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방정식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6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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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토 대학 물리학부의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갈릴레오 연작의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552쪽에 이르는 두께 때문에 선뜻 집어 들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필치 때문인지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작을 하는 작가인 탓인지 <한여름의 방정식>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도 있으면서, 분명 색다른 점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선 익숙하다는 느낌은 사건현장이 퇴락해가는 바닷가 관광지 마을 하리가우라(가상의 마을인 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화하면서 시즈오카 현에서 촬영을 했다는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이 무대라는 점, 여관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 등입니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초등학생이 처음 등장한다는 점인데, 초등학생이 사건의 조역으로 등장하는 점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도쿄 경시청에서 수사에 개입하는 모양새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구요. 살인사건이 우연인지 아니면 계획된 범행인지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듯합니다. 즉 유가와 교수를 비롯한 경찰이 추론한 사인이 실험적으로 재현 가능한 일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구성을 다소 모호하게 한 것은 교헤이가 초등학생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나저나 아름다운 바다를 지키는 일과 해저에 있는 열수광상의 개발이라는 환경지킴과 개발이 상충되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는 점에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특히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유가와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주장인 듯합니다. 하지만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발이 가능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지킴이들 역시 개발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반론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환경은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개발로 인한 환경피해에 대하여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환경 보호론자들 가운데 감성에 호소하는 비전문가들도 새겨둘만한 논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수사관의 집념 같은 것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종결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면 수사현장에서 은퇴한 뒤에도 사건을 뒤쫓는 집념을 읽을 수 있었는데,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집념을 가진 전직 경찰이 피해자가 된다는 설정에서 과연 그의 죽음이 자연사인지 아니면 타살인지도 분명치가 않아 보입니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도 모호하게 처리되는 듯합니다.

초등학생인 교헤이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유가와 교수의 배려가 느껴지는 것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처럼 페트병을 이용한 물로켓 실험을 통하여 바다 속 진경을 보여준다는 설정인데, 처음 보는 초등학생을 위하여 스마트폰을 버리기까지 하는 것은 오지랖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교헤이가 자연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훗날 자연과학자가 된다면 유가와 교수의 스마트폰이 제값을 한 셈이 될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이러난 추락사고로 은퇴한 경찰관이 죽음을 맞은 사건, 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도 있는 사건이 쉽게 종결되지 못하는 것은 역시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으로, 과거의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을 고구마줄기 캐듯 뒤쫓아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는 작업을 하다보니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드러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형세인데, 이야기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의 대반전이 생뚱맞지 않도록 한 장치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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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
강양구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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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무엇에 대하여 일단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간의 화제가 되는 장소는 물론 영화나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이 포함됩니다. 단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먼저 경험하는 경우는 있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경험한 적은 있습니다. 물론 세간의 평가와는 다른 느낌이 남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부제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경우 출간되자마자 쇄를 이어가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 현상에 일조를 한 셈입니다. 하지만 출간되자마자 주문을 넣었으니  그동안 지켜온 저의 취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국 백서’라고 하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호하는 책이 준비된다는 소문이 있고, 그런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이 준비된다면서 ‘조국 흑서’라는 별명이 붙은 책이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지난해 조국 사태에 대하여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진중권 교수님, 서민 교수님, 김경율 회계사님, 권경애 변호사님 그리고 강양구 기자님 등이 모여 대담을 나눈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처음 기획안이 나온 것이 금년 1월 28일이고, 최종 원고검토를 마친 것이 광복절인 8월 15일입니다. 그 사이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대담을 나누었고, 대담 내용을 7개의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앞부분에 해당하는 3개의 장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나머지 4개의 장은 지금의 집권 세력이 보이는 이유배반적인 행태를 비판하였습니다.

