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읽기 세창명저산책 81
김철운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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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는 공자나 맹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성악설의 주창자인 순자에 대해 그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백철 교수의 ‘왕정의 조건’을 읽고나서였다. 이 책에 의하면 순자는 인간은 악의 성향을 타고 태어났다는 성악설을 폈지만 교육에 의해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 인물이다.

 

‘왕정의 조건’의 저자는 우리는 ‘순자(荀子)’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순자의 성악설이 사람을 악하게 본다고만 이해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라는 말을 했다.(20 페이지) 세창미디어에서 나온 <‘순자’ 읽기>(2021년 6월 3일 초판 1쇄)는 상기한 순자관(觀)에 깃든 오류를 극복할 여지를 제공하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집필을 의뢰받은 지 5년이 다 되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자신만의 오만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박차고 나와 사상의 깊고도 드넓은 세계를 향하여 작으나마 온 힘을 다해 기지개를 펴보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순자와 『순자』, 2장 하늘을 제어하고 이용하다, 3장 후천적인 인위적 노력을 중시하다, 4장 예禮로 사회의 혼란을 막다, 5장 경제로 백성을 부유하게 하다, 6장 사람의 용모에 집착하는 행위를 비판하다, 7장 아름다움과 선함을 함께 말하다, 8장 천하 통일의 원칙과 근본을 구상하다 등이다.

 

50세 이전까지 순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았고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50세 이후의 삶만이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직하학궁(稷下學宮)이 있다.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의 서쪽 성문인 직문(稷門) 아래에 있었던 교육 기관이다. 그 교육 기관에 속해 공부한 사람들을 직하학파라 했다. 순자가 속했던 학파다. 

 

성선설을 주창한 맹자와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 사이에는 안을 지향하느냐 밖을 지향햐느냐의 차이 외에는 없다. 맹자는 도덕적 근거를 본성 안에 두었고 순자는 밖에 두었으나 궁극적으로 사람의 도덕적 선함을 발현하는 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순자는 덕에 의한 통일을 주창했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순자는 공자 사상을 계승한 사상가로 어느 정도 인정받았지만 다만 공자의 직계(直系)가 아닌 방계(傍系)로 분류되었다. 순자는 형식적인 면에서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나 내용적인 면에서는 공자의 사상과는 다른 길로 갔다는 평을 받았다. 한유(韓愈)가 순자는 대체로 순수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흠이 있다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한유가 말한 흠이란 성악설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성악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소동파(蘇東坡; 소식; 蘇軾)도 순자를 공자 사상을 완전히 벗어나 이설(異說)만을 좋아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송, 명대에 이르러서 순자가 공자를 계승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청대에 이르러 순자 사상은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순자 사상을 무기로 정이, 주희 등을 공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현재 순자는 공자 사상의 계승자라는 틀 안에서 순자학이란 독립된 철학 체계를 가진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맹자와 순자는 동일 선상에서 다루어져야 할 사상가들이다. 이 부분에서 새길 말은 ‘두 사상가는 인간 본성 가운데 상이한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서로 다른 입장에 섰으나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생각은 많은 곳에서 일치하는 유학자였다.’(김교빈, 전호근, 김시천, 김경희 등 지음 ’동양철학 산책’ 참고)는 말이다.

 

‘순자’는 세 가지 핵심 주장을 담은 책이다. 1) 하늘의 직분과 사람의 직분은 아무 관계가 없고, 2) 사람은 분별력이 있고 의리가 있고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뛰어나고, 3) 사람의 본성은 악하기에 인위적 배움과 노력으로 선한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 등이다.

 

순자 권학(勸學)편에 청출어람이란 말이 나온다. 순자는 관상(觀相)을 비판했다. 외모가 아닌 마음 가짐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는 의미다. 순자는 하늘을 신비한 세계가 아닌 스스로 변화하는 자연세계 즉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보았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아닌 천인분이(天人分二)를 주장했다.

