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지식인에 대해, 여러 차례 서평을 통해서 지그문트 바우만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제가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질과 18~19세기의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기 동안 인류가 이룩한 '근대성'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직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논외로, 지그문트 바우만 살아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대담의 형식으로 이제 언급할 노엄 촘스키와 함께 전세계 문제에 대한 공개 논의를 했으면 어땠을까, 혼자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이 과거 실제로 연이 닿아 잠깐의 사적인 만남조차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2월 6일, 어제였죠. 간혹 듣던 모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앱스틴 (앱스타인은 그를 가리키는 정확한 발음은 아닙니다.)과 한 눈에 보기에도 친밀해 보이는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이것은 '앱스틴 파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2월 6일전까지 '세계의 양심'으로 알려졌던 노엄 촘스키는 저에게는 과거 조지 W. 부시 정권의 네오콘을 아주 적나라하게 비판했고,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이행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판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기여한 학문적 업적은 물론이거니와, 하버드와 MIT를 비롯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위 행동하는 양심, 자신이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진실과 연계하여 그것을 욕되게 하지 않고 할말을 기어코 하는 촘스키의 행동력은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보신에 힘쓰는 지식인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대학 경력과 이후 이어지는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그가 갖고 있는 위상은 단순히 말만 잘해서 인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전에 조지프 슘페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은 중요하고 특히나 비판이 필요할 때는 지식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의 말을 공허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지식인들이 돈(시장)과 권력에 점차 순응함에 따라, 이러한 의무는 이익에 매몰되어 갔습니다.


그런 노엄 촘스키가 엡스틴과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이 거의 '폭로'되었습니다. 촘스키는 그 누구보다도 정치 권력의 위선과 부패를 증오하던 사람입니다. 그의 글들을 보면 자격이 없는 권력이 어떠한 일들을 벌이는 지에 대해 낱낱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히나 국내 방송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노란 봉투 캠페인'의 일환으로 그가 제작진에게 47달러를 건넨 일화는 매우 유명하기도 한데요. 자유주의를 왜곡하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권력과 부를 쫓는 일종의 수익 사업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을 강도 높게 비판한 그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대로 그런 권력자들의 유흥거리 (아주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리고 금수만도 못한)를 제공한 불명예스런 인간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진실은 저에게 무엇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노엄 촘스키가 그동안 자신이 견지해 온 양심적인 글쓰기와 후학들과 독자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제공한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면 추후 이 사건에 대한 명확한 발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사건이 그가 과거로부터 목숨과 같이 여겼던 스스로의 양심과 선명한 진실, 그리고 비도덕적인 정권을 비판했던 과거의 행적이 그저 위선이 아니었다면 마찬가지로 자신이 분명하게 과거의 오명을 세상에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몇 번이나 강조한 '지식인의 책임'을 증명하는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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