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의 아일랜드 여행
이한설 지음 / 마음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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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가면 무슨 일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은 책입니다. 그런데 “사방으로 언덕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맑은 하늘이 언덕과 맞닿아 있었다. 언덕은 초원으로 이루어졌고, 초원은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졌다.(30쪽)”라는 대목 정도만 와 닿았을 뿐입니다. 물론 여행에 관하여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가는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으며, 모터홈 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인데,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얻을 수 있는 점입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속하면서도 별도의 화폐를 사용한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던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입니다.


돌아다닐 때만 진정 행복을 느낀다는 저자는 돌아다닌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고 고백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남긴 글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초등학생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집을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다가 네거리에서 빨간 신호등을 만났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풍경의 묘사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점은 여행은 절대로 무리하게 일정을 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33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이끌고 2주간에 걸친 호주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아일랜드행 비행기를 타는 강행군을 하다가 비행기에서 링거를 맞고 응급실로 실려가야 할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는 것은 쉬러가는 여행을 목숨걸 듯 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이번에는 아내가 먼저 귀국하고 영국에서 온 부부가 다음에 떠나고 그리고 저자도 떠나고 호주에서 온 부부만 남아 여행하는, 물론 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조각난 이불보와 같은 여행이야기는 처음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더블린 같은 아일랜드의 대표적 도시도 포함되었지만, 비교적 생소한 장소를 방문하면서 가는 길을 시시콜콜 적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곁들이는 조그만 성의를 빠트리는 바람에 그 시시콜콜함이 왜 필요했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를 주제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다녀온 이야기를 적으면서 지도를 빠트리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와 함께 여행한 분들은 독특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방문지에 있는 유적도 사람이 늘어서 있다던가 하면 그냥 지나친다는 것인데, 모터홈을 끌고 다니는 여행인데 왜 그런지 모를 일입니다. 그저 먹고 자고 운전하는 것이 전부인 여행, 즉 그저 가보았다는 식의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저자도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귀국 전날 혼자서 더블린 구경에 나서서 한 일이라곤 더블린 외곽에 있는 캐러반파크에서 더블린까지 가는 일반버스를 타는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정작 더블린에 도착해서는 유서가 깊다는 시청건물이나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도 언제 세워졌다는 이야기만 적고는 통과합니다.


그의 목표는 오직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일랜드에 도착한 뒤에서야 알게 된 기네스에 빠졌기 때문이랍니다. 기네스맥주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실 수는 있습니다만,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좋아하는 분들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에 가야 가능한 듯합니다. 더 스파이어도 스미스필드도 기네스스토어하우스를 본 다음 이야기인데, 그마저도 ‘가까이서 보니 정말 대단했다’로 시작해서 ‘속된말로 하늘 똥구멍을 찌르고 있었다’로 끝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 반가웠지만, 조이스가 그린 더블린 이야기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함께 한 일행들이 많아서인지 대화체가 섞인 독특한 여행기인데 작가의 말대로 여행의 일상을 일기체로 적은, 많이 생략되거나 원초적인 느낌을 곁들인 여행기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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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ㅣ 형사 베니 시리즈 2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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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무대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아프리카 여행 중에 들고 간 소설입니다. 웨스턴 케이프주에서 태어난 작가 디온 메이어는 <13시간>을 비롯하여, <악마의 산>, <세븐 데이즈> 등 형사 베니 시리즈 4권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형사 베니 시리즈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 스며든 묘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서의 강력계 형사 베니는 백인이라는 이유로 아파르트헤이트 청산 후 불어 닥친 역차별에 걸려 마흔이 넘도록 경위 신세입니다. 잽싼 선배들은 벌써 옷을 벗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경찰을 떠나고 있는데 베니는 그저 어정쩡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결단력을 필요로하는 강력계라는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구제불능의 술주정뱅이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바람에 쫓겨나 6개월 안에 술을 끊지 못하면 이혼이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라는 점을 보면 경찰 업무 이외의 상황에서는 우유부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13시간>은 아침 5시 36분 라이언스헤드의 가파른 언덕의 등산로에 등장한 백인 소녀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장면은 금세 바뀌어 베니형사가 당직으로부터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으면서 사건 속으로 본격 진입하게 됩니다. 교회 앞마당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녀와 누군가에게 쫓기는 소녀 레이철은 미국에서 여행 온 친구 사이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됩니다. 손만 대면 대박을 터뜨리는 음반계의 스타 프로듀서 애덤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전혀 연결이 될 것 같지 않은 두 사건이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면서 거대한 범죄조직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먹고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는 난민들을 상대로 피 묻은 돈을 갈취하는 범죄조직 A.O.A가 배후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범죄조직이 경찰 내부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 사건을 은폐하는 일을 밥 먹듯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밝혀집니다.


