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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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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두 아이가 사라졌다. 각자 다른 집에서의 실종이다. 한 집의 아이는 신발이 없어졌고 다른 집의 아이는 신발이 있다. 한 집에서는 아이가 사라지자 마자 유괴일꺼라 생각하고 한 집에선 원래 숲을 좋아하는 아이라 집안에 있는 숲에 놀러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괴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은 먼저 그 부모와 집안 사람들을 조사한다. 많은 경우의 범인이 가족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침묵의 무게>는 각자 인물들의 입장에서 따로따로 이야기를 서술해간다. 언제부터인가 말을 하지 않는 아이 '칼리'와 칼리의 오빠 '벤', 그들의 엄마 '안토니아', 아빠 '그리프'. 말하지 못하는 칼리를 대신해 말해주는 친구 '페트라'와 부모 '마틴'과 '필다', 안토니아의 전 남자친구였으며 형사인 '루이스'의 시각으로 사건은 전개된다.

 긴박감과 몰입도가 강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릴감이 넘친다. 의처증이 있는 그리프는 안토니아를 의심하며 칼리 또한 자신의 딸이 아닐꺼라 생각한다. 원래부터 술을 좋아했지만 갈수록 많아지는 음주량과 더불어 행해지는 폭력은 가정을 산산조각 내놓는다. 안토니아는 한때는 사랑했었던 그리프가 행하는 폭언과 폭력을 당하면서도 쉽게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상황을 피하기만 한다.

 그리프가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 터치없이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바람에 그리프와 아이들 사이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프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때리며 폭언을 일삼는다.

 그러던 중 임신한 안토니아가 그리프에게 떠밀려 계단에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아이를 유산하고 그런 아내를 소파에 눕혀놓고 칼리에게 의자에 앉혀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는 데 그 뒤로 칼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제목이 말하는 '침묵의 무게'는 마지막에 칼리가 힘겹게 말을 내뱉기까지 엄청난 희생과 동시에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그에 비해 페트라의 가족은 화목하고 완벽하다. 페트라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페트라가 생긴 후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게다가 페트라는 착해 친구가 없고 말 없는 칼리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너무 행복해서 탈이었을까. 누군가가 시기했는지 끔찍한 사건은 페트라에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없어진 사건을 시작으로 각 인물들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거꾸로 거슬러가는 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치밀한 구성과 세세한 묘사와 각 캐릭터들의 특징이 뚜렷하고 뛰어난 이 작품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완벽하다. 여러 캐릭터의 시선들로 하나의 집합을 만들어낸 이 책은 재미와 스릴, 반전과 감동, 가족 개개인의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책임을 일깨워준 한여름 땀방울이 가셔지는 스릴러드라마다.

 비록 가슴 아픈 진실과 결과들이 일깨워준 사실들은 고통스러움을 동반하지만 그만큼 깊이 인식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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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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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보면 노골적인것도 같고 어째보면 뻔뻔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순수한 분노이고 순수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도 어른이 말하면 음흉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면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과 자신이 본 그대로만 말하기 때문에 순수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아이 입장에선 완고하게 돌려 말하는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직설적 화법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볼수도 있을 듯하다. 근데 이런 류는 성인소설에서나 많이 등장하는 관계로 여기 이 작품에서 마주치다 보니 조금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뿜어내는 분노는 억울함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내 실제로 이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 인물 하나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하나씩 지닌 소설 밖 인물들은 많을 것이다. 그녀가 한 생각도 또한 여러 갈래로 갈려져 나와 여러 실존 인물들의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던 물음들과 고민들이 많을 것이다.

 때론 진실은 너무나 잔혹해 감당하기 힘든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실을 어떻게 승화시키는 가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이 아예 진실을 두려워하며 피하는 것은 그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읽는 내내 어두운 현실 곳곳을 후비벼 다니는 것 같아 섬찟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책 속 소녀가 항상 불행했던 것만은 아닌 것이 항상 짧은 행복을 맛보기도 했다는 것이 다. 술을 먹고 딸을 때리는 아빠,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 그런 부모는 진짜 부모가 아닐꺼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들은 가짜 부모이고 진짜 부모는 어떻게든 딸을 사랑하고 이뻐해줄 것이며 먹을 것도 꼬박꼬박 챙겨줄 것이라 생각하는 소녀는 집을 나와 진짜 엄마를 찾으러 다닌다.

