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1, 2부 (양장) - 연극대본 ㅣ 해리 포터 시리즈
J.K. 롤링.잭 손.존 티퍼니 원작, 잭 손 각색,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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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를 여행할 때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 연작을 처음 썼다는 엘리펀트 카페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카페에서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작품쓰기를 시작한 곳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해리포터>를 처음 읽은 것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90년대 초반입니다. 처음에는 줄을 서서 살 정도는 아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1부와 2부는 그리 두껍지 않아서 영어로 된 책인데도 읽기에 도전했던 것인데, 마법과 관련된 신조어가 많아서 수월하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 연작을 7편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큰 아이가 좋아했던가 해서 4부까지는 영어로 된 책을 사주었는데, 어느새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사서 읽고 있더라구요. 큰 아이가 결혼해서 분가를 하면서 보니, 이미 읽은 <해리 포터> 연작과는 다른 <해리 포터>가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저주받은 아이>는 조앤 롤링 작가가 연극 연출가 존 티퍼니, 대본작가 잭 손과 함께 연극대본으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극은 2016년 7월 30일 런던 팰리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고 합니다. <해리포터> 연작이 마무리되고 19년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7부까지는 소설체로 쓰였지만, 이 책은 등장인물의 대사에 지문이 들어가는 극본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리포터>이 여덟 번째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해리포터-저주받은 아이>의 주인공은 해리포터가 아닙니다. 해리포터의 둘째 아들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와 <해리포터> 연작에서 해리포터의 경쟁자였던 말포이의 아들 스코피어스가 주인공입니다. 해리포터는 론의 여동생 지니와 결혼하여 릴리와 알버스를 낳았습니다. 서른일곱 살인 해리포터는 마법사회 법집행부의 수장입니다. 헤르미온느는 론과 결혼하여 로즈라는 딸을 두고 있고, 마법부 장관을 맡고 있습니다.


결국 볼더모트가 다시 등장할 것인가가 <해리포터> 연작 뒤에 남는 숙제였을 것입니다.그런 숙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등장시킨 것 같습니다. 전작에서 해리포터, 론, 헤르미온느 등 세명의 친구들이 서로 도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알버스와 로즈 그리고 스코피어스가 함께 문제해결에 나선다는 점이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해리포터 들이 그리핀도르였던 것과는 달리 알버스가 슬리데린 기숙사에 배정받았다는 점과 앙숙이던 말포이가문과 해리포터 가문이 아이들대에서 연결된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죽었다는 볼더모트의 그림자는 스코피어스가 볼더모트의 아들이라는 소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악의 뿌리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독립심이 강했던 해리포터였지만 아들과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작가진들의 성향이 반영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알버스와 해리가 갈등을 빚는 것은 어쩌면 알버스의 성장통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 줘야 해, 해리, 그 애를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봐야지”라고 해리를 달래는 덤블도어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참고할만합니다. 아이들 문제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환생을 모색하는 볼더모트의 암수에 걸린 알버스가 위험한 사건에 말려들어 과거로 여행하게 됩니다. 과연 “넌 과거를 바꿔 제 아버지를 죽이고 어둠의 마왕을 부활시킬, 보이지 않던 아이”라는 케드릭의 말처럼 알버스는 저주받은 아이였을까요? 과거로 돌아가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해리 포터를 비롯하여 말포이, 헤르미온느, 론 등 어른들이 나서기도 하지만, 결국은 아이들의 힘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은 해리포터들이 문제를 해결해낸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좋은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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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다이빙 -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는 행복을 찾아, 일센치 다이빙
태수.문정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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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을 하고서 독후감쓰기가 늦어진 책입니다. 그러다보니 새로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표시를 해둔 부분을 중심으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직장을 옮기면서 밀린 연가를 쓰면서 생긴 여유시간을 채우기 위하여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의 내용을 보건데 작은 아들의 책인 듯합니다.


최근에 끝난 종편방송의 연예방송편성 가운데 <뭉치면 찬다>를 열심히 시청했습니다, 각종 운동분야에서의 전설들이 모인 축구단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다룬 편성입니다. 직업선수도 아니지만 조기축구회 수준의 경기지만, 실수하는 모습까지도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종편의 연예방송편성을 끌어오는 이유는 <1cm 다이빙>이라는 제목 때문입니다.


