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시인의 ‘천사의 멜랑콜리‘를 읽는다. 제주 라이딩(사이클)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고 한 동기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 21기 연구원 첫 만남 시간을 틈타 예의 그 ‘천사의 멜랑콜리‘란 책을 그 동기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무거운 마음을 벗어버리는 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론 ‘천사의 멜랑콜리‘에서 천사의 멜랑콜리보다 내 관심을 더 끄는 부분은 ‘자신의 시를 쓰고 읽기에 관하여‘란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작가가 자기 자신의 작품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어떻게 동어반복과 자기지시성을 넘어서는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타자를 경유하는 일인지, 그리고 그렇게 먼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산문을 통해서 천천히 음미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란 파나마 태생의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이고 산문이란 ‘나 자신을 읽고 쓰기에 관하여‘란 제목의 글이다.

저자의 멘트를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우선 말할 것은 우리 모임(전문해설사 36기- 연구원 21기)은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의 모임(문화로써 친구를 사귀고 벗을 통해 어짊을 보완하는 모임)이란 말이다.

저자(김행숙)의 말을 응용한다면 이문회우 이우보인의 모임이란 많은 좋은 타자 즉 벗을 만나는 모임이며 그런 만남을 거친 ‘나‘는 예전의 나일 수 없다는 점이다.

하나 같이 스승 같은 네 명의 ‘36 - 21‘ 멤버들을 만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 새롭고 의미로운 해설사가 될 것을 다짐한다...

상투적이어서 아쉽지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57년 결성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과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총학생회가 지은 ‘비참한 대학생활‘(원서 출간 50년만인 2016년 11월 번역, 출간)의 문제의식은 반 세기가 넘은 지금에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심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의 문제의식이란 오늘날 대학은 사회를 선도하는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취업 기관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걸러 들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타당한 지적이다.

지금 읽고 있는 이은선(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2016년 1월 출간)에서 내가 접한 부분은 교육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여겨지던 평생교육도 또 하나의 스펙 쌓기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으며(111 페이지) 요즘은 교회조차도 일종의 학교로 변해 그 과정을 모두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113 페이지)

학생으로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뒤 교수로서 거의 40년 가까이 대학과 관계했으나 그런 인연이 그렇지 않은 것과 과연 어떤 차이 또는 효과가 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저자는 현대 사회가 과잉 계획되어 있다는 이반 일리치의 말을 인용한다.

일리치는 사회가 그렇게 과잉 계획될수록 사람들은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배움의 균형이 깨져 교육비의 지출은 늘어가지만 자신감은 한 없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비참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지난 해 여기 저기 열심히 배우러 다닌 나는 올해는 예의 그 열정(인지 아집인지 모르겠지만)이 줄어든 것을 느낀다. 현대의 많은 담론들은, 난해한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겠지만 극히 난해하다. 물론 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보고 뭐 이렇게 어려운 책이 있냐고 한 중국의 임어당식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전망 부재, 혈행장애(stasis)의 현실이 반영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어떻든 난해 탓(난해하기에 열심히 배우려 하는 면)도 있지만 스스로 사유하는 데 서툴고 게으른 결과가 이런 저런 수업, 특강, 출간 기념 강연 등을 쇼핑하듯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출간 기념 강연은 거의 대부분 책 내용을 요약, 압축해 말하는 수준일 뿐이니 참여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우리문화역사연구소 김용만 소장은 ‘조선이 가지 않은 길‘(2017년 4월 출간)에서 한국인의 교육 열망이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지나친 사교육비 문제, 청년 실업자 문제로 나타나게 된 원인을, 남들보다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우월욕망을 지닌 자들이 (선한 공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간신히 마련한 사다리마저 걷어차 버리거나 또 다른 신분의 벽을 만들어 버림으로써 백성들이 지닌 배움의 열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조선에서 찾는다.(170 페이지)

역사 천문학 개척자인 김일권 교수가 조선이 고구려의 자주적인 천문학을 계승하기는커녕 천문학을 사대적인 학문으로 만들었다고 지적(‘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참고)했듯 조선은 15세기 초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 최고의 지도를 만들었으나 그 이후에 만들어진 조선의 지도들은 현저히 퇴보했다.(‘조선이 가지 않은 길‘ 참고)

문화유산 해설을 배우면서 알게 된 조선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교, 기독교, 페미니즘의 대화를 통한 21세기 포스트모던 생물 영성을 추구하는 이은선 교수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를 읽게 한 것은 그런 내 의문과 답답함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랑스의 사상가 레지 드브레와 중국의 철학자 자오팅양이 나눈 편지 모음집인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에서 읽었을까? 지음(知音)과 지심(知心)이란 말 말이다.