다섯 분 가운데 서민 교수님의 경우는 동업자이고, 기생충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은 인연이 있습니다. 강양구 기자님은 프레시안에 발표한 기사를 열심히 읽던 인연이 있습니다. 진중권 교수님 역시 미학분야의 책을 읽어본 인연이 있습니다. 당연히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쏟아내고 계신 촌철살인의 사회비판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김경률 회계사님과 권경애 변호사님은 지난 해 조국 사태 이후에 처음 알게 된 터라 이번에 읽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통해서 처음 인연을 맺은 셈입니다. 물론 다섯 분 모두 대면하여 인사를 나눈 적은 없으니 인연을 맺었다고까지 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뒷부분의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만, 앞부분에서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노무현 대통령 초기까지는 저 역시 진보 쪽에 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미심쩍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고,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입장을 정리하게 된 것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뒤였습니다.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도 뜨악했고, 취임식도 하지 않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이야기를 물밑에서 듣기도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맞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세계적은 추세로 보아 광우병은 소멸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출범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광우병 사태를 키워갔는데, 그런 상황에 과학자들까지도 과학적 견해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상황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당시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했던 과학자는 지금 정치판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8년 당시 광우병 파동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우리나라의 진보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던 제가 그 판을 잘못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끝장나고 있음을 우려하시는 다섯 분은 여전히 진보적 입장을 지키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고, 이 책의 기획에 흔쾌하게 동참하신 것은 진정한 진보적 가치를 사수해야 하겠다는 순수함의 발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는 데는 ‘이전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한 이때’,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인 싸움에 나선 다섯 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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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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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에트르타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모파상이 에트르타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으며, <여자의 일생>에 에트르타의 작은 코끼리 바위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는 대목을 확인하려고 읽었습니다. 문제의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해안에서 멀리 나아갔다. 수평선 쪽으로는 하늘이 낮아지면서 대양과 하나로 합쳐졌다. 육지 쪽으로는 깎아지는 듯한 높은 절벽이 그 아래에 커다란 그림자를 던지고, 햇빛을 가득 받은 비탈진 잔디밭들이 절벽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저 멀리 뒤쪽에서는 페캉의 하얀 방파제로부터 갈색 범선들이 출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 저 멀리에는 괴상한 바위가 솟아 있었는데, 중간에 구멍이 훤히 뚫린 그 둥그스름한 바위는 물 속에 코를 처박은 거대한 코끼리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것이 에트르타의 작은 관문이었다.(49-50쪽)”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자의 일생>의 주인공 잔느가 사는 곳은 에트르타와 페캉의 중간인 이포르(Yport) 부근의 에투방 마을에 있는 푀플성이라고 했습니다. 이포르를 떠나 에트르타로 향하는 장면을 서술한 것인데, 에트르타에 도착하면서 코끼리 바위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이 이어집니다. “바닷속을 걷고 있는 절벽의 두 다리와도 흡사한 에트르타의 거대한 아케이드가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다.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아치 구실을 할 만큼 높았다. 그리고 뾰족한 흰 바위봉우리가 첫 번째 아케이드 앞에 우뚝 솟아있었다.(51-52쪽)” 하지만 모파상의 서술은 에트르타의 지형을 고려할 때 정확하지 않은 듯합니다. 뾰족한 흰 바위봉우리는 아귀(Aiguille)라고 부르는 바늘모양의 바위를 말하는데, 이는 이포르쪽에서 오다보면 두 번째 아케이드 뒤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이 책의 원제는 <Une Vie>인데, 옮긴이에 따르면 ’한 인생‘ 또는 ’어떤 인생‘ 정도의 의미라고 합니다. 어쩌면 일찍이 <여자의 일생>으로 일본에 번역 소개되었던 것을 우리말로 중역하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일본에서와 같은 제목을 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옮긴이는 잔느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 귀족 여성의 삶을 그린 이야기를 프랑스 여성의 삶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바로 잡고 싶었지만, 적지 않은 세월에 걸쳐 굳어진 이름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바가 없는 시몽자크 르 페르튀 데 보 남작은 지난 시대의 귀족으로 선량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는 딸 잔느를 행복하고 선량하며 올바르고 다정하게 키우려는 생각에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성심 수녀원에 들어가 열일곱이 되는 해까지 교육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한 것입니다. 순결할 수는 있었지만 세상물정을 배울 기회가 없는 결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성심수녀원에서 나온 그녀는 부모와 함께 이포르의 절벽 위에 있는 푀플성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신부님의 중매로 드 라마르 자작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세상에 없는 점잖은 신사로 보였던 자작은 신혼여행에서부터 인색하고 쪼잖은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잔느와 젖을 함께 먹고 자란 하녀 로잘리를 범하고 임신을 시켰을 뿐 아니라, 뒷수습을 하는 과정에서도 파렴치함을 보입니다. 성심수녀원에서 나올 때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던 순수했던 잔느의 일생은 물론 남작의 가문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잔느와 드 라마르 자작 사이에 생긴 아들, 폴을 지나치게 감싸고도는 바람에 제대로 큰 폴이 창녀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작과 잔느의 편협한 교육관이 결국은 가문의 몰락으로 연결된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구조는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드러난 일반적인 현상을 그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을 신부님은 노르망디 지방의 성풍속이 엉망이라고 했지만, 근대 프랑스 사회의 성풍속은 어지러울 지경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엄격함과 자유로움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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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기쁨
애비게일 트래포드 지음, 오혜경 옮김 / 마고북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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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에서 오는 개인적 편향성이 드러나는 책읽기의 전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떤 일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책을 골라들게 했습니다. ’후반생 40년을 꽃피우는 12가지 주제‘라는 부제를 단, <나이 듦의 기쁨>은 워싱턴포스트의 건강분야의 편집인 자리를 내놓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애비게일 트래포드가 쓴 책입니다.

