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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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생각이 났다. 부실하고 무관심한 기억이 마치 작년이었는지, 재작년 이었는지, 정확히 언제인지도 이미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까마득하게 여겨지게끔 해준다. 다시한번 그때를 생각해보며 시간을 되짚어보니 그때는 2008년 여름이었다. 집에도 아무얘기도 하지 않았고, 같이갔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도 모르게 행해졌던 일. 2008년 여름, 시청광장을 비롯한 광화문 거리는 2002년 월드컵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정부의 쇠고기협상과 대운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위해 몰려들었다. 외신기자도 놀랄정도로 그 물결은 거대하게 타올랐다. 사실 나는 절대 그런곳에 참여할 성격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 (고작)두어번 참여한적이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의지가 나를 행동하게 했다. 하지만 사실상 나는 그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힘을보태는 것과는 약간 미묘하게 다른 이유로 나섰던 것 같다. 분명 그때의 쇠고기협상과 대운하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반하는 의사를 갖고 있었지만, 나를 정말로 움직이게 했던것은, 내가 분명 옳다고 생각하는 혁명이 가져올 변화된 세상에 대하여 무임승차 하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때에 나는 그 촛불집회가 분명한 승리를 거두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허나 별 시덥잖은 일상을 핑계삼았는지 나의 참여또한 오래가지 못했고, 집회또한 가능성은 보여줬지만 실질적으로 원하는 성과를 이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에겐 고작 이정도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가져다준 이 사건이 나를 비롯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을까. [빵과 장미]는 실제로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그때에 내가 느꼈을, 행복에 대한 방법적인 고민또한 다시한번 되짚어 보게 했다. 

20세기초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의 거대 방직공장들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다루는 [빵과 장미]는 실제로 그 파업을 일으킨 주체인 어른들이 아니라 그 테두리안에서 어쩌면 그 어른들보다 더 깊은 현실적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 -로사와 제이크-를 통한 시선으로 보여진다. 활활 타오르는 행복이라는 불꽃을 거뭐지기 위해서 뜨거운 열기속에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있던 어른들의 입장이 아니라, 그 어른들에게 드리워질지 모르는 죽음과 그로인해 자신들이 실제 피부로 느껴야했던 배고픔과 추위를 걱정해야 했던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을 통한 이야기 인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마치, 고리끼의 ‘어머니’ 같은 역동적이고 치열한 혁명의 모습보다는 좀 더 차분한 시각을 보여준다.  

선생님에게서 파업은 결국 법을 어기는 폭동이라고 배우는 로사는 자신의 엄마를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의 열성적인 행동을 보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것인가 라기보단,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 어떤행동이 더 옳은가로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자식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피해서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자기도하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제 꾀를 십분 발휘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기도하는 제이크 또한 파업의 열정적인 현장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결국 제 자신이 눈앞에 맞닥뜨린 추위와 배고픔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분명 성장의 시기에서의 이런 고민은 어른보다 좀더 혼란스럽겠지만, 실제 우리사회의 현실에서는 이것들이 비단 아이들만이 갖는 고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현실문제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을 옳다고 믿는지에 따라 혁명과 집회의 주체자인 어른들또한 이 책에서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처럼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갖는 신념과 믿음의 혼란은 훌쩍 자란 어른들에게도 풀리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가치관의 차이들이, (실제로 어떤 문제에 대한 찬반으로 인해 참여여부가 갈리는 것이 아닌) 파업이나 집회에 참여여부를 갈라놓는 것 아닐까. 그러니깐 연대의 성공여부는 실제적으로 반대의사를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일 뿐만아니라, 의견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눈앞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설득하는일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방법적 가치의 혼란은, 마치 미국 토박이와, 이탈리아계, 기타 등등 국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촛불집회에 장기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눈앞에 맞닥뜨린 내 자신의 현실의 문제들 때문이었는지, 옅어져 가는 희망때문이었는지, 무참히 짓밟히는 시민들을 보고 느낀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저 게을렀던 것인지 예나 지금이나 확신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참여했던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친구들 둘과 시청앞에서 촛불을 켜고 거리를 행진했다. 소심한 성격에도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이 열창하는 노래와 구호들을 크게 외쳤다. 누가 시작한지도 모르게 들려오면, 큰소리로 따라했다. 행진은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아주 천천히 천천히 진행되었고, 우리들이 그 페이스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군중들이 갖고있는 제각각의 두려움들이 그들의 걸음을 붙들었는진 모르겠지만, 경찰의 저지선에 다다랐을때 나와 친구들은 거의 맨 앞줄에서 그것들을 맞닥뜨렸다. 모두가 연대해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지만 적잖은 두려움은 내내 나를 두드려댔다. 그러다 물대포를 연상케하는 무언가가 그 저지선 높은곳에서 우리를 향했고, 나는 더이상 앞에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 혼자 뒤로 빠질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친구들을 잡아다가 함께 뒤로 가려했다. 물대포를 뒤집어쓸 각오로 무장한 사람들은 그것을 피할 것들을 머리위로 이고서 앞으로 향했다. 허나 그것은 맥빠지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일이었겠다. 그것은 후에 검거를 용이하게 하고, 국가의 녹을 받을 사람에게는 족쇄가 될지도 모를 채증용 카메라였다. 그후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진 모르겠지만, 집에는 가야할 것 아니냐는 친구의 의견에 의해 우리는 어느틈엔가 군중속에서 살짝씩 벗어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마치 몇날 몇일을 세울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그런 이야기를 해주길 바랬었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그만큼의 의지도 열정도, 용기도 없었을테니깐.

