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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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은 것은 인도, 특히 갠지스강변의 바라나시를 무대로 간절한 무엇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읽은 까닭입니다. 삶의 정점을 돌아선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그리고 기구치는 어쩌면 작가의 분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소베는 전형적인 일본 남자로, 아내가 죽은 뒤에서야 더 많은 관심을 주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리고 미쓰코는 자유분방한 청춘기를 보내면서 신을 이해하려 애쓰는 오쓰라는 남자친구를 유혹하였다가 버리는 팜므파탈적 행동에 대한 앙금을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구치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얀마전선에 투입되었다가 패주하면서 전우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전쟁 당시 맞서 싸웠던 미얀마와 인도사람들에 대한 속죄의 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작가 누마다는 어쩌면 작가 자신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보입니다. 한때 치명적인 질병을 앓는 동안 힘이 되었던 구관조가 수술을 받고 보니 죽어버린 것이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있습니다.

 

미쓰코가 이소베의 아내가 암으로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간병인으로 도움을 준 인연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마다, 기구치 그리고 신혼여행지로 인도를 고른 산조 내외나 이들을 안내하는 에나미씨는 모두 초면입니다. 이야기는 이소베의 아내가 죽음을 맞기까지의 과정을 먼저 소개한 뒤에 바로 인도여행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설명회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여행에 참여하는 미쓰코와 누마다, 기구치의 속사정을 차례로 설명합니다. 젊은 산조 내외는 아마도 사진작가를 꿈꾸는 산조가 특별한 사진을 얻으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등장인물은 태평양전쟁 이전 세대로부터 아주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적당한 간격의 연령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삶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일본인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 자신은 가톨릭신자이면서도 <깊은 강>에서 추구하는 신의 존재는 다신교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미쓰코가 유혹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릴 것을 주문했던 오쓰가 결국은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치열하게 신의 존재를 뒤쫓아 가지만 궁극으로는 가톨릭 사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단일신을 믿지 못하고 신은 어떤 사물이나 생명체에도 깃들 수 있다는 범신론적인 믿음을 굳혀가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신은 엄격하고 징벌적인 부성적 신이 아니라 배교도 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마저도 품어 안는 모성적 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모성적 신의 전형을 에나미의 안내로 바라나시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에나미는 일행을 나크사르 바가바티 사원으로 안내해서 차문다라는 여신을 소개합니다. .컴컴한 지하의 묘지에 그려진 차문다 여신상의 모습을 이렇습니다. 그녀의 젖가슴은 이미 노파처럼 쭈글쭈글합니다. 하지만 그 쭈그러든 젖가슴에서 젖을 내어, 줄지어 있는 아이들한테 나눠 줍니다. 그녀의 오른발이 문둥병으로 짓물러있고, 배도 허기 때문에 움푹 꺼질대로 꺼졌고, 게다가 그걸 전갈이 물어뜯고 있습니다. 이런 병고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차문다 여신상은 인도인들이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병고와 죽음과 굶주림을 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유일하게 가진 것을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오쓰는 프랑스의 신학교에서 이스라엘의 수도원을 거쳐 바라나시에 이르렀는데, 이곳에서도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한 채 갠지스강변에서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산조의 돌출행동이 빚은 유족들의 분노를 몸으로 막아내다가 아마도 죽음을 맞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읽어가면서는 물론 읽고나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물론 죽음 이후에 대하여 분명한 무엇이 붙잡히지는 않았지만, 많은 생각이 오가는 그런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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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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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는 제임스 조이스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 같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고향 더블린에 대한 애증을 치열한 성찰과 탐구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킨 <더블린 사람들>은 이후 펼쳐질 방대한 조이스 문학 세계의 시작이자 그 정수를 담은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그린 열다섯 편의 단편으로 묶은 단편집입니다. 조이스가 그려낸 더블린 사람들은 짝사랑하는 이웃 소녀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밤거리로 나서는 소년, 가난에 찌든 생활에서 벗어나 먼 곳으로 떠나려는 여인, 런던에서 출세한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경멸하는 남자, 우아한 겉모습 뒤에 숨겨 온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부인, 하느님과 함께 돈을 섬기라고 설교하는 신부, 무위도식하는 건달들 등등 정말 다양한 모습들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더블린 사람들을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그리고 공공 생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등장인물을 배치하는 등 나름대로는 면밀하게 계산아래 작품을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영국 식민 통치에서 갓 벗어난 20세기의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찌든 가난과 폐쇄적인 민족주의, 타락한 교회 등 어디 하나 긍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그런 아일랜드의 모습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그려냄으로서 변화를 위한 자기인식을 꾀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영국에 경도된 친영주의자들이 존재했고, 그런 친영주의자들에게 날선 비판을 퍼붓는 민족주의자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일랜드 역시 식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는 못 했던가 봅니다. 그런가 하면 친영주의자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분명치 않아서인지 누군가가 친영주의자로 지목을 하면 그냥 몰리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모두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작품 「자매」에서는 신부님의 죽음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 생각은 당시 아일랜드 가톨릭의 부패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민족주의자로부터 친영주의자로 지목된 주인공이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늠해보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저자는 더블린 시의 풍경이나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책을 읽는 내내 더블린에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블린을 떠나려다가 결국 부두에서 주저앉는 처녀 에블린에 대한 이야기는 더블린의 어느 거리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행인이 뜸했다. 거리 끝에 있는 집에서 나온 남자가 귀가하느라 지나갔는데, 그 발걸음 소리가 콘크리트 포도를 따라서 타박타박 들리다가, 뒤이어 새로 지은 붉은 집들 앞 석탄재를 깐 길에서는 저벅저벅 소리가 들렸다.(44쪽)”


