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ㅣ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저 역시 여행과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둘을 아우르는 책을 만나면 절로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광고 문안가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를 읽은 이유입니다. 제목을 보니 익숙한 느낌이어서 찾아보니 그가 쓴 <여행자의 독서>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독후감의 제목을 ‘정말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구요?’라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는 독특한 여행가라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자의 독서>를 읽고 쓴 독후감을 찾아보니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와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저로서는,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배낭을 싸는 시간, 그중에서도 어떤 책을 넣어 갈까 고민하는 시간들입니다. 어떤 책이 가고자 하는 땅과 어울릴까 고민하는 일은 여행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5쪽)”라고 서문에 적었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는 고민을 합니다만, 여행을 떠나면서 무슨 책을 가져갈까 하는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 싶습니다.


<여행자의 독서>의 구성은 1. 구원을 찾아 떠나다, 2. 사랑을 찾아 떠나다, 3. 이야기를 찾아 떠나다, 4. 나를 찾아 떠나다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의 구성은 1. 추억을 찾아 떠나지 마라, 2. 희망을 찾아 떠나지 마라, 3. 낙원을 찾아 떠나지 마라, 4. 낭만을 찾아 떠나지 마라 등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여행의 중요한 목적의 순서로 정했다면, 이번에는 여행의 목적으로 삼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은 셈입니다. 물론 내용은 제목들과 크게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행자의 독서>에 나오는 22꼭지의 이야기에서 소개한 39권의 책들 가운데 읽어본 책은 6권밖에 되지 않아 멋쩍었습니다. 그 뒤로 6권을 더 찾아 읽었습니다.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이 더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역시 22꼭지의 이야기에서는 무려 58권의 책을 다루었는데, 18권을 읽어보았으니, 첫 번째 책을 읽고 7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던 셈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여행지에 관한 책들이 많았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여행지와 무관한 책들이 더 많은 느낌입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모자를 벗을지언정 머리르 비우며 여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땅의 내력이 담긴 책들을 가져가야 마땅한 듯합니다.(7쪽)’라고 적은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읽기를 위해서 여행을 한다는 느낌이 여전합니다.


곳곳에 여행과 책읽기에 관한 주옥같은 대목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여행과 책은 대개 세 지점에서 만난다. 여행 전과 여행중, 그리고 여행 후. 일상에서 만난 어떤 영감에 가득 찬 책은 독서가를 여행으로 내몬다. 길 위에서의 책은 여행자의 고달픈 길에 길동무가 되어준다. 여행 뒤 만나는 책은 다녀온 땅에 대한 지식과 감상을 완성시켜준다. 어느 지점에서도 책은 요긴하고 그만큼 여행은 풍부해진다.(22쪽)”


이 대목도 좋았습니다. “길 가기와 책 읽기에 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걸 당신에게만 말해주겠다. 부지런히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부지런히 읽는 책이 가장 빨리 읽는 독서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막막했던 길들이 내 등뒤에 납작 엎드려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뒤돌아보면 저걸 언제 읽지 했던 책들이 내 손때를 잔뜩 묻힌 채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숨 쉬지 말고 가던 길을 갈 것. 읽던 책을 읽어 나갈 것.(329쪽)”


저자 역시 여행사의 상품을 통해서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고 한탄하는 듯합니다. “여행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는 긍정적인 현상의 이면에,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설렘과 두려움, 감동이 가장 희박한 ‘여행’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들이 흔히 예술에 대해 남발했듯이, 우리 시대에는 ‘여행’마저도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339쪽)”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기행 혹은 여행의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허풍과 과장을 일삼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는 순간 이야기꾼으로 변모해버린 여행자에게 과장과 허풍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힘든 일이다.(416쪽)”


어떻든 저자가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한 책들도 골라서 읽어볼 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현상학과 예술
메를로 퐁티 지음 / 서광사 / 198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상학과 예술>은 저자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라는 점과 현상학과 예술과의 관계를 다루었다고 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현대철학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되었고, 현상학과 실존주에 천착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상학을 공부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이 시작한 현대철학의 사조입니다.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 자체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철학을 말합니다. 의식의 현상을 분석한다고 설명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 자체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인과법칙 등은 논의대상이 아니고 의식자체만을 순수하게 기술하고 그 구조를 분석한다는 의미입니다.


