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상처를 통해 숨쉰다..

 
사람들은 살면서 제나름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타인이 보기에 얼마나 큰 상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느낀 그 상처의 크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보통의 생명체라면 자가회복의 능력을 지닌다. 그 어떤 생물도, 사람도, 자연도 마찬가지다. 본디 태생이 그렇게 회복능력을 갖춤에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만하는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부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상처를 만들고, 거기에 급급하게 치료법을 만드느라 항상 분주하다. 하지만 그런 생물학적 상처를 능가하는.. 여전히 인류를 관통하는 상처는, 옛것에 있다. 옛부터 내려온 것들에서부터 있다. 
 

그 중심에 사랑과 상실이 있지 않을까. 사랑의 대상을 상실한다 하여도 사랑할 수 있다친다면 상실은 사랑의 반대는 아닐것이다. 다만 사랑이 상실되던, 사랑의 대상이 상실되던, 보편적인 감성이라면, 그 사랑과 관련된 그 어떤것의 상실도 괴롭기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 괴로움의 상처에 흉이 지던, 새살이 잘 돋던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매끈한 피부라고 해서 상처없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아가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자식간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그것조차 뛰어넘는다. 구병모 작가는 평범한 사람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탄생할 수 있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다. 무규칙 형태의 사랑이니깐, 무규칙 형태의 상실과 상처가 발생한다. 
 

기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 아닐까?
어떤 시공간 속에서도 탄생해버리는 사랑과, 그 어느 틈에서도 발생하는 상실과 상처에 대한 삶을..


독백같은 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박터지는 직장에서 이리저리 채여가며 악착같이 밥줄을 붙들며, 노모를 모시고 사는 해류는 모자란 택시비로 인해 집에 채 도착하지 못한채로 길에서 내리게 되고, 술기운에 저벅되다 다리난간틈에 떨어져버린 핸드폰을 주우려다 한강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물고기가 아니라서 물속에서 숨쉴수 없고, 그래서 호흡기관에 물이 들어차지 않게 계속해서 물 위에서 허둥대야 한다. 그러니 그렇게 몸서리 칠 줄 모르는 인간은, 누군가 물에 빠져 호흡기관에 물이 들어차며, 인체의 70%를 차지하는 물이 100%가 될때까지, 직접적으로 도와주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더욱이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자고 제 목숨을 담보로 하는게 어디 쉬울까. 누구하나 해류를 직접 구하러 뛰어들지 못하고, 신고후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손길이 뻗친다. 사람으로 보기엔 너무나 갑작스럽고, 물고기로 보기엔 너무나 큰 존재. 하지만 그가 누군지 해류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누구를 설득시킬 수도 없었다. 그저 그녀를 구해준 누군가가 물에 빠져죽지는 않았는지 수색대원이 한강을 살펴야 하는 현실로 건져진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때로는 해프닝 처럼 벌어진다. 삶은 시작도 끝도 예측할 수 없다. 과학은 그 영역에 계속해서 손을 뻗치려 하지만, 항상 언제나 한계에 부딪힐 뿐이다. 물론 그래야 할 것이다.
 

한 아이가 있다. 사랑도 정도 책임도 실종된 엄마로 인해 아기때부터 처절하게 살아온 아이는, 결국 삶의 모든 의미를 절망으로 빼곡히 채운 아빠로 인해 함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순간, 마을의 한 할아버지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손자와 단둘이 사는 할아버지는 이내 그 아이에게 어떤 이상한 상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서 할아버지와 그 손자는 고민하고, 결국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 아이를 기르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곤'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는 삶이었다.(47p)
 

대학생들의 MT 장소가 되기도 하는 어느 한적한 휴양지에서는 그때의 상처를 갖고 있는 '곤'이 숨쉬고 있다. 해류는 드디어 그를 발견한다. 그녀가 일전에 한강에 빠졌을때 구해준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린 것을 누군가 보고 연락을 취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녀는 곤과 함께 자랐던 강하라는 인물에게 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결국, 곤을 찾아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만들어진다.

 
일단, 블로그를 통해 서로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던 해류와 강하의 만남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미 블로그라는 온라인 상의 공간이 여러 정보와 소통의 공간이 된지는 오래지만, 이렇게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확실히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이란 공간이 만드는 시공을 초월한 운명의 변화를 새삼 깨닫게 될 수 있었다. 해류와 강하의 만남, 그로인해 곤을 찾을 수 있게 되기까지, 그 단순한 블로그란 공간이 했던 역할은 실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연같은 사건들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돈이없어 중간에 내릴 수 밖에 없었던 택시, 집으로 걸어가다 떨어뜨린 핸드폰을 줍다 한강에 떨어져버린 사건. 어떤 만남. 그 사건을 블로그에 올린 것을 본 강하와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생긴 곤과의 필연적인 재회.. 

