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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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에트르타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모파상이 에트르타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으며, <여자의 일생>에 에트르타의 작은 코끼리 바위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는 대목을 확인하려고 읽었습니다. 문제의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해안에서 멀리 나아갔다. 수평선 쪽으로는 하늘이 낮아지면서 대양과 하나로 합쳐졌다. 육지 쪽으로는 깎아지는 듯한 높은 절벽이 그 아래에 커다란 그림자를 던지고, 햇빛을 가득 받은 비탈진 잔디밭들이 절벽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저 멀리 뒤쪽에서는 페캉의 하얀 방파제로부터 갈색 범선들이 출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 저 멀리에는 괴상한 바위가 솟아 있었는데, 중간에 구멍이 훤히 뚫린 그 둥그스름한 바위는 물 속에 코를 처박은 거대한 코끼리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것이 에트르타의 작은 관문이었다.(49-50쪽)”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자의 일생>의 주인공 잔느가 사는 곳은 에트르타와 페캉의 중간인 이포르(Yport) 부근의 에투방 마을에 있는 푀플성이라고 했습니다. 이포르를 떠나 에트르타로 향하는 장면을 서술한 것인데, 에트르타에 도착하면서 코끼리 바위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이 이어집니다. “바닷속을 걷고 있는 절벽의 두 다리와도 흡사한 에트르타의 거대한 아케이드가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다.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아치 구실을 할 만큼 높았다. 그리고 뾰족한 흰 바위봉우리가 첫 번째 아케이드 앞에 우뚝 솟아있었다.(51-52쪽)” 하지만 모파상의 서술은 에트르타의 지형을 고려할 때 정확하지 않은 듯합니다. 뾰족한 흰 바위봉우리는 아귀(Aiguille)라고 부르는 바늘모양의 바위를 말하는데, 이는 이포르쪽에서 오다보면 두 번째 아케이드 뒤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이 책의 원제는 <Une Vie>인데, 옮긴이에 따르면 ’한 인생‘ 또는 ’어떤 인생‘ 정도의 의미라고 합니다. 어쩌면 일찍이 <여자의 일생>으로 일본에 번역 소개되었던 것을 우리말로 중역하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일본에서와 같은 제목을 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옮긴이는 잔느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 귀족 여성의 삶을 그린 이야기를 프랑스 여성의 삶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바로 잡고 싶었지만, 적지 않은 세월에 걸쳐 굳어진 이름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바가 없는 시몽자크 르 페르튀 데 보 남작은 지난 시대의 귀족으로 선량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는 딸 잔느를 행복하고 선량하며 올바르고 다정하게 키우려는 생각에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성심 수녀원에 들어가 열일곱이 되는 해까지 교육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한 것입니다. 순결할 수는 있었지만 세상물정을 배울 기회가 없는 결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성심수녀원에서 나온 그녀는 부모와 함께 이포르의 절벽 위에 있는 푀플성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신부님의 중매로 드 라마르 자작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세상에 없는 점잖은 신사로 보였던 자작은 신혼여행에서부터 인색하고 쪼잖은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잔느와 젖을 함께 먹고 자란 하녀 로잘리를 범하고 임신을 시켰을 뿐 아니라, 뒷수습을 하는 과정에서도 파렴치함을 보입니다. 성심수녀원에서 나올 때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던 순수했던 잔느의 일생은 물론 남작의 가문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잔느와 드 라마르 자작 사이에 생긴 아들, 폴을 지나치게 감싸고도는 바람에 제대로 큰 폴이 창녀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작과 잔느의 편협한 교육관이 결국은 가문의 몰락으로 연결된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구조는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드러난 일반적인 현상을 그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을 신부님은 노르망디 지방의 성풍속이 엉망이라고 했지만, 근대 프랑스 사회의 성풍속은 어지러울 지경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엄격함과 자유로움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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