후설이 현상학을 제안한 배경에는 20세기 초반 들어 부각된 철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즉, 급속한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심리학에서도 과학적 방식으로 대상을 계량하려는 실증주의가 대두되면서 의미의 근원이라 할 의식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후설은 실증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의 삶’의 근본이 되는 의식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환원시키겠다는 의도로 고안한 철학의 한 형태가 현상학이었습니다. 20세기 유럽 철학의 현상학 시대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현상학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현상학적 개념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y)은 의식이 무언가를 표상한다는 것, 즉 ‘무엇에 관한’ 의식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 회의론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판단 중지’라는 의미를 담은 '에포케(epoché)'가 있습니다. 이는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이 과도하게 치우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전제조건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노에시스와 노에마가 있습니다. 노에시스(νόησῐς, nóēsis)는 고대 그리스어로 지식 혹은 지성을 의미하는 누스(νους, nous)와 지각의 의미하는 노에인(νοεῖν, noeín)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로, 의식이나 사고 자체, 좁게는 특정 대상을 지향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한편 노에마(νόημα, noema)는 생각된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를 차용한 것으로, 대상을 의식하고 생각한 결과물, 즉 내용으로서의 의미를 말합니다.


현상학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찾아 이해하였지만, 메를로-퐁티의 <현상학과 예술>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오병남 교수님은 서문에서 현대미학에 관한 강좌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메를로-퐁티가 쓴 아홉 편의 논문과 드 뷀렌의 논문 한 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조명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글, 드 뷀렌의 머리말은 1949년에 나온 메를로-퐁티의 <행동의 구조> 2판에 더해진 것입니다. ‘애매성의 철학’이라는 제목은 <행동의 구조>가 당대 철학계의 고민을 대변한 것일 수도, 그 고민을 해결해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와 ‘지각의 기본성과 그 철학적 제 귀결’에서는 현상학의 본질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설명이 담겼습니다. ‘현상학은 기술하는 일이지 설명을 하거나 분석을 하는 일이 아니다(31쪽)’라는 설명이 현상학의 본질을 대변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몬느 드 보봐르의 <초대받은 여인>을 인용한 문학작품, 세잔느를 인용한 회화에 대한 현상학적 이해에 대한 논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술한다는 것은 기술하는 사람의 주관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곧 <초대받은 여인>을 읽어보고 메를로-퐁티의 설명을 확인해볼 계획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첫걸음
그레임 개러드.제임스 버나드 머피 지음, 김세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즉 혼자서 살기보다 모여서 사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관계가 원만해야 하겠습니다. 규모가 작을 때는 암묵적인 동의로 관계가 설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게 되면 관계가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그러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조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이 권한 혹은 권력 같은 것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조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원칙, 그것이 법이 될 수도 있고, 철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집단이 명멸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엮는 법 혹은 철학도 세월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변해왔던 것입니다.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는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명을 선정하여 그들이 내세운 정신을 중심으로 ‘정치철학’이라고 하는 거창한 영역에 입문해보자는 기획의도를 가진 것 같습니다. 즉 세계를 움직여온 정치의 법칙을 찾아보자는 기획입니다.


사실 ‘정치’라는 행위가 선한 측면보다는 더럽다고 할 만큼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철학이라는 학문적 개념을 붙이기도 뭐합니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 철학적 원칙이 들어있었을 것이고, 그런 철학적 원칙을 정리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자들이 꼽은 30인은 무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정치연구자라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활동한 공자로부터 기원전 5세기로부터 4세기 무렵에 활동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서가 4세기 무렵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고대로 하고, 중세에는 알 파라비, 마이모니데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을 꼽았고, 근대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장 자크 루소, 에드먼드 버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마누엘 칸트, 토머스 페인, 프리드리히 헤겔, 제임스 메디슨, 알렉시 드 토크빌,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등 15명을, 현대에서는 모한다스 간디, 사이드 쿠틉, 한나 아렌트, 마오쩌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존 롤스, 마사 누스바움, 아르네 네스 등까지 8명을 뽑았습니다.


솔직히 근현대의 인물들 가운데는 모르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주장이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을까 싶은 부분도 없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근현대 중심으로 선정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이 책을 만약 100년 전에 썼다면 공자, 알 팔라비, 마이모니데스 같은 고대 사상가는 포함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라고 하면서 20세기 초만 해도 유교, 이슬람교, 유대교 기반 정치사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치철학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역할을 한다는 견해도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만큼 과거도 들여다본다고 저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정치철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측면 역시 지난 역사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이유인 듯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자가 꼽은 한나 아렌트는 고대 아테네의 철학을 근간으로 하여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록으로 남은 역사의 범위도 방대한 것인데, 그 가운데 30인을 뽑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기왕의 것과는 다른 독창적인 사유를 내세운 분들을 중심으로 뽑아도 30명을 뽑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학자들을 15명씩이라 뽑은 것은 정치 분야에서 철학적 사유가 분출한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일 듯합니다. 중세의 오랜 암흑기를 통하여 논의조차 활발하지 못했던 유럽의 사상사에 대변혁이 일었던 시기라서 였을 것입니다. 유사한 분위기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4자성어로 요약하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 등 9개의 유파로 나뉘는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고저 공자 한 분으로 정리한 것은 적절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역시 서구 중심의 사고에 묶여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움직이고 있는 정치철학의 흐름을 개괄하는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사상가의 생각도 앞으로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
하랄트 하르만 지음, 이수영 옮김, 강인욱 해제 / 돌베개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구경을 하다 보니 인류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을 거슬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겨우 이집트, 한 곳을 다녀왔지만, 우한폐렴 사태가 마무리되어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미진한 곳을 찾아가보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 혹은 유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로 고문헌학과 선사시대의 역사를 전공한 하랄트 하르만이 쓴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도 그런 맥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유허는 남아있으되 실체를 증명할만한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25개의 인류문명을 다루었습니다. 서문의 제목을 ‘세계사의 불가사의한 의붓자식들’이라고 적은 것은 부제에 들어가 있는 ‘오솔길’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사의 주류에 끼어들지 못한 그런 문명들이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심지어는 주류 문명을 꽃 피웠던 곳에 있는 흔적들도 있습니다.