철학자 자오팅양이 말한 지음(知音)은 지혜로운 두 친구의 지적 우정이고 지심(知心)은 심리적 약점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 사이의 심리적 우정이다.

중국 북송의 학자인 범중엄(笵仲淹)이 했다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이란 말을 보며 지음과 지심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은 연결일지도 모른다.

선우후락은 학자나 지사(志士)의 바람직한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세상의 근심은 먼저 하고 즐거움은 나중에 누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적 우정은 밝음과 즐거움의 면면으로 나누는 우정이자 담론(談論)을 나누는 우정으로, 심리적 우정은 부끄러운 면, 그늘진 면, 고충(苦衷... 衷; 속마음 충)도 나누고 고백하는 실존적 우정으로 본다.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또는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할까? 지적 우정과 심리적 우정 중 어느 것이? 함께 근심하고 슬퍼하는 우정과 함께 즐거워하는 우정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하고 완전한 것은 즐거움도 고통도 함께 하는 우정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함께 슬퍼하지는 못해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우정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7-05-26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여기에 적기에는 좀 문맥과 맥락을 약간 벗어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요. 저는 모든 중국 사상은 봉건적 사상이고 왕조(시대)적 사상으로 수렴된다고 봅니다. 중국은 결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시진핑(習近平, Xi Jinping)이가 각국의 외교 사절을 맞이하면서 그들한테 자리(일종의 서열, 요컨대 봉건적이고 왕조시대적인 서열) 차등대우를 하는 모양새를 보면 그게 확연히 드러난다고 봅니다. 21세기 백주대낮에 고대 왕조시대의 중화사상을 철저하게 실현하고 있는 쭝궈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중국 국민들까지)을 보면 우습지도 않습니다. 중국이 한국이나 베트남, 동남아 국가 등등 약소국을 대하는 외교 정책도 보면 그게 한결같이 드러납니다. 미치광이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마우저뚱(毛澤東, 마우쩌둥, Mao Zedong)을 지폐 초상화에까지 그려넣고 천안문 광장에까지 걸어넣고 숭배하는 중국인들 보면 답이 안 나옵니다. 그들은 시간적으로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왕조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죠. 한국인인 저로서는 그런 중국 지식인들은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옛날의 성현이든 현대 중국 지식인이든 말이죠. 그들의 어록과 경전이 아무리 금과옥조로 넘친다고 한들, 그들의 논리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인간/인류 본연의 신뢰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땅덩어리 크고 머릿수 많다고 힘의 논리로 밀어부치는 중국인들은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지식인들도 저런 혐의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동북공정 따위 역사 왜곡에 광분하고 있지요. 한국 지식인들은 현실을 냉철히 깨닫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힘에 지배를 당하면 지식인이고 양심가고 뭐고 전혀 없다고 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5-2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맥락에서 벗어난 감이 있다 해도 들을 부분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오팅양은 인류사회가 착취, 억압, 폭력, 전쟁, 학살, 기만, 독단, 사기, 거짓말, 위선 등 추악한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 좌절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좌절시키는 행위가 붕괴의 임계점에 도달하면 선이나 공정의 진리가 마지막으로 생명을 구하는 지푸라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오팅양은 중국의 패권적 지식인들과 거리가 있지요. 여담이지만 자오팅양의 아내가 삼몰주의 즉 베이징은 가망 없고(몰희沒戱), 재미 없고(몰경沒勁), 어쩔 도리가 없다(몰철沒轍)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말씀대로 패권적이고 중화(中華)적 가치관에 근거해 역사왜곡과 약소국 탄압, 배척을 일상으로 하는 국가이고 이성적이지 않은 면이 강한 국가입니다. 그래도 양심적 지식인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비판적인 자요팅양의 생각과 지향점을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배우길 바랍니다.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 세계문화유산 종묘에 숨겨진 역사의 재발견
이상주 지음, 이규대 사진 / 다음생각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조선의 국가 사당인 종묘의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 나로서는 종묘를 일반인들을 배제한 채 몇몇 동행들과만 보겠다고 해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어낸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구겐하임 빌바오를 설계한...), 우리의 목조 건물들 중 가장 긴 101미터(정전)의 위용 등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상주는 조선의 화재대책은 종묘의 화재대책이라는 말로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를 시작해 신선함을 준다. 한양 도성에 불이 나면 가장 먼저 진화해야 하는 곳이 종묘인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종묘는 아직 문헌적으로 보강되고 이론적으로 설득력을 키워야 하는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의 의문들이다. 초헌관인 임금은 신()이 된 조상들에게 값싼 예제(단술)를 올리는데 신하인 영의정은 비싼 청주를 바치는가, 생전에 진수성찬, 산해진미를 드셨을 신()이 된 임금께 왜 생고기를 올리는가..