50대 중반에 할머니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편집 업무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사실을 나이 듦을 논하기에는 이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또한 개인적 편향일 수 있습니다. 저와 비교하여 10살이나 젊은 나이에 나이 듦을 논한다는 게 솔직하게 말씀드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이 파경을 맞은 상실이 더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더 하여 수술까지 받아야했다니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자가 고려했던 것은 65세 이상의 백인들 남성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살이란 자기파괴적인 사건인데 우울증이나 기타 의학적인 문제 이외에도 나이듦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되면서 보너스로 얻게 된 시간에 대한 새로운 목적과 기쁨을 찾을 수 없다면 생물학적 연옥에 갇히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늘어난 기대수명을 생물학적 연옥에 비유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늙었고 죽기에는 너무 젊다는 느낌에 빠질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새롭게 얻은 시간을 제2의 사춘기로 정의한 저자는 무언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찾았었다고 합니다. 특히 경주 남산의 석굴암에서 본존불 앞에 섰을 때 이런 느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낙엽의 향기 속에 홀로 서 있는 동안 시간이 그대로 멈췄다. 나는 부처의 응시 속에 사로잡혔다. 영원의 고요함 속에서 과거가 인정되고 미래가 더없이 소중해지는 순간이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은 끝났다. 새로운 부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두 부분은 서로에게로 흘러든다. 이 둘은 직선으로 나가지 않고 반원을 그리면서 하나의 원을 완성된다. 미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통합되면서 하나의 완결체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경주의 고요함 속에서는 조화가 권력을 이기고, 평온함이 성공을 이기고, 창의성이 신분을 이기며, 무엇보다도 사람이 모든 것을 이기고 있었다.(19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제 나이 즈음이 되어 이 책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나이 듦에 따라 여분으로 얻었다는 느낌이 드는 시간들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언론인답게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 면담을 하여 얻은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리해낸 ’나이 듦에서 기쁨을 얻는 방법‘은 모두 12가지였습니다. 이를 3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나만의 시간에 도달하다”라는 작은 제목에는 1. 두 번째 사춘기 맞이하기, 2. 틀을 깨고 떠나오기, 3. 상실을 승화하기, 4. 새로운 꿈을 꾸기 등을 배치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5. 또 다른 일에 도전하기, 6. 받은 것을 되돌려주기, 7. 정신을 확장하기, 8. 다음 세대에게 유산 남기기 등을 배치했으며, “인생의 굴곡을 넘어 돌보는 사랑으로”에는 9. 우정을 새롭게 하기, 10. 로맨스의 세계 탐험하기, 11. 가족을 다시 재발견하기, 12. 영적인 위기와 대면하기 등을 담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름만 달리했을 뿐 개념 자체는 중복되는 것 같은 항목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어쩌면 저도 벌써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갈피를 끼워두었던 몇 가지들은 따로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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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고뇌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5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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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덕분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집중탐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갈릴레오의 고뇌>는 탐정 갈릴레오 연작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데이도 대학 물리학부의 유가와교수와 동경 경시청의 구사나기 형사가 합을 맞추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절정에 올라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탐정 갈릴레오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예고 살인‘이라는 새로운 사건 형식이 등장합니다.

<갈릴레오의 고뇌>에는 모두 다섯 건의 사건을 담았습니다. 사건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떨어지다, 조준하다, 잠그다, 가리키다, 그리고 교란하다 등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추리소설인 만큼 사건과 관련한 실마리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추리소설의 독후감을 적는 일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역시 유가와교수가 사건 해결에 나서는 만큼, 이번 사건들의 특색은 무엇이고 어떤 과학적 지식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용되었는가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추락사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고, 죽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누군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이 사건을 전후한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즉 현장부재증명이 객관적이고 타당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볼 일입니다. 용의선상에 올렸던 인물이 빠져나가게 되면 새로운 용의자를 내세워야 하는데, 이런 작업이 반전이 될 수도 있지만 주요 용의자를 사건 초반에 놓치고 있다면 범행과 관련된 증거의 인멸에 나설 시간을 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범인을 추리하는 즐거움 말고도 또 하나의 책읽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추리소설 작가가 사건의 배치와 문제에 접근해가는 방식에 집중하다보면 사소한 것을 놓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대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만, 손톱 밑의 가시에는 민감하면서 보이지 않은 마음 속에 들어앉아있는 인식의 오류라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소소한 것까지도 바로잡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첫 번째 사건의 모두에서 찜찜한 대목을 발견합니다. “비가 퍼붓는 가운데 배달을 나갔지만 가는 곳마다 지하에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라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채 상쾌한 기분으로 일을 다닐 수 있었다(9쪽)”라는 대목입니다. 비가 퍼붓는 가운데 스쿠터를 몰고 비가 퍼붓는 가운데 배달일을 하면서 물 한 방울 젖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적는 것이 옳은지에 생각이 꽂힌 것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유가와교수와 긴밀하게 관련이 있는 노교수가 연관이 된 사건입니다. 사실 이런 사건일수록 객관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기기 쉽지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학계에 버팀목이 되고 있는 철학 같은 것을 배울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우수한 연구자의 자질 같은 것인데요. “성실하다고 다 되는 건 아니야. 때로는 허튼 짓이 대발견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연구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뭐니 뭐니 해도 순수성이야.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어떤 색으로도 물들지 않은 새하얀 마음이야말로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이지.(110쪽)”

이런 미덕은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는 물론 사회과학을 하는 연구자에게도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이런 철학을 지키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저의 편향된 시각 때문일까요?

마지막 사건은 예고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하는 점인데, 전문 탐정이 아닌 일반인이 이런 방식으로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담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은 의외로 단순한 정황에서 씨앗이 맺혀간다는 점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대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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