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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 하는 딸들 - 단편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나는 그의 단편을 더 좋아한다. <아이의 체온>이나 <그는 화원에서 꿈을 꾼다>, 물론 이 책도 빼놓을 수 없지. 거기에 단편은 아니지만 <플라워 오브 라이프>까지. 작품에 대놓고 혹은 살며시 드러나는 게이 코드 때문에, 꽃배경을 뒤로 마성의 게이 드립을 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는 <서양골동양과자점>이라는 희대의 걸작(!) 때문에 야오이 작가로 알려졌지만, 나는 그가 '관계를 풀어내는 데 능숙한 만화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려내는, 사람과 사람이 일으키는 감정의 진동은 종이를 넘어 현실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적절한 대사 조절, 때론 글자 하나 없이 그림만으로 이어지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긴장감 등 이렇게 다양한 떨림을 주는 만화가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그가 처음으로 온전히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엄마의 재혼이 마땅찮은 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작품은, 다양한 관계 속의 참으로 다양한 여자들을 비춘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만화 속 인물들이 엄마와 친구와 때론 남자를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살짝 눈물이 맺히기도.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은이의 인물들은 끈적하지 않다. 그 산뜻함이 문화적 차이 안에 깃든 '부딪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녀 사이의 이 쿨한 관계는 마음에 든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때론 엄마라는 이유로 나는 소중한 분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엄마. 이제껏 엄마란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강요한 적 없는 순진한 분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엄마에게 좀 쿨한 딸이 되고 싶다. 주인공처럼, 나 역시도 엄마가 죽는다면 아주 많이 슬퍼할 만큼 사랑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