 

제사(祭祀)란 교제한다는 의미의 , 같다()는 의미의 가 합쳐진 말로 사람과 귀신의 교제를 의미한다.(20 페이지) 종묘는 최고지존인 왕조차 최고가 아닌 구역, 신을 위한 공간이다. 왕은 선왕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함은 물론 스스로도 걸을 수 없는 길이 있다. 신이 걷는 길인 중앙의 신향로(神香路)가 그것이다.

 

신향로의 오른쪽 길은 어로(御路), 왼쪽 길은 세자로(世子路)이다. 경복궁에도 세 길이 있는데 중앙의 길은 어로, 좌우는 문무관의 길이다.(24 페이지) 종묘는 정치적 역학관계가 반영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27 명의 임금 중 2(연산군, 광해군)이 종묘에 모셔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두 35명의 임금이 모셔졌는데 그것은 추존왕이 있기 때문이다.

 

공덕에 따라 정전에 계속 모셔지는 임금도 있고 별묘인 영녕전으로 옮겨진 임금도 있다. 단종, 현덕왕후, 단경왕후 등은 사후 수백년이 지나서 부묘되었다. 종묘에 모셔진 신주(神主)4대가 되면 영녕전으로 옮기는데 특히 공덕이 많은 임금은 영원히 옮기지 않는다. 태조, 태종, 세종 등의 임금이다. 그렇게 공덕이 특히 많은 임금들이 계속 머무는 곳을 세실(世室)이라 한다.

 

그런데 4대가 되기 전에 영원히 모시는 불천지위(不遷之位)로 선언된 임금이 있다. 효종과 영조이다. 영조는 정쟁과 판단착오로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다. 영조는 손자(정조), 일찍 죽은 큰아들인 효장세자의 아들로 삼아 종통을 잇게 했다. 영조를 불천지위로 결정한 임금은 정조이다. 정조는 영조를 불천지위로 선언하는 교문(敎文)을 반포했다.

 

임금과 세자는 권력 관계로 엮인 사이이다. 임금과 세자는 항상 같이 움직여야 했다. 세자는 항상 임금의 가시권에 있어야 했다. 사적으로는 부자관계이지만 임금과, 임금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인 사이이기에 은근한 긴장이 있었다. 임금은 세자를 가까이 두어야 안심했다. 임금이 친향례(임금이 직접 참여하여 제사지내는 것)를 하지 못할 경우 세자에게 제사를 모시게 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상 본능적으로 피했다.(86 페이지)

 

어머니에 대한 정을 보이는 것을 넘어 왕권강화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생모의 추숭(追崇)에 크게 신경을 썼던 광해군을 통해 우리는 예의 그 권력관계에 대해 음미하게 된다.(107 페이지) 임금과 왕후의 종묘 부묘 때 세 가지 용어가 쓰인다. 부알(祔謁), 묘알(廟謁), 승부(陞祔)가 그것이다.(121 페이지) 정상적일 때는 부알을 쓰지만 때로는 묘알과 승부를 쓴다.