파업과 집회, 즉 작던 크던간에 혁명을 위한 참여에 대하여 어른에게는 그것들이 책임이 따르는 선택일지 모를지언정, 이 순진한(그럼에도 현실적일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는 행복을 위해 결사항전 하는 것이 진정 어떤 의미이고, 어떤것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않은 성장의 과정이다. 그렇게 이책은 사회현상에 대해서 어떤 가치를 갖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에따라 어떻게 행동할것인가의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삶을,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을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어른이 되기위한 과정중에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환기시켜 주고있다. (물론 어른이 되기전 확고한 신념을 세웠다 하더라도 후에 끊임없이 그것을 흔드는 바람이 불어올테지만 말이다.) 

허나, [빵과 장미]는 행복을 위한 가치추구에 대해서 아이들이 보는 시선과 혼란, 순수성, 성장과정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을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요소에 대하여 먹는 것을 넘어선 질문을 던진다. 그 부분은 아이들이 버몬트로 향하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그리고 그동안 대비되었던 로사와 제이크의 삶에 대한 차이를, 둘을 한집에 붙여놓음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나마 돌아갈 따뜻한 가족이 있는 로사가 던지는 질문들과, 그렇지 못한 제이크가 던지는 질문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자신은 배불리 먹으면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로사와, 아버지가 죽은게 제 탓으로 여겨질까봐, 뉴욕으로 도망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제이크의 상황또한 분명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확실한 공통점은, 결국 모든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공간은 가정이라는 곳이라는 것. 이로써 타인이 가진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면은, 조금 덜 가진자든, 조금 더 가진자든 저마다 비슷한 깊은 고민이 있다는 것 또한 보여진다. 

그리고 마지막 메세지는, 버몬트를 떠나면 정말 어디에도 제 자신이 마음놓고 쉴 수 없는 상황의 제이크를 통해 이뤄진다.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돌을 살려내려고 작정한 듯 거기에 꽃을 새기며 살아가는 제르바티와 이제는 자신의 모든 가족이 사라지고, 어린나이에도 너무나 치열한 문제와 싸워야만 했던 제이크가 진심으로 서로를 채워주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결국 연대는, 결국 공장주들에 대항하여 승리한다. 오로지 빵만을 위해, 그저 동물적 생존본능에 의해서만 이뤄진 파업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파업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이것이 승리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때문이다. 파업에 현장에서 로사의 엄마와 연대했던 이들을, 그들이 파업을 계속할 수 있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을, 제르바티의 상처입은 가슴에, 제이크의 얼어붙은 가슴에 장미꽃을 새겨준 이를 가리켜, 우리가 그것을‘사람’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거뭐지기위해 하나가 아닌 둘 이상(연대)이 필요하다면, 이 [빵과 장미]에서의 제르바티와 제이크가 불신의 벽을 허무는 모습은 연대의 기초가 믿음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시작해야 함을 말하고, 로사를 통해 보여지는 그 행복을 이루기 위한 방법적 고민과 혼란을 통한 내적성장은 연대를 이루는 개인구성원이 거쳐야할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와 고민들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올려진 구성원간의 빈틈없는 연대가 행복을 향해 앞으로 전진할때야말로, 돌같은 희망위에 장미를 새겨넣을 수 있다는 것을 로렌스 지방의 모든 이들이 온몸으로 증명했다.