 
필연 이라는 말을 여기에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하니, 어떤 우연들을 통해 (실로 웹상에서는 정보들이 아주 촘촘하게 얽혀있어서 그것들과 인연을 맺는 것 자체도 굉장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하면될까. 아마도 블로그를 통한 해류와 강하의 만남의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건으로 인해, 곤을 키우던 강하와 할아버지의 소식, 강하가 바라보고 느끼고 그렇게 했어야만 했던, 혹은 그렇게 했기때문에 후회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을 유일하게 전달받은 것은 세상에 해류 혼자 뿐 이었다. 그래서 해류는 곤을 찾아가야만 했다. 그 자신의 시선으로만 가득차있는 곤의 과거에 한 시대를 함께했던 강하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만 했다. 해명 아닌 해명, 어떻게 보면 변명.. 하지만 강하의 진심은 해류의 입을 통해 곤에게 온전히 전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더 극적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해류또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길이 없어 블로그라는 공간에 올렸던 것이고, 강하또한 곤을 찾지 못해 어디에도 그 시절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없었기에, 해류를 만난것은 일종의 블로그같은 소통의 공간을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결국 그들은 제 자신에게 적합한 공간, 사람을 찾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제가 슬프다고 한 건,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 밖에 없을 만큼 사람들마다 삶의 무게가 비슷하구나 싶어서입니다."(51p)
 

곤에게서 원망같은 침울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유념시절부터 알아온 체념의 터득, 그리고 일말의 죄책감, 혹은 원망감 같은 감정들조차 세월에 씻겨 그 빛을 바란건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곤에게선 어쩔수 없는 과거의 상실감이 풍겨온다. 기억나지 않는, 혹은 어떤 본능적인 제어로 인해 기억될 수 없는 유년의 기억, 강하의 집에서 함께살던, 어느정도의 체념으로 인해 나름 평온했던 날들.. 그리고 어떤 한 순간에 그 모든시간들을 영영 떠나보내야만 했던 순간.. 아마 그것들은 곤에게 거의 전부인 과거였을 테니깐 말이다.


해류를 통해 전해들은 강하의 이야기로 인해, 곤은 이제 자신이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과거,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을 찾아간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인정하게 된다. 강하가 자신에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간의 이유들과 참회로 인해 그 시간들의 상처와 마주하고, 그 틈으로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본디 강하와 할아버지가 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곤에게 있는 알수없는 상처를 갖고 곤란해 했었다. 그로인해 비밀스럽게 의원까지 부르게 되지만, 결국은 곤의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세상에 내놓는 것은 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조용히 그를 기를 길렀다. 그 상처를 혐호하거나, 억지로 덮어두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그것을 호기심으로만 바라볼 세상에서 떨어뜨렸을 뿐이었다. 곤은 뇌가 기억할 수 없지만 본능으로 기억할 아기때부터 지독한 삶을 살왔고, 그 결과마저 비참할 뻔 했다. 어쩌면 아가미는 그런 주류세상에 편입할 수 없는 곤이 다른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 아닐까. 그것이 생에 대한 본능으로 인해 제로에 가까운 확률로 우연찮게 발현된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다버려지다시피한 엄마로부터 상처받았던 강하는 그래서 그 곤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숨겨야했던 그 상처, 아가미를 누군가에게 그대로 이해받고, 그리고 이해받았었다는 사실은 그의 상처를 더이상 덮어두지 않아도 되게끔 한다. 이제 곤은 그 상처로 숨쉰다. 그리고 그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여준, 하지만 그때는 알지못했던, 그리고 이미 늦어버린 그 시간을 향해 힘껏 거슬러 찾아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서지는 햇살을 오롯이 받아들여 다시 그것을 휘황찬란한 온갖색으로 부서뜨리는 그의 비늘은 아름답고도 슬픈 모습이었다.

