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지련 ㅣ 세계문학의 숲 25
장아이링 지음, 임우경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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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현대문학기행을 적고 있습니다. 상해에 있는 영화 <색·계>의 촬영현장을 찾아갔던 인연으로 작가 장아이링의 <적지지련>을 읽었습니다. 1920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청나라 관료의 후예이자 수구파였던 장즈이(張志沂í)와 해외유학파 신여성 황이판(黄逸梵)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홍장 북양대신의 외증손녀였습니다. 상하이의 성모여학교를 졸업하고 홍콩대학 영문과에 진학했습니다. 1941년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고 상하이로 돌아와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상하이를 접수한 뒤에도 활동을 이어갔지만, 사회주의 건설의 낭만주의가 시들고 정치적 광증이 거세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1952년 홍콩으로 망명하였다.


이 무렵 홍콩주재 미국 공보처의 지원을 받아 <앙가(秧歌)>와 <적지지련(赤地之戀)>을 썼습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정착할 수 없었던 그녀는 1955년 난민자격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창작활동을 이어 갔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후에 전성기 시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타이완 문단의 ‘어머니’로 칭송되었고, 사회주의 역사관이 물러난 대륙에서도 복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색·계>는 그녀를 친일작가, <앙가>와 <적지지련>은 그녀를 반공작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앙가>와 <적지지련>은 지금도 대륙에서 출판되지 못하는 금서입니다.


<앙가>는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토지개혁을 거치며 기아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입니다. <적지지련>은 역시 주인공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시행된 토지개혁과 삼반 운동,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등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이징 대학을 갓 졸업한 류취안은 공산정권이 주도한 대학생 토지개혁단의 일원으로 시골 마을 한자퉈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황쥐안이라는 여학생을 만나 호감을 갖는다. 봉건적인 대지주의 재산을 몰수해 빈농에게 재분배한다는 토지개혁운동이었지만, 이미 부패한 당 지도부의 잇속차리기와 원칙 없는 일처리를 보면서 두 사람은 실망하게 됩니다. 토지개혁운동이 마무리될 무렵 류취안은 상하이로 발령을 받고, 황쥐안 역시 다른 사업에 참여했다가 상하이로 옮겨오게 됩니다. 상하이의 당 기관지 《해방일보》에서 일하게 된 류취안은 미모의 여간부 거산과 엮이지만, 상하이로 발령을 받은 황쥐안이 찾아오면서 관계가 복잡해집니다. 그러던 중에 류취안이 신문사 내부의 횡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으로 공안국에 체포되고, 황쥐안으로 인하여 없던 혐의를 뒤집어 쓰고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서 황쥐안은 류취안의 목숨을 구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에 실망한 류취안은 은 거산에게 도움을 청하고, 거산은 황쥐안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황쥐안은 류취안을 구하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영문도 모른 채 풀려난 류취안은 뒤늦게 진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조선)을 돕는다]를 내세운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것입니다.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부상을 입고 한국군에 투항한 류취안은 반공포로로 분류되었다가 마지막에 중공해설원의 회유에 응하여 타이완이 아닌 중공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중국 소설은 제목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적지지련(赤地之戀)>의 적지(赤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가뭄이나 병충해 등으로 황폐화된 땅’인데 붉은 땅, 즉 공산화된 중국에 대한 은유로 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련(戀)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가리키는가 하면, 적지(赤地)에 대한 주체의 애정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직접 정한 영문판 제목이 <Naked Earth>인 점을 보면 헐벗은 땅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보기 드물게 한국전쟁에 관한 소설 가운데 중공군의 시각을 담은 책이라는 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중국 공산당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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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단편소설선 1 ㅣ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총서 3
루쉰 외 지음, 이주노 옮김 / 어문학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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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바뀌었습니다만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2>를 읽고서야 이 기획이 전3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획의 특징은 중국의 현대소설에 관심을 가진 전공자들의 요청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문학은 대체적으로 1980년 이후, 그 이전의 작품들은 루쉰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 특히 장편소설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의 사정으로는 다양한 시대의 여러 작가와 상이한 창작 경향의 작품을 맛보려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1>에서는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평가받는 <광인일기>를 비롯하여 주로 1920년대에 발표된 단편소설들을 소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발아한 중국 현대소설은 량치차오(梁啓超)가 제창한 ‘소설계 혁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심심풀이 오락수단으로 간주하던 소설을 사회개량의 수단으로 여기는 효용론적 소설관이 싹텄고, 나아가 인간의 발견과 개인의 자유의지를 담아냄으로써 근대성에 다가가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중반의 신문화운동의 성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향의 대표적 작가가 바로 루쉰(鲁迅)으로, 중국사회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 되는 봉건주의를 비판하고 중인인의 의식구조의 열근성을 폭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중국 근대화의 핵심적 과제인 ‘국민성 개조’를 자신의 문학적 실천과제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가정신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광인일기>이며, 중국인의 수구적 보수성과 허위적 기만성을 보여주는 대표작품이 <쿵이지(孔乙己)>라는 것입니다.


