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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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 아닌가요?' 프롤로그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녀의 물음. 이 사람. 도대체 누구일까..?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 '텐도 아라타'는 이 책에 대해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이나 괴짜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겐 일단 경계심부터 갖는다. 사회분위기탓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일테다. 순례자도 종교적인 이유도 아닌, 단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남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설득시키기도 힘든 이 남자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하루에 평균 10명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의 일부분일 뿐이며, 일년에는 경우에 따라 몇만명이 죽기도 한다. 한국에는 하루에 자살로 인한 사망률만 평균 35명이라고 한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큰 사건사고에선 사망자는 성별과 숫자로 표시되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사건의 가해자, 사고에 대해서만 기억한다. 죽은 이들이 누굴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 받았으며, 누가 이들에게 감사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잔혹하고 충격적인 사건일수록 사람들에겐 이슈화가 되지만 길어도 1-2년정도의 기간밖에 기억속에 남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죽고 난 후 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특별한 죽음처럼 차별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죽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고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화장되어 처리되기도 한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만, 과연 외면당하는 외로운 죽음을 위해 애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외로운 죽음이 나라면, 죽어서도 얼마나 위안이 되고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다른 영혼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애도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하는 사람은 성인이라거나 모든 것을 평정한 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 형제같기도 하고 사촌같기도 하고 아들같기도 하고 손자같기도 한 평범한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다. '애도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만큼은 특별난 임무이지만, 그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는 가까움이 더 친근감이 들게 한다. 그는 무차별 살인자나 끔찍한 살인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혼란스럽고 그런 자들에 대한 애도행위는 보류중일때도 있다. 간혹은 감정이입을 너무 한 탓에 죽음에 유혹되기도 한다.

 

 

 이런 평범한 그가 평범하지 않은 애도하는 여행에서 만난 건들건들한 기자 '마키노'는 처음엔 이 사나이를 비웃는다. 마키노는 기자 중에서도 '에그노'라는 별명이 붙은 제법 불량적이고 괴팍스런 기자다. 그가 쓰는 기사는 대부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기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일부분의 사실로 전체를 끼어맞춘 일그러진 진실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에게서 신문이나 잡지를 쥐어들게 하는 선택으로 작용하고 시청률에 영향을 끼치니 이런 일이 밥줄인 그에게는 인간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취재대상이 되고 진실보다는 일부의 자극을 원하게 한다. 그런 마키노가 애도하는 청년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애도하는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마키노는 여태까지의 자신과는 다르게 본능이 움직여 청년을 관찰하고, 자신속에 잃어버린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죽은 아버지로 기억되는 마키노. 그는 죽음과 가까이 마주치게 됐을때야 자신을 위해 슬퍼해줄 누구도 없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애도하는 사람'을 기억해낸다.
 


 '난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했는데 전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 시체가 내년 봄에나 운 좋게 발견된다 해도 그때는 뼈만 남았을 테지. 신원을 증명할 건 아무것도 없고 말이지..., 싫어. 싫다고, 싫어... 한 사람,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이여, 너는 백골로 발견된 내 소식을 들으면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주겠지? 그리고 이 사람도 분명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무슨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고 애도해주겠지? 무릎을 꿇고, 내가 아직은 희미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을 오른손에, 내가 묻힌 이 땅 냄새를 왼손으로 받아 가슴 앞에 모으고 나를 기억하려 해주겠지?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라고, 열심히 살았을 거라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존재했다고.. 기억해주겠지?' - 431p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 432p 


 
 지독한 구두쇠였던 '스크루지'는 동화를 아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신을 찾아온 죽음과 영혼의 신들과 여행을 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면서 스크루지는 자신의 모습을 제3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 스크루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스크루지, 누구도 그에게 감사해하지 않았던 스크루지. 어째, 맥락이 스크루지를 떠오르게도 하는 마키노는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잘못되고 헛된 삶의 끝에서도 고독한 영혼을 위해 애도해줄 청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무엇보다도 세상에 필요한 이가 바로 그였음을.

