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6 ㅣ 로마제국 쇠망사 6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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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6>에서는 교황의 주도로 전개된 십자군전쟁의 본질과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에 미친 영향으로 시작하여 비잔틴제국, 즉 동로마제국의 내부적인 갈등, 몽고제국의 성립과 유럽원정 그리고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의 성쇠에 이어 오스만제국의 성립, 교황에 의하여 주도된 라틴교회와 비잔틴제국의 동방교회의 통합 논의, 오스만제국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 12세기 이후 로마에서 벌어진 교황의 세속지배와 교황청의 아비뇽시대와 로마로 복귀하게 되는 과정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5세기에 폐허가 된 로마의 유적을 조망하며, 로마유적이 황폐해진 이유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원정을 촉발한 사람은 프랑스 아미앵출신 페트루스라는 은자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성묘를 참배하면서 박해를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투르크사람들에 의하여 탄압받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슬픔을 느낀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에게 구원의 길을 물었지만, 동로마황제의 나약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로마로 우르바누스2세 교황을 설득하여 지원을 약속받고, 내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속주를 누비면서 설득에 나섰습니다. 결국 라틴사람과 프랑크사람의 전쟁을 즐기는 속성과 맞물려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속죄약속 그리고 신의 가호에 대한 믿음 등이 무지한 사람들을 홀려 동으로 향하게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젖과 꿀이 흐른다는 동방에서 부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지휘체계 없이 소아시아로 떠난 이들이 지나는 곳 주민들과 충돌을 빚기 일쑤여서 헝가리나 불가리아 등지에서 공격을 받았고,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서는 투르크군에 의하여 30만이 궤멸을 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툴루즈 백작 레이몽이 이끄는 기병을 주축으로 한 10만 1차 십자군 원정대는 니케아, 안티오크를 거쳐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왕국을 세워 1187년까지 이어가게 됩니다. 1차 십자군의 성공은 투르크 세력을 견제하여 무너져가던 비잔틴제국의 몰락을 잠시 막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1188년 살라딘의 투르크군이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자 제2차, 3차 십자군 원정이 이어졌고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승패가 엇갈리는 가운데 협상을 통하여 전투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노켄티우스3세가 주도한 제4차 십자군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은 가운데 중간에 목표를 시리아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바꾸면서 비잔틴사람들과 라틴사람들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콘스탄티노플을 향하여 진군하게 된 것은 비잔틴제국의 왕위계승과정에서 밀려난 알렉시우스 황태자의 도움 요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필요한 군자금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에는 베네치아의 노림이 숨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결과 비잔틴제국은 와해되고 십자군 원정대가 세운 라틴제국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영토는 분할되어 십자군에 참여한 나라가 차지하였는데 라틴제국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의 반을 베네치아가 그리고 나머지는 프랑스와 롬바르디아가 차지한 것입니다. 즉, 4차 십자군 원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차지한 것은 단돌로가 이끄는 베네치아였습니다.


라틴제국이 쫓겨난 비잔틴제국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반란과 불가리아의 침공 등으로 근근히 이어가다가 1261년 제노아와 손을 잡은 비잔틴사람들의 역습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어선 비잔틴제국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권력투쟁으로 지새우다가 결국은 오스만제국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비잔틴제국이 무너지기 전에 동방교회와 라틴교회의 통합논의가 있었다고 하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의 약탈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해서입니다.


아마도 오스만제국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만,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성립과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연대를 오가고 있어 전체를 개괄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투르크군대가 비잔틴을 우회하여 발칸제국을 공격한 것으로 보여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비잔티움을 함락한 마호메트2세가 비잔틴제국의 궁전으로 향하면서 읊었다는 페르시아 고유의 우아한 2행 압운시는 기억할 만 합니다. "거미가 황궁에 거미줄을 드리웠고, 올빼미는 아프라시압(옛 사마르칸드)의 탑에 앉아 망루의 노래만 불러대는구나.(522쪽) 인간의 영화가 덧없음을 담은 것입니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했으니 로마제국의 쇠망을 논할 일이 없을 터임에도 기번은 이야기를 되돌려 1100-1500년 사이의 로마의 상황을 다시 늘어놓습니다. 아마도 라틴교회의 교황이 세속의 일에 간여하면서 로마제국의 영화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리아지방과 이탈리아반도의 주도권 다툼을 그려낸 셈인데 그 와중에서도 귀족들을 비롯한 로마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생각, 즉 오만함이 로마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기번은 1430년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선 포기우스가 로마의 대표적 유적 7곳에 대한 기록을 검토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서고트족이나 반달족이 쳐들어와 파괴한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인간의 건조물이란 진전이 없으면 그만큼 퇴화하기 마련이어서 뒤이어 오는 시대가 고대 유물의 황폐화를 부추겼을 것이고 보았습니다. 기번이 보는 고대 로마유적의 황폐화 원인은 1) 시간과 자연에 의한 훼손, 2) 야만족과 그리스도교도들의 적대적 침략, 3) 건물 자재의 도용과 남용, 4) 로마 내부의 분쟁 등입니다. 고트족은 6일 만에 반달족은 15일 만에 로마를 떠났으니, 여기서 말하는 야만족은 그들이 아니라 로마의 가톨릭교도에게 돌아갈 호칭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로마사람들은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옛 건물에서 얻는 자재를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고대 유물들을 팔아먹기까지 했다는 것이니,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다른 민족에게 뒤집어씌운 셈입니다.