 
<아가미>는 낯선 누군가를 통해 스러져가는 삶을 다잡고,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인정받고, 위로받고, 그로인해 다시 낯선 누군가를 구원해내는 이야기다. 그것은 인물간의 교차되지만, 모두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해류는 블로그를 그 통로로, 강하와 곤은 해류를 그 통로로 사용했듯, 구병모 작가는 글이라는 매체를 그 통로로 우리에게 슬프도록 눈부신 상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싫어' 라는 건 반드시 증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달리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아 싫다는 것뿐이지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에요. 그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 가운데 가장 범위가 넓은 거라고 봐요. (p166)


인간의 몸에 70%가 수분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통설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물고기처럼 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로 모든 생물은 물에서 뻗어나왔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그 사실을 너무 오래전에 잊어버린 종(種)중에 하나인 셈이다. 마치 곤처럼, 우리 과거의 시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을 잊어버린 우리들은 물에서 살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과거를 잊어버렸으니, 그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유영하지 못하고 두려워 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 그 불완전한 기억들과 과거를 온전히 이야기 해 줄 수 있게된다면.. 어쩔 수 없었던, 그래야만 했던, 그때는 볼 수 없었던 시간의 이면이 가진 상처들이 비로소 우리가 제대로 숨쉴 수 있는 틈이 되어줄 수 있는것 아닐까. 그렇게 제 안으로 들어온 생의 에너지가 다시금 우리들을, 스러지지 않고 앞으로 똑바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고, 흩어진 상처들을 하나씩 이어나가면 마침내, 빛이 고인, 기적처럼 아름다운 완전체의 비늘을 마주할 수 있다. 구병모 작가는, 우리가 이시대에서 온전히 호흡하기 위해, 과거 한켠에 묻어둔 상처와 어떻게 해후해야 하는지 글을 다리삼아 이야기 한다.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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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처음 해보는 신간 추천..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책소개와 배경지식으로 책을 소개해야하는 위험함과 어려움이.. 정말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스스로도 가끔, 정말 이렇게 추천을 해도 되는 책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과연 어떨지.. 일단은 한번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4월의 추천 예술/대중문화/만화 분야의 책은 어래와 같다. 

 

  

가려운 곳은 긁어야 한다. 헌데 왜 가려울까. 사실 어디서 간지럽히는줄은 아는데, 잘 긁지를 못하게 한다. 그래서 미칠지경이다. <시사인만화>는 아마 그렇게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만화이다.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로 유명한 굽시니스트 가 그린, 시사 만화가 굽시니스트의 '정수'라고 소개된 부분이 참 기대할 만 하다. 특히나, 시의성 문제로 실리지 못했던 두편이 어떤것일지 궁금해진다. 현실을 비틀어 현대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은 가공할만한 상상뿐만이 아니다. 티비속에서 화자되는, 화자될 수 밖에 없는 인물들에게, 우리가 던져주고 싶은 말들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대신해줄 만화가 기대된다.

 

 

 

 

 창작자에게 무엇을 배경으로,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기초로 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여기 이태원에 사는 아티스트 들은 이태원을 배경으로 창작을 해나간다. 이태원에 사는 기본적인 공통점을 시작으로, 미술, 음악, 웹디자인, 디자인, 가구, 공예, 음식, 패션.. 그리고 사랑까지 다양하고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한 지역에서 펼쳐보이는 창작의 과정은 분명 다채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게다가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영감을 받을 것이고, 또 그 창작들이 또하나의 이태원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심히 궁금해지면서도, 상상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이 인다. 그들은 자신이 숨쉬는 공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만들어갔을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인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과 비영화인이 영화를 이야기 하는것, 때론 서로 으르렁 대지만 분명 두 분야 다 가치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알고있는 영화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영화는 분명 다를 테니깐. 저자에 대해서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지 모르지만, 약력으로만 살피자면, 김종철 작가는 영화인과 비영화인의 중간적인 역할을 할 것 같다. 게다가 시리즈로 나온 그의 저서들을 보면, 그 박학다식함이 굉장할 듯 보인다. 어쨌든 이 책은, 기본적인 영화사를 쉽게 풀이하고,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영화'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줄 듯 보인다. 영화에 관한 책들은 간혹, 너무 깊거나, 혹은 너무 감성적으로 흐르거나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적당히 그 중간을 절충한 책이기를 기대한다. 영화사를 깊고 넓게 섭렵하는 사이에, 저절로 좋은영화와 비교적 그렇지 않은 잣대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다면, 아니 그 잣대에 대해서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사를 통해 영화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기를 기대한다.

 

 

  