 

 

 불타 죽는 소녀를 보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그녀의 일부분의 삶에서 들여다본 인간의 추악한 면 때문에 오히려 잘 죽었다고, 죽어도 쌌다고. 죽어도 싸다고 말한 그녀의 삶의 과거는 세살배기 아기의 엄마였고, 남편의 사랑스런 아내였으며,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영원히 그럴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족에게 한 순간의 비극으로 아이를 잃고, 남편을 잃게 된 그녀가 빠지게 된 자포자기의 어두운 길. 그런 그녀의 죽음이 쌌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당하지 않을까. 


 
 '애도하는 사람'의 가족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청년을 보면 가족들 또한 평범치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소설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어떤 판타지도, 어떤 마술적인 힘을 가진 이도 없다. 혼란도 느끼고 갈등도 하며,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그의 가족 또한 이런 여행을 하는 아들의, 남매의 입장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를 보인다. 단지, 애도하는 사람의 어머니인 준코, 아버지인 다카히코, 여동생 미시오는 각자 개성적인 캐릭터들로 개개인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뿜어내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특별할수도 있겠다.

 

 

 준코와 다카히코 부부를 알게 된다면, 결코 그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다카히코는 말이 없고 자기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극히 내성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낸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어렸을 때 전쟁으로 형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게 되어 말수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능력이 있는 한 남자다. 아내가 죽고 난 후 자신도 따라 죽을려고 마음을 먹는 다카히코를 보면서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준코. 그녀는 여성으로써 존경할만한 강인한 정신과 영혼의 소유자로, 노멀적이게 이 소설을 읽고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화목한 가정에도 불행은 찾아오고, 죽음은 찾아온다. 애도하는 청년이 어째서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는가.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 어린 새의 죽음,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 소아과 아이들의 죽음.. 이 모든 죽음에서 그는 슬픔과 아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조금씩 자라 이제 곧 날갯짓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런 건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 123p


 
 "여기에 넣어둘 거야... 잊지 않도록, 이 아이, 여기에, 넣어둘 거야. 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는 걸... 내 안에 넣어둘거야." - 124p

 

 

 그래서 청년은 결심한다. 자신 안에 모든 이의 죽음을 넣어두겠다고.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어쩌면 죽은 이들이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를 선택한것인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한발짝 늦는 청년 '시즈토'는 세상의 낯선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정작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모든 신체의 기능이 정지됐을때 가장 오래 남아있는 신체기관 능력이 청각이라고, 준코는 마지막에사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시즈토가 자신을 애도하는 소리를 듣고 느끼게 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진정 사랑받았던 사람에게서..


 

 "레지.. 재미있는 연상퀴즈 들어볼래? 있지. '나의 암'이라고 문제를 내고." "'사랑에 빠진 뒤에야 원수 집안이란 걸 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푼다."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 준코        - 274p, 275p

 

 

 

 '공무도하'에서 사건사고 현장을 줄기차게 쫓아다니며 죽음과 인간의 치졸함, 잔인함에 대해 열렬히 기사를 써대는 기자를 통해서 느껴지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의 삶에 대하여 '던적스럽다'고 표현하며 다소 회의적으로 소설을 마친 작가 '김훈'씨도 '애도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는 좀더 긍정적인 세상이 그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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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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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차 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리큐에게 물어봐]. 느닷없이 죽음을 앞둔 리큐의 이야기는 독특한 구성을 지닌다.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영화 [메멘토]와 비슷한 방식을 닮았기도 하다. 다소 읽기 힘든 어체와 다도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로 인해 집중이 쉽진 않았지만, 차와 역사 한편에 남겨진 인물에 대한 새로운 스타일이라 참신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도 되지만, 뒤에서부터 읽을 수도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읽는 것에선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뒤에서 읽는 방법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반적 구성으로 되어 있어 자칫 잘못하면 충돌될수도 있는 조심스러운 짜임새다. 작가는 이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니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점이 [리큐에게 물어라]에서 구성방식으로썬 가장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처음장을 펼치고 리큐의 죽음 바로 직전 상황의 모습이 소설 뒤 부분을 궁금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할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언급되는 히데요시는 이 남자와 어떤 사이일까..

