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장에서 지휘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졌다. 그러나 책표지를 덮고 있는 이 장면, 이 사진 속의 장면은 신선하다. 지휘자보다 늦게 존재를 드러내는 어린 아이가 낯설다. 객석에 아이 혼자다. 무대 아래서 두 발로 꼿꼿이 서 있는 어린아이의 자세며 뒷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여자 아이. 나이를 키로 짐작할 수 있으려나. 아이의 키가 무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객석의 의자 높이보다 작다. 닮은 꼴로 보이나 대조적으로 윗쪽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지휘자는 하늘에 떠 있는 것 같다. 지휘자 오른쪽에 악보를 펼쳐 든 연주자는 앉아 있음에도 서 있는 느낌. 키다리 의자구나. 여가수한테 조명이 더해져서 눈부시다. 사진 속 구도가 연출된 것 같지는 않은데 사진 예술의 매력에 한껏 끌린다. 한참만에 시선을 돌리니까 아이 왼편에 배치된 ‘클래식의 발견’ 글자를 보게 된다. 흑백 사진 속 유채색 글씨가 조화롭게 색감이 대조되어 돋보인다. 있는 듯 없는 듯 ‘에포크’도 보인다. 시선을 옮기다가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아이가 손에 쥐고 있는 (아마 꼭 잡고 있을) 무엇을 가지고 놀다가 소리에 놀랐거나 관심을 끄는 다른 무엇이 무대 위에 있는데 보이지 않으니까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지 않을까. 저 무대 위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지휘자의 팔이 들려 있는 상태라서 연주 중이라 상상한다. 바이올린의 활이 위로 움직이고 첼리스트는 활 대신 손가락으로 음을 짧게 연주하는 음악이 들리는 듯이 보이는 것 같다. 여성 가수가 곧 목청껏 소리를 내면서 따뜻한 노래를 들려 줄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문득 생각이, 아이가 클래식 발견? 혹시라도 사진 속의 아이가 나라면, 나는 클래식 세계에서 어린 아이에 불과하니까, 아이는 나를 포함한 클래식 입문자일 수도 있겠다. 사진은 말해 주지 않으니까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클래식의 발견> 책을 만지다가 내가 발견한 것은, 여태 내가 바라보고 있던 흑백 사진이 진짜 표지가 아니다. 흑백 사진 속 장면에 빠져 들어 책의 표지인지 아닌지 따질 겨를 없이 멋진 표지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이 책띠 좀 보소. 책 높이보다 1.5cm 정도 작게 만들어진 책띠다. 이렇게 나를 감쪽같이 속이다니. 급히 책띠를 벗기니까 핑크 색깔 속살이 드러난다. 진짜 책 표지는 편안함을 느끼는 색감과 함께 전체적으로 텅 빈 느낌 때문에 단순해 보이지만,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다. 뛰어난 디자인이다고 생각. 표지 맨아래 지휘봉을 든 지휘자의 오른손이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 오케스트라를 준비시키고 청중에게 긴장감을 안긴다. 독자에게도. 이제 책을 읽으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