[빵과 장미]가 보여주는 이 강한 연대와 그로인해 이들이 얻을 수 있었던 행복이야말로, 2008년 여름 서울의 한복판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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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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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언뜻 몇페이지를 읽었을땐.. 글과 그림은 참 가슴에 닿지만, 이거 너무 쉽게 읽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봤다.
마치 넘처나는 자기계발서와 소설의 중간쯤 역할을 하고 있는건가하고 생각이 들정도로 책은 쏜살같이 읽히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독서량이 적으니, 이런책은 쉬이 냉큼 읽어버리고 다른책을 또 읽어야지하는 한심한 생각도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절로, 페이지를 쉬이 넘기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된다.
사랑, 꿈, 철학, 정치, 사회.. 모든분야를 총 망라하며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그의 명쾌하고 유쾌한, 그리고 종종 가슴을 후벼파는 짧은 글들을 보노라면, 그리쉽게 읽어내기가 염치없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짧은 글은 긴 여운을 남기고, 희고 흰 여백만큼이나 깊게 사고할 것들이 넘쳐난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온 작가만이 해줄 수 있는 간단하지만, 쉽게 흘려보낼수 없는 삶에 관한 따뜻하고, 때로는 냉철한 시선이 마치 그 여백들이 거울이라도 된것마냥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여백이 많다고 그 여백들을 우습게 보지말자. 그게 바로 당신이 생각하고 명상할 '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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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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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만을 가끔 보던 人, 장르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통의 일반 순수문학(사실 이것을 규정하는 일도 나에겐 쉽지 않은데, 대략적으로.. 장르적 특성에 치중하지 않고,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상대적으로 문체성을 살리고 사람에 대한 심도있는 관심을 갖는 소설이라고 정의하자) 을 읽노라면, 거의 빠지지 않는것이 바로 '문체' 이야기 이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어떻게든 재미가 있어야 읽혀지게 마련인데, 문체를 따지다보면 설령 이야기 자체가 대중적인 흡입력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그 언어적 우월성으로 인해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사실 '문체'를 걸고 넘어지기엔 좀 무리가 있다. 중요한건 문체가 우월해야 재밌거나, 재미없거나 하는 것이 아닌 글을 읽을 때 그 언어의 구조를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볼것인지, 이야기 그 자체의 감흥과 메시지에 집중하며 볼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체'란것을 따지려면 실은, 그 '문체'를 분석하고, 판단/비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테고, 그 작가의 책을 거의 대부분 섭렵 한다던가, 상충되는 '문체'를 지닌 작가들을 비교할 줄 알아야 할텐데.. 그게 분명 아는척 끄적이는 것만큼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나만해도 이렇게 '문체'를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잘은 모른다.

문체에 대한 사전 검색결과이다.

"필자의 사상이나 개성이 글의 어구 등에 표현된 전체적인 특색 또는 글의 체제. "

왜 나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문체'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 했냐면, 지금까지는 접했던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문체'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런것들이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안다. 그다지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의 독서를 해온것만은 아니지만, 본의아니게 나의 독서는 그런 사고방식도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참, 오래간만에 박하샴푸로 머리를 감은 듯 싸한 느낌을 주는 책 한권을 만났다. 그게 바로 '해피엔드에 안녕을' 이다.
 
요전에 장르소설을 몇개 읽은적이 있다. 배틀로얄, 나는 전설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호러단편을 엮은 책..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이것들도 아마 다 소싯적에 봤던 책들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뭐 딱히 다르다고 하긴 그렇지만,
아무생각없이 책을 읽던 시절이었다.(물론 그만큼 많이 읽었단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것들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놨다
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몇권 안되는 장르소설이라서 그런지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그나마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독서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어차피 오십보 백보겠지만)
그래서 나는 이번기회에 '장르문학'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가며 읽게 됐다.
 
 
'해피엔드에 안녕을' 주제적 접근방식
지금까지 읽은 일반적인 책들을 보면, 보통은 사람의 생에 대해서, 내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 책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때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진실' 이란 것과 '소통' 그리고 '사람의 본성' 크게는 이 세가지 일 것이다.
 