 

 

 정말 성질이 급한 사람이 첫장을 읽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면, 가장 마지막 장을 펼쳐봐도 좋으리라. 그럼 가장 빠르게 궁금증이 풀리리라. 하지만 인내심있게 첫장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이야기의 흐름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리라. 그리고 마치 왠종일 다도에 대해서 나오던 이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향기같이 오묘하고 고아한 향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것 같기도 하리라.. 입가에 펼쳐지는 편안한 미소. 이것이 책을 덮을 때 내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무슨 일에나 도가 너무 지나친다만, 내가 가장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다도야. 일본인의 기괴함, 진묘함은 다도에 가장 잘 나타난다 할 수 있어.... 중략.. 그래. 왜 일본인은 그렇게 비좁은 방에 모여 앉아 꼼지락꼼지락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것이냐. 왜 잡동사니에 불과한 흙덩어리를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며 서로 뻔한 칭찬을 하는 것이야?"

 

 "다도는 저도 이해 못하겠습니다. 다도에 열광하는 일본인은 머리가 돌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 149p 발리냐노와 지지와 미겔의 대화 中

 

 

 발리냐노와 지지와 미겔의 대화가 이해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다지 한가로이 좁은 방에서 차를 타 마시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네, 아름다움을 논하고 다구가 비싼 값에 팔려 나가는 모습이 어쩌면 허영 같기도 해서 도대체 다도가 그럴 가치가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리큐는 미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뛰어난 심미안을 가졌고, 그것이 아름다운 한 여인을 열정적으로 사모하는 그 마음과 닮아 있다. 그런데 그 여인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완벽한 사랑의 판타지를 리큐의 마음에 심어 주었고 그래서 그는 그녀를 향해 더욱더 아름다운 판타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리큐. 그래서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잘 알았던 리큐. 그러나 오히려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죽음에 놓이게 된 그는 예술가라고 볼 수도 있다. 예술가라서 까다롭고 결벽증 비슷한 성격도 있었지만 말이다.

 

 - 아내로서 섬겨보면 리큐만큼 힘든 남편은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가재도구부터 청소 방식, 아침저녁 식사에 쓰는 접시 하나를 고르는 방식, 절임 한 조각 놓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짢아했다. 밥을 푸는 방식, 음식에 담는 방식까지 모든 일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요구했다. 그에 맞지 않으면 눈썹 언저리가 흐려졌다. 몹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 언짢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소온이 얼마만큼 마음고생을 하는지 남편은 알까.. 이따금 무심코 소리 내서 샛장지를 닫았을 때 눈살을 찌푸린 리큐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을 만큼 슬퍼지곤 했다.  - 193p

 

 

 여자들에겐 사랑을 제법 많이 받았던 리큐는 까탈스런 성격 때문에 화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명확한 심미안과 뒤따른 재치와 기략. 이것이 때론 교활하고 변덕스런 히데요시를 권력의 최고봉에 올려줬을지도 모르나, 때론 그것 때문에 자신덕에 천하를 휘두룰 수 있는 자리에 오른 히데요시가 시기해 그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벚꽃으로 말하자면 그 사내, 꽂지도 않고 가지를 들더니 '져야 비로소, 져야 비로소'하고 읊으면서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야. 꽃잎이 흩날려서 아닌 게 아니라 봄의 풍정은 더하더구나.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허나 영 아니꼬워." 리큐가 재지와 기략을 종횡무진으로 펼쳐 보일 때마다 히데요시의 분은 더욱 커졌다.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좋은 화기가 들어왔다고 부르기에 갔더니 화기는 보이지도 않고, 다석이 파한 다음 보니 다실 정원 쓰레기 구멍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좌우지간 밉살스러운 사내가 아닌가."