달아나는 레이철과 그녀를 뒤쫓는 추격자들의 숨가뿐 레이스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지형은 참 절묘하기까지 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케이프타운의 실제 지명과 분위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수박 겉핥듯 케이프타운의 도심을 지나보니 어느 정도는 알듯해집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여행이 얼마든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13시간>은 두 건의 살인사건과 추격자에게 쫓기는 레이철을 구하기 위한 13시간에 걸친 긴박한 과정이 잘 짜인 구조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 청산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불어 닥친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상전벽해와 같은 백인들의 역차별이라거나, 영어로 된 팝송 보다는 모국어인 아프리칸스어 노래가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등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전한 인종 간 빈부격차, 치안공백을 틈타 들끓는 범죄로 얼룩진 사회 분위기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변한 신분에 철학이 곁들여지지 못한 풋내기 경찰들이 푼돈에 정보를 팔고, 비리조차 마다하지 않는 것은 힘은 쥐었지만, 여전히 가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작가는 <13시간>에 결혼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는 평가입니다. 주정뱅이 베니형사의 결혼생활과 함께, 아내의, 남편의 외도로 상처를 입는 배우자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뻔뻔함과 나약함을 같이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가 불나방처럼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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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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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를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은 15년 가을이던가 크로아티아의 풀라에 갔을 때, 세르기우스 개선문 옆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좌상을 만나면서입니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만난 노라 바너클과 함께 사랑의 도피행에 오른 조이스가 런던, 취리히, 트리에스테를 거쳐 이곳에 정착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더불린 사람들에 포함된 몇 편의 단편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도 한참 지나서야 <더블린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5019313>을 읽었고, 이제 <율리시스>를 읽게 된 것입니다.


일단은 1324쪽에 달하는 엄청난 부피와 크기에서 중압감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앞에 둔 ‘옮긴이의 글’에서는 <율리시스>를 ‘언어적 주술의 아수라장’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율리시스>의 언어적 유희 가운데서는 소위 응축어가 태반인데, 이들은 마치 페넬로페의 베틀처럼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종교, 역사, 신학, 과학, 문학, 민속, 전설 등의 실올을 짜고 또 짜간다(12쪽)’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번역이 그만큼 어렵다는 하소연이며, <율리시스>를 읽기를 성서 읽듯 해달라는 주문을 곁들입니다. 꼼꼼히 읽되 세부에 매달리지 말고 큰 틀에서 바라보라는 설명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율리시스는 호머의 대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토대로 구성된 것입니다. 율리우스는 트로이의 전쟁영웅 오디세이아의 영어식 이름인 셈입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따라 텔레마키아, 율리우스의 방황, 그리고 귀향의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18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1904년 6월 16일(소위 블룸즈 데이) 오전 8시부터 17일 새벽 2시 블룸의 집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까지 만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리오폴드 블룸과 스티븐 데덜러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그려냈습니다.