중국 사회에 대한 루쉰의 비판정신은 5·4운동 이후 결성된 문학연구회에 계승되었고, 연구회에 속한 작가들의 창작경향은 문제소설(問題小說)이라고 했답니다. 인생의 가치와 의의, 중국의 갖가지 사회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현실 사회와 인간의 삶을 개량하고자 하는 창작의도를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1>에는 왕통자오(王統照)의 ‘상념에 잠겨(沉思)’, 쉬디산(許地山)의 ‘그물 치는 거미(綴網勞蛛)’, 예사오쥔(葉紹鈞)의 ‘곤경 속의 판 선생(潘先生在難中)’ 등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소설은 실제생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아니라 작가의 관념적 세계관이나 인생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때로는 작가의 주관적 관념이 지나치게 개입됨에 따라 관념화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자연주의였다. 작가의 주관적 서정과 관념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실제적 관찰과 객관적 묘사를 강조했다. 자연주의 작가들 가운데 베이징과 상하이에 거주하는 농촌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농촌 사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하자 루쉰은 이런 경향의 작품들을 향토소설(鄕土小說)이라고 했답니다.


향토소설들은 주로 피폐한 농촌 사회와 비참한 농민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농촌의 봉건적 악습과 농민의 우매하고 마비된 의식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 문명에 대한 회의에서 농촌을 목가적인 전원으로 묘사하여 향수를 드러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왕루옌(王魯彦)의 ‘쥐잉의 출가(童年的悲哀)’와 ‘동년의 비애(童年的悲哀)’, 쉬제(許傑)의 ‘노름꾼 지순(賭徒吉順)’, 펑자황(彭家煌)의 ‘천쓰뎨의 소(陳四爹的牛)’, 젠셴아이(蹇先艾)의 ‘수장(水葬)’ 등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1929년대의 중국문학계에는 문학연구회와 더불어 새로운 창작 경향을 보인 창조사(創造社)라는 동인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면서 문학을 공리적 도구로 사용하는 기존의 문학관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주관적 서정과 내면세계의 묘사, 자아의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적 창작법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강렬한 반봉건정신으로 기성의 권위와 질서에 반발하였기 때문에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특히 자아의 내면세계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소설(私小說) 형식의 자전적 소설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전적 소설의 대표작으로 위다푸(郁達夫)의 타락(沉淪)/ 봄바람에 취한 밤(春風沉醉的晩上)을 선정하였습니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 루쉰의 ‘광인일기’와 ‘쿵이지’ 그리고 위다푸의 ‘타락’ 등 세 작품은 읽어보았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작가마저 생소하였습니다. 다만 작품들을 읽으면서 20세기 초 중국사회의 분위기를 조금은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 근대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감성을 끌어당기는 무엇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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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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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장샤오위안의 <고양이 서재>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은 뒤에 생긴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었거나,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장샤오위안 (江曉原)은 과학사학자, 천문학자, 성학자性學者이자 저자, 번역가, 편집자, 서평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활자 중독자이자 책벌레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징대학교 천문학과를 나와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과학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과학원 상하이천문대에서 오래도록 일했고 상하이교통대학교에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과 인문서에 탐닉하고 커서는 과학사를 공부한 그는 인문과 과학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중국의 융합적 교양인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책내용도 좋았습니다만, 모두에 실린 출판평론가 표정훈 교수의 추천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7세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서유기(西遊記)>, 13세기 칭기스칸의 참모 야율초재가 쓴 <서유록(西遊錄)>, 20세기 초의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 등의 공통점은 서쪽 세상의 경험을 적은 ‘서유(西遊)’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서 서쪽(西)을 서(書)로 바꾸어 ‘서유견문(書遊見聞)’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책을 유람하며 보고 들은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유람하듯 책을 읽고 실제로 보고 체험하며 사람들에게 들어서 배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마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칸트를 흉내에서 ”체험 없는 읽기는 공허하고, 읽기 없는 체험은 맹목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문화대혁명을 겪었다고 합니다. 문화대혁명으로 문화는 거대한 재난을 만났다고 한 저자는 이를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했습니다. 마오쩌둥이 신격화되어 있는 중국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경천동지할 일이지 싶습니다. 마오쩌둥의 어록이나 루쉰의 책만이 허락되었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자는 그런 길을 찾아내 다양한 책들을 두루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소소한 독서사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서재>를 읽다보니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저자와는 닮은 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가 천문학자로 순수과학을 하고 있다면 필자는 의학이라는 응용과학을 하고 있어서 이과계라 할 수도 있는데도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인문계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였던 아버지가 학교에서 책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도 저와 닮은 점입니다.