 소녀는 정확히 자신의 나이를 모르지만 학교를 다니는 다른 아이들의 덩치와 자신을 비교해 자신이 열한살쯤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엔 다방에서 마담과 직원들, 자신 또래의 남자아이를 만나 얼마간 지내던 소녀는 '장미'라는 가명을 쓰는 다방 직원이 못 먹고 몇일간 씻지 못해 더러운 자신을 목욕탕에도 데려가고 덕지덕지한 머리로 잘라 주어 정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혹시 이 '장미'라는 여자가 자신의 진짜 엄마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이론상으론 맞지 않지만 진짜 엄마란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뻐해주고 먹을 것도 줄 것이라 생각하는 소녀에게는 '장미'가 그 생각에 들어맞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찌됐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미'가 만나는 백곰이라는 남자를 보며 소녀는 실망하게 된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지하방에 살며 집밖을 나오지 않고 장미가 사다주는 음식을 꼬박꼬박 받아먹고 더러운 집을 치워주는 장미를 항상 깔보고 무시하며 잘난 척하는 백곰을 지독히도 싫어하며 그런 백곰을 왜 좋아하는지 장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백곰이라는 작자가 장미에게 폭력을 휘둘고 뛰쳐나가는 장미를 따라가려다 한 템포 늦은 소녀는 백곰에게서 거지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입혀주고 먹여줬다고 하는 장미에게 들은 말을 조롱으로 바꿔 이야기하며 아랫도리를 벗고 변태행각을 벌이려 한다.

 충격을 받은 소녀는 그 뒤로 그곳을 빠져나와 다방에 다신 가지 않고 기차를 타는데 여기서 한 할머니와 만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벙어리인채 하며 할머니와 지내게 된 소녀는 한순간은 비교적 행복하게 지내지만, 할머니의 불한당같은 아들이 등장하면서 소녀의 운명도 다시 바뀐다.

 이 아들은 아비가 죽었을 때도 오지 않고 집을 나갔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갈 곳이 없게 되자 딸린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두 딸내미와 자신의 천 싸가지 정도 하는 허영심에 부풀은 아내와 함께 할머니집에 얹혀 살면서 등꼴을 빼먹기 시작한다.

 친자식에게서 밀린 소녀는 할머니가 넣어준 돈 뭉치를 마지막으로 행복도 잠시 또다시 떠돌게 된다. 뒤로 소녀는 교인, 폐가에 쳐박혀 사는 허약한 남자, 불량 소녀들을 만나며 삶의 고달픈 여정을 걷게 된다.

 불량소녀로 사회속에서 이단아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도 또한 피해자이다. 새아빠의 수차례 성폭행, 또는 잘못된 부모들, 그 틀 속에서 평범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어디론가로 튀어나가는 아이들. 그들에게 평범은 곧 부정의하고 더러운 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곧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은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들의 방법으로 더러운 것에 맞서는 것이다.

 소녀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떠나는 여정들은 어째보면 모두 겪을 수 많은 일상들일꺼란 생각도 든다. 길거리 소녀에게 행운이 얼마나 많이 따를 것이며 그녀가 더 나쁜 상황에 빠지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쥐들이 아비를 갉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악몽을 꾸는 소녀를 이해하기란 나쁜 부모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소녀가 진짜 부모를 만났다면.. 이 소설은 결말도 달라지고 전체적 특징도 잃었을 것이다.

 어둡고 자극적인 부분이 많아 쉽게 잊혀지지 않는 만큼 세상의 많은 불행한 삶들에 대해 생각해본 소설이다. 진짜 부모란 무언가, 세상의 자녀들은 얼마나 진짜 부모를 만나 자신이 자라 진짜 부모가 되고 있나. 새삼 그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의 표지를 볼때마다 왠지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을꺼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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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여행>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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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 비행기 왕복 총 4번, 여행으로 인한 기차는 0번, 국내여행으로 인한 버스는 열손가락은 넘은 듯.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여행 안하는 데 보내는 나는 요즘은 어디 돌아다닌 것도 돈이 너무 깨져 그냥 영화를 보러가거나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 바깥 구경이다.