긴 논설을 맺으면서 기번은 로마제국의 쇠하게 된 것은 1. 군사 전제 정치의 무질서, 2. 그리스도교의 생성과 확립, 3.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제국의 분열, 4. 게르만과 스키타이 야만족들의 침략과 정착, 5. 이슬람교의 창시, 6. 교황의 세속 통치, 7. 십자군 원정, 8. 사라센과 투르크인의 정복 등이 주요 요소였다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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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5 ㅣ 로마제국 쇠망사 5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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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5>에서는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반도에서의 변화, 즉 프랑크족의 이탈리아 정복에 이은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정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편 저자가 보기에는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의연대기는 허약해서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즉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 비잔틴제국은 끊임없이 제국의 강역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는데, 전성기의 로마제국을 이끌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황제가 없었고,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제위를 둘러싸고 권력싸움이나 벌이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제국 쇠망사5>에서 다루고 있는 600년 기간동안 모두 60명이 황제가 재위했는데, 이는 아이작 뉴턴의 연대기 규칙에서 말하는 안정된 제국에서의 황제의 평균재위기간이 18-20년인 것과 비교된다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비잔틴 제국을 둘러싸고 있는 야만족(저자는 일관되게 라틴민족이 아니면 야만족으로 정리하는 모습입니다)들이 점점 세를 키워 압박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가 아랍부족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을 계기로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동쪽으로는 인도북부까지 무서운 기세로 강역을 넓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잔틴의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슬람교의 성립과정과 칼리프시대에 이어 우마이야왕조를 거쳐 압바스왕조에 이르기까지 아랍부족의 전성기를 정리하였습니다. 이슬람이 빠르게 세력을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와 금식, 자선이 이슬람교도의 종교적 의무라는 단순하고 합리적인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관용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입니다. 다만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서 후(後) 우마이야왕조와 압바스왕조 사이의 관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압바스왕조가 우마이야왕조를 무너뜨렸을 때 극적으로 살아남은 왕족이 이베리아반도까지 달아나 후(後) 우마이야왕조로서 압바스왕조와 서로 연관을 맺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사라센제국이라는 용어는 유럽사람들이 통상 이해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신봉자들이 이룩한 대제국의 총칭’으로 7세기 중엽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처음 아랍계부족들에 의한 우마이야왕조와 압바스왕조가 성립하였다가 압바스왕조가 무너진 다음에는 중국 북부에서 이주해온 투르크계 부족들에 의한 셀주크왕조와 오스만제국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몽골계의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및 사파위제국 등이 중동지역에서 명멸했으며 이집트 지역에는 파티마왕조가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식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랍부족이 세력을 키워가는 것에 더하여 비잔틴제국의 동쪽으로는 불가리아인과 헝가리인(마자르족을 이르는 것 같습니다)이 서진하고, 러시아의 슬라브족이 남진하면서 제국을 압박한 것도 결국 보상금을 쥐어주면서 충돌을 피하는 양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교리의 해석에서 차이를 보이는 분파들이 생기면서 서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다가 세력을 얻지 못한 분파를 탄압하거나, 이들이 탄압을 피해 타국으로 피한 것도 제국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라센문명이 인류문명에 기여한 바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리스시대 꽃피웠던 다양한 문야의 학문적 성과들은 로마를거쳐 중세로 넘어가면서 사장되어 잊혀졌던 것을 사라센사람들이 이들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철학, 의학,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보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라틴민족 외에는 야만족이라고 바라본 협소한 시각 때문이었는지 지나치게 저평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5>에서 새롭게 파악한 점은 9세기 무렵 슬라브족이 네 차례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략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더 공부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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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4 ㅣ 로마제국 쇠망사 4
에드워드 기번 지음, 운수인.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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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4>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반도를 무대로 다양한 민족들의 각축전과 유스티니아누스황제의 동로마제국의 서방정복운동 등을 다루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반도에 진입한 민족들로는 동고트, 프랑크, 롬바르드족, 반달족 등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테오도리크왕이 다스리던 시절 동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하는 등 빠르게 기세를 올리던 것처럼 그의 사후 빠르게 무너져 금세 흔적조차 없이 사윈 것을 보면 과거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영명함에 달려있던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을 읽고 앎을 수정한 부분은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반도로 이동하게 된 전후사정입니다. 