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해설을 했다. 대상은 ‘36기 – 21기 연구원’ 동기 세 분이었고 장소는 종묘(宗廟)였고 해설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다.

자유 관람이 가능한 토요일(5월 27일)과 마지막 주 수요일(5월 31일) 주제를 찾아 답사하고 어제 예정 시각(10시)보다 이른 8시 30분 홀로 도착해 해설 전 마지막으로 바쁘게 이것 저것 물으며 종묘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지난 1월 종묘를 찾았을 때 윤지영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었는데 바로 그 분과, 스프링클러 작업을 하고 수레에 무언가를 나르시는 직원분께도 여쭈었다.

데드 라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각에 허겁지겁 출근 해 채 출근 도장도 찍지 못했음에도 친절하게 답해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드리며 특히 바쁘게 작업을 하는 중에도 흔쾌히 낯선 나에게 친절한 답을 해주신 직원께 감사드린다.

물론 큰 감사는 지난 5월 마지막 수요일 함께 답사해주시고 외대문 밖의 하마비 부분에서부터 해설을 시작하라고 말씀해주신 분과, 해설은 역사 강의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신 분께 드려야 한다.

어떻든 현장을 찾고 책을 참고해 주제를 찾는 것과 글을 써서 머리에 저장하는 시간도 좋지만 해설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여유 없는 시간에 홀로 물으며 바쁘게 배우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수레라는 말을 쓴 것은 주(周)의 무왕(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무찌를 때 부왕인 문왕(文王)의 지위와 이름을 적은 나무패를 수레에 싣고 다님으로써 신주(神主)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좌묘우사(左廟右社)와 종법(宗法), 역(易) 등의 기원이기도 하거니와 공자가 이상국가로 삼은 나라 주나라는 연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아쉬움이지만 선대에서 무시된 종법적 질서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재기발랄한 수양대군을 제치고 문약(文弱)한 장남 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사단(事端)을 제공한 세종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종은 결국 2년 4개월 밖에 왕위를 지키지 못했고 이로 인해 역시 장자인 어린 단종이 왕이 되었고 이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의 구실이 되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장인용 지음 ‘주나라와 조선’ 136 페이지)

아, 단종...역사 이야기를 실존적 아쉬움으로 마무리 하는 나는 기승전실존(實存)의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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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正統)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시간에 쫓기며 종묘(宗廟) 해설 준비를 했는데 엉뚱하지만 정전(正殿)의 길이가 제기(祭器)와 신주 옮기는 도구를 보관하는 동, 서 협실(夾室), 눈비를 피하고 물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는 동서 행랑(行廊)으로 인해 늘어난 것은 의아하다는 데에서 생각이 멈춘다.

신실(神室)만을 따지면 정전은 겨우(?) 70미터에 불과할 뿐이다. 제례에 쓰이는 음식을 마련하는 전사청(典祀廳)의 사(祀)와 사당(祠堂)의 사(祠)의 차이도 궁금하다.(祠: 사당 사, 제사 사/ 祀: 제사 사)

신위(神位), 신주(神主), 위패(位牌), 지방(紙牓) 모두 정확한 차이를 알고 싶다. 내 의문은 정통이 아닌 것일까? 공자(孔子) 생각을 하게도 된다.

제후가 아닌 대부가 8일무(佾舞)를 추었다고 강하게 질타한 공자, 망해가는 주(周; 좌묘우사의 기원인)나라를 이상 국가로 삼은 공자, 예의와 격식(格式)에 얽매였다고 볼 여지가 많은 공자, (논란 거리이지만) 출세를 위해 주유천하(周遊天下)한 공자,

평생 주역(周易)을 붙잡고 있었던 공자, 죽어야 (우리가) 산다고 말해지기도 한 공자...격식과 예법, 엄격과 장엄, 경건과 엄숙.. 종묘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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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아침 산 모습이 신선합니다. 지난 수요일 남산에 올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인다는 의미의 인경산(引慶山)인데 후에 목멱(木覓)이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 태조가 남산의 산신에게 목멱대신이란 이름을 부여했기 때문이고 현재 이름인 남산은 풍수지리에서 남쪽을 지시하는 주작(朱雀)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인경, 목멱, 남... 이 변천보다 경사스러움을 뜻하는 단어(경기전慶基殿도 그렇지요...)에 제 마음이 많이 갑니다.

인경도 마찬가지이지만 경복(景福), 창경(昌慶), 경희(慶熙), 복수(福綏), 강녕(康寧), 영녕(永寧)... 이런 말들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경사보다 오명이, 평안보다 대립과 다툼이 더 크고 성했던 ‘조선‘의 역설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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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권현형 시인의 강의(‘시: 열정과 냉정의 동시성’..용산 도서관)는 감명 깊고 만족스러웠다. 문학박사이기도 한 저자의 강의는 필요한 만큼 철학적이었고, 자신의 시와 다른 시인의 시를 세밀하게 풀어줄 정도로 친절했다.

‘열정과 냉정의 동시성‘이란 강의 제목을 통해 짐작하겠지만 새롭게 보(고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라도 경계(境界)에 서려고 하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묻지 못한 질문이 있어 아쉬운데 그것은 세상 또는 상투적인 것과 불화하는 것과 경계에 서는 것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다.

나는 그 분이 한 트라우마 또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에 끌렸다. 트라우마 또는 불안은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으며 시쓰기란 결국 그것들마저 끌어안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조선의 두 군주(君主)를 생각했다. 폐비 윤씨의 아들 이융(李㦕)과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李祘). 어머니의 사사(賜死)라는 트라우마와 공포 속에 유폐된 이융은 조선 임금들 중 유일하게 시집을 낸 임금(이상주 지음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94 페이지)이고 부왕(父王)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은 창덕궁 후원에서 꽃을 감상(상화賞花)하고 낚시(조어釣魚)를 하고 옥류천(玉流川)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며 시를 썼다.(그래서 그의 모임을 상조회賞釣會라 함)

나는 그 두 인물을 언급하며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철학을 하는가, 란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은 시인께서 언급한 릴케의 불안에 내가 자의적으로 철학자 하이데거의 불안론을 연관지어 한 질문이었다.

시를 쓰다 보면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되지만 철학적 문제의식을 날 것으로 또는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푸는 것은 결국 (문제를 의식한) 나의 몫이란 생각을 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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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추방당한 존재이다. 그는 도시에서, 규칙적인 일에서, 그리고 제한된 의무에서 추방당한 존재이다...”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에서 내가 자주 음미하는 글이다. 블랑쇼는 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함은 바로 자기 자신을 놓을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자는 돌아눕고 다시 돌아누우며 몸을 뒤척인다. 그는 ‘진정한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블랑쇼의 글에서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은 자리를 찾는다는 말이다. 나희덕 시인의 ‘흔적’이란 시를 생각한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자신의 기원 또는 존재 근거 등을 찾는 것이리라.

인간은 무엇이든 찾는 존재이다. “살아온 길이... 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1992년 4월 출간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수록 시 ‘꽃핀 나무 아래’ 중 일부)라고 말한 뒤 비유가 아닌 실제 무덤을 찾는 것을 주(主)로 하는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 간 허수경 시인이 생각난다.

블랑쇼의 예의 그 진정한 자리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 종묘에 간다. 무덤 묘(墓)가 아닌 사당 묘(廟)자를 쓰는 종묘.

거기서 신(神)을 대신하는 몸체인 신위(神位)를 만날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인 신위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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