하숙하는 총각을 엮어 사위를 보려는 엄마와 손발을 맞춘 듯한 딸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폴리는 잠시 침대 가에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눈물을 훔치고 거울 있는 데로 갔다. 물 단지에 수건 끝을 담가 찬물로 눈가를 훔쳤다. 자신의 옆모습을 바라보고는 귀 위로 꽂힌 머리핀을 바로 잡았다. 그런 다음 침대로 돌아가 발치에 앉았다. 오래도록 베게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 모습에 은밀하고 달콤한 기억이 떠올랐다. 목덜미를 차가운 철제 침대 난간에 기댄 체 공상에 빠져들었다.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라곤 이미 찾아 볼 수 없었다.(89쪽)”


옮긴이에 의하면 <더블린 사람들>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을 불완전하게 마무리하거나 심지어는 감추기도 한다니 쉽게 읽힌다고 해서 휙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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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아프리카 - 아프리카에 두고 온 서른한 살
정은선 지음 / 이가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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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가물가물하게 먼 초원에서 한 떼의 야생동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풍경, 그리고 멀리 보이는 지평선으로 태양이 장엄하게 지는 모습 등이 떠오릅니다. 아프리카여행에 다녀오면 어떤 느낌이 남을까하는 생각을 하던 참에 만난 <우먼 인 아프리카>입니다.


서른한 살이 되던 해 자유여행으로 아프리카를 다녀온 직장여성의 여행기입니다. 서른한 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마침 아프리카를 다녀온 나이가 그래서였다고 이해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보고 겪은 다양한 느낌들을, 한국에서 영화 마케터로 일하면서 느끼는 점과 연결하고 있는데, 독특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자연풍광에 대한 느낌보다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얻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판에서 겪은 일들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독특한 자연을 보고 느낀 저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좋은 사진이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책의 구성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30일 동안의 여정을 3등분으로 나누었는데, 그녀의 아프리카 여행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미비아, 보츠와나, 잠비아,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까지의 트럭을 타고 가는 가이드투어와 빅토리아에서 해산한 다음 탄자니아로 가서 킬리만자로를 구경하는 자유여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트럭여행을 같이 한 사람들은 국적과 나이도 천차만별이었던가 봅니다. 독일인 노부부, 미국인 여자 친구 둘, 영국인 남자 친구 둘, 네덜란드 여자, 프랑스의 이모와 조카, 체코의 약혼자커플 등 22명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에 이들이 모두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다가 저녁에는 2인용 텐트에서 잠을 자는데, 짝을 이루거나 아니면 혼자서 자게 되는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20여일을 같이 움직이다보니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짝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일탈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단체여행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행동해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아마 저자도 조금은 그런 성향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행하면서 매일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낸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을 것임에도 저자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나태, 질서, 예감, 선입견, 내숭, 짜증, 열등의식, 예민, 옛사랑, 충동, 주정, 착각, 본능, 자만, 집착, 절망, 스트레스, 상실감, 부주의, 외로움, 영웅심, 이기주의 등, 어쩌면 살면서 버리거나 넘어서야 할 것들을 아프리카여행에서 다시 발견하였던 것이고, 그날의 주제를 풀어놓은 끝에는 주제와 관련하여 30대에 버려야 할 것들을 세 가지 정도씩 적었습니다. 예를 들면, 버려야 할 ‘착각’에 관한 팁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괜찮은 남자가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접근하면 일단 의심부터 해라! 그는 유부남 아니면 게이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읽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다보면 이처럼 뭔가 흐름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구석도 없지는 않습니다.


