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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ikim 2010-07-0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샤타님..한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댓글 남깁니다...;;

로드 퀴즈 이벤트 하잖아요...

정답이 1.더 로드 2.1위 3.성서 4.불 5.권총

요렇게 아닌가요?

글 보시면 메일 부탁 드립니다

kilikim@hanmail.net

그럼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샤이란 2010-07-04 19:29   좋아요 0 | URL
kilikim님~! ^^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 데 순위가 틀렸나봅니다. 저도 계속 내일 도전~! 나오대요~~ ㅎㅎ 이 이벤트는 참고로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알라딘자체에서 하는 거 아시죠? 혹시 오해하셨나헤서요. ㅎㅎㅎ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내일 한번 다시 한번 도전해보셔요~ 저도 낼 다시 도전해보려구요. ^^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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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날땐 그때그때 분출시키고, 기분이 변덕스러워 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떨 땐 좋았다가 어떨땐 나빠한다. 사소한 일에도 토라져서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걸 주위 사람들이 힘들고 지치도록 인식시킨다.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함부로 내뱉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누군가에게는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 수 있는 정치적 언사나 다소 어긋난 상식의 발언을 자리 가리지 않고 정말로 그런냥 멋대로 말해댄다. 이 성격을 가진 사람은 '올리브 키터리지'가 아니다.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다. 그런데 놀랄만큼 올리브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나의 이모와도 닮아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기도 했다. 이렇듯,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습은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매우 닮아있다. 사실 올리브가 무척이나 까탈스럽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면은 있지만 그녀의 성격이 유별나게 특이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겐 올리브같은 할머니와 이모가 있지만, 그 외에도 이런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선 내게서도 올리브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비교해보게 된다. 특별한 듯 보이지만 일상과 많은 부분부분이 유사한 '올리브 키터리지'는 바로 그런 얼핏 유별나 보이는 일상속의 평범함을 느긋하고 평이하게 표현해냈다.

 잔잔한 영화가 떠오르는 이 책은 카메라가 비춘다면, 제일 먼저 올리브 부부의 모습부터 렌즈에 담았을 것이다. 그런 뒤 올리브 가까이 사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들을 비추었을 것이고 그 속에서 두번째컷과 세번째컷에서 올리브는 마치 까메오처럼 이곳 저곳 등장했을 것이다.

 이렇듯 그녀를 통해 다른 커뮤니케이션 집단의 연결의 모습과 그들을 통한 올리브를 바라보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올리브의 모습'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 올리브의 행동 자체를 놓고 독자가 그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올리브의 행동들을 끄집어낼때 그들의 말을 통해 올리브의 성격을 짐작하게 된다.

 이것은 상대성과 개인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령, 올리브의 입장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그녀는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건 자신의 방식대로 남편을 사랑했고, 아들을 사랑했다. 또 남에게 피해주지 않았으며 자신의 일을 성실히 했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녀의 모습은 이해가 된다. 허나 아들과 남편의 입장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눈에 의해서라면 올리브의 모습은 불편하다. 상대적인 입장은 곧 사회성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올리브는 사회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녀 스스로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그 사회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도껏 주위환경에 맞추지만 누군가는 자신에게 환경이 맞춰주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맞추려는 사람들과 맞추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이가 삐걱대기 시작하고 어긋난 토대로 쌓아진 건물은 후에 빌딩 전체가 대략 만들어졌을 때 어느 순간 부실 공사 흔적이 나타나지만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찾아내기엔 대략 난감할 정도로 부담감과 당혹스러움을 안겨준다. 그 빌딩을 무너뜨리고 다시 토대를 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건물공사는 허락될지라도 삶에서만큼은 그런 상황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이층이 만들어졌을때라면 또 모르지만 이미 만들어진 빌딩에서 토대의 축을 공사하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습이 더욱더 안타깝고 그녀의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연민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극적으로 달리지 않는 안정감에서 느껴지는 일상감은 뭔가 모를 아쉬움과 행동을 변화시킬 깨달음이 아닌 그저 무언가 잡히지 않는 삶에의 비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로써 삶을 부분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보게 되는 데 거기서 배우게 되는 것은 지나친 집착을 놓고 시간을 상대하며 기다리게 되는 통찰적인 메시지다. 

