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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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사람은 쉬이 실증을 낼 때가 있다. 전쟁같은 일터도, 평화로운 가정도, 어쨌든 사람은 반복을 반기지 않는다. 분업화된 자동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이들이 일을 오래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중에 하나일 것이다. 모든 일이든 반복되면서 점차 기쁨, 슬픔 혹은 흥분의 감정을 잃고 맹물같은 맛을 내는 것이다. 헌데 맹물? 이미 맛을 표현하는 것 아닌가? '아무 맛도 없다' 는 표현은 으레 맛이 사라진게 아니라 맛이 좋지 않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무 맛도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 있을까? 자연이 주는 설명하지 못하는 향과 맛, 그것을 아무리 실패한 조리법이라도해도 맛을 뿅- 하고선 블랙홀에다 던져버릴 수는 없다. 단맛, 매운맛, 짠맛, 쓴맛 등의 강한 자극이 없다면 모를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다보면 맛을 음미하지 못한다. 맛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네 일상이 이와 크게 다름없다. <여름휴가>의 인물들은, 그런 일상에서 가치 부여하기를 보여준다.

 

대학시절에 어느 수업이 있었다. 그것이 '가치'에 대한 수업은 아니었지만, 토론안에 일종의 '가치'를 포함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 즈음에 <콘트라베이스>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내용들이 잊혀졌지만, 분명 나는 그 당시에 <콘트라베이스>라는 책에서, 그 악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연주되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는 그 존재자체로도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의 형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나, 어떤 음의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 그리고 연주될 수 있고, 그에 걸맞는 음색을 울려퍼지게 할 수 있는 가능성 만으로도 이미 가치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소리내야만 하는 악기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악기의 가치가 끌어올려지는 순간은, 우수한 연주자가 그 콘트라베이스를 걸출하게 연주하는 순간일 수 밖에 없다.그런 맥락을 통해 나는 일련의 그 토론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토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말하지 못한 생각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은 한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7)

 

유키는 성인임에도 여전히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런 유키의 남편인 마모루는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우리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그냥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암묵적인 강요나, 친근함의 표현이 아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일종의 모방행동이다. 어쩌면, 무언가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때론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라도 한것마냥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 나른한 일상의 가정. 특허사무실에서 일하는 유키는 그의 직업정신에 맞게 새롭고, 이로운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그녀에게 새롭지 않거나 쓸모있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다. 마모루는 물건의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일을 한다. 온갖 새로운 것들이 개발되는 시대에, 사용설명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익숙한 낡은 물건을 비슷한 새것으로 바꾸는 것에 익숙한 많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특별하거나 가치있는 물건은 아니다. 게다가 그것들은 으레 지루하게 짝이없게 생겨먹었다. 하지만 사용설명서의 그 권위적인 외향을 들여다보면, 새로운것을 배우기 위해 기초가 되는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모루는 물건을 더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을 하는 셈이다. 

 

쇠로 된 물체를 자화(자성을 띄게 하는 일)시킬 수 있는 기계를 갖게 된 마모루는 집안에 있는 쇠로된 물건들을 모두 자화시켜보려는 시도를 한다. 자신의 집에 있는 쇠뭉치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유키의 친구 마이코의 남편인 요시다는 어느날 불현듯 가출한다. 그를 걱정하던 마이코는 결국 요시다를 찾는 (다는 빌미로) 여행을 떠난다. 선발로 떠난 마이코와 유키는, 예고없이 돌아온 요시다와 마모루가 후발대로 도착했을 땐 요시다와 같은 메모를 남기고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있다. 결국 그녀들을 만나지 못한 마모루와 요시다는 어쩔수 없이 평화로운 온천여행을 즐기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왠지 미심쩍다. 그리고 먼저 돌아와있는 유키와 마이코는 요시다에게 피할 수 없는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제안한다. 피할 수 없는 승부, 힌트라면, '마모루'는 일본에서 흔히 쓰이는 이름인것과 동시에, '지킨다'는 뜻도 있다는 사실 정도?