물론 저자처럼 책읽기를 좋아하는 동무들과 연락망을 만들어 감시자의 눈을 피해 책을 읽었다는 저자처럼 다양한 책을 두로 섭렵하지 못했던 차이가 있고 체계적으로 책을 수집하는 장서가라 할 정도는 아니고, 잘 정리된 서재를 가지고 있지 못한 필자와는 차별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을 때는 책을 복사한 다음 장정을 해서 서재에 꽂았다는 것입니다.


책벌레이기도 하면서 다수의 책을 쓴 저자인 그는 책을 쓰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책의 집필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뇌의 노동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쓸 때는 집 안이 고요하고 정적에 휩싸여야 한다. 내가 당나라 시인 노조린(盧照隣)의 시에서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쓸쓸하고 고요한 구석의 집. 해마다 언제고 시렁 가득 책뿐. 오로지 남산의 계화꽃잎만이 옷자락 사이를 팔랑팔랑“


필자 역시 남원의료원에서 첫 번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를 쓸 때와 <치매 고칠 수 있다>와 유성 선병원에서 <치매 걱정 없이 10세까지 살기>를 같이 쓸 때는 시간 여유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소에 자투리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로 초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든 초고를 주말에 집중해서 가다듬어 원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책읽기와 책쓰기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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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일 죽는다면 -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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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은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삶의 궤적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이 될 것 같습니다만, 스웨덴의 광고기획자이자 미술가인 마르가레타 망누손의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정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쓰는 방이나 사무실에는 온갖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아내는 쓰지 않는 것은 버리라고 합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벌써 70고개를 넘은데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고 있으니 주변정리를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덜컥 죽음을 맞게 되면 제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는 엄청난 일을 아내가 해야 할 것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죽은 이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거나, 죽음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어로는 데스테드닝(döstädning)이라고 하는데, 데(dö)는 ‘죽음’을, 스테드닝(städning)은 ‘청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죽음청소’가 될 터이나 그보다는 이미 굳어진 ‘유품정리’라는 단어를 써도 될 것 같습니다. 필자처럼 살아온 흔적을 엄청나게 쌓아놓아 치울 엄두를 내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품정리사라는 전문가가 등장한 지도 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데스테드닝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ㅇ 들 때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집을 말끔히 정리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답니다. ‘세상을 하직한 뒤에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어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데스테드닝을 했다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경우는 유품정리라는 개념이 딱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데스테드닝은 죽음을 앞둔 이가 스스로 정리한다는 뜻이 들어가는 것이므로 ‘사전(死前)’ 혹은 ‘자가(自家)’ 유품정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추억과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나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유품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에 따라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그 물건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데스테드닝은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청산할지 결정하고 처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평소에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 즉 절제된 삶(minimalism)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의 물건들을 처분하는 방식으로는 그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거나, 그 물건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관에 제공할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물건은 팔거나, 팔 수 없는 물건은 버리게 될 것입니다. 물건에 따라서는 버리는 비용을 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작가 자신이 유품정리를 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가(自家)’ 유품정리를 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 저는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을 모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제 사진들도 있어서 제가 살아온 날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처럼 저의 평범한 인생을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자료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의 작가는 자가 유품정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품들을 누가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고, 사진은 유품정리의 마지막 단계에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자가유품정리에 착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유념해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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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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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기행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분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현대문학과 당대문학으로 구분하고 있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중국의 당대 문학 시기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으로부터 현재까지의 문학을 포괄합니다.