 

- 231p 히데요시의 말 中

 

 

 생각해보면 히데요시에게 리큐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단지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라는 마음이 들은 히데요시가 리큐를 지독하게 질투했던 것 같다. 천하를 가졌으되, 리큐가 가진 것을 히데요시가 가지지 못했으므로. 한낱 질투심 때문에 리큐를 죽이고선 나중에, 리큐의 지략과 아름다움에 관한 안목이 그리워 후회했을런지도 모른다.

 

 

 "내가 죽으면 다도는 그것으로 끝이다. 차를 좋아하는 자는 크게 늘지 모르지. 허나 마음이 없는 다인뿐, 진정한 차를 끓일 수 있는 자는 없어." - 리큐의 말 中 - 197p
 


 리큐의 이 말이 다소 거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낼 줄 아는 당당함을 지녔고, 이것이 장인. 또는 예술가의 정신이 아닌가싶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리큐의 죽음 또한 비굴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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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 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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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인 몇백명을 뽑아 실험한 결과 평균 10분에 세번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 사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모든 걸 단정지을 순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또는 의식중에 거짓말을 한다. 선의의 거짓말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되 남을 속여 재산을 갈취하거나 심적,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게 한 거짓말은 엄연히 지독하게 나쁜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쁜 거짓말 때문에 무조건 거짓말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 또한 거짓말을 하루에도 몇댓번 하는 줄도 모르고. 정직은 미덕이라고 누구나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지나친 정직은 역시나 사람을 떠나가게 만든다. Bye Bye~~!

 "오늘 나 어때?"라는 말에 "이상해. 보기 싫어." 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사실인데 어떡할 꺼란 말인가. 또, 어떤 실수에 대해 "나 정말 바본가봐. 난 왜 이리 모자란 걸까."라고 자책하는 친구에게 "어. 그러게." 라고 말하면 위로는 못받을지언정, 조용히라도 있어주면 얼마나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는가. 민망한 상황과 어려운 자리에서 속 마음을 정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솔직해서 좋다는 대답을 듣진 않는다. 오히려 저 사람 뭐야. 재수없어. 라던가 융통성이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그 사람은 사회 생활 좀 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입에 발린 말을 좋아하는지. 그것이 거짓말인지 알더라도 사람들은 칭찬을 듣고 싶어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 책이 인기를 얻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 보더라도 선의의 거짓말은 지나친 정직보다 더 우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직을 내세우는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 밖에.

 [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을 한다]는 여러가지 실험과 통계,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거짓말이 본능적인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탐색한다. 선의의 거짓말과 나쁜 거짓말을 실제 있었던 사건이나 사례들을 들어 구분하고 때론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딪히는 현실을 인식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거짓말을 자주 한다고 해서 세상엔 믿을 사람 없이 오로지 나만 믿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게끔이 아니라 때론 이런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필요에 의한 거짓말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게끔 만든다.

 기억에 남는 재밌는 사례는 동식물에 관한 것이었다. 포셔거미는 와이셔츠 단추만 한 크기의 털이 많은 거미로 아프리카와 호주, 그리고 아시아 등 여러 곳에서 서식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거미들은 대부분 날벌레를 잡아먹지만 포셔거미는 고도의 사냥 기술로 다른 거미를 잡아먹는다. 심지어 자신보다 두 배나 더 큰 거미를 공격하기도 한다. 포셔거미는 사냥 상대로 점찍은 거미의 거미줄이 낙엽이나 바람 등으로 흔들리기를 기다려 거미줄에 올라앉거나 거미줄을 타고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움직임에 따른 거미줄의 진동을 은폐하고 상대 거미는 적이 공격하는지조차 모르고 당하게 된다. 상대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에 날아든 것이 맛있는 먹잇감이나 연애 상대인줄 알고 아무 의심 없이 다가가다가 포셔거미의 습격을 받아 그대로 잡아먹히고 만다. 놀라운 것은 거미 종류마다 감지하는 거미줄 진동 종류도 다른데 포셔거미는 이를 알고 어떤 거미를 공격하느냐에 따라 진동을 달리 조작한다는 점이다. - 118,119 참고