진실? 소통?
아무리 왈가왈부 한다고 해도 역시 이 책의 묘미는 허를 찌르는 반전이 제일이긴 하다. 뒤통수 맞는 기분의 반전부터,
등골 서늘하게 하는 반전, 미스테리한 반전까지 각양 각색의 색을 지닌 반전의 향연이다. 하지만 모든 단편들에 이것을 주제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부분은 '진실'이라는 모토를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어보였다.
 
우리는 보통 남들에게 주워듣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면 뉴스등을 통해서 사회의 사건사고 들을 접한다. 하지만 거기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괜히 뒷얘기 상상하면 '음모론자' 취급받기 딱좋다') '해피엔드에 안녕을' 우리가 보는 것들중에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3인칭 시점의 이야기들이 다소 많은것을 본다면, 실제로 우리가 보는 그런 '제약적인 시각'이 진실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아닌가 싶다. 또한 진실은 힘을 가진자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할 뿐 아닌가?
 
반전자체가 또 하나의 진실이기떄문에 어쩌면 이런 반전을 지닌 소설은 필연적으로 '진실'의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꾸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드에 안녕을' 은 적지않은 이야기들이 사회적인 현상과 맞물린다. 얘기를 자꾸 산으로 돌리니 결론만 말하자면, 사회적인 이야기에는 그것들을 '자신의 시각'만으로 바라봄으로 인해 생기는 진실의 왜곡과 오해, 개인적인 이야기에는 소통의 부재가 낳는 오해와 그로인해 드러나는 인간내면의 어두운 일면을 트릭과 이야기의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책, 그렇게 딱딱하지 않다. 개인사와 사회현상을 교모하게 넘어들기 때문에 어떤 부담도 갖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저그런 반전,트릭,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이 '해피엔드에 안녕을'에 실린 단편들은 한편한편 확고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언니 - 첫 작품이니, 이 반전이라는 뿅망치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게해주는 작품이다. 사소한 오해와, 불신이 얼마만큼의 위력을 지니는지, 그것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해서 걷잡을 수 없게 되면....

벚꽃 지다. - 그렇게 살면서 강조하는 열정, 열정.. 현실은 모두가  이상을 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과에 대한 것은 솔직히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던 듯한 이야기 였는데, 그것을 포장하고, 풀어나가는 솜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은 결국 파편의 조잡한 덩어리 라는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천국의 형에게 - 짧지만 강렬하다. 미묘한 말 하나로도 우리는 많은 진실을 숨기기도, 드러낼 수도 있었다.
 
지워진 15번 - 감정의 파급효과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15번은 대체 어디에...
 
죽은 자의 얼굴 - 고전적인, 하지만 더욱 교묘한 이야기. 가장 등골이 오싹했다.
 
방역 - 이웃나라도 비슷한 사정인걸까.. 자식을 소유물로, 자신의 분신으로 보는 위험한 시각.. 이또한 등골이 오싹했다.
 
강 위를 흐르는 것 - 이또한 사회현상과 닿아있다. 오싹함보다는, 현상에 대한 생각과, 치밀함을 돌이켜보게 했다.
 
살인휴가 - 어쩌면.. 이란 예측이 다소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이야기. 물론 거의 모든 트릭이 밝혀진 결말 바로 근처에서.
 
영원한 약속 - 어디까지가 어디까지인걸까 라는 모호한 질문을 던지게 됐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약간 갸우뚱 거리는 부분이 다소 있기도 했다.
 
In the lap of the mother - 교육열이든 그 반대든.. 극을 달리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부모의 자질이란 대체 이렇게나 힘든걸까.
 
존엄과 죽음 - 제목과 아주 적절히 맞아 떨어진다. 반전또한 일품이다.
 
 

