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산책 - 앤티크.마켓.가든, 느리게 런던 즐기기
박영자 글.사진 / 한길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세 번째 런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세 명의 저자가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런던으로 향했다는 공통점이 재미있습니다. <런던 산책>의 저자는 ‘그저 학생신분으로 돌아가 뒤늦은 호사를 맛보고 싶었다’는 호사스러운(?) 이유를 들었습니다. 저자는 ‘오래된 것’과 느림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들이 어느 날 숨 가쁘게 돌아가는 광고 일을 접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녀의 런던 생활에는 ‘역사가 깊은 동네와 가게,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골동품, 또 그만큼 오래된 카페의 붙박이 의자와 거울을 찾아 낡은 복도와 골목을 드나드는 것’이 중심에 있었고, 그것을 이 책에 담아낸 듯합니다. 그렇게 찾아낸 ‘느리게, 런던산책을 즐기는 법’을 알려줍니다. 1. 번화한 거리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 걷기, 2. 시간과 요일을 달리하여 같은 장소 다시 들러보기, 3. 가이드북은 접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이동하기, 4. 영국을 이해랄 만한 문화적 산물들과 함께 하기, 등입니다.


그 넓은 런던에서 이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열 곳, 그러니까 햄스테드, 소호, 치즈윅, 템즈 강변, 이스트 앤드, 윔블던과 퍼트니, 이슬링턴, 첼시와 켄싱턴I, 그리니치, 켄싱턴2 등입니다. 이런 글을 쓰다보면 일정한 형식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하긴 장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 굳이 형식을 따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거리의 분위기를, 거리에 들어서 있는 가게들을, 거리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얼마든지 주제를 달리할 수 있습니다.


햄스테드에서는 이곳에 살던 시인 키이츠와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가 화제에 오르기도 합니다. ‘고정된 풍경이 없다’고 햄스테드를 특징 지울 수 있는 것은 지형의 높낮이 변화가 심해서 매번 다른 느낌을 얻게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동네 분위기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좋지만, 그 동네에 있는 가게에 관하여 시시콜콜 적은 것은 조금 짜증(?)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앞서서 시간과 요일을 달리하여 같은 장소 다시 들러보기가 비법의 하나라고 했습니다만, 저자가 그려낸 소호의 풍경이 딱 들어맞습니다. “소호는 화려함과 기이함, 천박함과 진보적인 스타일 등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문화가 마구 뒤엉켜 있는 고이다. 오전 열 시 소호의 뒷골목은 텅 비어 을씨년스럽고, 밤 열 시에는 뭔가 수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현장처럼 보인다.(58쪽)” 하지만 스쳐가는 여행길에 같은 장소를 두 번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행자는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장소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과는 접근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참맛이란 대로변의 덩치 큰 건물과 그곳을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몇 겹의 블록 안으로 들어가 그 곳의 생활과 찰나를 속속들이 확인할 때야 느낄 수 있다(59쪽)’라는 작가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그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체러티 숍에 관한 작가의 보고에도 딴지를 약간 걸어보려고 합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 속에 살아남는 법으로 채러티 숍을 소개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잠시 생활할 때 같은 동네에 굿윌이라는 이름의 체러티 숍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쓰던 물건들을 기증받아 싸게 파는 곳입니다. 때로는 명품도 건질 수 있다고 해서 가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쓸 만한 물건을 고르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한 번 가본 뒤로는 더 이상 찾지는 않았습니다. 호사를 맛보기 위하여 런던행을 결정하신 저자께서 런던의 살인적 물가를 거론하는 것이 어째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의 전형으로 영국을 꼽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한번 변하고자 하면 무릎을 ‘탁’하고 칠 정도로 창의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벌이는 나라가 영국인 것 같다(112쪽)”라는 보고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정신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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