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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시대 - 캐롤라인 왕비의 1460일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2
페르 올로프 엔크비스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가면의 시대는 이해하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상황과 언어에 담은 상징과 풍자성을 담은 역사성이 다소 유럽틱하기 때문이다. 요약한다면야 미숙한 왕과 어린 왕비, 왕의 주치의, 그리고 순수와 관능, 계몽사상에 관한 이야기다. 어리숙한 어리고 왜소한 왕은 내부 권력층의 손아귀에서 휘둘리고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없어 늘 불안하다. 모서리 위에서 한발로 온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것이 바로 왕의 모습이다.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왕비는 왕의 측근이자 전적으로 의지하는 주치의와 불륜을 행하지만 왕실의 모든 사람이 알만큼 공공연하다.
주치의 슈트루엔제. 그는 왕실 내부에서 왕을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권력층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며 나름 이루고 싶어하는 세상이 있는 대체로 포부가 큰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막상 눈앞에서 현실과 맞딱드리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다른 이와 다름이 없는 인간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면 청소년의 나이대인 왕과 왕비. 그들은 청소년기의 질풍노도 시기처럼 불안정하고 갈등으로 가득찬 격동의 세대다. 옛날 그 옛날, 그 자리에서는 지금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지금과는 완전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왕실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불륜, 정치적 음모는 각자 반대되는 사람끼리 대립되면서 묘하게 극하게 대비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는 왕이 연극의 무대위로 올려지면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연극에서 대사를 읊으며 왕은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진짜 삶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실제의 삶에선 또 연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의 강박관념적인 중얼거림들. 정신착란적인 광기는 그런 정체성의 문제를 극명히 나타낸다.
그런 왕의 모습을 안타까워했으면서 가정 교사 레버딘은 도와줄수가 없었고 슈트루엔제는 그런 왕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왕의 모습은 유난히 본문에서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볼품없고 왜소하기 짝이 없게 표현되는 데 이는 반복적 표현을 통해 왕의 모습을 한층 불쌍하게 느끼게 한다. 그에 반해 권력에 대한 야망은 없지만 계몽주의 사상을 덴마크 전역에 전파하고자 했던 슈트루엔제는 그의 제도의 문제점이 아니라 그 시절의 여러 종류의 인간들의 문제점 때문에 난국을 겪고 불운한 운명을 마감하게 되는 비극적 인물로 그려진다. 게다가 이런 슈트루엔제와 열렬히 사랑의 불꽃을 타올린 왕비는 관능적이고 더 큰 무언가를 지닌 사람이지만 비극적 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정략 결혼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왕과 왕비의 만남은 슈트루엔제가 왕비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필연성으로 이어진다.
슈트루엔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또다른 가면의 시대가 열린다. 무대 위에서 상영되는 연극은 허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연극도 진실성을 담고 있다. [가면의 시대]는 연극과 현실의 모습을 대비하고 '페르소나'처럼 위치에 따른 역할이 가진 천가지 얼굴들을 보여준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생생한 현재 속에서 그들은 살아 숨쉬고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간다. 한 번 성공할 것 같은 찬란한 미래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방해자와 무지한 자들은 가면을 바꾸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계속해서 연극을 진행시킨다.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는 "에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삶의 희열"이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본능과 결부될 때는 리비도가 되고, 자기 보존의 본능과 결부될 때는 자아 리비도로 나타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에로스를 생명의 극한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의 극한은 죽음의 본능이라고 한다. [가면의 시대]는 정치적 풍자와 개인적 결함, 사회적 갈등, 형이상학적 충돌을 절묘하게 현대판 비극으로 한 권의 소설로 만들어냈다. 심리적 요소를 가득 담은 이 책 속에서 독자는 많은 복선위에 깔린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으면서 인간의 절대적 도덕의 아이러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