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이론적 관심이 아닌 실제적 관심으로 태극권에 대해 검색하다가 ‘공자, 맹자를 모르고서 무술 논할 수 없다’는 글(세종의 소리 2015년 10월 21일)을 만났다. 무(武)와 문(文)은 같이 수련해야 효과가 좋다는 글이다.
필자(김장수)에 의하면 태극권에서는 심(心:마음)과 신(身:육체)의 균형이 맞지 않는데서 간신배가 나온다고 본다는 것이다. 간신이라...그렇다. 간신(奸臣)은 나라에 해를 끼치는 여섯 종류의 나쁜 신하 즉 육사신(六邪臣) 가운데 하나이다.
구신(具臣), 유신(諛臣), 간신(奸臣), 참신(讒臣), 적신(賊臣), 망국신(亡國臣)이 육사신이다. 구신(具臣)은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고 머리수만 채우는 신하, 참신(讒臣)은 참소를 일삼는 신하, 유신(諛臣)은 아첨하는 신하, 간신(奸臣)은 간사한 신하, 적신(賊臣)은 반역하는 신하, 망국신(亡國臣)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이다.
어떻든 이 흥미로운 조합을 지렛대 삼아 ‘신들의 정원 조선 왕릉’의 저자 이정근 님의 ‘간신의 민낯’(2017년 4월 출간)까지 들춰보게 되었다. 그런데 간신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자가 조말생, 한명회, 유자광, 임사홍, 윤원형, 이이첨, 김자점, 홍국영 등과 함께 거론된 안동 김씨편에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정조(正租)가 뿌린 씨앗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해석은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최근에 나온 또 다른 역사 책으로 인해서이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가 쓴 ‘정조와 정조 이후’란 책(2017년 5월 출간)에서도 이런 논리가 제시된 것이다.
오수창이란 필자의 ‘오늘날의 역사학, 정조 연간 탕평정치, 그리고 19세기 세도정치의 삼각 대화‘란 글이 그 글인데 그는 19세기 세도정치의 등장에는 정조가 집권 중반기부터 척신의 육성을 암시하면서 명문세도가의 딸(김조순의 딸이자 순조비 순원황후)을 간택하는 등 세도를 위임했던 점이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했다.
덧붙여 정조가 공론의 그늘에서 신료 심환지와 비밀편지를 나누면서 배후에서 정치적 조율을 함으로써 공론 정치를 무력하게 했으며, 지나치게 의리를 강조함으로써 순조 이후의 정파들이 정적들을 숙청하고 천주교를 박해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는 어두운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말도 했다.(어조가 사뭇 조심스럽다.)
같은 책의 다른 필자인 이경구는 “세도정치는 정조의 제반 개혁을 무산시킨 대표적 사례로 인식된다. 그러나 세도정치의 최대 설계자는 정조였다.”는 지적을 했다.(한국일보 6월 2일 기사 참고)
군주가 절대적인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국정을 치밀하게 이끌었던 정조의 정치는 자신과 같거나 자신보다 더 큰 역량을 지닌 군주에 의해서만 지속할 수 있었기에 정조 정치의 역사적 성격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한 군주마저도 통치체제와 사회구조에서 후대로 계승될 새로운 틀을 수립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는 오수창 교수의 글을 다시 읽는다.
효명세자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존경하는 할아버지 정조의 뜻을 받들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견제한 인물로 평가받는, 요절한 비운의 세자이다. 만일 정조가 세도정치를 초래했다는 말이 근거 있는 말이라면 정조와 효명세자는 묘한 인연의 줄로 이어진 사이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아픈 부분은 정조가 관념적인 학문인 주자학에 의거해 강국(强國)의 꿈을 가졌었다는 내용이다. 개혁군주 정조가 주자학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는 글을 접하게 되어 혼란스럽다. 물론 정조는 뛰어난 학(성리학)자 군주이다. 정조의 학자 군주적 성격과 관계 있겠지만 정조는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답하기만 하라)의 대가이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주장들은 이주한 님이 문제제기한 서울대 국문과 및 국사학과의 식민사학적 특성(’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참고)과 관계 있는 것일까? 서울대 식민사학 진영이 가장 물고 늘어지는 부분이 정조와 사도세자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가 직접 읽어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리라.
나만이 최고라는 유아론(唯我論)을 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기에 내가 직접 읽고 헤아려야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 정조의 과(過)에 무게를 두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세밀하게 직접 읽는 공부를 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