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동유럽의 체코하면 프라하의 봄이 우선 떠오를 정도로 저항정신이 투철한 민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체코의 작은 도시의 역에서 점령군과 체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흐르마는 수습과정에 있는 역무원입니다.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는 자괴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입니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그는 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게 되는데, 역무원도 네명이 불과한 작은 역이지만, 전선으로 가는 독일군이나 보급품을 실은 군용열차나 전선에서 돌아오는 부상병을 실은 열차가 자주 지나갑니다.


소심한 흐르마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프라하로 쳐들어오는 독일군 탱크에 맨손으로 맞선 유일한 체코사람이었습니다. 최면술사였던 할아버지는 당신의 최면으로 독일군들을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의병제대한 증조할아버지는 평생 연금을 받으며 동네사람들에게 뻐기다가 얻어터지기 일쑤였다고 하니 4차원을 사는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전선으로 가는 열차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라고 열차운행표에 표시가 되어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열차가 예정보다 늦거나 하면 역무원들을 닦달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역무원 몇 명 정도는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점령군의 위세가 등등했던 것입니다. 흐르마는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기관차로 끌고 올라 간 친위대원의 모습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들은 시를 쓰거나, 아니면 테니스를 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43쪽)” 사실 나치의 광란에 휩쓸렸던 독일 국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추겨 전쟁터로, 강제수용소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흐르마와 같이 근무하는 후비치카씨도 별난 행동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같이 근무하는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역의 직인을 마구 찍는 사건을 저질러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후비치카씨는 조사관이 오던날 밤에 운행하는 독일군의 엄중하게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시키는 일을 제안하고 흐르마는 선뜻 일을 맡기로 합니다. 거사 전에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폭탄을 전하러 온 빅토리아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역장부인에게 부탁했다가 자신은 이미 갱년기에 접어들었다면서 거절을 당했던 참이었습니다.


“이윽고 기관차가 내 밑을 지나갔다. (…) 열하나, 열둘, 열셋, 그 다음번 차량에, 들고 있던 폭탄을 마치 개울에 꽃송이를 던지는 것처럼 슬며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는 정확하게 숫자를 세고 있다가, 목표 차량이 내 밑을 지나갈 때 그것을 던졌다. 폭탄은 투하하기로 정해진 차량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 작은 물건은 그곳에 있는 물건들과 함께 잠시 놓여 있다가, 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이다.(127쪽)”


흐르마와 같은 평범해 보이는 체코사람들까지도 점령군에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자는 ‘일어나, 저항하라’라고 체코사람들을 일깨우는 주문을 걸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흐르마의 조부가 떨치고 일어나 독일군의 탱크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고서 “독일군은 탱크를 돌려 왔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라”라는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공산당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는 보통의 체코 사람들의 핏속에서 잠자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는 일은 자의건 타의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흐라발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독일군 병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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