 표현이 시나리오 대본처럼 느껴지기도 한 많은 부분이 대화체로 되어 있는 작가의 글솜씨는 몰입과 휴식을 왔다갔다하며 독자를 이완시킨다. 또한 작가의 말은 '올리브 키터리지'만큼이나 인상깊다. "작가가 되겠다면 포기하지 말며, 포기할 수 있다면 포기하되, 그럴 수 없다면 계속 글을 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며 습작을 게을리하지 말라" 단순하지만 의미 깊은 이말은 소설의 매력과도 많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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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즐거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색의 즐거움
위치우위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위치우위. 자신의 책이 무려 네 권이나 베스트셀러에 올라갔고 '현대판 루신'으로 불리우며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는 이 작가. 근데 나는 [사색의 즐거움]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중국작가라고 하면 가장 인상깊었던 사람이 '루쉰'이었다. '아큐정전'을 보고 대번 좋아진 루쉰. 루쉰이 검색자료에서 다소 찾기 쉽고 자료도 많은 편이라면 '위치우위'는 인터넷 자료의 질적인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작가이름을 검색창에 쳐도 작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중국 인세수입 1위 '위치우위'라는 광고 아래 '현대판 루쉰'이라는 명칭이 얼마나 부합될까. 그건 그의 책을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솔직히 [사색의 즐거움]을 읽고 나면 루쉰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쉰과 같은 민중계몽과 치열한 의식 인식에 대한 문제를 많이 거론하지만 위치우위는 루쉰과는 조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힘있는 필체의 작가라고 생각된다. 아직 내가 그의 책 한권만 보아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위치우위는 표현이 좀더 감상적인 면이 보인다. 폐허의 역사를 사랑하며 음악과 예술, 문명에 높은 가치를 둔 면에서만큼은 루쉰과 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통해 의식을 깨우치게 만들었던 루쉰에 비해 위치우위는 역사와 삶, 예술을 두루 돌아다니며 홀로의 사색을 통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흔들고 엇나간 이성을 바로 잡는다.

 사랑과 우정, 삶에 관한 면에서는 냉철한 현실주의면이 많이 엿보인다. 판타지하고 이상적인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많은 작품에서 판타지한 사랑과 우정을 논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부합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드므로 어릴 때부터 현실적인 문학과 작품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고 나 또한 현실과 이상의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럼에도 현실과 이상을 노래하는 두 작품들 모두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 그렇기 때문에 이상을 쉽게 포기하기 힘든 면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부분이 단편으로 된듯한 사색적인 면이 많지만 서로 연결을 이루며 뻗어나가 하나를 이루는 위치우위의 사색은 그의 일화인지 아니면 누군가에서 들은 듯한 이야기들과 함께 섞여 그의 사상을 인정하게끔 만든다. 중간중간 중국의 문화와 사상이 뒤섞여 있는 이야기들은 생소한 부분이 많았지만 책장을 덮을 때만큼은 만족스런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학생 한명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교수로부터 퍼부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 엔지니어가 파리에 시찰을 위해 갔건만 프랑스 노부인의 냉담한 질문에 대한 답변, 비극의 숭고함에 대한 정의, 왜곡된 역사가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 독일인들의 모습을 숲에 비유한 정곡을 찌른 표현, 일반적 정형과 전략적 정형을 향해 던지는 따가운 일침, 위대한 예술가를 조롱하고 모욕하며 죽게 만든 시대의 무지몽매하고 비양심적인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국제 사회에서의 '문화충돌'이란 말을 쉽게 믿지 않길 바란다. 고개를 숙여 자신을 생각해보라. 매일 기하대수, 고등수학을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고, 셰익스피어, 베토벤, 로댕을 감상하면 마음이 즐거워지면서, 같은 중국 문화계의 비방자, 유언비어 날조자, 저작권 침해자들과는 소통이 이루어지질 않는다. 반평생을 돌아보면 내가 겪은 가장 거센 문화적 충돌은 모두 한 국가, 한인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우리의 시선을 외국으로 돌리고 등 뒤에서 다시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56p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가장 큰 적은 가장 가까이 있다고. 문화충돌.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205p 14째줄 오류 - 조가 ->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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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쁜 아빠 - 신화와 장벽
로스 D.파크 & 아민 A. 브롯 지음, 박형신.이진희 옮김 / 이학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아선 알 수 없다는 말을 [나쁜 아빠]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예부터 나라 불문하고 많은 영화와 책에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부재하는 곳에서 아이는 더 훌륭하게 커왔다. '아버지'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을 때리거나 학대하고, 아내를 폭행하고 온종일 일을 시키거나 평생을 뜯어먹는 악질적인 남성들로 많이 나왔다.

