하는 중첩된 선들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 읽어야 하는 화음들의 연쇄로 구성되었다. 음악에 대한 근대적인 생각은 베르디에게서, 17 세기가 막 시작되던 때에 싹트게 되었다.
8. 종교음악의 완성과 기악의 발전
16세기 말에 스페인의 빅토리아와 이탈리아의 팔레스트리나는 종교적 다성음악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완성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푸가(Fugue) 기법은 18 세기의 바흐 이후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다성음악은 더 이상 성악에 머물지 않고 기악을 장악하게 된다. 현악 5중주, 그 다음에는 교향곡에서 다성음악이 점차 두드러졌다. 처음에는 17 세기 이탈리아에서, 18 세기에는 독일 음악에서도 그러한 양상이 나타났다.
9. 독일 음악과 카논
독일 음악은 16 세기에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긴 해도 독일인들은 특히 카논(canon)을 좋아했다. 카논은 합창의 여러 성부들이 같은 멜로디를 동시에 부르지 않고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고 차례차례 부름으로써 생성되는 음악적 모방 형식이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에서, 그 다음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사람들은 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돌림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면서 기분을 풀곤 했다. 18 세기에 성품이 좋기로 이름난 ‘아버지‘ 프란츠 하이든은 카논 악보를 태피스트리로 짜서 자기 방 벽에 걸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푸가의 기원에 있는 이 모방 대위법에 매혹되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논을 열 곡이나 만들었다. 이미 말했지만 모차르트 이전에도, 이미 17 세기부터 다성음악 기법은 기악으로 옮겨갔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나 교회음악에서나 세속 연주회에서나 합창이 교향악을 이루는 한 부분이 되지요. 19세기 낭만파는 드문드문 아카펠라(A Cappella), 다시 말해 무반주 합창곡을 쓰기도 했다. 슈만과 브람스는 굉장히 아름다운 곡들을 남겼다. 독보적인 슈베르트도 빼놓을 수 없다.
˝슈베르트의 합창곡도 가곡 못지않게 아름다운가?˝
훌륭하다. 하지만 멜로디들이 단단히 얽혀 있어서 다성 성악곡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련의 화음으 로 구성된 표현 음악, 4성부가 서정시를 읊는 듯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화음의 비장미가 무엇보다 지배적이다. 신비로움이 가득한 이 소품 〈무덤과 달〉만 봐도 그렇다. 슈베르트는 죽기 얼마 전에 어느 합창단을 위해서 이 곡을 썼다고 하지요. 시인 요한 가브리엘 자이들은 달에게 무덤이 달빛에 열릴까, 어둠 속에서 열릴까 물어본다. 무덤은 ˝와서 보려무나”라고 대답한다. 슈베르트 사후 80년, 코틀레 사후 2 세기 반에 이르러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프랑스 다성 성악의 전통이 드뷔시의 아름다운 노래들과 함께 되살아나고 쇄신된다.
10. 드뷔시 이후
드뷔시가 살아 있을 때에도 아카펠라는 프랑스 음악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라벨은 프랑스 민요에서 영감을 얻어 세 곡을 썼고 풀랑크도 이 장르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멋진 성공을 거두었다. 이 음악가들은 감동적이고 대담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음악의 진정하고 위대한 전통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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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초기의 다성음악에서, 기본이 되는 저음성부(테노르) 위에 오는 성부를 일컫는 말로, 4성부 기준에서 가장 위쪽의 주된 선율 성부. 오늘날의 소프라노에 해당함. - 한국음악용어연구소
주2. 15 세기 스페인에는 두 줄기 시의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간시오네로(cancionero)로 대표되는 교양시, 다른 하나는 로만세로(romancero)로 대표되는 대중시였다. 16 세기에 들어서도 이 두 흐름은 계속되다가 교양시의 경우, 1526년 이후 두 흐름으로 나뉜다. 하나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르네상스 시를 모방한 이탈리아풍의 시이고,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간시오네로다. 그러나 이들이 명백히 나뉜 것은 아니었다. 한 시인의 작품 안에서도 이 두 시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흔했다. 이 세 가지 시의 흐름은 16세기 내내 나타났으나 간시오네로는 점점 힘을 잃어가다가 결국은 이탈리아 풍의 시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 가르실라소 시전집(지만지,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