훈족이 도나우강 유역을 점령함에 따라 이동한 것이 아니라, 소멸한 훈족의 자리에 역시 동쪽으로부터 이동해온 아바르족이 도나우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아바르족은 6세기 무렵 카프카스지역에 처음 등장하여 빠르게 서진하여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를 차지하고 프랑크왕국과 국경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바르족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초기에 서진한 훈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초기 아리안계 스키타이민족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뉜 지 얼마되지 않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였는데, 그 당시 동로마제국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지 않은 이유를 풀지 못하였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로마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트족이 로마의 고대 유적을 파괴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정복한 나라의 기념물을 보존하고, 주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사할 줄 몰랐던 백성들은 이 고트족 정복자의 출신이나 종교, 그의 덕성까지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과거의 재난은 잊혀졌고, 로마인들은 평온한 현실 곳에서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피해의식만 더욱 예민하게 느꼈던 것(27쪽)”이라고 저자는 잘라 말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재위기간(527년부터 565년) 동안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차지하고 있던 반달족의 왕위계승전쟁에 개입하거나, 고트족이 차지하고 있던 로마를 정복하였으며, 사산조 페르시아와도 전쟁을 벌이는 등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고, 법전을 편찬하고, 하기아 소피아성당을 재건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복전쟁에 나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벨리사리우스장군을 끊임없이 견제하였다는 점입니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전공을 세우고 돌아온 장군을 죽음으로 내모는 왕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역사를 보면 군에서 인정받은 장수가 황제에 오른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공이 큰 장군에 대한 황제의 불안이 컸을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의 쇠망을 이야기하면서 멸망한 서로마제국을 차지한 동고트족의 치세와 롬바르드족의 치세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서로마제국의 영토가 결국 동로마제국에 편입되기 때문에) 호스로우왕 재위시기의 페르시아의 국내정세를 한 장에 걸쳐 설명한 것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에서 주목할 부분은 마지막 장입니다.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예수의 성격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세력들끼리 끔찍할 정도로 갈등을 빚은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 야고보파, 마론파, 아르메니아파, 콥트파 등으로 갈려진 정황을 설명합니다. 종교적 논리를 해석함에 있어 차이를 해소하려는 공식회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내막을 보면 논의를 통하여 의견을 조율하기 보다는 권력에 기대어 상대편 세력을 무너트리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세력을 잃은 파벌은 몰살당하거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달아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니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동굴교회 등 숨어서 교의를 지킨 그리스도교 사람들이 이슬람교 등 이민족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교의 탄압을 피해 숨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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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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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기욤 뮈소의 팬인 덕분에 <센트럴 파크>, <구해줘> 등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센트럴 파크>의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구해줘>의 죽음 등 의학을 소재로 주요 등장인물이 의사인 점 등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큰 아이의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요즘 본방사수하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처럼 시간여행이나 저승사자 등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역시 시간여행을 주제로 하고, 의사가 주인공인 점에서 뮈소의 다른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방식은 과학이 발전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나온 방식 같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미래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당연히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시간이 왜곡되는 웜홀을 통하여 미래로 혹은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합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신비주의를 선택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의 산골에서 가졌던 적십자사 의료봉사에서 만난 기인이 건넨 알약을 먹고 잠들면 과거의 시간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20여분에 불과한 것은 약물의 효능이 지속되는 시간과 수면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꿈을 꾸는 동안 일어난 가상의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시점의 자신과 주고받은 이야기의 흔적들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꿈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자가 지켜야 할 원칙은 과거 시점에 일어난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일에 개입하려들면 엄청난 힘이 방해하며, 개입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할까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어머니 살해의 역설’입니다. 즉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를 살해하면 시간여행자 자신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시간여행의 법칙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만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자신이 알면 안되는 비밀을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 때문에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된 연인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만 있다면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가졌지만, 과거의 자신을 이해시키려다 보니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사고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하자, 다시 시간여행을 떠나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수술을 직접 집도하는 무리수를 두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은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 이후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얻은 딸에 대한 사랑 역시 첫사랑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이율배반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인데, 현재의 자신이나 과거의 자신 모두 두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는 합니다. 문제는 그로 인하여 첫사랑과 오래된 친구를 잃는 아픔을 감수할 정도로 무리수를 두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배신을 이해하지 못하던 절친이 둔 신의 한 수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루게 됩니다.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사건을 바꾸면 현재의 상황도 변한다는 것을 이야기의 막바지에 극적으로 설명합니다. “집이 요동을 치고, 벽이 진동을 하더니 전구가 터지고, 꽃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일리나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확 빨아 당기는 힘이 느껴지며 그녀가 보는 앞에서 노트가 사라졌다. 진동은 점차 잦아들었고, 고양이도 천천히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애달픈 울음소리를 냈다.(327쪽)”