 

 

너무 덤덤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우리가 선뜻 강하게 인지하진 못하지만, 이 <여름휴가>의 캐릭터들, 다소 황당스러운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유키는 결혼 전, 마모루와의 교제 중에 같은 직장에서 다른 남성에게 구애를 받고는, 자신의 엄마에게 그 둘의 사진을 보여주며 선택해 달라고 하질 않나, 마모루는, 유키와 마이코가 결혼시기에 대한 약속을 한것으로 판단, 누가 먼저 이혼하면 같은 시기에 이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마이코와 요시다의 이혼 가능성은, 마모루 에게도 (나름의)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셈이다.

 

'세계 삼대 미덕 중 하나, 사이좋게 지내기' (126)

 

마모루는 담배 몇개피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약속을 계속해서 인지하고 있을정도로,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약속을 지키는데 성실하다. 요시다는 남들이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판단한, 고장난 카메라 분해에 대단한 흥미를 갖고, 그 방면에 뛰어난 일가견을 갖는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했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마모루와 요시다에게, 오붓한 온천여행 중, 평소라면 지나쳤을 노천온천에 발가벗고 첨벙 뛰어드는 행동은, 섬세하고 사려깊은 마음(달빛)으로 인해 우리가 지나치는 일상(풍경)이 얼마든지 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들 자신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래서 그런 그들에게 유키와 마이코는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황당하고 기괴한 목적의, 비디오 게임 승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정성에 가득 찬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것은 아주 유쾌하다. (139)

 

마모루와 요시다가 그 제안을 그저 가벼운 장난으로 여겼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그런 엉뚱한 제안에 유키와 마이코가 부여한 가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아마 조금은 다른 전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둔 가치를 인정하는것도 꽤 중요한 셈이듯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적절한 기준점이 있어야 겠지만 말이다.)

 

"가출이라든가 여행같은 걸로 뭔가가 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돌아왔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192)

 

어쨌든, 요시다에게, 카메라 분해를 위해 가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는 아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실은 미리 알았지만 전하지 못한것이지만) 여름휴가는 그렇게 끝이났다. 그리고 마이코와 요시다 부부를 이혼의 위기에서 구함과 동시에 '마모루'또한 자신의 가정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었다. 나아가 그 '여름휴가'로 인해 자신이 제대로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던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유키의 엄마에게 '장모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 머릿속에만 있던, 한 존재에 대한 가치는, 말해짐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또 다른 발견을 하게 해주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여름휴가>는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문체 또한 특별할 것 없이 평이하다. 그냥 술술 읽혀진다. (오죽하면 책 늦게읽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가 몇시간만에 다 읽었을정도이다) 일상의 언어, 그리고 간혹 그 사이에서의 통찰들이, 시냇물에 던져진 돌맹이가 일으키는 물수제비같은 떨림을 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작은(헌데 사실 작지 않은) 파문은 그들이 일상에서 쉽게 간과했던 것들에 가치를 이야기한다. 어떤 강렬한 의도가 독자를 향해 달라드는 것은 아니니, 그저 산들바람 처럼 잔잔하게 생각하게끔 해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 보여준, '같이' 있음에 대한 '가치'는, 나를 둘러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가치를 새삼 떠올리게 해준다.

 

'어떤 것에 깃드는 가치란, 개인이 각자 알아서 발견해내면 되는 것이다.' (193)

 

가치는 형태를 띄지 않은 채로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을 어떤 틀에 맞추냐에 따라 그것은 그 모양만큼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것에 어떤가치를 부여해서 어느 대접을 하느냐에 따라 그 '어느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일상의 가치들을 찾아내다보면 우리가 간과하는 옆사람의 가치를 새삼 깨닫지 않을까. 그렇지만 가치를 '올바르게' 부여하는 것이 쉬운일도 아니다.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허투루 가치를 매겨봤자 허망하게 잊혀질 뿐이다. 진심을 다해 가치를 부여해도, 휘발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유키와 마모루, 마이코와 요시다는 언제 또 그 해 여름의 가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깐. 그러면 또, 찾아나가는 것이다. 가치를.