'해피엔드에 안녕을' 방법적 접근방식 : 반전을 맞추려고, 복선을 찾아 헤매지 말 것
장르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여기서 제안하는 방법적인 접근 방식이 좀 주제넘을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내가 분석해본 것으론 이렇게 읽는편이 더 좋을 것 같다. 트릭이나 추리소설, 반전등에 익숙하여 그것들을 (불가피하게라도) 능수능란하게 찾아낼 줄 아는 이들이 아니라면, 굳이 애써 트릭을 찾아서 그것을 풀려하지 않는게 더 좋다고 본다. 나같은 경우에는 전반부의 몇편을 보면서 뒤통수를 몇대 얻어맞다 보니, 후반부에는 반전을 맞춰보고 거기에 만족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복선이 되는 부분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결과는 90%는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맞추기 위한 소설이 아닐것이다. 그 반전에 대한 '뒷통수'를 제대로 맞아주기 위한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서 얼마만큼 뒷통수를 세게 맞았느냐에 따라서 그 이야기의 주제에 대해서 더 심도있는 관찰과 고민을 하게됐다. 반전을 통해, 사실주의적으로 드러나는 현실보다 몇배 더 강한 충격을 더해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얼마나 착한지, 나쁜지, 혹은 이상한지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대책없이 드러나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반전을 맞추려고 머리를 싸매지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놀래라. 이것은 그러기 위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주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식이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치밀한 방법들이 우수하기때문에, '문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제쳐두고서도 '스릴있고 즐거우면서도 좋은 책 읽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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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강산애의 노래가 떠오른다. 하지만 어디 연어 뿐이겠는가. 마치 숙명처럼 놓여진 가시밭같은 험난한 인생사를 뚫고 살아가는 모든이들 또한 연어같은 모습은 아닐까. 지금보다 더 무지몽매한 시절 읽었던 연어를 떠올려보면, 연어이야기 또한 분명 시적인 감수성과 삶에 대한 따뜻한 관찰과 희망적인 역동성이 담겨있을 책이기에 낙엽서걱이는 소리에도 가슴 저려지는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읽어보고 싶다.

 

 

  

 

그저 한세기에 나라를 구한 성웅으로만 생각했을 이순신장군에 대하여, 또 다른 시선과 재미까지 안겨주였던 김훈작가의 [칼의노래]를 읽었을때 느꼈던 강렬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 젊은날의 숲'의 신간까지 발간되는 시기에서, 너무 늦지않게 공무도하를 거쳐가고 싶다.

 

 

   

 365일이란 시간에서, 단 한번씩 찾아오는 계절들도 이제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러나 아직은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싶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쌀쌀맞을 것 같기에, 늦어도 11월에는 이책을 읽고 지나가야겠다. '늦어도 12월에는' 도 아닌, 한해의 마지막인 12월을 즐길수 있게 '늦어도 11월에는' 이라니 참 맘에드는 책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11월이 가기전에 어떻게 해서든 읽어봐야 할 책이지 않을까.

 

 

 

  

 문학동네가 발굴한 신인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까. 책 제목의 사라다가 그 '사라다'라니! 게다가 오밀조밀하게 구성된 방의 모습또한 책에 대한 지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주고있다. 요새에 읽어내렸던 청춘이라는 시기를 통과하는 책들은 모두 나의 현재를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도 분명 그 사이에 이름을 걸쳐놓을수 있겠지!

 

 

 

  

 예-전부터 너무 읽고싶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 우주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언젠가 '도를 아십니까'를 말해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 "우주의 가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이야기의 결과는 역시나 였지만, 그가 말했던 "우주의 가을"이라는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주를 소재로한 흥모로운 이야기들을 꽤 많이 접해왔다. 그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어느 작가또한 추천했던 책이니만큼, 이 분명 우주를 과학에만 머무르지 않게 할 중대한 책이 아닐까!

 

  

 제목부터 참 읽고싶단 생각이 든다. 영화든 드라마든 우리는 주인공에 익숙해져있고, 거기에 집중한다. 그들을 둘러싸고 그들을 관찰하는 많은 구경꾼들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나는 적잖이 그 구경꾼들과 주변인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런 나의 시선과 부합하는 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목과 책표지그림만으로도 이렇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책이 많진 않은데.. 나도 구경하고 싶어라!!

  

 

  

가을즈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 산란을 하는 연어, 그리고 그보다 진한 삶의 이야기 [연어이야기]를 [늦어도 11월에는], [공무도하]와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 올것이고, 그때쯤이면 우리를 둘러싼 [코스모스] 안에서, 나를 스쳐간, 내가 스쳐간 [구경꾼들]을 다시한번 되새김질 해볼 수 있겠지요.  