 바그너라.. 바그너라니. 언제 처음 접했다가 잊어버렸더라..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확실한건, 그때 바그너를 접했던 책은 매우 어려웠고, 내 머리는 지금보다더 더 덜 여물었단 사실이다. 물론 이책이 바그너에 관한 책은 아니다. 현대의 예술을 아우르는 '총체예술'을 살펴보는 책이다. 그 시작인, 바그너부터 살펴보기에 꺼낸 얘기다. 다만, 부제는 '바그너에서 백남준까지'인데..목차를 보았을 때 바그너와 백남준이 다는 아닌듯 보인다. 초입부에서는 총체예술의 개념과 기원을 잡는데 주목하고, 중반부 부터는 한국의 연극과 판소리에 대해서 보여줄 듯 하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연기에 관해 설명한다.. 이정도면 눈치챌만한 것이, 예술/대중문화에서 연극으로 분류되있는 책이다. 총체예술의 개념 그 자체보다는 연극에서 필요한 총체예술의 개념이 조금 더 어울릴 듯 보인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다소 독자층이 넓진 않을 텐데, 묘하게 또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다. 바로 한국을 조망하기 시작하는 제2부 부터이다. 책의 분량상 깊게 들어가진 못할테지만, 서양에서 시작된 총체예술의 기원을 살핀 후 한국의 판소리와 마당극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제3부 연기부분도 연기지도를 위한 부분이 아닌, 연기관에서 언급될 것 같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연극/연기분야의 책을 처음 접한다면 낯선느낌은 없잖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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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예술분야 리스트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본격 시사인 만화-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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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 예술 개론- 총체예술 바그너에서 백남준까지
김수남 지음 / 월인 / 2011년 3월
16,000원 → 15,200원(5%할인) / 마일리지 46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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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강을 기억하다
강제욱 외 사진, 이미지프레시안 기획 / 아카이브 / 2011년 3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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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주민일기
나난 외 지음 / 북노마드 / 2011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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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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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는 목사였던 할아버지, 땜장이이자 행상인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시계 수리공이었던 아들, 이 삼대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시계를 고치는 일로 가족을 부양해온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된다. 병상에 누운 조지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8일간, 마치 환상을 보듯 추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 속의 아버지가 추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언제까지고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그 애틋한 기억을 노래한 작품이 바로 『팅커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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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그 세심한 문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진정 '퓰리처상 수상작이란 이런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은 매우 아름다웠고, 정교했다. 어떨땐, 그 아름답고 정교한 문장이 폭풍처럼 몰아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황홀하고, 어떨땐 몇 문장 사이로 그런 매혹적인 문장이 눈에 들어오고, 가슴을 요동케 했다.

책 소개와 같이 시계 수리공이었던 '조지'의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문장은, 그 문장과 문장사이라고 말할 틈도 없이 구체적이며 몽환적이다. 책의 앞부분부터, 나는 꿈과 현실사이에 오버랩되는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와 마주친다.

지붕이 무너지면서 다시 나무와 못, 타르지와 지붕널과 절연재의 사태가 일어났다. 모루의 함대처럼 푸른빛을 가로질러 떠가는, 위가 납작한 구름들로 가득 찬 하늘이 보였다. 조지는 아픈 몸으로 밖에 나갔을 때의 그 습하고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구름이 움직임을 중단하고 순간적으로 멈칫하더니 그의 머리로 곤두박질쳤다. 하늘의 푸른빛이 그 뒤를 이었다. 마치 배수구로 물이 빠지듯, 높은 곳으로부터 그가 있는 너저분한 콘크리트 구멍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다음에는 별들이 떨어지며, 제자리에서 떨어져나온 하늘의 장식물들처럼 그의 주변에서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침내 고정한 압정이 빠진 듯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폐한 검은 공간이 지하실의 잡동사니 더미 전체 위로 늘어져, 조지의 혼란스러운 소멸을 덮어버렸다. (11~12p)

이것들을 대체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있는지도 몰랐던 지하의 비밀창고에서 먼 옛날의 해묵은 먼지가 가득내려앉은 글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이야기가 소설인지, 일기인지도 구분 못하는 바보처럼 말이다. 그건 마치, 구름위의 글자에 주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개속의 불빛을 따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꿈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분간해 낼 재간이 없었다. 황홀과 고통이 동시에 내 눈을 흔들어놓았다. 머리는 진동했고, 앞뒤 문맥을 재차 읽어보며, 어디까지가 그의 묘사이고, 어디까지가 행동인지 구분해 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명확히, 묘사임을, 알아챈다 하더라도, 그의 문장은 그것을 믿게하는 힘이 있었다.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었고, 정교했다. 마치 중간중간 언급되는 시계조립의 교본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부분이 그렇진 않다. 아마 정말, 모든 표현과 묘사가 이러했다면, 정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거나,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아직 멀었어' 라면서 말이다. 어쨌든 요 근래에 소설하나에 이렇게 시간을 쏟은건 처음이었다. 날 위해서, 내가 원해서 들었던 책이건만, 곤욕을 치르기도 한 셈이다. 그럼에도 매혹적이다. 마치 장미의 모습과 똑 닮았다. 아니, 마약과 닮았을까. 문장들을 읽어내는게 때로는 정말 고단한 일이 될지라도, 그 아름다운 표현은 이책을 끝까지 들기엔 충분했다.

