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마스 만의 중단편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는 1세기 전 유럽사회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표제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등 8편의 중편과 단편 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이들 작품들을 통하여 ‘예술가와 시민, 예술과 견실한 삶, 정신과 자연의 갈등과 조화라고 하는 토마스 만의 주제 의식이 더욱 깊어져 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라고 출판사에서는 안내합니다.


이런 설명은 첫 작품「글라디우스 데이」에서 실감하게 됩니다. 뮌헨의 한 화랑에 걸려 대중의 화제가 되고있는 마돈나의 그림이 허접한 것이라고 믿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중세 네덜란드의 화가)를 등장시켜 그 그림을 내치라고 요구합니다.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그는 “예술이란 존재의 깊디깊은 곳까지, 수치스럽고 비탄에 가득 찬 존재의 심연까지 속속들이 자비롭게 불 밝혀 주는 성스러운 횃불입니다. 예술이란 구원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활활 타오르다가 온갖 치욕과 가책과 함께 사르라지기 위해 세상에 지펴지는 성스러운 불입니다!(24쪽)”라고 말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시빗거리가 되었던 패러디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신의 검이라는 의미의 ‘글라디우스 데이’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보탄의 검 노퉁을 말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아인프리트 요양원에 입원한 여자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트리스탄」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바그너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당시 유럽사회에서 유행하던 요양병원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토니오 크뢰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보았습니다만, 당시에도 국가간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그리고 덴마크 등지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간을 여행하면서도 여권을 소지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그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함부르크에서 덴마크로 가는 뱃길의 분위기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바다는 불꽃 모양의 뽀죡하고 거대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솟아올랐다가, 거품으로 가득한 깊은 골짜기들 옆에 어디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톱니 모양의 형상들을 치솟게 했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두 팔을 휘둘러 미친 듯 날뛰며 물거품을 사방ㅇ로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배는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위아래로 마구 흔들거리고 요동치며 신음소리를 토하면서 배는 광란의 바다를 뚫고 나아갔다.(149쪽)”


토마스 만은 1905년과 1911년 두 차례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베네치아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의 느낌을 「베네치아의 죽음」에 담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죽음」의 주인공 아센바흐는 건실한 독일계 아버지와 보헤미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느날 베네치아로의 여행, 즉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죽음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곤돌라와 사공은 죽은 자를 저승으로 건네주는 뱃사공 카론을 은유합니다. 또한 그가 뒤쫓는 미소년 타치오는 바로 ‘죽음’ 그 자체인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처음 타보거나 오랜만에 다시 타보는 경우 일시적인 전율, 은밀한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담대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담시(譚詩)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하나도 변치 않고 그대로 전해 내려온 이 이상한 배는 다른 물건들하고 있으면 그냥 관처럼 보일 정도로 색깔이 너무도 특이하게 까맣다. 그것은 물이 찰싹거리는 밤에 소리 없어 지질러지는 범죄적인 모험을 생각나게 할뿐더러, 더욱이 죽음 그 자체, 관대(棺臺)와 음울한 장례식, 말없이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생각나게 해준다.(249쪽)”


한편 아센바흐가 느낀 베네치아 골목의 분위기는 작중에서 벌어지는 콜레라의 유행, 즉 죽음의 전조를 시사하는 듯합니다. “골목마다 역겨울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공기가 너무 텁텁해서 가정집이나 가게와 음식점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들과 끈적끈적한 증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향수냄새와 그밖의 많은 다른 냄새들이 자욱하게 떠돌면서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담배 연기도 제자리에 맴돌며 금방 날아가지 않았다.(265쪽)” 만은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모습을 지나치게 괴기하게 그려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