 

순자는 묵자의 비악(非樂; 음악 비난)을 비판하며 정악(正樂)과 사음(邪音)의 구별을 강조했다. 순자는 사회 혼란을 명분과 실질이 어긋난 결과로 보았다. 순자는 사람이 외부로의 확장을 꾀하는 본성을 따르면 악해지기 때문에 인위로 새롭게 변화시켜 그 선함을 드러내야 한다고 보았다.(화성기위; 化性起僞)

 

순자의 하늘관은 주나라의 천명미상(天命靡常; 한결 같지 않음) 사상과 통한다. 하늘은 어느 누구도 영원히 임금의 지위에 있도록 미리 정해놓지 않았고 때때로 새로운 명령을 내려 새로운 사람에게 명령하고 그가 덕을 잃으면 이전 임금에게 했듯 지위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순자에 이르러 하늘은 그 이전의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 되었다. 순자의 하늘은 자연과학적 의미의 법칙이고 기계적 운행이다. 천재지이(天災地異)를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던 조선시대의 가치관과 완전히 대비되는 생각이다. 순자는 하늘에 대한 모든 감정적 요인들을 배제해나갔다.

 

순자는 하늘을 알기를 구하지 않는다는 말과 하늘을 안다는 말을 했다. 전자는 형이상학적 의미의 하늘이고 후자는 자연현상으로서의 하늘을 의미한다. 순자에게 둘은 영역을 달리하는 세계가 아니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면 형이상학적으로 받아들이던 하늘이 자연현상 또는 개조 대상으로 이해되는 것임을 고려하자.

 

순자는 사람과 하늘을 대립 관계로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순자에게 둘은 상호 공존하는 존재들이다. 순자가 말한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이 그 자체로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외부의 확장을 꾀하는 본성에 이끌려 가면 악해진다는 의미다. 즉 사람은 본성이 후천적으로 악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의미다.

 

순자의 성악설을 그가 사람의 본성 자체를 악한 것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순자가 말한 본성이란 1) 감각 기관의 본능, 2) 생리의 욕망, 3) 심리의 반응이다. 순자의 관점에서 본성, 감정, 욕망은 동일한 것들이다. 본성은 타고난 것이고 감정은 본성의 본래 모습이며 욕망은 감정이 반응한 것이기 때문이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라고 주장했다. 순자가 말한 도덕이란 맹자처럼 사덕이라는 선험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인위)라는 경험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위; 僞’는 거짓이란 의미 외에 작위라는 의미도 갖는다.) 순자는 성인의 타고난 능력(성인은 배우지 않고도 아는)을 인정하지 않았다.

 

순자의 관점에서 성인과 일반인은 본성에서는 같고 인위 측면에서 엄연하게 다르다. 순자는 본성을 사람됨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생명의 원천으로, 인위를 그런 생명의 원천을 하나의 가치 있는 생명으로 구체화하는 핵심 근거로 설명했다.(69 페이지) 그에게 본성은 가공 이전의 재료, 인위는 가공한 완성품에 비유될 수 있다. 순자는 본성과 인위의 관계를 도공이 흙을 빚거나 목공이 나무를 깎아 그릇을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순자는 마음의 인식 능력을 신뢰할 수 있으려면 도로 인도하고 청명(淸明)으로 기르라고 주장했다. 순자에게 욕망은 속성상 가득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갈 운명 같은 것이다.(87 페이지) 그에게 욕망은 성악설의 근본이다. 순자는 사람이 타고 태어난 욕망을 어느 정도까지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자에게 예는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살아가기 위한 근본 원칙이다. 순자는 현재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역사의식과 전통의식을 부정한 사상가가 아니라 그것들을 존중하여 과거라는 반석 위에 현재를 올려놓고서 현재의 나아가야 할 지표와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상가다.(100 페이지)

 

순자는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로 물은 배를 실을 수 있고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순자는 농업과 상공업을 긴밀하게 협조하는 유기적 관계로 정의하고 농부 수보다 상인과 장인의 수가 더 많으면 수요, 공급 구조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순자의 절용(節用)은 농업의 증진을 위한 보조수단, 즉 임금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약한 것을 사회적 생산 발전을 위한 생산량 증대에 투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럴 때 절용은 그 본래의 기능이 발휘되어 모든 사람의 삶을 향상시키는 사회의 생산 발전에 집중될 수 있다.(113 페이지) 순자가 살던 시대와 그 이전 시대는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한 시대인 관계로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팽배해 관상술이 크게 유행했다.