먼저 스티븐의 이야기가 3개의 장에 걸쳐 전개되고, 이어서 블룸의 이야기가 11개의 장에 걸쳐 전개되고, 제15장에서는 두 사람이 같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더블린 시내의 주요 장소는 물론 거리를 따라 이동하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율리우스의 방황에 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정황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오디세이아와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오디세우스와 그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아내 페넬로페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였을 때 블룸과 그의 아내 몰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모두 18개의 장에는 주제가 되는 분야가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징이 되는 등장인물이 있고, 문장의 구성도 달리하는 등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엄청난 부피에 비하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매 쪽마다 붙어있는 각주에 매달리다 보면 읽어가는 호흡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 읽는 흐름에 따라서 조절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100명이 넘는 등장인물 역시 말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만, 주요인물만 정리되어 있을 뿐, 의인화된 사물이나 무형의 존재들도 등장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새기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난 달에 더블린에 갈 기회가 있는데,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장소는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단체여행인만큼 한계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율리시스>는 <더블린 사람들>과 함께 더블린에 대한 제임스 조이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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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산책 - 앤티크.마켓.가든, 느리게 런던 즐기기
박영자 글.사진 / 한길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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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런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세 명의 저자가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런던으로 향했다는 공통점이 재미있습니다. <런던 산책>의 저자는 ‘그저 학생신분으로 돌아가 뒤늦은 호사를 맛보고 싶었다’는 호사스러운(?) 이유를 들었습니다. 저자는 ‘오래된 것’과 느림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들이 어느 날 숨 가쁘게 돌아가는 광고 일을 접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녀의 런던 생활에는 ‘역사가 깊은 동네와 가게,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골동품, 또 그만큼 오래된 카페의 붙박이 의자와 거울을 찾아 낡은 복도와 골목을 드나드는 것’이 중심에 있었고, 그것을 이 책에 담아낸 듯합니다. 그렇게 찾아낸 ‘느리게, 런던산책을 즐기는 법’을 알려줍니다. 1. 번화한 거리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 걷기, 2. 시간과 요일을 달리하여 같은 장소 다시 들러보기, 3. 가이드북은 접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이동하기, 4. 영국을 이해랄 만한 문화적 산물들과 함께 하기, 등입니다.


그 넓은 런던에서 이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열 곳, 그러니까 햄스테드, 소호, 치즈윅, 템즈 강변, 이스트 앤드, 윔블던과 퍼트니, 이슬링턴, 첼시와 켄싱턴I, 그리니치, 켄싱턴2 등입니다. 이런 글을 쓰다보면 일정한 형식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하긴 장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 굳이 형식을 따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거리의 분위기를, 거리에 들어서 있는 가게들을, 거리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얼마든지 주제를 달리할 수 있습니다.


햄스테드에서는 이곳에 살던 시인 키이츠와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가 화제에 오르기도 합니다. ‘고정된 풍경이 없다’고 햄스테드를 특징 지울 수 있는 것은 지형의 높낮이 변화가 심해서 매번 다른 느낌을 얻게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동네 분위기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좋지만, 그 동네에 있는 가게에 관하여 시시콜콜 적은 것은 조금 짜증(?)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앞서서 시간과 요일을 달리하여 같은 장소 다시 들러보기가 비법의 하나라고 했습니다만, 저자가 그려낸 소호의 풍경이 딱 들어맞습니다. “소호는 화려함과 기이함, 천박함과 진보적인 스타일 등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문화가 마구 뒤엉켜 있는 고이다. 오전 열 시 소호의 뒷골목은 텅 비어 을씨년스럽고, 밤 열 시에는 뭔가 수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현장처럼 보인다.(58쪽)” 하지만 스쳐가는 여행길에 같은 장소를 두 번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행자는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장소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과는 접근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참맛이란 대로변의 덩치 큰 건물과 그곳을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몇 겹의 블록 안으로 들어가 그 곳의 생활과 찰나를 속속들이 확인할 때야 느낄 수 있다(59쪽)’라는 작가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그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체러티 숍에 관한 작가의 보고에도 딴지를 약간 걸어보려고 합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 속에 살아남는 법으로 채러티 숍을 소개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잠시 생활할 때 같은 동네에 굿윌이라는 이름의 체러티 숍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쓰던 물건들을 기증받아 싸게 파는 곳입니다. 때로는 명품도 건질 수 있다고 해서 가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쓸 만한 물건을 고르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한 번 가본 뒤로는 더 이상 찾지는 않았습니다. 호사를 맛보기 위하여 런던행을 결정하신 저자께서 런던의 살인적 물가를 거론하는 것이 어째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의 전형으로 영국을 꼽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한번 변하고자 하면 무릎을 ‘탁’하고 칠 정도로 창의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벌이는 나라가 영국인 것 같다(112쪽)”라는 보고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정신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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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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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작품은 몇 권 읽었습니다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노르웨이 숲>이나 <해변의 카프카>는 아직입니다. 여행기로는 <하루키의 여행법; http://blog.joins.com/yang412/14394036>을 읽었는데 비교적 생소한 장소였던 까닭인지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골라들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었습니다. 그냥 ‘위스키 성지여행’해도 좋았을 것을 하루키에 기대려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겹치는 느낌(?)이 남습니다.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라고 하루키는 이 책의 서두를 떼고 있습니다. 글을 남기지 않는 경우에도 여행의 테마를 정하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그 중심 테마라는 것은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처음에는 부인과 함께 아일랜드를 한가롭게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위스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있어서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을 여정에 더하게 되었고, 전체의 글 내용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한가로운 여행’이 ‘위스키’에 방점이 찍히면서 아일레이섬의 비중이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아일레이 섬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관광명소랄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은 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그들은 홀로 섬을 찾아와서는, 작은 코티지를 빌려 몇 주일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는 일 없이 조용히 책을 읽는다. 난로에 향이 좋은 이탄을 지피고, 비발디의 테이프를 은은하게 틀어놓는다. 질 좋은 위스키와 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전화선은 뽑아 버린다.(32쪽)” 정말 이런 여행을 해볼 수 있을까요?