 내 차가 없으니 어디 갈때마다 스스로 찾아가는데 그러다가 길도 잃고 돈도 두배로 깨져 본적이 많아 돈 때문에서라도 모험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일단 내가 모험을 하고 싶어도 나와 함께 가는 일행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 고로 모험을 뛴 여행은 그나마 안전한 국내여행에서 족하므로 국외에서는 한번도 없다고 보면 된다.

 국외 여행은 딱 한번 패키지로 구성된 걸로 친구들과 함께 가본적이 있는데, 원래 패키지란게 정해진 곳에 가므로 별달리 계획해야 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 같은 경우 그 정해진 일정에서 조금 비껴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곳에 친구의 친척이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친척분의 집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함께 쇼핑을 하고 마사지를 받았으나,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그 친척분께서 가이드가 하는 일을 해주었고 대신 우리의 돈이 들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 '집보다 여행'의 작가가 말하는 국외에서의 모험은 해본적이 없다. 일단 여성이라는 점이 여행에선 불리한 점이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면 자유여행을 가서 어쩌다 실수로 숙소가 안 잡혀지면 길거리에서 잘 수도 있고 허튼 사람이 허툰 수작 안 부릴테고, 어찌됐든 남자라면 남이 건들진 않을테니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자라면?

 국내에서도 여자는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거닐면 위험하고 대낮에도 자신의 물건을 조심해야 하는데 하물며 국외에서라면? 관광객을 노리는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어쩌고. 거기에 더해 그런 영화들이 많지 않나. '트레이드', '테이큰'. 여행객을 노린 나쁜 범죄였다.

 너무 오버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진짜 믿을만한 보디가드를 끌고가면 좋을 테지만, 그 보디가드 여행비는 내가 대야 된다면 또 문제다. 그럴 돈은 없으니까.

 <집보다 여행>은 재밌게 여행에 대한 철학을 글쓴이가 이야기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한 통찰, 여러가지 에피소드, 사회와 나아가 인류, 역사 문제까지 논하며 여행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행하는 자가 발견하는 신세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게다가 이 책에는 소설형식과 에세이형식을 만나볼 수 있으며 간간히 나오는 명언들은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림도 곁들여 있다.

 여러 단편들이 기억에 남을 만큼 재밌었지만 그 중에 'TV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224p에 나와 있는 글은 묘하게 뒤틀어 비판했는데, TV를 통해 사람들은 가보고 싶은 곳을 가고 예기치 않은 일도 겪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며 자유를 얻은 사람들을 찬양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진짜 저자가 TV의 이로움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겠지.  

 '연예인 흉내를 내고 그들에 대한 소문을 말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라. 신나는 모험을 하고도 누구 하나 다친 이 없는 이 안전한 세상을 보라.'  - 227p

 
 모든 진실은 일단 밝혀지기만 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문제는 진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  가이 가와사키    p224
 
 진실조작의 한 형태를 반어법으로 비꼰것이다. 재미있다. 저자는 여행을 가서 눈으로 보고 사색에 잠기는 것보다 남겨야 한다며 사진만 이빠이 찍는 사람들을 반대하는데, 어쩌지. 내 친구 중에 딱 그런 애가 있기 때문이다. ^^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둘째치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들에게 떠난 자의 배움과 철학으로 살짝 기름칠을 해줘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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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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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종교에는 배울 점이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은 종교에서 썩 잘 배우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까싶다. 종교 자체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인간이지 종교 자체가 바라는 목표는 아니었다고 본다. 한국인들도 불교인이 많으니 이 책에서 만나는 티베트의 불교는 낯설지 않았다.

