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작품은 몇 권 읽었습니다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노르웨이 숲>이나 <해변의 카프카>는 아직입니다. 여행기로는 <하루키의 여행법; http://blog.joins.com/yang412/14394036>을 읽었는데 비교적 생소한 장소였던 까닭인지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골라들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었습니다. 그냥 ‘위스키 성지여행’해도 좋았을 것을 하루키에 기대려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겹치는 느낌(?)이 남습니다.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라고 하루키는 이 책의 서두를 떼고 있습니다. 글을 남기지 않는 경우에도 여행의 테마를 정하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그 중심 테마라는 것은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처음에는 부인과 함께 아일랜드를 한가롭게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위스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있어서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을 여정에 더하게 되었고, 전체의 글 내용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한가로운 여행’이 ‘위스키’에 방점이 찍히면서 아일레이섬의 비중이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아일레이 섬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관광명소랄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은 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그들은 홀로 섬을 찾아와서는, 작은 코티지를 빌려 몇 주일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는 일 없이 조용히 책을 읽는다. 난로에 향이 좋은 이탄을 지피고, 비발디의 테이프를 은은하게 틀어놓는다. 질 좋은 위스키와 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전화선은 뽑아 버린다.(32쪽)” 정말 이런 여행을 해볼 수 있을까요?


청탁을 받은 원고가 있으니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나누고 위스키 만드는 공정을 견학하는 등 사전 준비가 있었고, 그렇게 들은 이야기와 아일레이를 돌아보면서 보고 느낀 바를 섞어서 브랜디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싱글 몰트 위스키로 유명한 아일레이에서 브랜디를 만들어낸 셈이라고 할까요?


이야기 사이사이에 곁들여진 사진들이 참 좋습니다. 하루키의 부인이 찍은 것들이라고 하는데, 사진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듯합니다. 하루키는 글로 이야기하고 부인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하는 셈입니다. 위스키하면 스코틀랜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위스키는 아일랜드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 만해도 아이리시 위스키가 대세였다는 것입니다. 아일랜드에서 탄생한 위스키가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것은 15세기 무렵인데 아일랜드에 가까운 아일레이가 앞장을 섰다는 것입니다. 아일레이는 보리, 맛있는 물 그리고 이탄이라는 위스키의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대세라고해도 위스키의 본고장 아일랜드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가 아일레이를 찾은 이유는 싱글 몰트 위스키하면 아일레이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우리도 잘 아는 조니 워커나 커티 삭, 화이트 호스 등과 같은 유명한 스코틀랜드산 브랜디드 위스키 치고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 위스키를 섞지 않는 브랜드는 없다고 합니다.


아일레이의 싱글몰트 위스키에서는 해초향이라고 하는 갯내음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갯바람이 이탄에, 땅속에 스며든 물에, 그리고 초지에도 스며들기 때문에, 그것들을 원료로 하는 위스키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생굴이 싱글몰트 위스키를 끼얹어 먹으면 맛이 기막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저도 해보려합니다.


아무래도 아일레이를 가볼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일랜드만큼은 기회가 될 듯해서 아일랜드편을 더 열심히 읽었습니다. 하루키가 ‘아일랜드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고 느낀 이유는 산뜻하고 드넓고 짓푸른 녹음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아일랜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차를 빌려 한가롭게 시골을 돌아다니라고 충고합니다. 하루 이동거리도 짧게 하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발걸음을 멈춰 몇 시간이라도 멍하니 머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4시쯤에는 숙소에 들고, 6시반쯤에는 그럴 듯한 식당에 들러 메뉴를 챙겨보는.... 하루키의 말대로 율리시스적으로 심오한 아이리시 펍에 가볼 기회가 된다면 제임슨이나 튤러모어 듀와 같은 아이리시 위스키를 맛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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