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1963~1997)은 일찍 죽기엔 참 아까운 소설가다.” 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들었다.’라는 말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계급적이고, 권위적인 편가르기의 사고가 은연중 스며든 표현일테다. 모든 생명의 죽음은 다 안타깝고,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재능있는 한 소설가의 이른 죽음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맨 앞장... 추억의 어린시절 흑백사진 몇 장과 함께 나와있는, 집필 무렵 그의 사진을 보면 소위 ‘도시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예민하고, 차가운 느낌을 갖게 되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푸근하고, 찰진 사투리와 순우리말 구사능력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당연히 강원도 철원태생의 이 젊은(?) 소설가가 이런 말들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작가의 우리말과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그 절실함은 돼지꿈을 매개로 도박을 하고 싶어 환장하는 날품팔이 양씨와 사내아이를 갖고 싶어 애타는 상주댁의 다음과 같은 소설 속 대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우데를 가노 말이다? 또 그래, 손꾸락지가 근질근질해졌나? 도야지꿈인가 뭔가를 꾸었으니깐 한바탕 해보러 가야 직성이 풀린다 이거구마. 내사 마 이러믄 정말 몬산다. 가장이라는 게 아래께부터 쌀 팔아올 돈도 떨어져 외상으로 봉지 쌀을 들여다 놓는 줄은 모르고 허구한 날.....”
“상그러븐 소리 그만 걷어치지 않으면 콱 쥑이뿌린다 마.”
~
“제기랄, 내가 매화타령이 절로나는 이땡짜리 패를 들었을 때 그 노무 자석이 삼팔광땡 들고서도 의뭉스레 죽을 듯 말 듯 설레발을 칠줄이야 우째 짐작이나 했겄나. 손속이 나쁘면 노름의 대가가 와도 우얄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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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보니 그 도야지꿈은 사내아아 태몽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믄 우리 한분 보람 있게 정성드려 해봅시다. 뜸물에도 얼라가 선다 안캅니꺼?”
“정성드려 무얼....”
“도야지꿈을 태몽삼아 실팍한 애기 좀 한번 받아 보입시더.”
~
“오냐오냐 알긋대이. 내사 다 들어줄테니 우선 이 바짓가랑이 좀 놓고 말로하자, 우리 말로.”
“건성으로 말고 확실히 대답해 뿌소.”
“헉헉, 보그래이. 내 다 이짓도 용서헐테니 이것, 이것만은 놓고 우리 신사적으로 이바구로 해결해 보자구 으응? 한다 카지 안나? 정이러믄 니 말대로 거시킬 하고 싶어도 물건이 제 꼴을 잡지 못해서 낭패 보는 수가 있다 아이가.”(143~146쪽 발췌)
연작 장편소설인 이 책 「장석조네 사람들」은 70년대 서울 변두리 달동네 소시민들의 궁상스러운 삶을 슬픈 듯 하면서도 위와 같이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요샛말로 ‘웃픈’ 현실에는 삶의 애환과 진실이 담겨있어 짙은 페이소스도 느껴지는데 50년대말 60년대초 대구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간난한 삶의 풍경을 곡진한 애정을 담아 담백하게 그려낸 김원일 작가의 자전적 소설 「마당깊은 집」을 떠올리게도 한다. 별을 보며 나누는 사내들의 대화장면.
“사람이 제 몸에서 나온 것도 싫다고 코 싸쥐고 돌아서는 똥을 치우는게 천상 내 일인 줄 알고 사는 나 겉은 사람도 있는데 그에 비하믄 박씨나 천씨나 다들 번듯허지 뭘 그러는가?”
“듣고 보니 그렇기도 허네요 잉?헌데 헹님은 오랜만에 별을 보고 뭔 생각이 떠오른 것이요?”
“별은 똥이다.”
“헹님, 와 이캅니꺼! 주정하는 거 아닝교?”
“주정이믄 또 우떻나! 내는 항상 똥만 쳐다보니 사니껜. 그게 내 일이니깐. 그걸 퍼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쌀도 팔아묵고 술도 사묵지.~ 내가 그 별을 올려다 볼 때 틀림없이 이 술로 찌들고 푸르딩딩한 내 눈에도 별빛이 고봉으로 하나 가득 담길 것 아닌가 말여.~”(117,118쪽 발췌)
한 지붕아래 아홉 개의 방이 일자로 길게 늘어서 있어 ‘기찻집’으로 불리는 장석조네에 세들어 사는 아홉가구의 세입자들. 이들을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과 아픔을 때론 슬프고, 때론 우습게 그려내는 이 소설 역시, 작가의 추억이 버무려진 자전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 몇 편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구성된 다른 편들과는 달리 1인칭 화자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겐 더욱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편이 그렇다.
[그 틀사진은 주민등록증에 붙어 있던 흑백 증명사진을 부랴사랴 확대하여 마련한지라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느낌을 줄뿐 아니라 윤곽마저 희미하게 어룽거려 마치 급조된 몽타주 속의 인물을 연상시켰다. 조붓한 공간 속에 갇혀 건성드뭇한 대머리을 인채 움펑 꺼져 데꿈한 눈자위로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는 무엇에 놀랐는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어깨까지 한껏 곱송그리고 있어 방금 염병을 앓고 난 이 같았다.](120쪽)
경제적으로 거의 무능했던 이런 모습의 아버지가 얼떨결에 선거에 나가게 되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이 편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다른 모습(선거벽보안의 아버지)을 엿보고, 아버지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는 한 번두 이세상과 정직하게 맞서본 적이 없드랬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이북에 두 양주와 처자를 모두 두고 왔으면서도 끝내 이곳에 남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이 비겁한 애비다. 몸뚱이가 산산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래두 한 번쯤 피하지 않고 운명이라는 것하고 말이지, 부닥쳐보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133~134쪽)
어쩌면 소설가 김소진은 소설 속 아버지의 바람을 어릴 적부터 느끼면서, 운명이라는 것에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부닥치며 정직한 삶을 살다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린 지도 모르겠다.(이 독후감의 제목을 뭘로 할까 잠깐 고민하다 긍정적인 의미로 위와 같이 정했는데, 장마 때문인지 너무 질척거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