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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쓴 소설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그는 자신의 아들인 첫째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알렉세이의 애칭)가 어떻게 자라는지 관심도 없이 오로지 술과 여자,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사는 남자다. 그는 드미트리의 친모가 아들 몫으로 남긴 유산을 착복한 것도 모자라, 한 여자를 두고 드미트리와 싸우는 중이다. 돈 문제로 인한 불화, 그리고 아들의 돈을 미끼로 애인을 뺏으려는 아버지 때문에 드미트리는 그에 대해 끔찍한 혐오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 그러던 중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살해되고, 드미트리는 이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에 대한 통찰을 집대성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4부 12편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 총 3권의 장편소설이다. 1권이 여러 인물에 대한 소개와 집으로 모이게 된 세 형제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라면, 2권에서는 인물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드미트리가 아버지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예심을 받게 된다. 사건의 정확한 전말은 3권에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에 대한 공판이 주를 이룬다.
이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형제들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다른 등장인물들의 삶과 사연도 함께 담아냈다.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오늘날에 이르는 만큼, 어떤 것이든 나름의 유기적 연결성, 그러니까 그것이 사건에 대해서든 그 사람에 대해서든 어떤 관련을 갖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포함해 차근차근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나가기로 한다.
책을 완독한 후, 이 작품은 가까이서 바라보면 세 형제의 이야기와 친부 살해를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조금 물러나 넓게 바라보면 등장인물 저마다의 인간적 욕구, 본성, 탐욕, 그 민낯을 그려내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선과 악,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해서 종교적, 철학적인 사유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점점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의 ‘개인성, 분리, 고립, 냉소’가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신 ‘보편적 형제애, 인류에 대한 봉사, 통합,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인간 전체와 신앙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아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러시아 문학이고 근대소설이다. 그런데 그에 크게 상관없이 마치 지금 사람들의 모습이나 문제를 다룬 듯, 인물들의 내면이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부분에 매우 감탄해본다. 그리고 때때로 위기 앞에서 등장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과거의 결정 때문에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처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은 독자에게 동질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어떤 선택,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그리하여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어느새 책을 읽는 내내 이런 흥미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은 이 장편소설이 제법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게끔 해주는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과연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작품이라 할만하다.
[삶과 사람, 답은 사랑이다]
미움과 질투, 조롱과 모욕, 의심과 냉대.
책을 읽다 보니 비단 카라마조프가의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조시마 장로가 있던 수도원에서도, 콜랴와 일류샤(스네기료프의 아들인 일류셰치카의 애칭)가 있던 소년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인물들 간에도 이러한 모습은 종종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은 어떤 마음으로 삶 혹은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끊임없이 사랑의 가치를 언급한다. 사랑. 이것은 가족, 연인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도 말함이다. 이 책 2권, 조시마 장로가 손님들과 나눈 담화에서는 사랑의 범위를 동물, 식물, 모든 사물로 확장시켜 모든 사람을,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겸허한 사랑은-어떤 힘과도 비길 수 없는, 모든 힘 가운데 가장 무서운 힘이니라.(2권 p.84)
그래도 막상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하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조시마 장로는 실천적 사랑을 언급한다. 이것은 한 사람을 온전히,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존재를 다하는 사랑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존중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타인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해보면 어떨까.
알료샤는 그루셴카와의 첫 대면에서 그녀를 소문대로 여기지도 않고 어떤 판단 없이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길 기다렸다며 고마워하고 감동해한다. 그러자 알료샤는 그루셴카에게 자신은 그저 작은 양파 하나(소설 속에서 ‘양파 한 뿌리’에 대한 우화가 등장한다)를 건넸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춘다.
소설 속에서 알료샤는 언제나 그랬다. 편견과 선입관 없이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봐 주고 말을 들어준다. 그는 남을 비난하거나 의심한 적 없으며, 아무 이유나 조건 없이 상대를 사랑하고 믿어준다. 물론 이러한 점은 누구나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진실함이 담긴 그 한순간만으로도 누군가는 절망으로부터 되살려지는 것 같은, 마음의 구원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여전히 쉽지 않으며, 말처럼,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마음 한 줌 내어줄 여유가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꼭 지켰으면 좋겠다. 내면에 분노와 미움이 있더라도 거기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 것, 그것들이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겠다.
그리고 불행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 그 안에서도 행복과 희망은 있을 수 있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한다. 그러니 미움, 질투, 증오가 점점 마음을 차지하도록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 사랑도 싹틀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고 주의를 기울여 돌봐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증오와 불행에 사로잡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포함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마저 잊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서인 만큼,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며 앞으로도 쭉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삶이 네게 많은 불행을 가져오겠지만, 바로 그 불행들로 인해 너는 행복해지기도 할 것이며, 삶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을 축복하게 해줄 게야-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너는 바로 이런 사람이란다. ...”(2권 p.14)
"뭣하러 날수를 셉니까, 인간이 모든 행복을 알게 되는 데는 단 하루로 충분해요. 내 사랑하는 이들이요, 왜 우리는 서로 싸우고, 서로 허세를 부리고, 서로 앙심을 품는 걸까요? 곧바로 뜰에 나가 산책을 하고 뛰어놀고 서로 사랑하고 칭찬하고 입맞추고 우리의 삶을 축복합시다."(2권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