 

승하(昇遐) 27개월이 지나 종묘에 부묘되는 임금이 선대왕과 선왕후에게 신고하는 말로 하는 멘트가 부알이요이다. 임금을 알현한 뒤 자신의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의미이다. 태종에 의해 왕비 지위가 박탈되고 종묘에 부묘되지 못하게 된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경우 사후 300년이 거의 다 되어 왕비의 지위를 회복하고 남편인 태조의 곁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때 종묘의 숱한 임금과 왕후는 태조를 제외하면 모두 아랫 사람이기에 스스로 올라가 자리에 앉겠다는 의미의 승부라는 용어가 쓰인다.

 

묘알의 예는 단종에게서 찾을 수 있다. 단종은 정전에서 4년 간 머물다 영녕전으로 가는 일반 관례와 달리 영녕전으로 직행했다. 비운의 단종은 영녕전으로 가기 전에 정전의 선대왕들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다. 이때 묘알이란 말이 쓰인 것이다.(122 페이지)

 

조선 관료들의 사후 최고 영광은 종묘에 배향되는 것이다.(129 페이지) 임금에게 특히 큰 충성을 했거나 나라에 공로가 큰 경우이다. 종묘의 배향 공신은 애초 아흔 다섯 명이었다. 정치적 변고로 추가되거나 삭제되었고 영녕전으로 조천될 때 매안(埋安; 신주를 무덤 앞에 묻음)되기도 해 현재는 여든 세 명이다.(129 페이지)

 

조선이 망한 이후인 요즘에는 부묘 의식은 없고 종묘제례가 있다.(137 페이지) 종묘에 떼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선조때의 일로 선조의 도덕적 실종이 조직적인 종묘 도적질을 부른 것이다. 도적들은 삼성추국(三省推鞫)되었다. 삼성추국은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의 관원이 합석하여 심문하는 것이다.(184 페이지)

 

친일파 이완용이 종묘에 배향된 적이 있다. 순종 승하로 배향된 것이다. 이완용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종묘에서 제거되었다. 최소 5년은 종묘의 공신당에 배향되었던 것이다.(189 페이지) 종묘제례는 경건해야 한다. 혼령이 식음하는 음식은 온갖 정성을 다해 마련한다.

 

희생물도 고통을 받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희생물을 편안하게 보내는 비밀은 음악에 있다. 음악을 들려주고 한 순간에 죽이는 것이다.(220 페이지) 종묘대제에서는 신이 된 임금들에게 세 차례 술을 올린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각각 술을 올리면서 왕실과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한다.

 

이익, 정약용 등은 가끔 제자들로부터 임금이 가장 귀한 명주가 아닌 거친 술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제사는 우리의 민간 전통에서나 유교에서나 정성을 가장 우선시했고 정성은 가장 오래된 것을 으뜸으로 쳤다.(223 페이지) 종묘제례는 향기제례라고도 불린다. 신이 향기를 음미하는 제례라는 의미이다. 물론 제사는 향기제례이면서 식신제례이다.

 

종묘제례에는 익힌 고기가 아닌 생고기를 쓴다. 희생(羲牲)이란 말을 보면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에 들어 있는 날 생()이란 말은 제물이 살아 있음을 뜻한다. 종묘에는 세 개의 연못(지당池塘)이 있다. 정전 앞에서 시작하여 정문으로 가는 위치에 따라 상지, 중지, 하지라 한다.

 

세종 25년에 지금 농사철인데 비가 때맞춰 내리지 않으니 종묘에 못을 파는 일과 간의대에 해시계를 설치하는 일 외에는 여러 사업을 모두 중지하라는 기록이 있다.(251 페이지) 종묘의 상징목은 향나무이다. 사직은 소나무, 종묘는 향나무이다. 창덕궁의 우봉지나 경복궁 경회루의 망지에는 소나무가 있다.

 

향나무는 귀신을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저자는 향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255 페이지) 종묘에는 지당의 섬에 향나무를 심어 신궁의 상징성과 함께 향의 재료를 즉시 구할 수 있게 했다. 종묘에는 25명의 임금, 9명의 추존왕, 의민황태자 등이 모셔져 있다.