 

일상적인 것들에 하나하나 가치를 부여해서, 흥미로운 일상을 만드는 과정의 그들을 보며, 우리가 미쳐 가치를 부여할 생각조차 않는 것들에 대해 잔잔한 생각들을 해본다. 사물, 사람, 그것들과 '같이' 있는, 같이 있던 시간에 대한 '가치'. 결과적으로, 가치의 존재는 자명하니, 가치란 존재여부재의 문제가 아닌, 인지여부의 문제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의 나른하고 방탕하고 건조한 하루와 내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해 갑자기 새 가치를 부여하기란 힘들 것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자체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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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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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에 사실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음을 먼저 이야기 해야할 것 같다. 옛 것 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어떤 고리타분한 느낌이랄까. 서양미술사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언제부턴가 그림을 판단하는 척도로 인식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누런 종이에 그려진, 색의 화려함보다는 농담의 깊이와 여백, 우리가 많은 사극들과 역사 유적지에서 봤을 전혀 화려하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일상사, 그리고 풍경들. 하지만 그 그림들 한장 한장 속에는, 어떤 이야기보다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간결한 그림속에는, 우리가 관심갖고 들여다보고, 알수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나처럼 서양미술사의 화려한 모습에 더 시선을 주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그것이 옛 것 이라는 표현보다 더 고리타분하고 막힌 생각이라는 것을. 

 이 책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진 우리조상들의 옛그림들이 실려있다. 어떤 것은 많이 보기도 한 비슷한 풍경이되, 어떤것은 생소한 그림도 있다. 풍경을 고즈넉하게 그린 그림들이 있는가 하면, 일상의 한 부분을 절묘하게 담아낸 그림도 있고, 동물들의 모습도, 사색의 모습이 담겨진 그림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한발 더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저자가 그림을 바라보며 이야기해주는 따뜻하고, 때로는 따끔한 시선이다. 이리 여러편의 그림 관련 저서를 내기도 했던 저자 손철주의 글맛이 없었다면 독자가 이 그림들을 이렇게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정도로 말이다. 한편의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물들의 한자에서 그림의 의도를 읽기도 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와닿는 것은 한편의 그림에서 길어올리는 옛 사람들의 사고와 풍습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한편의 그림에서 놀랍도록 많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 이야기또한 어떠한가, 마치 구수한 옛 이야기처럼 이제는 잊혀져간 아름다운 많은 표현들에서 마치 그 시대의 느낌을 오롯이 전하려고 노력했던 저자의 노력과 애정이 느껴진다. 책이 만약 조금 바랜 종이였다면, 진정 옛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림과 글, 어느것이 좋은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저자의 글은 그림을 밝혀주고, 그림은 글을 밝혀준다. 서로 혼연일체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읽는 내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혹여, 옛 생각이란 제목에서, 옛 것만을 찾을 것이란 생각또한 무지하디 무지한 우려였다. 조상들의 옛 생각에서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있는지를 잠시 망각하게 해준다. 시대와 모습이 변해도 자연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보고, 출세에 집착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무척이나 행복함을 느끼게끔 해주는 책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저자가 바라보는 옛 시대의 지식과 혜안, 그리고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행복하고 따스한, (때로는 따끔한) 질책들이 가슴에 물들었던 시간들 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사는 모습, 생각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깐. 아니 오히려, 옛 것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를 다시 고쳐 생각하게끔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달빛 아래서 시를 읇고 싶게끔 해주는 책이다. 정말 하루에 한장씩 담아, 두고두고 생각하고 싶게끔 해주는 책이다. 누가 고르든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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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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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으레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미술사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용어들이 있다.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광받는 양식이 있었고,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 단어들은 그에 맞는 대표적인 예시의 그림들이 있고, 그것들의 그룹그림들을 몇장 보다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곳에서, 여러가지 이론엔 대입되며 사용된다. 