 

순자는 관상술을 비판했다. 흥미로운 것은 요임금, 순임금, 공자, 주공 등은 아름답지 않은 용모에 굴하지 않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들이고 주(紂), 걸(桀) 등은 수려한 용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에 안주하여 후대에 악인으로 낙인 찍힌 인물들이라는 점이다.(123 페이지) 다만 순자는 용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반대한 것은 오직 외형적인 문식(文飾)에만 치중하는 것이다.(126 페이지)

 

순자는 예를 따르면 사람의 용모는 모두 예에 합해서 아름답지만 예를 따르지 않으면 예에 합해지지 않아서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했다. 순자는 산유(散儒)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방면에서 아는 것이 많지만 자신의 생각을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유자 즉 아는 것을 하나로 꿰뚫는 능력이 없는 유자라고.

 

부유(腐儒)는 말은 잘하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간교한 말만 늘어놓는 진부한 유자다. 아유(雅儒)는 후왕의 학문을 본받고 제도를 통일하고 예의를 높여 시경과 서경을 돈독하게 하며 언행이 법도에 거의 맞는 유자다. 물론 이들은 지식을 하나로 꿰뚫는 지혜가 없는 유자들이다.

 

대유(大儒)는 자신의 앞에 고달픈 삶이 펼쳐지더라도 결코 사악한 방법으로 이익을 탐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국가를 잘 다스리는 재능과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다. 순자는 사람의 인식 작용을 거치지 않은 아름다움은 결코 없다고 보았다.(141 페이지) 순자적 맥락에서 아름다움이란 징지(徵知) 작용 즉 마음의 판별과 실증을 통한 인식작용을 거쳤다면 아름다운 것이다.

 

물론 마음은 하나에 갇혀서 전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텅 비우고, 하나로 하고, 고요하게 하는 마음공부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반드시 사람의 인위적 노력을 거쳐야 한다. 순자의 아름다움관은 사물에 대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궁극 목적을 두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근거가 된다.(146, 147 페이지)

 

순자에게 중화(中和)에 바탕을 둔 음악은 자연 중의 조화 이외에 사람 상호 간의 조화와 경제, 사회생활의 조화까지 지향한다. 순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욕망을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예로 어느 정도는 길러주는 것을 권했다.(152 페이지) 관건은 그런 결과가 오직 예 자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의 강박성을 완화해주는 음악과의 상호 조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순자가 내세운 천하통일은 부국강병을 위한 힘의 논리가 아니라 민심의 귀복을 위한 덕행 즉 백성들에 대한 임금의 도덕적 실천 의지로 실현하는 것이다.(158 페이지) 순자가 채택한 천하통일은 힘이나 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덕에 의한 것이다. 순자에게 대형(大形)의 세계란 지극히 공평한 세계로 남으로부터의 구속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사회에서 맡은 직분을 스스로 해 나가거나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나가면서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유기적 세계다.

 

이렇듯 순자는 여러 모로 마음에 드는 사상가다. 성악설이 오해받고 있음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후천적 노력을 강조한 그의 면모가 마음에 든다. 하늘에 대한 관점도 참 설득력 있다. 관상을 비판한 것도 그렇다. 자주 읽어야 할 텍스트가 ‘순자(荀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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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좋은 밤 되세요.

벤투의스케치북 2021-07-08 09:27   좋아요 0 | URL
아.,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7-08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벤투의스케치북 2021-07-08 09:28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좋은 날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