 
이야기의 진행은 크게 조지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아버지인 하워드, 그리고 다시 그 하워드의 아버지로 향한다. 다만, 모든 묘사가 기억이라는 것에 근거하지만, 보편적인 현재는 조지가 되기에, 조지의 투병생활의 모습은 간간이 이야기 중간에 삽입된다. 그리고 케너 대븐포트 목사의 [합리적 기계공] 이란 책의 내용또한 중간중간 계속해서 등장한다. (목사라는 관점과 글을 쓰는 관점에서 본다면 영락없는 하워드의 아버지인데, 연도에서 다소 헷갈린다.)

네 아버지가 설교에서 늘 말하고 또 집에서 너에게 말하듯이 그 불확실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더 큰 확실성의 일부라는 것을 기뻐하라. 그리고 도끼가 장작을 물고 들어갈 때, 네 가슴 아픔과 네 영혼의 혼란이 곧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아직 인간이라는, 아직 세상의 아름다움을 향해 열려 있다는, 그런 것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전혀 없는데도 그것을 받았다는 뜻이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어라. 그리고 네 가슴 아픔에 화가 날 때는 기억하라. 너는 곧 죽어서 땅에 묻힐 것이라는 사실을. (89p)

적잖은 문장들이, 삶을 꿰뚫는 통찰위에 아름다운 무늬로 치장되있다. 책을 읽을 때, 이야기 전체가 가슴에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디를 접고, 어디를 밑줄그어야 할지 모를정도로 훌륭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책이 있는데, 이 <팅커스>는 당연히 후자이다.  


<팅커스>를 아우르는 이 삼대의 남자들은, 아니 이 삼대가 이룬 모든 가정들은 오묘하고, 흐릿하다. 더욱이 조지의 아버지인 하워드,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보면 지독한 몽상가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사람들이다. 하워드가 기억하는 그의 목사아버지 또한 유령같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으며, 언젠가 하워드는 사라진 아버지를 찾으러 어느 물가에 종일 몸을 담그고 있다가, 발작증세를 얻게된다. 땜장이인 하워드는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수레에 실린 물건들을 갖고 조지가 도망쳤을 때도 오히려 조지가 멀리 갔기를 바랬고, 그의 발작을 견디다 못한 부인이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는 사실을 알고선, 멀지않은 날에, 물건들을 모두 팔아버리고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집나간 그(하워드)가 단 한번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과 마주치는 기억을 생에 마지막에 떠올리는 조지의 마지막 회상-곧 이야기의 마지막-은 모든 것을 마무리짓는 묘한 절묘함이 있었다.

조지와 하워드, 그리고 하워드의 아버지가 모두 몽환적인 존재가 되는 근거는 어쩌면 단 하나이다. 이 모든것들이 조지의 기억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억이 풀어해쳐지는 과정에서 인칭은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그 모든것들도 기억이란ㅡ확실하고도 미지의 영역ㅡ에 것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인물들의 불확실성과 겨우 형태를 유지하지만 톡 건드리면 흩어질 가루들 같은 인물들이 증명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팅커스>에서 그려지는 구체적인 묘사야 말로,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나에겐 '득'이기도 하고, '실'이기도 하다. 꽤나 구체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넣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 한숨이 나올때도 있다. 더불어,<팅커스> 문장은 때론, 그 길이에, 호흡이 압도 당할때가 있다. 들숨과 날숨을 어디에서 템포를 맞춰야 할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독자는, 그 문장 사이에서, 문장과 문장사이가 아닌 하나의 문장이 이뤄지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길을 잃는게 이 '폴 하딩' 이란 작가가 의도하는 게 아닐까? 때론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이란 공간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서 길을 잃는건 어쩌면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인지하고있지 못할 뿐이지.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쉽진 않았지만, 즐겁기도 했던 책이다. 언젠가 한번 다시 들춰볼 것 같다. 아마 그때쯤이면 지금 희미하게 이해했던 순간들을 조금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둔한 눈으로는ㅡ물주머니와 신경, 기적 그 자체, 고움 그 자체, 빛을 포착하는 것. 그러나 본질은 숲도 빛도 어둠도 아니야. 내 서툰 눈길에, 내 둔한 관심에 흩어져버리는 다른 어떤 것이야. 잎과 빛과 그림자와 물결치는 바람으로 이루어진 누비이불이 혹시 갈라지면, 그 이면에 있는 것을 잠깐 볼 기회가 주어질지도 몰라. 자꾸 움직이다 꿰맨 곳이 저절로 느슨해질지도 모르지. 누가 느슨하게 풀어줄지도 모르고 그것을 꿰맨 존재가 잘못해서 길가의 사탕단풍 잎들 속에 헐렁한 바늘땀을 하나 남겨놓았을지도 몰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몰라도ㅡ별들의 빛, 중력, 어둠일까ㅡ실의 그 땀 하나가 바람에 움직이다 어떻게 헐거워진 거야. 바람은 늘 하얀 봉오리와 녹색 잎과 핏빛과 주황색 잎과 헐벗은 가지를 걱정하며 가만있지를 못하잖아. 그래서 뭔지는 몰라도 이 세상을 짠 재료 가운데 두 조각 사이가 헐거워져, 어쩌면 거기에 딱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생겼는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아주 운이 좋아서 이 서랍이 달린 수레에 앉아 반짝이는 잎들 사이에서 그 구멍을 발견하고, 아주 민첩해서 은빛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고, 아주 용감해서 그 찢어진 틈에 내 손가락을 집어넣는거야. 손이 닿기만 해도 큰 고요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그 구멍에. (67p)