저도 가보았던 어부의 부두, 꽃길, 소살리토 등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거리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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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초보 2017-06-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앤디를 얻고서 모두에게 진실을 알렸으면 좋지않았을까요 ㅠ

처음처럼 2017-06-03 18:38   좋아요 0 | URL
ㅎ
사실 시간여행이라는 것이 아직은 가상의 것이기 때문에 말씀하신대로 하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소설이 밍밍해지지 않았을까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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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체코하면 프라하의 봄이 우선 떠오를 정도로 저항정신이 투철한 민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체코의 작은 도시의 역에서 점령군과 체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흐르마는 수습과정에 있는 역무원입니다.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는 자괴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입니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그는 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게 되는데, 역무원도 네명이 불과한 작은 역이지만, 전선으로 가는 독일군이나 보급품을 실은 군용열차나 전선에서 돌아오는 부상병을 실은 열차가 자주 지나갑니다.


소심한 흐르마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프라하로 쳐들어오는 독일군 탱크에 맨손으로 맞선 유일한 체코사람이었습니다. 최면술사였던 할아버지는 당신의 최면으로 독일군들을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의병제대한 증조할아버지는 평생 연금을 받으며 동네사람들에게 뻐기다가 얻어터지기 일쑤였다고 하니 4차원을 사는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전선으로 가는 열차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라고 열차운행표에 표시가 되어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열차가 예정보다 늦거나 하면 역무원들을 닦달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역무원 몇 명 정도는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점령군의 위세가 등등했던 것입니다. 흐르마는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기관차로 끌고 올라 간 친위대원의 모습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들은 시를 쓰거나, 아니면 테니스를 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43쪽)” 사실 나치의 광란에 휩쓸렸던 독일 국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추겨 전쟁터로, 강제수용소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흐르마와 같이 근무하는 후비치카씨도 별난 행동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같이 근무하는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역의 직인을 마구 찍는 사건을 저질러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후비치카씨는 조사관이 오던날 밤에 운행하는 독일군의 엄중하게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시키는 일을 제안하고 흐르마는 선뜻 일을 맡기로 합니다. 거사 전에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폭탄을 전하러 온 빅토리아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역장부인에게 부탁했다가 자신은 이미 갱년기에 접어들었다면서 거절을 당했던 참이었습니다.


“이윽고 기관차가 내 밑을 지나갔다. (…) 열하나, 열둘, 열셋, 그 다음번 차량에, 들고 있던 폭탄을 마치 개울에 꽃송이를 던지는 것처럼 슬며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는 정확하게 숫자를 세고 있다가, 목표 차량이 내 밑을 지나갈 때 그것을 던졌다. 폭탄은 투하하기로 정해진 차량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 작은 물건은 그곳에 있는 물건들과 함께 잠시 놓여 있다가, 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이다.(127쪽)”


흐르마와 같은 평범해 보이는 체코사람들까지도 점령군에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자는 ‘일어나, 저항하라’라고 체코사람들을 일깨우는 주문을 걸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흐르마의 조부가 떨치고 일어나 독일군의 탱크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고서 “독일군은 탱크를 돌려 왔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라”라는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공산당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는 보통의 체코 사람들의 핏속에서 잠자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는 일은 자의건 타의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흐라발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독일군 병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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