그런데 '그로테스크' 란 단어는, 그 늬앙스가 풍기는 어떤 기묘한 느낌보다도 더 규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떤 그림들을 보아도 뭔지는 대충 알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제대로 알았다는 확신이 들지않는것, 그것이 나에겐 '그로테스크' 였다. 보통의 미술사적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미술사의 흐름과 화가, 나아가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학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중세부터 시작해 그로테스크의 어원을 따라 간다. 그로테스크 란 단어는 어느 시대에 탄생해서 훌쩍 규정되어 진 것이 아니다. 시간을 지나고, 여러 학자들과 화가들의 머리와 손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모하고,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조금씩 다른 의미도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이 책이 비교적 잘 읽히고 명료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유가 바로 어느 누군가가 한 시대에서, 규정한 의미를 이후로, 혹은 그 당대의 비슷한 이들마저도 끊임없이 '조금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그로테스크란 것이 어느 한 분야, 한 시대에 귀속되어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종교, 그 시대의 인식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후반부로 갈수록 '시각적 그로테스크'(미술) 뿐만 아니라 '상상적 그로테스크'(문학) 으로 화두가 이어지기 때문에, 단지 그림의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조금 생경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문장들이 매우 명료하고, 근거와 주석또한 매우 충실해서 연구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서야 그로테스크를 정리할 수 있겠다 싶으면 또 조금 다른 그로테스크가 등장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처음의 궁금증들이 여전히 남아있는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끊임없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담론들을 읽었고, 그것들은 축적되었다.  

현실을 아예 벗어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을 껴안고 있는 것. 현실에서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거기에 안주해버리지만 사실은 거기에 더 흉폭하고 잔혹한 행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세계에 대해 결합하고, 분쇄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기괴함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로테스크.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309) 

어쩌면 그것들은, 우리 스스로를 아주 깊숙이 들여다본, 희곡과 같은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어깨에 힘을줄 필요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한 단어가 탄생하고 만들어진 먼길을 읽었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때 막연하게 받은 느낌에 이제는 '그로테스크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듯 하다." (314,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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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작가의 <동주>, 배수아 작가의 <서울의 낮은 언덕들> 작품을 연재했던

[자음과 모음] 네이버 카페에서 새로운 3작품이 연재중입니다!

 

권하은, 남인숙, 최정우 작가 들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보여서,

3인 3색 이라는 말이 정말 적절하게 들어맞는 작품들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바로 똭- 봐도 스타일부터 다르신^^;)

 

또한 7월 13일까지 연재오픈기념 이벤트도 진행중!

 

[자음과 모음] 카페 주소

http://cafe.naver.com/cafej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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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여전히 비오고 푹푹 찌는 2011년 7월, 추천하고픈 신간들!

<영화로 보는 제스처>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무의식중에 여러 제스처로 표현하고 있다. 어떨땐 그것이 인간관계를 푸는 해법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모든 인간을 대변하진 못할지라도, 많은 인간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영화에서도 배우들의 제스처들이 효과를 얻고 상징성을 띌 수 있게되는 것이다. 영화와 인간의 심리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을것 같은 이 책이 궁금하다.

 

 

 

<서울 미술 산책 가이드>  

 모든 미술이 대중적이될 순 없지만, 많은 미술이 대중적으로 변하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여가활동시간과 더불어, 대중을 위한 각종 현대전시들이 늘어나고, 그것들의 마케팅도 점차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지만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 흐름에서 미술관과 미술에 대해 이해하는 가이드 북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을 법 싶은데. (미술관, 미술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가 있겠지만 '서울'이라는 한정성은 아무래도 좀 단점이겠다.)
 

 

 

  <페이스 헌터>

  앨범속의 사진으로만 남아있던 모습들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패션은 자연히 그 안에 녹아들어 있었다. 활발한 인터넷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보편화되고 간편해졌다. 사람들의 관심이 패션에 미치는 것 또한 무리도 아니다. 그 중, 패션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병행했으리라 보이는 이 책은 내가 패션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닌, 좀 더 알고싶기에 한번 호감을 갖게 되는 책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상> 

굉장히 궁금하긴 한 책이다. 제패메이션 이라고 불릴정도의 만화왕국 일본. 때론 서정적이거나, 때론 자극적이거나 한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은 가볍게 즐긴다면 그저 그렇게 끝나버리지만, 그것을 파고들어보면 인간 본성과 현대 일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패전으로 인한 트라우마 등 여러 담론거리들이 묶여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점들은 항상 발견하면서도 놀랍고,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 헌데 이렇게 궁금은 하지만.. 800페이지의 분량이, 선뜻 이 책을 들게하는것을 주저하게끔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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