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1월의 어느 날은 첫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고

공기는 청량했다.

한동안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내 뒤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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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사이 사이 보이는 가을의 마지막 흔적들.

예쁜 색깔 사이를 요리조리 걷다 보면 마치 그림 속을 걷다 나온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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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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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날들의 연속이다. 하늘은 마치 누군가 물감을 덧칠이라도 한 듯 푸른빛을 더해가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위를 향해 높이높이 뻗어 나가는 중이다.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 덕분에 오후는 맑고, 밝고, 선명하다. 이러한 날씨는 왠지 모르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과 달리 저마다 처한 상황이나 여건 때문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차선책으로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의 작은 산이라도 둘러보면 좋겠지만 그 또한 여의치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그 계절을 담아낸 시 한 편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넌지시 추천해본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를 넘어서서 제법, 의외로 좋았다.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투명한 문을 통과해 그곳에 가닿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귀뚜라미 소리가 노란 산국 담겼던 빈 바구니에 밤새 가득합니다
내일 낮엔 더 짙어진 산국을 따 담겠습니다
(「가을날」 전문)

  
  생명이 돋아나는 봄을 지나 미풍이 불어오는 초여름, 가을의 낙엽과 겨울의 시린 날씨까지. 이 시집의 시들은 마치 계절이 만들어낸 발자국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걷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언덕, 호수, 잔물결, 새벽하늘, 초승달, 별, 시골에서 막 딴 모과’와 같이 자연을 담아낸 시어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렇게 시를 읽는 동안에는 부산스러움과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함과 초연함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온몸에 힘을 빼고 시를 음미하는 것이다.

 

마른 풀잎의
엷은 그림자를
보았다


간소한 선(線)


유리컵에
조르르
물 따르는 소리


일상적인 조용한
숨소리와
석양빛


가늘어져 살짝 뾰족한
그 끝
그 입가
(「어떤 모사」 부분)


  페이지 너머로 잔잔함 가운데 물 따르는 소리가 실제로 들려오는 듯하다. 소리의 표현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 귀뚜라미 소리, 어릴 적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 가을비 낙숫물 소리,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새와 낙엽을 비질하는 소리’처럼 다른 시에서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처럼 시인은 시각적인 묘사 외에도 청각적인 부분을 잘 포착해 각 작품을 좀 더 감각적으로 살려내고 있었다. 여기에 시인의 감성까지 더해지니 시의 분위기는 훨씬 풍성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바퀴가 되어 굴러가고 순환되고 있음을 문태준 시인은 말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해와 달이 그러하고 자연이 그러하듯, 이 시를 읽는 모두의 마음에도 아름다운 바퀴가 잘 굴러가기를 소망해본다.

 

아름다운 바퀴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꽃, 돌, 물, 산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이 마음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해와 달은 내 님의 하늘을 굴러가네
(「일륜월륜(日輪月輪) - 전혁림의 그림에 부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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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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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힘들지 않은 시대는 없겠지만, 데니스 루헤인이 그려내는 이 소설은 1920년대의 혼란스럽고 혼돈스러운, 그 당시의 미국으로 우리를 그대로 데려다 놓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극명했고, 남녀 불평등과 인종차별, 그리고 경찰과 관료의 부패와 뇌물은 마치 당연한 듯 도시 전체에 만연하던 시기였다. 특히 이때의 미국은 금주법이 시행되어 불법적인 밀주 제조와 판매가 성행하던 시대였는데,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를 둘러싼 마피아들 간의 대립, 이익에 열을 올리고 조직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펼쳐졌던 인물들 간의 음모와 갈등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선보인다.

 


  『리브 바이 나이트』는 제법 두꺼운 분량의 장편소설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흥미를 주었던 소설이다. 무엇이 이 소설에 빠져들게 했나 생각해봤더니,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주인공 ‘조 커글린’이라는 캐릭터의 힘이 아닐까 싶다. 고위 경찰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집에서 나와 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조 커글린. 그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의 규칙을 따르지만, 그 안에도 분명 그만의 신념, 원칙이 있었다. 이것은 성공과 돈만 좇는 다른 이들과 주인공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큰 구별점이자 이 소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사실 소설 초반만 해도 그는 (도박장을 터는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어찌 보면 어리숙하고 사랑에 빠진 청년에 불과했다. 에마 굴드가 그 지역을 주름잡는 앨버트 화이트의 정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는데, 누가 뭐래도 그에게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은행을 털어 크게 한몫 챙긴 후 그녀와 다른 도시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일은 점점 꼬여가기만 한다. 경찰 셋이 죽으며 감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살해 위협과 협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주인공은 마소의 사람이 되어 탬파에서 사업을 성공시킨다. 부를 쌓고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의 위치가 되면 사람이 좀 변할 법도 한데 그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조는 본인만의 선, 넘지 않는 어떤 선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범죄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이유 없이 함부로 남을 짓밟는다거나 가볍게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배신에 쉽게 분노하지도 탐욕에 굴복당하지도 않았다.

 


  무자비하고 비열한 범죄자들 속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미 넘치고 약자를 생각할 줄 알았던 조 커글린. 책 후반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으로 반전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는 더 이상 감정만으로 행동하는 이십 대 초반의 그가 아니라 이성과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릴지 찬찬히 지켜보아 주어도 좋다. 이 역시 이 책을 즐기는 하나의 묘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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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녹색들이 가득했었는데,

문득 나무들을 바라보니 언제 이렇게 붉게 물들고 노랗게 물들었나 싶다.

포근한 날들이 조금 더디게 갔으면 좋겠으련만, 좋은 날씨에는 늘 가속도가 붙는다는 거.

그리하여 몸이 체감하는 시간과 자연의 시간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매년 겪는 계절이지만, 그럼에도 그 경계의 시간들을 지날 때면 가끔 묘한 생소함을 느끼고는 하는데

특히 봄과 가을은 익숙해질 틈을 안 주고 바로 다음 계절로 넘어가니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지구의 시간에 적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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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10-2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말은 전국이 가장 예쁜 단풍 옷을 입었겠어요.^^ 떠나고 싶네요.

연두빛책갈피 2018-10-26 14:57   좋아요 0 | URL
비소식이 있지만 단풍이 많이 떨어지지 않고 견뎌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햇빛 좋은 날 산책하고 싶은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