또한 초행길에서 지나치게 용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보안이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서는 조심에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인데 말입니다. 물론 용감한 행동 끝에 피해를 당했다고 적은 것은 읽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로 읽히지만 그런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옳은 일 같습니다.


예약한 아프리카여행에서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다는 탄자니아의 아루샤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저자의 여행길을 따라가 보니 킬리만자로를 제대로 느끼려면 모시로 가야하지 아루샤는 별 볼일이 없다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니셜을 사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영화판의 뒷이야기도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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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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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중단편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는 1세기 전 유럽사회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표제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등 8편의 중편과 단편 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이들 작품들을 통하여 ‘예술가와 시민, 예술과 견실한 삶, 정신과 자연의 갈등과 조화라고 하는 토마스 만의 주제 의식이 더욱 깊어져 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라고 출판사에서는 안내합니다.


이런 설명은 첫 작품「글라디우스 데이」에서 실감하게 됩니다. 뮌헨의 한 화랑에 걸려 대중의 화제가 되고있는 마돈나의 그림이 허접한 것이라고 믿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중세 네덜란드의 화가)를 등장시켜 그 그림을 내치라고 요구합니다.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그는 “예술이란 존재의 깊디깊은 곳까지, 수치스럽고 비탄에 가득 찬 존재의 심연까지 속속들이 자비롭게 불 밝혀 주는 성스러운 횃불입니다. 예술이란 구원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활활 타오르다가 온갖 치욕과 가책과 함께 사르라지기 위해 세상에 지펴지는 성스러운 불입니다!(24쪽)”라고 말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시빗거리가 되었던 패러디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신의 검이라는 의미의 ‘글라디우스 데이’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보탄의 검 노퉁을 말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아인프리트 요양원에 입원한 여자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트리스탄」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바그너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당시 유럽사회에서 유행하던 요양병원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토니오 크뢰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보았습니다만, 당시에도 국가간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그리고 덴마크 등지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간을 여행하면서도 여권을 소지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그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함부르크에서 덴마크로 가는 뱃길의 분위기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바다는 불꽃 모양의 뽀죡하고 거대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솟아올랐다가, 거품으로 가득한 깊은 골짜기들 옆에 어디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톱니 모양의 형상들을 치솟게 했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두 팔을 휘둘러 미친 듯 날뛰며 물거품을 사방ㅇ로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배는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위아래로 마구 흔들거리고 요동치며 신음소리를 토하면서 배는 광란의 바다를 뚫고 나아갔다.(149쪽)”


토마스 만은 1905년과 1911년 두 차례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베네치아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의 느낌을 「베네치아의 죽음」에 담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죽음」의 주인공 아센바흐는 건실한 독일계 아버지와 보헤미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느날 베네치아로의 여행, 즉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죽음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곤돌라와 사공은 죽은 자를 저승으로 건네주는 뱃사공 카론을 은유합니다. 또한 그가 뒤쫓는 미소년 타치오는 바로 ‘죽음’ 그 자체인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처음 타보거나 오랜만에 다시 타보는 경우 일시적인 전율, 은밀한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담대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담시(譚詩)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하나도 변치 않고 그대로 전해 내려온 이 이상한 배는 다른 물건들하고 있으면 그냥 관처럼 보일 정도로 색깔이 너무도 특이하게 까맣다. 그것은 물이 찰싹거리는 밤에 소리 없어 지질러지는 범죄적인 모험을 생각나게 할뿐더러, 더욱이 죽음 그 자체, 관대(棺臺)와 음울한 장례식, 말없이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생각나게 해준다.(249쪽)”


