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5 로마제국쇠망사 5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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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5>에서는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반도에서의 변화, 즉 프랑크족의 이탈리아 정복에 이은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정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편 저자가 보기에는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의연대기는 허약해서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즉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 비잔틴제국은 끊임없이 제국의 강역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는데, 전성기의 로마제국을 이끌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황제가 없었고,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제위를 둘러싸고 권력싸움이나 벌이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제국 쇠망사5>에서 다루고 있는 600년 기간동안 모두 60명이 황제가 재위했는데, 이는 아이작 뉴턴의 연대기 규칙에서 말하는 안정된 제국에서의 황제의 평균재위기간이 18-20년인 것과 비교된다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비잔틴 제국을 둘러싸고 있는 야만족(저자는 일관되게 라틴민족이 아니면 야만족으로 정리하는 모습입니다)들이 점점 세를 키워 압박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가 아랍부족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을 계기로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동쪽으로는 인도북부까지 무서운 기세로 강역을 넓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잔틴의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슬람교의 성립과정과 칼리프시대에 이어 우마이야왕조를 거쳐 압바스왕조에 이르기까지 아랍부족의 전성기를 정리하였습니다. 이슬람이 빠르게 세력을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와 금식, 자선이 이슬람교도의 종교적 의무라는 단순하고 합리적인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관용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입니다. 다만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서 후(後) 우마이야왕조와 압바스왕조 사이의 관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압바스왕조가 우마이야왕조를 무너뜨렸을 때 극적으로 살아남은 왕족이 이베리아반도까지 달아나 후(後) 우마이야왕조로서 압바스왕조와 서로 연관을 맺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사라센제국이라는 용어는 유럽사람들이 통상 이해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신봉자들이 이룩한 대제국의 총칭’으로 7세기 중엽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처음 아랍계부족들에 의한 우마이야왕조와 압바스왕조가 성립하였다가 압바스왕조가 무너진 다음에는 중국 북부에서 이주해온 투르크계 부족들에 의한 셀주크왕조와 오스만제국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몽골계의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및 사파위제국 등이 중동지역에서 명멸했으며 이집트 지역에는 파티마왕조가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식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랍부족이 세력을 키워가는 것에 더하여 비잔틴제국의 동쪽으로는 불가리아인과 헝가리인(마자르족을 이르는 것 같습니다)이 서진하고, 러시아의 슬라브족이 남진하면서 제국을 압박한 것도 결국 보상금을 쥐어주면서 충돌을 피하는 양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교리의 해석에서 차이를 보이는 분파들이 생기면서 서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다가 세력을 얻지 못한 분파를 탄압하거나, 이들이 탄압을 피해 타국으로 피한 것도 제국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라센문명이 인류문명에 기여한 바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리스시대 꽃피웠던 다양한 문야의 학문적 성과들은 로마를거쳐 중세로 넘어가면서 사장되어 잊혀졌던 것을 사라센사람들이 이들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철학, 의학,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보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라틴민족 외에는 야만족이라고 바라본 협소한 시각 때문이었는지 지나치게 저평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5>에서 새롭게 파악한 점은 9세기 무렵 슬라브족이 네 차례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략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더 공부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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