 무종교라 할지라도 절에 가서 절도 해보았고, 절밥도 먹어보았으니. 그렇다고 교회나 성당에 안 가본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기독교 같은 타종교는 교인이 부자가 많은 반면, 불교인은 부자인 사람이 없다고. 그러고 보니, 불교인들은 모두 욕심을 버리라는 종교의 가르침 때문에 돈에 대한 애착을 가지기가 힘들런지도 모르겠다. 세상사를 살아가기엔 다소 불편한 종교가 불교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르침 대로 나 혼자만 실천하자면 아무래도 절에 들어가서 수양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지 않을까.

 그래도 왠지 수양되어 있고 깊이 있어 보이는 진정한 불교인들이 더 친근하고 자기 안의 부처를 깨달아라는 가르침이 더 가치있어 보이고 좋다. 책속에는 여러가지 티베트 불교에 대한 상식과 뜻하는 바가 멋진 사진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의미에서 건네는 가르침이 까불랑꺼리고 산만한 내  정신을 한동안  숙연해지게 만든다.   


 

 

 어느 회교사원의 벽에 이런 시 구절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운명에는 이틀이 있다. 하루는 당신의 편, 다른 하루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리라. 그러므로 운명이 자신의 편일 때 자만하거나 무모하지 말며, 운명이 등을 돌릴 때 참고 기다리라." 181p

 이 말이 전하는 의미를 깨달을 때가 종종 있으나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그때그때 다시금 깨닫게 되는 말이다. 운명이 등을 돌릴 때 참지 못하는 인내심. 나는 가끔 이런 한계에 도달하곤 한다.

 
 무지에 대한 잘못을 탓하는 것도 불교의 가르침이다.
 "여기, 뜨거운 돌이 있다고 하자. 뜨겁다는 사실을 알고 잡은 자가 화상을 많이 입겠는가, 모르고 무턱대고 잡는 자가 화상을 많이 입겠는가?"  174p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하는 일들이 없었는지 지난 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이 종교는 확실히 종교 자체의 가르침은 숭고한 정신을 지닌 듯하다.

 근데 왜 중국인들은 티베트 종교인들을 그렇게 억압하고 식민지화하려 하는 걸까. 그들도 종파가 다를 뿐 많은 이들이 불교의 한 갈래를 믿고 있지 아니한가. 탐욕을 버리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그들은 종교인이라고 말하면서도 가르침이 주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티베트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안타까운 와중에 중국인들이 원하는 이득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다.

 불교가 말하는 전생의 업이나 착한 사람은 복 받고 못된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그 말이 가끔 세상의 단면들을 관찰하면서 회의가 들긴 하지만, 그런 근본적 토대가 없더라면 세상은 더 험악한 세상이 될테므로, 그러고자 행동하고 뜻을 전하는 게 여전히 지금의 세상이나마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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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 만화 상상력 사전 3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수박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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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좋으니, 만화책으로 만들어도 좋을 수 밖에 없다.  어디에도 이런 백과사전은 없었다. 이미 [개미]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는 베르나르는 개미에 대한 애착을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낸다. 이 책에서도 빠짐없이 개미는 등장한다. 인간처럼 집단을 이루고 사는 개미들은 인간들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그가 눈을 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개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여섯살때부터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그가 이미 작가가 될 운명을 지녔던 것 같다.  

  그 밖에도 그는 곤충, 쥐, 공룡, 돌고래 같은 동물들도 등장시켜 재미있는 상식들을 가르쳐준다. 가령, '스테노니코사우르스'는 인간의 선조가 겨우 뾰족뒤쥐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을 때 우리보다 훨씬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지구에 일어난 재앙으로 모든 공룡들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이 종들은 우리보다 진화되어 지금 인간의 자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하는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에선 웃음이 난다.

 

   이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기계를 발명시키고, 빌딩을 짓고,

    

  실험실에선 인간이 실험대상이 되어 실험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말이다. 내 생각엔 어쩌면 그들은 지금의 인간처럼은 진화되지 않았을 꺼란 생각도 든다. 베르나르의 의견대로라면, 다윈이 주장한 것처럼 모든 생명체가 긍정적으로만 진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인간의 모습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 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반대로 긍정적으로 진화되는 생명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스테노니코사우르스'는 착하게 진화됐을런지도 모를 일 아닐까. 자기들끼의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뇌가 우리보다 무거운 돌고래 또한 긍정적이게 진화되는 생명체로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 누가 알까.  

