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김진준 옮김,문학동네,2022』는 솔 벨로의 초기작으로 1956년 출간되었다. 솔 벨로는 포크너와 헤밍웨이를 잇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필립 로스와 함께 유대 문학 작가다. 『오기 마치의 모험』(1947), 『허조그』(1964), 『샘러 씨의 행성』(1970)으로 세 차례 전미도서상 수상 기록은 여전히 깨어지지 않았고 이후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솔 벨로는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주로 다루었고 유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언어 감각을 지닌 지성파 실존주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평론가들은 특히 『오늘을 잡아라』를 “작은 회색의 걸작”, “솔 벨로의 가장 큰 업적이자, 축복받은 소설”이라 칭한다. 원제목 “Seize the Day”는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가져왔다. 작품에서 제목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개와 더불어 다양한 함의로 부각된다.
뉴욕의 글로리아나 호텔에 주인공 토미 윌헬름과 은퇴한 의사인 그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는 각각 다른 방에 묵고 있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여전히 다른 세계에 머무는 그들이다. 환자에게 하듯 자신을 대하는 아버지가 윌헬름에게는 큰 슬픔이다. “아버지는 알아차리지도 못하실까, 느끼지도 못하실까? 가족의식마저 잃어버리셨나? 윌헬름은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p.20)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하는 지지와 관심을 윌헬름은 템킨 박사에게서 구한다. 템킨 박사는 신뢰를 보장할 수 없는 여러 직함으로 윌헬름에게 그럴듯한 ‘오늘’지상주의를 설파한다. “할리우드로 가는 것은 크나큰 실수라는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p.36)투의 일들이 세 번쯤 반복되다보니 정신 차리기 힘든 오늘이 되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적극적 거리두기 기조를 유지한다. 세대간, 부자간에 갈등과 트라우마, 관계 회복의 간절함만큼 높은 단절의 벽은 너무 익숙해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과제임이 다시 증명된다.
현재는 무수한 과거 순간의 총합이고 살아남았기에 가능한 시간이다. 즉, 과거와 생존의 결합이 현재고 이는 미래를 향하는 주춧돌이다. 평균만 찍어도, 실패만 없어도 성공이라 볼 수 있을까. 남루할지언정 무난한 하루, 사건 사고 없이 일몰을 맞고 내일이라는 출발선을 가지런히 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최악의 오늘을 겨루는 콘테스트가 있어 자기만의 오늘을 무대 위에 진열한다면 비극의 색체 만연한 윌헬름의 ‘오늘’이야말로 그랑프리감이다. 과거 모든 실패의 결정적 장면이면서 동시에 빼도 박도 못할 동작 그만의 미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심쩍었다. 내 그럴줄 알았기로서니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인복 없는 것도 습관인가? 이는 트리거가 되어 이미 무너지고 있던 모래성을 주저앉힌다. 아버지마저도 자신에게 십자가를 지우지 말라며 분명히 선을 그으니 이토록 비정할 수가. 윌헬름의 ‘오늘’이 모래처럼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밀도 높은 살과 근육, 혈관과 세포에 틈을 낸다. 회한과 자책, 분노와 공포, 땀과 눈물이. 눈물 흘리다 소리내어 울다 결국 통곡한다. 스스로 달랜다, 달래진다. 다시 돌아가도 어제의 선택을 했겠지만 또 모를 일이다 내일은. 각성한 윌헬름이 해방되고 세 번째 이름을 가지게 될지도. 도처에 윌헬름들은 출몰한다.
『오늘을 잡아라』는 트루먼 쇼처럼 윌헬름의 하루를 생중계한다. 그의 고통, 어리석음, 위태로움이 속도감있는 문장으로 발사에 가깝게 그려진다.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윌헬름의 감정이 독자에게 생생하게 닿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또한 거칠것없이 실랄하게 속내를 드러내니 안타까운 동시에 실소가 터진다. 현실밀착형 고민은 생의 주기 어디쯤에서 어떤 실수가 더 치명적인가를 재어보게도 만든다. 마흔이 넘은 윌헬름 안에 있는 어른아이는 결국 성장하게 될 것인지. 그럼에도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대낮 브로드웨이의 번쩍거리는 길 한가운데를 거쳐 또다른 공간을 허락한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비극을 이토록 경쾌하고 선명하게 남길수 있다니 놀랍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오늘을 잡아라』는 솔 벨로 세계에 입성하는 첫 작품으로도 손색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