다이빙을 하려면 일정한 깊이의 수심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뭉치면 찬다>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제주도 전지훈련을 갔던 축구단에 합류한 수영의 박태환선수가 해변에서 점프하여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이마에 혹이 생기는 부상을 당했던 것입니다. 스페인 청년이 수심이 얕은줄 모르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경추골절로 사지마비가 되는 바람에 오래 고생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이빙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1cm를 다이빙한다니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는 행복을 찾아, 일센티 다이빙’이라는 부제를 보면 무얼 말하려는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서문을 읽다보면 이 책을 기획한 이가 제정신인가 싶습니다. 서른이나 된 분이, 결혼을 4개월 앞둔 시점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안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서 한 일이 이 책을 쓰는 일이었던가 봅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찾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7m, 5m, 아니 1m는 커녕 동네 목욕탕에서 하는 1cm 짜리 다이빙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였다’고 합니다.


1cm 다이빙이란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날 만큼 작은 행복을 찾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혼자서 하기에는 심심했는지 같이 할 사람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철없는 중학생 같은 서른 살 남자와 세상 다 산 것 같은 스물여섯 살된 여성이 의기투합하여 현실을 벗어나 행복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 한 꼭지씩의 글을 주고받는 식입니다. 첫 번째 주제는 스마트폰보다 재미있는 일 찾기였습니다. 그리고 30초 안에 기분이 좋아지는 일 찾기로 이어집니다.


두 분이 살아온 날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양한 일들을 겪어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고받는 주제를 각자 살아오면서 겪은 일과 엮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가벼운 읽을거리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즈음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 듯합니다.


후기를 읽어보면 이 책을 기획한 태수씨의 경우는 나이가 서른에 이른 점을 고려하여 치기 어린 마음을 놓아주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 같습니다. 다만 순수함을 놓치지 않고 잡아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성과를 얻었다면 결혼을 앞두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도전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10년 뒤에는 새로운 도전을 해볼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일탈이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큰 틀안에서 방향을 유지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도전이 크게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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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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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고도 이형성을 동반한 선종으로 진단된 위점막 생검의 병리진단이 상피내암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병리표본을 다시 검토하여 진단을 변경할 수 있는가 하는 환자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전임 과장이 내린 고도 이형성을 동반한 선종의 병리진단은 제가 다시 보아도 타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병리진단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요구는 실손보험에서 보상을 받으려면 최소한 상피내암이라는 병리진단이 붙어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환자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자신의 병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례 이전에는 전립선 생검을 통하여 선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분이 자신의 병리소견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제 사무실에는 현미경에 올려놓은 병리슬라이드의 내용을 컴퓨터에 연결하여 화면에 띄울 수 있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립선의 선암이라는 병리진단을 내리게 된 이유, 즉 병리소견을 환자분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제가 병리공부를 시작하고 41년이 되어가는 동안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이처럼 의학과 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앎이 많아지고, 요구도 다양해지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 역시 의료윤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관련법이나 규정에 정해진 것들은 정해진 바에 따르면 되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는 제이콥 M. 애펠박사는 의료현장에서 흔히 마주치거나 발생할 수도 있는 79가지 상황을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에 정리해냈습니다. 특히 저자는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의 자격을 딴 의학박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학적인 면과 법률적인 면을 같이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관련법이나 규정이 정하고 있는 상황은 명쾌하게 답을 내놓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79가지의 상황들은 1. 현장의 의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2.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3.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4.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5. 임신․출산에 얽힌 문제들, 6. 죽음을 둘러썬 문제들, 등 6가지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남자친구가 결혼과 출산에 소극적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의 정자를 구하여 인고임신을 한 방송인의 사례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사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 국회에서 입법추진하고 있는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된 의사들의 면허를 일정기간 정지시키겠다는 의료법 개정과 관련된 상황에 참고할만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입법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진료를 하도록 하는 것이 옳으냐는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국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금고이상의 형이라는 포괄적인 법조항대로라면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다가 입건되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도 포함되기 때문에 의료인들을 정부의 수족으로 묶어두겠다는 속셈이 담겨있으니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한명의 의사가 만들어지기까지 십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고, 자원도 투입돼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인적자원입니다. 그런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나쁜 사람’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용도폐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는 의료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인들이 읽어서 평소 진료를 함에 있어서 윤리적이면서도 환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반인들 역시 읽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의료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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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 -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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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던가 옷장에 걸려있던 넥타이를 몽땅 버린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신혼 때 매던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넥타이의 유행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면서 돌고 돌더라는 이유로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합니다. 최근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언젠가 사라졌던 적폐가 슬며시 돌아와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적폐를 몰아내겠다는 분들이 새로운 적폐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듯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집살이 모질게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되면 새 며느리에게 더하더라는 우리네 옛말도 있습니다.