 [나쁜아빠]의 저자들은 이런 대중적인 전달서에서 흘려지는 메시지로 인해 남성들이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어 위축되고 사회는 그런 남성들을 아닌 남자들까지 합해 전체적인 특징으로 분류해서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가진 사람에게 꼬투리 잡기 좋은 구실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또, 이 극단적인 페미니즘 사람들은 남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TV나 매체에서 제대로 정신이 박힌 남성이 아닌 남자를 등장시켜 모든 이에게 조롱거리로 만든다고 말한다.

 일부 과장되긴 했지만 미국 사회에선 어느 정도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성차별은 역시나 남성주의 사회로부터 여성들이 피해자라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 한국은 1950년대부터 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급격한 개화를 통해 극적인 발전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천천히 바뀌면서 자리잡힌 의식적인 문화보다는 겉표지같은 문화가 더 많이 한국의 곳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저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걸 왜?라는 물음이 아니라 부강국이 그렇게 하니까.. 하는 의식이 자리잡힌 한국에선 어쩌면 [나쁜 아빠]가 보여주는 사례들이 비슷하면서도 어긋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양육권이나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처럼 쉽게만 이루어지지 않고 싱글맘 복지정책 또한 미흡한 것이 사실이며, 미디어에서는 권위적인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악녀로 많이 등장해 치마폭에 감싸안고 아이들을 망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이의 양육이 거의 전적으로 엄마로 인해 행해지기 때문에 아빠들이 동기부여와 의지가 약하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가 안 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남편은 모두 아이를 어떻게 키운거냐며 아내를 탓한다.

 남편은 그저 돈을 버는 가장의 역할만 다하면 된다는 것은 한국사람들의 의식에 많이 내재되어 있는 인식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의식을 어릴때부터 자신의 부모세대에서부터 세뇌되었기 때문에 더 강하다. 요즘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맞벌이 부부가 많아 의식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편은 집안일과 양육의 일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건 여전하다. 특히 한국은 명절이나 제사가 있을 때 남자들은 그저 먹고 놀고 TV만 보면 되지만 여자들은 주방에서 허리가 끊어져라 분주하다. 이 점 또한 미국과 틀린 한국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데 제법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 남자가 함께 일을 돕고 싶어도 나이가 있는 할머니들은 오히려 말리며, 남자가 무슨 주방에 드나드나며 급구 말리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외국에서처럼 남자들만 마음 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달라져야 하는 사람은 제일 변화가 힘든 기성 보수세대와 남성 뿐 아니라 어느정도 여성에게도 있다. [나쁜 아빠]에서 남성에 대해 안 좋은 인식으로 꼽힌 것 중에 아동학대남성들이나 성범죄자들도 있는데 책 속의 통계가 어느 정도 정확한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실종 되는 아동 중에 많은 수가 가출이나 다시 집을 돌아온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안 돌아오는 실종자수를 상대적인 비율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본 비율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가 아닌가.