한편 아센바흐가 느낀 베네치아 골목의 분위기는 작중에서 벌어지는 콜레라의 유행, 즉 죽음의 전조를 시사하는 듯합니다. “골목마다 역겨울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공기가 너무 텁텁해서 가정집이나 가게와 음식점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들과 끈적끈적한 증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향수냄새와 그밖의 많은 다른 냄새들이 자욱하게 떠돌면서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담배 연기도 제자리에 맴돌며 금방 날아가지 않았다.(265쪽)” 만은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모습을 지나치게 괴기하게 그려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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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 - 전복의 문학, 모더니티총서 14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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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를 종영 후에 묶음으로 된 재방송을 보면서도 본방 때의 느낌이 오롯하게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묵직함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완급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보면서 상당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이야기로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철학하시는 분들이 드라마를 재해석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던지 로지 잭슨이 쓴 <환상성>을 보는 순간 선뜻 집어 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환상문학의 흐름이나 의미 등을 정신분석학이나 구조주의적 방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 환상문학을 읽을 때는 가벼운 기분으로 후딱 읽어치운다는 느낌으로 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진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환상문학의 흐름이나 의미 등을 정신분석학이나 구조주의적 방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 환상문학을 읽을 때는 가벼운 기분으로 후딱 읽어치운다는 느낌으로 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진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환상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토도로프의 환상문학론을 바탕으로 하여 환상문학의 형식과 특징, 기본적인 요소들, 구조 등을 뜯어보면서 환상을 주제로 한 책이 하나의 문학적 양식을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정리하였습니다. 제2부는 일종의 각론이라고 하겠는데, 환상문학작품들을 인용하여 환상문학의 계보와 스펙트럼을 제시하였습니다. 잭슨은 환상문학을 네 개의 범주로 구분하였는데, 19세기의 전형적인 환상담론인 ‘고딕 이야기’, 사실주의 소설 속에 고딕 시퀀스를 배합하여 현실성을 가미한 ‘환상적 리얼리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낸 ‘빅토리아 시대의 환상물’, 카프카의 <변신>으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최근의 환상물’ 등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환상문학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환상문학의 뿌리가 꽤나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읽은 고전 작품들도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작품들의 내용을 인용하여 논지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금세 와닿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모두에서도 짚었습니다만, 서문의 첫구절, ‘문학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환상성은 거대하고 유혹적인 주제이다’라고 적은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환상이 인간의 욕망을 대리만족 시켜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자는 환상이 욕망을 표현하는데 두 가지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환상은 욕망에 관하여 말하거나 명시하거나 보여줄 수 있으며, 역망이 문학적 질서와 연속성을 위협하는 하나의 장애요소일 경우에 그 욕망을 추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도로프가 주장하는 환상성의 세 가지 조건을 인용합니다. 첫째, 텍스트는 독자가 인물들의 세계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로 여기도록 하고, 기술된 사건들에 대해 자연적인 설명과 초자연적인 설명 사이에서 머뭇거리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머뭇거림은 또한 인물에 의해 경험될 수 있다. 그래서 독자의 역할은 한 인물에게 위탁된다. (…) 머뭇거림은 재현되고, 그것은 작품의 주제들 중 하나가 된다. 셋째, 독자는 그 텍스트에 관하여 어떤 특정한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그는 ‘시적인’ 해석뿐만 아니라 알레고리적인 해석도 거부하게 될 것이다.(43쪽)


옮긴이가 해제에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수주의적 시각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전제하고 있어서 그렇게 쉽게 읽히는 이론서는 아니다(245쪽)”라고 적은 것처럼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이 등장할 때는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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