‘금지하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는 ‘소수의 특정 집단만이 앎을 공유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한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로 금지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 듯하여 시간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듯하다는 말씀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과학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쓴 <금지된 지식>은 앎을 금지하던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았습니다. 『논어』의 「학이」편은 학이시습지 불열호(學而時習之 不易說乎)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그것을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새깁니다.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앎을 금지한다는 것은 앎을 독점하려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일 터이니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에서는 앎을 금지한 첫 번째 주체가 바로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금단의 사과를 먹지 말라는 영을 아담과 이브에게 내렸던 것입니다. 먹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니 금단의 사과에 대한 앎을 독점한 셈입니다. 신의 이런 독특한 점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특히 교리에 어긋나는 사실 혹은 앎은 철저하게 감추려 노력했습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금단의 영역을 개방한 삼인방으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찰스 다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들었습니다. 지식사의 큰 흐름에서 격랑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나 다윈은 분명 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프로이트가 그 두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인가에 대하여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듯합니다. 다만 젝 관심을 두고 있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해석에서 도움이 될만한 관점을 챙기는 정도에 만족하려 합니다.


저자는 지식이 주는 기쁨에 대하여 논어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알아가는 것의 즐거움을 언급합니다. 신으로부터 지식을 금하는 법을 배웠던 인간들이 개화되어가면서 앎을 나누는 범위가 확대되어오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앎을 봉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을 깨우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흐름은 낙원에서 금지된 것, 우리에게 지식이란 무엇인가, 비밀을 다루는 법, 성스러운 것을 엿본 죄, 인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라, 과감하게 봉인을 떼다, 지식사회이 사생활과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이어 설명합니다. 종교계에서 금지해야만 했던 앎은 무엇이었고, 왜 그랬는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설명합니다.


특히 과학이 발전해옴에 따라서 사람들의 앎의 폭은 빠르게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알리고 싶지 않은 대목들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국가적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인간이 신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일까요?


저자는 과학과 신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금지된 지식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정리해냈습니다. 혹자는 과학의 발전이 무서울 정도의 지경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사물의 원리를 깨우쳐온 과학이 넘어서서는 안되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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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 인생 후반의 시간을 잘 기획하고 잘 쓰는 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혜윤 옮김 / 유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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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일터를 옮겼습니다. 12년을 일해 온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앞으로 4년을 더 도와달라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만, 뭔가 달라진 느낌이 결국은 일을 접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뒤에도 되돌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 여지가 없었다는 것도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4년 정도 더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이어졌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고, 그때는 갈만한 곳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결단은 2년 전에 내렸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체력이 지금보다 더 나았을 때 결단을 내렸어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오래 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 지금의 병원은 규모로 보아 업무에 익숙해지는데 유리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업무의 양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고, 업무를 덜어줄 직원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저지른 작금의 상황은 메이지대학교 문학부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쓴 <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와는 숫자를 제외하면 맥을 같이 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들어간 55라는 숫자는 55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카시 교수는 55세라는 나이에 이르면 삶에 여러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 마지못해서라도 ‘이제 슬슬 전환점이 왔구나’하고 자각하게 되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전작인 <성숙력-45세를 이후로 후회 없이 사는 인생 리스타트>의 속편인 셈입니다. 45세를 짚었던 것은 인생을 90년으로 보았을 때 반환점을 도는 시점으로 보았던 것인데, 55세라고 한다면 그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인생을 110년으로 본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의 직장의 정년은 65세라고 하는데, 55세에 이르면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업무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앉는 시점이라는 것 같습니다.그러니까 10년의 시점을 두고 은퇴를 준비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10년이라는 기간은 꽤나 길어 보입니다만, 금세 지나가는 세월입니다. 따라서 계획을 잘 세워야 훗날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방법들을 시간활용법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안내서라고 하였습니다. 제 경우는 금년에 67살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한 35년의 기간 가운데 3분의 1을 보낸 셈입니다. 그리고 보니 이번에 그만 둔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55살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옮긴 직장 역시 잊고 있었던 본업에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65살에 은퇴를 하면 전공을 살려 3국에서 봉사하면서 삶을 마무리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까지 여섯 차례의 전직을 통하여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서 아마도 편안하게 쉬는 기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55가 아닌 어느 숫자에 이르러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준비를 하는데 이 책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장에서 정리해놓은 55세 이후의 시간활용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3-5장에 이르는 실천편은 구체적으로 여생을 설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겨운 일도 무료함보다 괴로울 수는 없다고 한 저자의 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굳이 밝힐 이유는 없어 보이는 소소한 것들 가운데 저와 생각이 다른 것도 없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오래 전에 읽은 <갈 곳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의 저자가 일본의 남자들은 정년을 하고나면 정말 봐줄 수가 없다는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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