그것은 특별하진 않을것이다. 마치 위의 부분처럼, 딱 내 눈이 자리잡을 만한 단어사이의 여백을 잡아내는 일. 그래서 그 사이를 이어주는 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뿐일지도 모를일이다. 

이왕 책을 펼쳐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라는 구절과 마주쳤다면, 이제부터는 아예 딴 세상이라 생각하고 신발 끈을 조여맬 것, 아니, 신발을 벗어버릴 것 _ 정영목(번역가)

심지어 새 둥지를 만다는 방법에 관한 짧은 구절조차 눈부시다 _ 퍼블리셔스 위클리

모두가 맞는 말이다. 나에게 는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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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도 좋은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지만, 인디영화계 또한 아주 우수한 영화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개봉환경에서 열세에 놓인 영화들이지만, 메이저 흥행배우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결코 뒤지지 않는 연출과 촬영, 연기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가피하게 상업성이 개연된 영화들보다 좀 더 깊은 고민과 진정성이 담겨있는 점이 장점일 것입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균일하게 표현된 영화들은 사실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지금 소개하는 영화들은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개봉중인 <두만강>과 <굿바이, 평양> 그리고 이전에 개봉됐던 <어떤나라>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남한의 시선이 아닌, 각각 재중동포감독, 재일동포감독, 그리고 영미권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 시선과 시각, 그에 따른 다른 표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두만강> 

감독 : 장률 / 배우 : 추이젠, 윤란, 최건, 이경림, 지안 쿠이

 

<영화소개> 

희망도 절망도 소리 없이 얼어가는 곳, 두만강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 변의 한 마을. 할아버지와 누이와 함께 사는 열 두 살 창호는 식량을 구하려고 강을 넘나드는 또래의 북한 소년 정진과 우연히 친구가 된다. 처음엔 축구시합 출전을 대가로 시작된 거래였지만 어느새 의리가 생긴 것. 하지만 탈북자들을 도와주던 마을 사람들이 점점 그들의 문제로 골치를 썩자, 소년들 사이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그러던 어느 날, 창호는 누이 순희가 탈북 청년에게 겁탈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 나머지 정진을 매몰차게 내친다. 그럼에도 정진은 창호와 했던 아랫마을 아이들과의 축구시합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서 마을에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의 상업영화계보다는, 해외영화제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진 장률 감독의 여섯번째 장편영화입니다. 재중동포로서, 국가를 넘어 공간이 주는 정체성과 인간의 무력함, 관계의 무미건조함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해온 감독은 이번에 '두만강'을 소재로 두만강 인근에 사는 조선족들과 탈북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덤덤하게 그려냅니다. 사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은 일반관객들이 호응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두만강>은 리얼리즘의 정서에 입각한 영화이면서도 극영화의 맥락을 놓치지 않아, 일반관객들도 충분히 부담갖지 않고 볼 수 있을만큼 잘 만들어졌습니다. 얼어붙은 두만강보다 차가운 현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그들의 우정과 약속이 있습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유쾌하게 웃어볼수도 있고, 어떤 절망앞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도합니다.. 특히, 벙어리인 윤란(순희 역)과 최건(창호 역) 연기는 보는이의 감정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을만큼 자연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그 누구도 선(善)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살아갈 뿐이며,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어느 특정지역에 구분되어지지 않는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어디에라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탈북자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길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조건없는 약속을 이야기 하고, 어른들의 세계에 아직 발을 들여놓지 않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경계와 이념을 초월한 우정은, 북한 수뇌부의  괴씸한 도발들로 인해 쉽게 망각되어 버리는 우리네 '사람'에 관한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률 감독의 예술적 자아에 그저 경의를 표하고 싶을 따름이다. <두만강>은 2010년 가장 푸대접받은 걸작이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고 절실하게 바라게 되는 영화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 나도 그렇다. 완벽히 동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굿바이, 평양>   

