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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일 죽는다면 -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7년 9월
평점 :
최근에 읽은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은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삶의 궤적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이 될 것 같습니다만, 스웨덴의 광고기획자이자 미술가인 마르가레타 망누손의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정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쓰는 방이나 사무실에는 온갖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아내는 쓰지 않는 것은 버리라고 합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벌써 70고개를 넘은데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고 있으니 주변정리를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덜컥 죽음을 맞게 되면 제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는 엄청난 일을 아내가 해야 할 것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죽은 이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거나, 죽음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어로는 데스테드닝(döstädning)이라고 하는데, 데(dö)는 ‘죽음’을, 스테드닝(städning)은 ‘청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죽음청소’가 될 터이나 그보다는 이미 굳어진 ‘유품정리’라는 단어를 써도 될 것 같습니다. 필자처럼 살아온 흔적을 엄청나게 쌓아놓아 치울 엄두를 내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품정리사라는 전문가가 등장한 지도 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데스테드닝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ㅇ 들 때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집을 말끔히 정리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답니다. ‘세상을 하직한 뒤에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어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데스테드닝을 했다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경우는 유품정리라는 개념이 딱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데스테드닝은 죽음을 앞둔 이가 스스로 정리한다는 뜻이 들어가는 것이므로 ‘사전(死前)’ 혹은 ‘자가(自家)’ 유품정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추억과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나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유품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에 따라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그 물건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데스테드닝은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청산할지 결정하고 처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평소에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 즉 절제된 삶(minimalism)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의 물건들을 처분하는 방식으로는 그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거나, 그 물건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관에 제공할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물건은 팔거나, 팔 수 없는 물건은 버리게 될 것입니다. 물건에 따라서는 버리는 비용을 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작가 자신이 유품정리를 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가(自家)’ 유품정리를 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 저는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을 모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제 사진들도 있어서 제가 살아온 날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처럼 저의 평범한 인생을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자료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의 작가는 자가 유품정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품들을 누가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고, 사진은 유품정리의 마지막 단계에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자가유품정리에 착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유념해두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