 동식물은 다른 생물로 위장하기도 한다. 무해한 나비들 중에 독성이 있는 헬리코니드 나비와 똑같은 모양의 날개를 가진 것들이 있다. 독성이 있는 나비인 척해서 새의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한 나비와 나방 중에는 날개에 검고 둥근 눈 모양의 반점이 있는 것들이 많다. 포식자에게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 123p

 남아프리카 저지대에 사는 검은색 도마뱀 새끼와 독성이 있는 우그피스터 딱정벌레는 흡사하고 거울 난초의 꽃은 암컷 말벌을 닮은 데다 암컷 말벌이 분비하는 페로몬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기까지 한다. 북미에 사는 주머니쥐는 워난 죽은 척과 아픈 척에 두각을 나타내 영어로 'play opossum'이 '죽은 체하다'라는 속어가 됐을 정도라고 한다. 돼지코뱀은 죽은 척할 때 몸을 벌러덩 뒤집으면서 배설물을 분비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길 뿐 아니라 혀를 축 늘어뜨리고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기까지 한단다. 그러고보면 이들의 이런 재미있고 우스꽝스런 모습은 진화론이 주축이 된다면,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거짓말은 의향과 통찰력이 필요한데 동물들에게는 없다고 보며 이들의 거짓 모습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통째로 떠받치는 강력한 엔진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자이자 사회과학자로써의 저자의 입장이라면 이 말이 훨씬 논리적이나 시각경험으로 봤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일요일 아침 방송되는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동물들이 하는 행동들이 그저 진화의 메커니즘과 자손 번식의 욕구로 볼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다. 동물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동료나 주인에게 충성 또는 집착하는 모습, 또는 개들이 웃거나 다른 개의 웃음 소리를 듣고 성질이 못된 개들의 성격이 순해지는 모습,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와 동물들이 소통하는 모습은 동물들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저 욕구나 매커니즘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남는다.  

 우리는 때로 10분안에 세번보다 더 많이, 혹은 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누군가는 너무 솔직해 옆의 사람이 떠나갈지도 모른다. 무겁지 않게 흥미를 적당히 돋우며 실험과 사례로 엮어진 이 책은 우리에게 적당한 선의의 거짓말을 허용한다. 그러나 아첨과는 분명히 구별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거짓말은 이미 선의가 아니니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 이 정도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죽은 채하며 피까지 뚝뚝 흘리는 채하는 돼지코뱀을 생각해보면 귀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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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다 - 사랑, 그 불가능에 관한 기록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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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없다' 라는 다소 염세주의적 시각일 것 같은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을 읽기 전에 고민해보라. 비판의식 없이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이 무척 허무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일처제'가 본능에 위배되는 것이며 남자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모두가 일부다처제를 택할 것이라고 하는 말은 무척이나 그럴듯하다. 반대로 여자 또한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자보다 남자들의 바람기가 더 활발한 이유가 난자와 정자수의 차이라니. 즉, 바람기는 자기의 피를 받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본능이란다.

 여자들은 일정한 난자수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는 일생동안 자신의 자손을 낳을수 있는 기회의 수다. 그렇게 하여 임신을 하면서 겪게 되는 대가와 모성애로 치장한 보호본능에 의해 남성보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남성의 바람기에 대한 설명이 확립된다. 게다가 남자는 육체적인 배신을 더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반면 여자는 정신적인 배신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 또한 저자는 그럴 듯한 논거들을 제시한다. 그만큼 남자들은 감정보다는 육체적이고 여자들은 육체보다는 감정적이란다. 마치 잡지같은 곳에서 보는 내용같지 않은가.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싸그리 접어두고 이성적인 뇌를 꺼내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사랑은 없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은 거부하고 싶어도 수긍되는 사실들이 많다. 그럼에도 실생활에서 사랑에 눈이 멀다보면 이 책의 내용이 아무리 사실적이고 경험적이며 통계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책은 저 먼 옛날 이집트의 파라오의 여자에서부터 현재로 거슬러오며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까지 1:1의 연인과 1:다수의 연인들을 살펴보면서 종의 구분없이 사회를 이루는 모든 생명체들의 많은 수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적 사실들로 확인한다.