감독 : 양영희 / 출연 : 양선화, 양건화, 양영희

 

<영화소개>

양영희 감독은 전작 [디어 평양]을 통해 북한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이번에는 1970년대 초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한 오빠의 딸 ‘선화’를 등장시킨다. 선화의 모습을 통해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이민 세대는 물론이고, 처음부터 북에서 자란 이민 후세대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선화의 성장 과정은 아주 보편적인 것이지만, 북한이라는 사회 속에 담겨 있는 특별함이 은근하게 묻어난다. 또한, 북한 사회의 이민 세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북한을 단순히 폐쇄적인 사회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지구상의 한 지역이 된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양영희 감독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모습을 통해 ‘북한’이라는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름에 평범함의 일상을 부여한다.  

<디어 평앙>을 연출한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되어버린 남한보다는 북한이 나을것 이란 아버지의 판단아래, 양영희 감독의 오빠들은 모두 북한으로 향합니다. 이후 그들은 영영 북한을 떠날 수 없게 되고, 그런 오빠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그들의 부모님과 양영희 감독 자신은 함께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혹 그러지 못할때는 여러가지 생필품을 지원합니다. 이런 방문의 여정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영화는, 6.25 이후의 이민세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내려오는 그 후세대의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소박하고, 현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때론 이 영화가 때로는 홈비디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족소장용이지, 애초부터 영화화를 목적으로 한 영상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이 먼저 극적으로 흘러가서, 곧 영화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 진 것이겠죠.) 물론 그것들이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들의 화질보다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전문적인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어 극적으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간단한 카메라로 그 순간을 하나 꾸밈없이 들여다본 날것의 시선은, 극영화나 자본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에서는 쉽게 담아낼 수 없는 순수한 이야기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굿바이, 평양>은 선화라는 아이의 성장사를 통해서 평범한 북한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때부터 혁명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선화의 모습을 보며 때로는 개탄을 금할 수 없기도 하지만, 아직 이념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이념을 대입해서, 미리 그들을 이분법 하고, 동정(同情) 해버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합니다. 또한 선화의 성장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화목하면서도 벅찬 생활을 보면 때로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런 여건속에서도 그들 나름의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고선, 그들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보다 낮다고 어찌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두가지 국가를 함께 가져야만 했던 감독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양영희 감독은, 국가라는 개념이 한정하는 요구와 정체성을 벗어나, 그저 같은 핏줄로써, 모든 정체성의 고민이 녹아버리는 가족을 통해서 북한이 아닌, 우리 한국사람이 사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특별한 가족임에도 말이죠.  

표면적으로, 위트있고 쓸쓸한 "아- 정전입니다. 영광스러운 정전입니다" 라는 선화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 적응하며, 때묻지 않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나라>  

감독 : 대니얼 고든 / 출연 : 박현순, 김송연

<영화소개>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결코 알 수 없었던 모든 것 평양 소녀 현순와 송연이의 지상 최대의 쇼! 뉴스에서 본 북한은 잊어라 전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북한 최고의 행사인 전승기념일 매스게임에 참여하게 된 여중생 13살 현순이와 11살 송연이는 김정일 장군님께 자랑스런 모습을 선보이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에 임한다. 카메라는 연습이 시작된 겨울부터 공연이 있는 9월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오로지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겨내는 모습과 더불어, 때론 가끔 연습을 몰래 빼먹기도 하고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겹기만 한 여느 십대 소녀들과 같은 모습을 지닌 평양소녀 현순이와 송연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게 된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 한 번도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평양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일상생활이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그 동안 교과서와 뉴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북한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북한의 집단체조를 통해서, 북한의 체제를 유지케했던 근원을 살펴보고, 그로인한 북한주민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북한의 체제와 북한 수뇌부의 도발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여러 경축일날 행사중의 하나인 집단체조는 주인공인 현순이와 송연이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것은 휴전이후로 뿌리깊게 전해져 온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한 경배이기도 한 셈이니깐요. 이것은 서방국에 대한 적대감과 그 맥락을 함께합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6.25 전쟁 때 우리 남한에게는 당연히 득이 되었을 미군의 폭격이, 북한군뿐만 아니라 많은 북한주민들까지도 희생시켰고, 그로인해 시작된 미국에 대한 반감 (정확히는 수뇌부가 그것을 체제유지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게 된)은 지금까지도 북한주민들의 의식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전쟁에는 이기고 지는게 없으니깐요. (이부분은 길게 다뤄지진 않습니다.)  

