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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목공소 -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김진송 지음 / 톨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시각적 인물이라 그런지 사진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을 읽으면 더 재밌는 느낌이 든다. 목공예술. 낯선 느낌이었는데 책을 펼치면서 아.. 목공이 글과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역시나 저자 또한 글과 목공을 비교한다.
아쉬운 점은 눈 앞에서 보는 보다 넓은 차원의 시각보다 평면적 시각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만 된다면 저자가 만든 작품들을 구경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과 벌레와 꽃에 대한 저자의 철학은 호기심이 일게 하는데, 공감과 참신함의 연속이었다. 특히 바퀴벌레에 대한 혐오가 그간 축적되어온 편견의 일종이라는 부분은 글쎄.. 나 같은 경우는 내 안의 본능이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부정하기 힘들다.
좀벌레, 집게벌레, 쥐며느리까지는 참을 수 있다. 해로운 벌레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에게는 주관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바퀴벌레만큼은 생김새를 보자마자 온 몸에 돋는 소름을 참을 수가 없다. 바퀴벌레 빼곤 모든 벌레는 괜찮을만큼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사람으로써 아마도 이건 그동안 자라면서 쌓인 편견이 아닌 나만큼은 본능적 공포가 아닌가 생각된다.
벌레론에 대해서 평소 생각을 자주 했던 바라 나의 의견과 비교해볼 수 있었고 카프카의 [변신]에서 나오는 벌레까지 형이상학적 정신을 넓혀간데에 대해서 흥미로운 시선을 던진다.
어떻게 보면 벌레든, 꽃이든, 새든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어떤 근본적 시스템이 움직이는 힘을 만드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비롭다. 그리고 경이롭다. 자연과 관련된 것들은 경이롭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렵다. 그럼에도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다. 호기심은 생명체가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내가 몸을 담고 있는 문명의 세상은 나의 정체성을 흔드는 혼란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세계이며, 나와 다른 수많은 타자들로 이루어진 또다른 세상인 자연은 나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 각인시키는 세계이다."-100p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의 이야기는 인상 깊다. "천지가 창조될 무렵,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과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 간에 한판 싸움이 일어났다. 물론 신의 승리. 죽은 암흑의 신은 석 달 열흘 검은 피를 쏟았다. 중략. 악마와 싸우느라 지친 하느님은 흙을 한 줌 퍼 자신과 비슷한 형상을 만들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어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벌거벗은 인간의 처참하고 고독한 생존 투쟁이 시작되었으니 그게 인간의 역사가 되었다."-110p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 중
책을 보면서 조는 모습과 책속에 풍덩 빠졌던 사람의 모습을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이미지만으로 공감할만한 느낌이 온다.
종종 시계나 기계안을 분해해서 톱니와 납땜의 매커니즘을 구경하곤 한다. 이런식으로 움직이는 기계와 물건들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뭔가를 만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흐릿하게 찍은 사진.
"어미 새를 만드는 동안 새의 본능과 육체의 기계적 움직임 그리고 감성과 이성이 작동하는 끔찍한 기계적 재현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기계적이란 말 자체가 주는 살벌함과 몰인정한 느낌은 감정이 배제된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작용이 주는 단호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무자비함과 규칙적인 동작 그리고 죽음이 거세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터미네이터를 보는 듯하다. 중략. 새를 만드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자연이 재현되는 순간 그리고 자연에 핍진하기 위해 수많은 기계적 조작과 생물학적 변형을 가하는 동안 인간의 심성은 점점 자연과 멀어진다."-202p
그러고보면 대상을 물체화로 모방하는 순간,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감정은 사라지고 어떤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 해체하고 분해한다. 목적이 모방하는 것이므로 원래 대상보다 만들어진 것에 더 의미를 두곤 한다. 왠지 복제배양하는 것 같은 과학적 이슈가 떠오른다. 생명성의 위엄이 사라지는 순간 외경심이 낮아진다. 생명체는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상목공소]는 여러 이슈를 떠오르게 할만큼 광범위한 철학적 사유를 모험한다. 이미지화된 물체와 보다 많은 상상력이 깃드는 세계를 통해.
작품을 만들게 된 영감과 그 과정을 말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를 통해 여러 사유적 정신을 탐험한다.
자신이 예쁜 줄도 모르는 금자라 남생이 잎벌레, 꽃잎을 벌리면 외계인을 만날 수 있다는 금낭화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꽃인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데 사진이 곁들여졌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것만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는 여운까지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평소보다 사물을 보고 관찰하려는 의지가 높아지는 듯하다. 친숙함에서 낯섬을 발견하게 되는 게 이 책을 읽은 후의 깨달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