 '질투, 정절, 결혼 같은 개념들도 알고 보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며, 예부터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의 문란한 성에 의해 사건사고가 많아지자 종교와 국가에서는 법적, 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침범하여 관통죄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속했다. 그러나 남녀차별이 심한 곳에는 여자의 관통죄는 매우 엄히 다스리는 한편, 남자의 관통죄는 비교해봤을 때 약한 편이다. 사람들은 남녀가 바람이 나면 바람난 남자보다 바람난 여자에게 더 욕을 퍼붓고 매정한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이런 태도는 지금 세대보다 예전 세대 사람이 더 강한 편이다. 그들 세대의 여자들보다 요즘 세대 여자들이 조금더 남녀차별을 덜 받는 까닭일께다.

 우리가 꿈꾸고 위대해마지 않는 사랑 이야기조차 이 책에서 거론되는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람들은 이들의 사랑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또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랑했던 이들을 찬양했다. 그래서 위대한 문학이지만 마치 실존한 인물처럼 생생히 남아 몇세기를 걸쳐서도 여전히 그 위상을 드높인다. 그런 남녀의 사랑이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들이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둘이 함께 해플리 에버하게 살았다면, 과연 판타지한 사랑이 지속됐을까.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이런 것쯤은 저자의 의견이고, 이를 읽은 사람들이 생각권을 선택하는 거라 치자. 다른 생물종과 인간을 비교한 부분에서는 인간도 동물이라는 점에서 그럴 듯한 의견이 더 많이 보인다. 97%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침팬지는 사람처럼 질투를 하고 치장을 하며 바람도 핀다고 한다. 그들이 인간과 같은 점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흉내내는 듯한 그들의 행위를 보며 신기해하고 웃기도 한다. 그런 그들은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결코 넘지 않는단다. 근친상간이나 수많은 폭력을 일삼는 인간에 비해 어떤 점에선 더 괜찮은 생명종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을 보며 우리는 종족 번식이라고 하지 인간네 삶처럼 그들에게 '삶'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보다 언어감각과 몇가지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점에서 우월성을 지닌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게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많은 생명종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이유는?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종족 번식을 위하여.

 흥미로운 점은 고귀하고 순결의 상징이라 여기며 평생 일부일처제로 산다고 생각했었던 '백조'들조차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같은 둥지의 새끼들의 일부분이 수컷과 유전자가 틀리다고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희박하게나마 3퍼센트 정도의 동물들은 일부일처제로 평생을 해로한다고 하니 희망적인가..

 아직 불타는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환상과 긍정적인 심상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없다!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입장에서 책을 읽고자 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관되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논거들을 열거해나간 이 책을 읽다 보면 나 또한 이 책의 많은 부분에 수긍하면서도 모든 부분을 수긍하지 못하게 하는 사실들이 있다. 몇주전, UCC동영상에 나온 영상들이다. 고양이 한마리가 죽었는데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머지 고양이 한마리의 모습과 도로 중간에 죽은 개를 다른 개 한마리가 구하기 위해 수많은 차들 사이를 헤치며 죽은 개를 물고 안전한 보도에 끌고 오는 장면이었다. 동물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주장에 비해 UCC에서 보여지는 동물들은 너무나도 감정적인 모습이 아닌가. 간혹 가다 이런 감동스런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동물인 사람에게조차 말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관계를 맺는 사이에 빚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본능에 내재된 종족 번식'으로 대체하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는 인상 깊은 장면들의 진실이 일부분 남아 있다. 그럼에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을 피했듯이 게이와 레지비언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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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말아라. 세상의 그 어떤 선함도 겉만 보고 믿어선 안 되는 법이란다. 양의 가죽을 쓰고 오는 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속임수로 사람을 쓰러뜨리는 자들 말이다." 

 "양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보죠?"소년이 물었다. 

 "늘 깨어 있어야 하지. 네 직감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또 입가로만 웃는 억지웃음들을 경계해야 한단다."
-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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