 

종묘 정전에서 어숙실로 가는 길에 주목(朱木)이 심어져 있다. 껍질과 속살이 유난히 붉어 주목이라 불린다. 주목은 나무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길 뿐 아니라 목재로서의 수명도 길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한다. 조선이 영원토록 지속되고 종묘에 모셔진 영혼이 영원하도록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270 페이지)

 

전사청 앞에는 작은 오얏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오얏은 조선황실의 상징이다. 오얏나무는 4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271 페이지) 임금들의 영혼이 숨쉬는 국가 사당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중심가에 세운 것은 좌묘우사 원칙에 따른 것이다. 임금이 궁궐을 중심으로 남쪽을 향했을 때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종묘의 정문은 외대문 또는 창엽문이라 한다. 종묘 건물에는 현판이 없다. 종묘는 오는 이가 한정되었기에 현판이 없는 것이다. 종묘는 본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서의 의미를 가진 곳이니 제관 등 제례에 관련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굳이 이름표를 붙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273 페이지)

 

사랑한다, 아름답다 등 두뇌로만 감지되는 추상적인 정신은 혼(), 꼬집으면 아프고 먹지 않으면 배고파 하는 등 육체적인 정신은 백()이라 한다. 혼은 자유로워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죽으면 땅에 같이 묻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종묘는 무덤이 있는 곳이 아니다. 무덤 묘()가 아닌 사당 묘()를 쓰는 이유이다.

 

종묘는 세계 4개국에만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이다. 그 중 우리나라 것만 세계유산이 되었다. 종묘의 기능 수행, 독특한 제도, 건축물의 우수성 때문이다. 앞선 왕조의 신주를 모시는 점, 불천위제도, 사당 건축물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건축물이라는 점 등이 작용했다. 종묘 정전의 기둥은 20개로 안정감을 주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엔타시스 공법을 썼다.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불탔을 때 왕궁보다 먼저 복원되었다. 종묘 정전의 문은 일부러 어긋나게 만들었다. 목재인 나무의 뒤틀림을 방지하고 신실에 통풍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혼령이 자유롭게 다닌다는 상징성도 있다. 일본의 종묘인 이세신궁은 식년천궁이라 해서20년마다 건물을 새로 짓고 옛 건물은 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답보다 질문을 찾는 읽기는 대책 없는 읽기를 하는 것과 다르다. 질문을 찾는 것은 결국 스스로 설정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책문(策問)이 반드시 책문(策文)을 요구하는 것처럼. 책문(策問)이란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적게 한 조선시대 등의 문과 시험이고 책문(策文)은 책문(策問)에 대한 답이다.

처음과 중간이 어떻든 젊은 남녀에게 결국 연애를 하라고 등 떠미는 무례한 세태에 대한 불편감을 기승전연애란 말로 표현한 한 홀로(솔로)이스트의 글에서 파스타비우스란 말을 만났다.

파스타는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는 남녀가 잘 먹는 메뉴이고 비우스는 뫼비우스의 띠의 그 뫼비우스에서 온 말일 터이다.

그러니 파스타비우스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소개팅이나 미팅이란 어설프고 어색한 만남에서 발을 뺐다는 의미이다.

이 파스타비우스란 말을 보며 나는 내 읽기(뿐만이 아니겠지만)가 뫼비우스의 띠를 맴도는 것 같은 읽기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미로와 미궁의 차이를 설명하는 사람이 있지만 뫼비우스의 띠를 맴도는 것 같은 읽기와 삶은 미로 또는 미궁 속을 헤매는 읽기 및 삶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궁금함이 고개를 든다.

‘정조 책문(策問), 새로운 국가를 묻다‘란 책이 나왔다.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가 신하와 유생들에게 나라의 정책들에 대해 물은 내용을 풀이한 책이다.

단지 한 권의 신간일 뿐이지만 정조의 책문(策問)에 대해 제시된 책문(策文)들과 다른 나만의 답을 생각해보고 싶다. 무엇에서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