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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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문학동네)』은 최고의 문장가이자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김훈이 올해 여름(2022년 8월)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출간 당시 작가는 대학시절 만난 두 권의 책이 인생에 미쳤던 지대한 영향을 밝혔는데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안중근의 “신문조서”다. 그로부터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칼의 노래”가, 다시 훌쩍 시간이 흘러 “하얼빈”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2021년에 나는 몸이 아팠고, 2022년 봄에 회복되었다. 몸을 추스르고 나서, 나는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다.”고 전한다. 배우고 들었던 역사책 속 위인 안중근은 작가의 연필 끝에서 스스로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p.306)음을 실현해낸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의 힘은 작동되고 있었으나, 조약 체결을 공포한 후 분노하는 조선 민심의 폭발을 이토는 예상하지 못했다.”(p.17) 이토 히로부미는 기뻐서 스스로 따른다는 뜻의 ‘열복’이 “문명개화의 입구이고 동양 평화와 조선 독립의 기초”(p.84)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선의 열복을 요구한다.

스물 일곱 청년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p.24)다. 그는 집안의 장남이고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세례 받은 신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첫 아이를 안았을 때 산야에 시체가 쌓여가는데도 그 많은 목숨보다 자식의 목숨 하나가 유독 안쓰러운 이유를 자문할 뿐 답을 구하지 못한다. 빌렘 신부는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p.66)는 말을 도마 안중근에게 하지 않고, 동생 안정근은 형이 가려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안중근은 어쩔 수 없는 일을 자꾸 얘기하지 말 것을,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고 당부한다.

안중근은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를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 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p.89)으로 본다. 그에게 푯대는 하나다. 제어하기 어려운 경우의 수, 실패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성시킨다. 형 집행 전 그는 빌렘 신부에게 하느님께 감사할 일들을 고한다. 도우심의 영역으로.

소설은 차례에 앞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이동 경로”지도에 한 페이지를 할애한다. 안중근은 권총 한 자루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성공한다. 절정에서 드러난 결과는 선명하지만 감당해야 할 여파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 까닭이 그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소설은 불안하고 격동하는 장면들에서 감정을 최대한 제한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 재판장 마나베의 질문에 답하는 우덕순, 안중근의 진술은 질문과 답변 간의 역동, 힘의 우위, 가두려는 틀을 떨치는 순전한 진실을 보여준다.

“북태평양과 바이칼이 하얼빈에서 연결되었고 철도는 하얼빈으로 모여서 하얼빈에서 흩어졌다. 하얼빈역에서는 옴과 감이 같았고 만남과 흩어짐이 같았다.”(p.137) 하얼빈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이미 죽고 죽임 당하던 이 땅에 훨씬 혹독한 날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향한 의지가 결실했지만 촉박히 남은 시간을 정리하고 만다. 슬픔이 얼얼한 채 후기를 펴면 이는 더 짙어지기만 한다. 특히 “김아려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김아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p.289)는 설명에서 그녀의 일생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또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부제의 후기에서 젊은 날의 소망을 이룬 작가의 여정에, 특히 한 문장 앞에서 감정이 북받친다. 김훈의 독자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생 텍쥐페리는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함이 성취된다.”고 했는데 이에 속하는 글임은 물론이다. 작가 특유의 정교하고 간결한 문체, 되풀이 읽고 따라 쓰고 암송해야 할 것만 같은 그의 문장은 얼음냉수처럼 속을 달랜다. 동시에 깨끗이 태워 미련이라고는 남지 않을 만큼 뜨겁다. 그렇게 청년 안중근은 다시 독자 곁에 선다. 세계문학전집에 작품을 올린 문호들, 시간에 새긴듯한 작품들이 무수하지만 우리에게는 김훈이 있다. 축복이다.


우리는 강토를 모두 잃고 어디로 가려는가. 이번에 한 번 싸워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승패와 유불리를 돌아보지 말고 싸워야 한다.(p.91)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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