그 중에서도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는 시기까지는 위화와 옌롄커가 대표작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중국의 현대문학작품들을 읽다 보니 위화와 옌롄커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도 섞여서 읽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서구의 모더니즘 기법을 도입하여 전통적인 서사 방식을 탈피한 실험적인 작품을 쓰고 있어서 선봉문학 (先鋒文學)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4월 3일 사건>은 1987년부터 1992년 사이에 쓴 중편소설들 가운데 작가가 직접 고른 「4월 3일 사건」, 「여름 태풍」, 「어느 지주의 죽음」, 「조상」 등 네 작품을 담았습니다. 작가의 실험적인 작법의 영향인지 「어느 지주의 죽음」을 제외한 세 작품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4월 3일 사건」은 강박증에 휩싸인 화자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피해망상에 빠져 있는 것인데, 알 수 없는 누군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계획인데, 이들은 화자의 친구, 이웃, 심지어는 부모까지도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바로 4월 3일입니다.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정체를 밝히려 애를 쓰던 화자는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자, 결국은 음모를 피하기 위해 화물열차에 몸을 싣고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음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면 화자의 강박증 혹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여름 태풍」은 천재지변에 맞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첫 번째 재해는 지진이었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유라시아판에 속하지만 영토가 워낙이 넓다 보니 작은 지각판들과도 만나고 있기 때문에 지진이 잦은 편입니다. 사회기반이 취약하다보니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킨 대지진도 적지 않았습니다. 기억이 나는 것만으로도 1975년의 탕산대지진은 242,400명이 사망하고, 164,000명이 중상을 입는 등 20세기 최악이 지진이었습니다. 2008년에도 공식 사망자 87,227명, 실종자 17,923명, 부상자 374,653명 등의 피해를 낸 쓰촨 대지진이 있습니다.


사실 지진을 예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합니다만, 「여름 태풍」에서는 지진이 날거라는 예보가 나오자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세우고 생활하기 시작하지만 지진이 아니라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지진이 예보되었을 때는 학교에 있는 지진관측기를 지키는 소년 바이수는 지진이 올 거라는 신호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지진예보는 취소되었지만, 그리고 얼마 뒤에 지진이 발생하여 주민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어느 지주의 죽음」은 중일전쟁이 벌어진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내용의 문학이 주를 이루던 항일 문학 시기(1937~1949년)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중국 양민들을 괴롭히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살해하곤 했습니다. 이때 한겨울에 접어드는 시기에 지주의 아들 왕샹훠는 쑹황으로 이동하려는 일본군 부대를 엉뚱하게도 호수로 둘러싸인 구산으로 안내하면서 다리를 무너뜨려 고립시키고 말았습니다. 속은 것이 분노한 일본군이 그를 죽이고 말았지만, 다가오는 추위에 결국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묵숨을 바쳐 적을 물리치겠다는 항일의 의지가 읽혀지는 작품입니다.

 

「조상」은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나왔음 직한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함께 밭일을 하던 아내가 마을에 찾아든 방물장수의 물건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숲에서 나온 털북숭이 괴수가 아이를 안아 들고, 아이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놀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달려들고 마을사람까지 합세하여 괴수를 숲으로 쫓아냅니다. 괴수가 아이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기겁을 한 것을 보면 괴수가 조상이라는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296쪽

2010년 9월 15일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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