  돌고래들은 인간이 가까이 와도 친근해하고 자기네들끼리도 장난과 놀이를 즐긴다. 게다가 사람의 말귀도 잘 알아듣는 것 같고 옛날 전쟁시에는 인간에 의해 이용당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책에는 흥미롭고 뇌를 자극시키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원작이 워낙 충실한 내용이라  만화 또한 그만큼의 만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느끼게 된다.

 

  아르헨티나 개미는 아르헨티나인 '체게바라'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어 또다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개미에게서 찾아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정말 신기했는데, 그렇게보면 인간 또한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말을 할 뿐 그 밖에는 다른 생명체들이 지닌 장점을 닮지 못하고 탐욕과 나쁜 짓을 일삼는 것만이 인간만이 가진 단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뭐, 희망을 가져본다면야 단점을 개선하려고자 노력하며 장점을 취하는 소수의 인간들에게서가 아닐까.

 

 한편, 개미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여왕개미는 첫번째 알과 두번째 세번째 알까진 건강한 알을 놓기 위해서 먹는다고 한다. 그중 첫번째 낳은 알 중 하나는 키워 무수리로 쓰는데 , 정상적인 알을 놓게 될 때 그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들이 이 첫 세대 개미를 죽인다고 한다. 왠지 슬픈 역사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년 봄에 날개짓을 하며 이리저리 집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던 개미들을 생각해보니, 그게 여왕개미들의 서글픈 여행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행 도중 대부분의 암컷 개미가 죽고 그 중 살아남은 소수만이 개미제국을 만든다. 이들 개미제국에선 배울 것이 참 많다. 개미들은 부분 부분 개인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협동하며 유기적인 형태로써 살아가는 데 그 모습이 어쩐지 그렇게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작은 크기와 인간의 엄지손가락 하나면 끝나버리는 생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강한 생명들일 것이리라.

 

 쥐들의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내가 쥐띠라 그런지 이상하게도 정이 가는 쥐들. 이들에게서 또한 베르나르의 관찰과 다른 학자들의 실험에 의해 인간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쥐들로 실험을 하는 건 이제 보편적이다. 모든 실험실에는 실험쥐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만큼 인간과 닮은 점이 많고 꾀를 부르는 그들에게서 도출해낼 만한 괄목할 결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만 모이면 2마리는 먹이를 구해오는 자가 되고, 2마리는 먹이를 구해온자의 먹이를 빼앗는 자들이 되고, 1마리는 홀로 먹이를 구하고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며 나머지 1마리는 빼앗지도 제 스스로 구하지도 못하는 쥐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생명체마다의 특징을 인간들은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꾀돌이 쥐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외통의 쥐처럼 한 곳에 몰린 쥐들이 갑자기 멈춘 채로 맴돌다 죽는 현상을 말하는 이 현상은 자기네들끼리 한 자리에서 맴돌다 꼬리가 엉켜 죽기도 한다고 한다. 이때 위 그림처럼 불구가 된 쥐떼에게 먹이를 주는 쥐도 있다고 하니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다. '라따뚜이'와 '스튜어트 리틀' 등으로 만화로도 친근한 쥐가 실제에서도 사람들이 발견시 고함을 지르며 도망다닐만큼 혐오스런 존재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개미들이 당해내지 못하고 인간조차 감당하기 힘들 곤충을 쥐들이 손쉽게 다루는 모습 또한 재미난다.  

 이처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관찰들과 사실, 감동스런 이야기를 통해 지성과 감성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명작이다. 만화로 나오니 보는 즐거움 또한 새록새록하니 또다른 즐거움이다.  

 (58p 오류 - 네번째 칸 말풍선에 돌고래 뇌의 무게를 여자가 잘못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전 얘들의 뇌가 1450그램이라는 것에 동의 못해요.' 근데 돌고래 뇌의 무게는 1700그램이라고 두번째칸에 나와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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