어쨌든 중요한것은, 북한의 그런 집단체조를 비롯한 여러 집단행동이, 개인에게 강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 맹목적인 (지도층에 대한) 추종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분석과 동시에 영화는 평범하면서도, 조금 특별한 두 소녀들을 통해 어떤 이념보다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자신이 노력하는 일에 조금 더 인정받고 싶은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저 자신에게 최대의 영광이 그 집단체조인원 선발에서 뽑히고, 지도자에게 보여지는 것이 다인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연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굿바이, 평양>과 같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띔으로써, 두 소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도 꾸밈없이 드러납니다. <굿바이, 평양>과 다른 점이라면, 북한 사회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굿바이, 평양>이 개인적인 기록과 개인적인 감정이 중심이라면, <어떤나라>는 좀더 중립적인 시각에서 중산층의 가정과, 소녀들의 꿈, 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가죠.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 생각진 않지만) 북한의 집단체조는 가히 예술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아름답습니다. 다만, 그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순수 개인의 예술적 욕구와 목표를 위해서가 아닌, 체제결속의 수단으로써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애석한 점일테지요. 그럼에도 거기서 좌절도 하고, 행복도 느끼는 현순이와 송연이를 보면, 여러생각이 들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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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굿바이, 평양>, <어떤나라>는 모두, 우리와 같은 평범한 북한, 혹은 조선족의 이야기들로 그려집니다. 평범하단 이야기는, 우리만큼의 생활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북한하면 떠올리는 '기아'와 '아사'가 전면으로 부각되지는 않는단 얘기죠. 그래서 이 영화들은, 북한에 대해 어떤 동정이나 연민도 강요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 영화들은 많은 북한사람들이 처한 최악의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할테지요.) 다만, 우리처럼 여러 성향의 사람이 존재하고, 이념너머 순수한 약속을 존중하며, 어떤 일에 대해서 (비록 그 근거는 다르더라도) 자긍심을 느끼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 감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헤어짐에 안타까운 정서를 이야기 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두만강'을 연출한 장률 감독의 말처럼) '북한주민' 또는 '조선족' 이라는 단어들을 통해 일반화된 개념으로 그 사람들을 한데묶어 바라보는게 아닌, 김씨, 이씨 등의 우리와 같은 한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적어도 한가지는 건져오신 것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들을 보고 그동안 제가 바라봤던 북한에 대한 시선과, 바라보아야 할 북한에 대한 시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편의 영화를 즐겁게 봤다면 그것은, 일정한 돈으로 시간을 잘 쓴것 이겠죠. 하지만, 극적인 요소나 화려한 영상미는 여느 영화들에 비해 조금은 부족할지라도 영화관을 나왔을 때 어떤 깊은 울림과 고민을 안겨주었다면, 그것은 일정한 돈으로 시간을 잘 쓴것이 아니라, 돈과 시간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얻어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얻은 것. 곧, 어떤 성찰에 대한 투자가 되는게 아닐까요.

참고적으로 덧붙이자면, <두만강>은 눈쌓인 두만강 인근 마을을 매우 빼어나게 담아내며, 상업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반면, <굿바이, 평양>은 영상면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아쉽더군요. 이것이 장점은 아니겠지만, 날것 그대로의 평범한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담아내는데는 적절했고, 또 그럴수밖에 없던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화에 집중하는데 특별한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구요. 다만 상업영화를 많이 봐오신 분들이라면 조금은 감안하고 봐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로 개봉된 곳도 있긴한데, 그쪽은 제가 보질 못해서 말씀드릴수가 없겠네요. 좀 더 낫지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개봉관이 드물군요.)

상대적으로 개봉관과 적고, 일정이 짧기 때문에 혹시 관람을 계획하신 분이라면 서둘러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만강>은 그래도 좀 수월한 편이지만, <굿바이 평양>같은 경우는 <두만강>보다 먼저 개봉하기도 해서 상영일정이 많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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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1-03-23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한국사람..... 참 의미있는 제목이고, 글 역시 매우 좋네요^^

기다리는 자 2011-03-25 23:05   좋아요 0 | URL
글솜씨가 부족해서, 각각 영화들의 특성을 제대로 뽑아내질 못했네요. 좋은 영화들인데.. 공통점만 이야기한듯.. 느낌은 완전히 다른 세편의 영화인데 말이죠! 조금 수정해보려구요. 그럼에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novio 2011-03-31 18:06   좋아요 0 | URL
당첨, 축하합니다^^

기다리는 자 2011-04-06 23:01   좋아요 0 | URL
부족한글 응원해주셔서 좋은 결과 나왔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