청탁을 받은 원고가 있으니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나누고 위스키 만드는 공정을 견학하는 등 사전 준비가 있었고, 그렇게 들은 이야기와 아일레이를 돌아보면서 보고 느낀 바를 섞어서 브랜디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싱글 몰트 위스키로 유명한 아일레이에서 브랜디를 만들어낸 셈이라고 할까요?


이야기 사이사이에 곁들여진 사진들이 참 좋습니다. 하루키의 부인이 찍은 것들이라고 하는데, 사진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듯합니다. 하루키는 글로 이야기하고 부인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하는 셈입니다. 위스키하면 스코틀랜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위스키는 아일랜드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 만해도 아이리시 위스키가 대세였다는 것입니다. 아일랜드에서 탄생한 위스키가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것은 15세기 무렵인데 아일랜드에 가까운 아일레이가 앞장을 섰다는 것입니다. 아일레이는 보리, 맛있는 물 그리고 이탄이라는 위스키의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대세라고해도 위스키의 본고장 아일랜드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가 아일레이를 찾은 이유는 싱글 몰트 위스키하면 아일레이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우리도 잘 아는 조니 워커나 커티 삭, 화이트 호스 등과 같은 유명한 스코틀랜드산 브랜디드 위스키 치고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 위스키를 섞지 않는 브랜드는 없다고 합니다.


아일레이의 싱글몰트 위스키에서는 해초향이라고 하는 갯내음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갯바람이 이탄에, 땅속에 스며든 물에, 그리고 초지에도 스며들기 때문에, 그것들을 원료로 하는 위스키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생굴이 싱글몰트 위스키를 끼얹어 먹으면 맛이 기막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저도 해보려합니다.


아무래도 아일레이를 가볼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일랜드만큼은 기회가 될 듯해서 아일랜드편을 더 열심히 읽었습니다. 하루키가 ‘아일랜드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고 느낀 이유는 산뜻하고 드넓고 짓푸른 녹음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아일랜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차를 빌려 한가롭게 시골을 돌아다니라고 충고합니다. 하루 이동거리도 짧게 하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발걸음을 멈춰 몇 시간이라도 멍하니 머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4시쯤에는 숙소에 들고, 6시반쯤에는 그럴 듯한 식당에 들러 메뉴를 챙겨보는.... 하루키의 말대로 율리시스적으로 심오한 아이리시 펍에 가볼 기회가 된다면 제임슨이나 튤러모어 듀와 같은 아이리시 위스키를 맛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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