연어이야기 : 문학동네. 6750원

공무도하 : 문학동네. 9,900원

늦어도 11월에는 : 문학동네. 6000원

사라다햄버튼의 겨울 : 문학동네. 8,100원

코스모스(보급판) : 사이언스북스. 11,900원 

구경꾼들 : 문학동네. 9,000원 

총 : 51,6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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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를 기다리며 읽기를 미뤄두는 책들을 '이제는' 조금씩 읽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가끔, 세기를 넘어서 너무 유명한 책들, 그러니깐 길가다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 왜인지 다 읽어봤을 법한 책에는 정이 잘 가질 않는다. 괜한 소유욕인가보다. 소실적에 읽어봤던 '위대한 개츠비'나 '호밀밭의 파수꾼' 등을 읽으면서도 정말 나는 전혀 아무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제나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문득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나 '데미안'을 읽고서 감탄하지 않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내가 소홀히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펼쳐보면 아마 또 다른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나는 나름대로 삶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배웠기 때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은 그 연장선이다. 너무나 유명한책, 하지만 그로인해 흥미를 갖지 못했던 책. 하지만.. 아마 이것도 소실적에 읽어봤더라면, 소홀하게 읽고서 언제 다시 읽을지 기약이 없었을 책.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책.(부끄럽게도 말이다.)  

얼마전에 '레터스 투 줄리엣'이란 영화에서 나오는 편지를 보면서, 사람이 자신의 고통과 열정을 가장 솔직하게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지금 베르테르의 슬픔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이 책을 들고 싶다. 시공을 넘어 베르테르와 슬픔을 나눠보자.

 

 인상깊게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울프스 레인' 에서는 엔딩곡으로 cloud9 이라는 곡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KT&G 에서 cloud9 이라는 프리미엄 담배 또한 있다. 이렇게 가끔씩 보게되는 그 문제의 cloud9에 대해서 알아본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너무 늦지 않게, 신곡을 읽어보고 말리라 하는 결심을 세워두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이후, 전국 여러곳에 분향소가 세워졌을 무렵, 나는 그분께서 살아생전계실때에 크게 지지한적도, 비판한적도 없었기에 다른이들처럼의 관심은 없었지만 언젠가 봤던 선거연설은 가슴 깊숙히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정치인의 자살에 내 마음이 그렇게 동요했던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언젠가 분향소를 찾았다. 절을 하기 전일까, 후일까. 조화와 담배가 수북히 쌓인곳에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KT&G 사의 cloud9. 기억해보면 다른담배또한 수북했지만, 왜인지 그때의 나에겐 그 cloud9 의 모습과, 상황의 묘한 조화로움은 아직까지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천국을 찾아가신 걸까.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천국을 그곳에서는 이루고 계신걸까...그러셨으면 좋겠다.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기억만큼, 그가 천국으로 향하는 9번째 계단을 온전히 밟았길 희망한다.  그리고 또한, 그 괴테가 '인간의 손으로 된 최고의 것' 이라 칭했으니, 너무 늦지않게 탐독해봐야 하지 않을까. 신곡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아홉번째 계단' 이라는 cloud9. 언제까지 지식인에 의존한 지식을 담아두는것을 이젠 멈추고 싶다.

 

 예전에 '동물농장'을 읽고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이기에 가득찬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체제들을 동물에 빗댄 이야기를 보면서 넋을 잃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주제의식에 대해서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1Q84를 읽었을때에 보니깐, 1984의 여러 개념과 용어들이 차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1984는 아직 읽지 않았기에..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얘기들) 도대체 어떤 것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루키가 차용할 정도인지, 동물동장보다 더 높게쳐주는 1984는 얼마나 큰 충격을 줄지, 나는 좀 느껴보고 싶다. 물론 차용된 용어들의 개념정립은, 하루키 또한 어느정도 주관적으로 해석되었겠으나, 그 1Q84를 있게끔 해준 1984의 모습을 꼭 확인해 보고 싶다. (용어는 동일하나 큰 관련은없다는 얘기도 본것 같긴 하지만..) 그리고 이 1984를 읽은후에는 1Q84를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또한 해본다. 

나는 빅브라더의 기원에 대해서 적.확.히 알고싶다! 

 새로운 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좋아하지않는 분야의 책들도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빨리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만큼 좋은 책들또한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난 너무 늦지않게 고전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보고 싶다. 이렇게 지원해주지 않으면 이 고전읽기 프로젝트는 또 우수한 신간속에 뭍혀서 언제 다시 장바구니에 담길지 모르기에..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발표날인 22일은...  

생일 입니다!!   

이왕이면 기분좋게.. 선물 한번 쏴 주시죠..^^

 

-계산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양장본, 문학동네) 9,000원 
신곡 (완역, 서해문집) :                        32,300원 
1984 (반양장, 문학동네) :                      9,900원      --- 총 5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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