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에 대하여 #밑줄긋기 #적바림 #요약
클래식 음악을 양분하는 큰 줄기로 성악과 기악이 있다. 성악은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음악의 총칭이다. 서양 음악사에서, 중세까지는 성악이 곧 음악이었다. 성악은 그만큼 역사도 깊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성악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고백하건데 나의 외국어 실력이 형편없는 탓에 외국말로 지어진 노래의 가사를 귀담아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에 노래를 붙인 가곡은 문학과 음악이 결합되어 난이도가 최고에 해당한다. 시의 운율을 선율로 변신시키는 작곡가의 능력은 얼마나 훌륭한가! 그나마 다행은,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선율만으로도 음악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성악곡을 감상하기란 어렵다. 성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성악에 대하여˝ 대화 내용을 음악 지식 위주로 요약한다.
1. 말과 노래의 관계
지금은 음악에 노랫말을 줕이고, 가사의 내용 상 흐름과 부합하면서 그 전반적인 정서도 반영하는 멜로디를 찾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중세에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먼저 멜로디를 그 자체로서 발전시킨 후에 나중에 거기에 맞게 가사를 붙였다. 말에 좌우되지 않으려는 음악의 저항은 아직도 우리네 동요에 뚜렷이 나타나죠. 동요에서는 특징적 멜로디가 노랫말의 의미보다 우선이다.
다소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절들로 이루어진 노래를 ‘레(Lai)‘라고 부르는데 이 레 음악은 시의 지배적 정서, 이를 테면 기쁨이나 우수를 표현했다. 하지만 가사의 개성은 아주 약해졌다.
2. 단성음악과 다성음악
고대 그리고 중세의 대부분 기간에 노래는 항상 제창 아니면 옥타브만 달리해서 불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말해 목소리든 악기든 같은 음표를 함께 연주했을 것이다. 우리가 단성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한 노래. 반주를 전제로 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멜로디와 다르다.
각기 다른 성부들이 함께 노래하게 된 것은 9~11 세기 사이. 하지만 12 세기부터는 각 성부의 멜로디들이 중첩되며 화음을 이루는 기법인 다성음악이 성행했다.
3. 노래 창법의 발달
복잡한 다성음악 양식에 싫증난 르네상스 정신은 영웅 숭배와 고대로의 회귀 의지에 걸맞게 솔리스트와 비르투오소가 등장하게 되었다. 음악가는 표현의 진실성에 근거한 창법을 연마하게 되고 가사가 그 어휘들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음악에 담았다. 바로 스틸레 레프레젠타티보(stile reppresentativo)이다. 피렌체에서 탄생하였고, 페리, 카발리에, 그리고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인들은 아름다운 노래에 더욱 심취하여 이탈리아의 비르투오소, 프리마돈나, 테너, 카스트라토의 벨칸토, 트릴, 롤라드 창법이 유행하였다.
4. 글루크의 개혁과 모차르트의 업적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 장 밧티스타 륄리[1]가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로 활약하였다. 그는 독창적인 레리타티보와 아리아를 작곡하였고, 절도있게 진행되는 멜로디와 제대로 전달되는 가사 취향을 프랑스에 확산시켰다.
륄리가 사망한 후에 노래에 대한 두 주장이 대립하였다. 한쪽은 목소리를 담론의 전달 수단, 표현 수단으로 보았고, 다른 쪽은 목소리를 멜로디의 도구로 보았다. 18 세기 말에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가 독일에서 오페라 개혁을 이루어냈다. 이로써 오페라에서 드라마적이지 못한 요소는 모두 배제하게 되었다. 이는 음악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적인 멜로디의 매혹과 시와 비극의 우아하고도 심오한 표현을 처음으로 결합하였다.
5. 성악적 분류
목소리의 음역에 따른 분류는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콘트랄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이 용어들은 여성의 목소리와 남성의 목소리를 세 종류의 음역으로 나눈다.
6. 리트
리트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원래는 단순히 ‘노래, 멜로디‘를 가르키지만, 특정 음악 영역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장르는 바로 노래와 시의 공통 척도를 찾으려는 바람에 부응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리트는 둘의 융합을 실현한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기적은 음악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모차르트의 기적에 화답했다. 그 요소란, 강렬하면서도 내밀한 감정이 응축되었다가 짧은 순간 터져나올 때의 전율이다. 슈베르트는 리트 작곡가이자 가장 생산적이고 찬탄할 만한 일꾼이기도 하였다.
슈만은 독일이라는 나라와 그 기대에 훨씬 더 공고히 자리 잡은 음악가였고, 그가 지닌 서정성의 비장미나 열띤 격정은 가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모든 시대, 모든 나라의 음악가이다. 슈베르트의 리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슈만보다 훨씬 깊이가 있다. 그는 순수 상태의 천재성을 구현했다. (중략) 슈베르트는 대중적이다. 대중적이라는 말의 가장 고결한 의미에서 그렇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한 세기 전부터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아무도 이 노래를 진부하다고 치부해버릴 수 없었다.
7. 이탈리아의 벨칸토
로시니는 벨칸토를 세련되게 다듬었다. 빈첸초 벨리니는 벨칸토에 잘 맞는 빼어난 멜로디들을 제시하였다. 주세페 베르디는 벨칸토에 하나의 스타일을, 열정적인 박력을 부여하였다. 그 스타일을 베르디의 다양한 방식들로 풀어내기도 하였다.
8. 프랑스의 리트
진정한 리트는 게르만적인 정수를 띠기 때문에 독일만의 장르로 남을 테지만 프랑스 가곡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이고도 전설적인 분위기가 있다. 프랑스 가곡은 표현이 한층 소박하고 서정성 또한 섬세하고 감미롭고 내밀한 음악의 틀을 넘지 않는다.
프랑스 가곡의 아버지는 샤를 구노. 프랑스에서는 구노가 당대의 가장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에 곡을 붙인 최초의 작곡가.
구노의 가곡은 포레, 에마뉘엘 샤브리에 그리고 우리 시대의 젊은 음악가들한테 본보기가 되었다. 샤브리에는 매우 독창적인 성격의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구노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포레는 처음에 구노를 본보기로 삼았으나 차차 좀더 미묘하고 독특한 매력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포레에겐 세련미와 폴 베를렌 특유의 어조와 어울릴 법한 병적인 우아함이 근사하게 뒤섞여 있다.
˝베르낙 씨에게 포레의 〈만돌린〉을 드뷔시의 〈만돌린〉보다 좋아 하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둘 다 수작이라 선택하기 어렵네요. 전반적으로 드뷔시가 가사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있어요. 포레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매달리고요.˝ (35)
9. 나중을 기약하며
19 세기 러시아인으로서 저 유명한 5인조의 일원이었던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가곡들도 감정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놀랍도록 소박하게 음악으로 옮겼다. 그 밖에도 슈만, 브람스, 뒤파르크, 라벨 등은 이름만 언급한 정도지만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도록 나중 기회에 다루어질 것이다.
롤랑 마뉘엘: 프랑스 가곡의 대표적인 걸작인 프랑시스 풀랑크의 〈그런 낮, 그런 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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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프랑스 작곡가이지만,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이다. 본명은 지오반니 바티스타 룰리(Giovanni Battista Lulli)이지만, 프랑스 식 이름인 장 밧티스타 륄리(Jean-Baptiste Lully)로 개명하였고, 그의 일생 대부분을 루이 14세를 위해 헌신하였다.
주2. 이탈리아어로 벨칸토(bel canto)는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이다. 특별한 기교로 화려하였던 18세기경의 이탈리아 인기가수들의 노래에 붙은 명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