 게다가 쉬쉬하고 가리기 급급한 한국에서조차 이따금 뉴스에만 보도되는 아동성폭행범만 해도 끔찍한 수준을 넘었다. 길거리의 어떤 남성도 믿을 만하지 않은 건 후에 일어날 지 모르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물론 삭막하다. 그건 남성이 그렇게 만들었다기 보다 범죄자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책 속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여성들도 남성 못지 않게 학대자가 많다고 한다. 맞다. 여성들도 많겠지. 이건 남성과 여성을 떠나 그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삭막해진 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구분없이 범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고 이런 범죄자들을 혼낼만한 충분한 법이 논란이 많아 그들을 억제할만한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나라의 통솔력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모든 사례와 자료를 떠나서 나는 제 4부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장에서 주장한 저자의 의견에 적극 찬성이다. 이 시도에는 남성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식과 노력, 또한 사회의 변화 또한 무척 필요한 일이다. 서글픈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할만한 여지가 있다면 그것이 가족형태의 진화와 발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아가 그것이 선진국이라면 걸어야 할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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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행복한책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 나름대로 책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히 잡힌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나름의 독서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안에 소개되어 있는 30권의 도서중 일부를 읽었거나 읽지 않았다면 도서목록만 있어도 읽고자 하는 데 번거로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등한시 해온 사람들에게 유용한 활용서가 되지 않을까싶다.
 

 

 인문서이지만 계발서에 가깝기도 한 이 책에선 좋은 책들의 주옥같은 속내용이 많이 언급된다.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평균 5-7권정도 읽는 나는 여기에서 소개된 5권정도를 읽었다. 그 중에 몇권은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책이고 읽지 않은 몇권은 읽고자 하는 목록에 뽑아놓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책들이 몇권 되었다.

 

 

 어릴때부터 서점이나 도서관이 우리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거에 비해 나를 둘러싼 곳은 책과 먼 환경이 주로 배경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가는 동물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친구를 사귀었고 친구들의 집엔 그당시 내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큼의 책이 있었다. 용돈이 부족했던 나는 엄마에게 준비물 산다고 받은 돈에서 책방에서 책을 빌리는데 많이 썼다. 그러는 바람에 학교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 뒤에 나가 서있는 날이 흔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와 반납하지 않은 책도 다섯 손가락안에 들만큼만(!) 있었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책은 몇번을 되새김질하면서 읽었던 책 '데미안'과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이었다. 10년이 넘도록 너덜너덜한 누런 표지를 가지고 있는 그 책들은 아직도 내 책꽂이에 꽂혀져 노장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렇듯 내게 어릴때부터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이 아닌가 싶다.

 

 

 나름대로 확고한 나만의 책읽는 철학이 있는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독서법에 100%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책을 많이 읽다보면 책과 책에 대한 배경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관성 있는 책들을 읽는 것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기도 한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저자의 독서법은 다독가에게는 별다른 방법이랄 것도 없지만, 책을 한달에 한권도 안 읽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복잡한 일이 독서라는 선입견부터 새기게 될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교양인의 책읽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교양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우월감이 앞서는 느낌이 있다.

 

 

 세상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보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을 원한다. 한 사람이 있는데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면 이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럴때 책은 위로와 안식, 치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속마음을 말할까, 말하지 말까.하는 망설임 때문에 오히려 오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글로 인한 소통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통을 위해 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통해 배우고 익히지 않는 다면 사람은 그저 지구의 배경에 지나지 않음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내가 이해받기 위해서는 남을 이해해야 하고 남을 이해함으로써 내가 소탈해질 수 있는 끈이 되는 책은 현대의 차갑고 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꼭 필요한 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든지 기억에 남는 문구나 충고를 건지듯이 나는 이 책에서 감성을 두드리는 몇권의 소중한 책과 그 책의 가슴 찡한 문구 몇개를 소개받았다. 그 중 책의 일부 내용이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땅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조종弔鐘)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 존 던(Donne, John),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문 -

 


 프레히트가 어렸을 때 즐겨 읽었다는 로이드 알렉산더의 <타란의 대모험>에서 마법사 달렌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는 아들 타란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해답을 찾고 있는 그 과정이 해답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 - 87p

 

 

 "해답을 찾고 있는 그 과정이 해답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 -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달렌과 의견이 같다.

 

 

 

 책속에 언급된 30권의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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