저자가 고른 세계사의 의붓자식 같은 25개의 인류문명의 흔적이 있는 장소는 아주 다양합니다. 남극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 문명이 사라진 이유를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문화적 기억이 사라진 문명의 원래의 주변 환경에 배치할 수 있게 할 방향 지시선이나 기준점을 제공하기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단초적이나마 그러한 기준점의 역사적 관계망을 펼치려했다고 합니다. 즉 수수께끼를 풀 단초라 할 만한 추리를 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쇠닝겐 창을 재료로 하여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사냥문화를 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신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속을 시작하는 크로마뇽인에 선행하는 구인류에 속합니다. 쇠닝겐 창이 발견된 유적은 33만7천년부터 30만 년 전으로 하이델베르크인의 후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유적지의 형태로 보아 하이델베르크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언어와 관련이 있는 유골이 발견된 바가 없어서 예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터키의 챠탈회위크 유적에 이르러서는 남겨진 유골들 가운데 말라리아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형적 뼈를 토대로 하여 기원전 5800년 무렵부터 시작된 기온 상승의 결과로 습한 저지대에 말라리아모기가 번창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챠탈회위크를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물론 챠탈회위크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단서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챠탈회위크를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챠탈회위크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하질라르라는 도시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챠탈회위크의 도시 구성이 초기 문명의 발전에 있어 모형과도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세계4대문명이라는 개념은 청나라 말기의 변법자강운동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1900년에 발표한 저서 <20세기 태평양가(二十世紀太平洋歌)>에서 처음 주장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아 마저도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것은 아니고, 당시 서구 학계에서 통용되던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에 포함되었던 비옥한 초승달지대(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 인더스 문명, 황허문명을 포함하는 중국문명, 잉카문명을 포함한 안데스문명, 아즈텍문명과 마야문명을 포함하는 메소아메리카문명 등 6개의 문명 가운데 우리가 익히 아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그리고 황허문명을 꼽을 것이라고 합니다. 서구의 문명의 요람이라는 개념도 처음에는 이집트문명 하나로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인더스문명이 추가되는 등 시대에 따라서 추가되어 여섯이 되었으며, 에게문명을 포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5개의 유적지 가운데 일부는 아직은 문명이라고 할 만큼의 고고학적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있어 문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으나 읽을 때마다 소박한 듯 정제된 느낌을 얻습니다.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는 고인이 타계한지 10년을 앞두고 나온 수필집입니다. 선생님께서 생전에 쓰신 660편의 수필 가운데 35편의 글을 골라 묶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에 대하여 선생님의 맏딸이신 수필가 호원숙님은 어머님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젊은이들이 밝고 자유롭게 미래를 펼쳐가기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 알 듯하다고 했습니다.


서른다섯 편의 글들은, 마음이 낸 길, 꿈을 꿀 희망,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사랑의 행로, 환하고도 슬픈 얼굴, 이왕이면 해피엔드 등의 여섯 가지 주제로 묶였습니다. 중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이라는 설명이 납득이 가는 글들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말을 골라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읽는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외래어도 이미 굳어진 것들은 그냥 사용했기 때문에 수월하게 읽히는 느낌입니다.


2004년에 발표한 <그 남자네 집; http://blog.naver.com/neuro412/221936043136>에서 선생님께서 보문동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보문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문동 집의 뒷이야기를 이 책에 적어놓으셨습니다. “조그만 한옥인 그 집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 집이 있는 좁은 골목은 한 쪽의 집들이 헐려서 큰 한길이 되어있었다. 골목 속에 다소곳이 있던 집이 아무런 단장도 안 하고 별안간 큰 한길로 나앉은 것은 어딘지 무참한 느낌을 주었다.(64쪽)”


저도 예전에 살던 동네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살았던 집이 바로 이런 상황이되었습니다. 큰길에서 세 번째 집이었는데, 도로를 넓히면서 두집이 헐렸고, 제가 살던 집은 두 번째 집이 남은 부분과 합쳐서 새로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동네 분위기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문화집시라고 일컫는 J페페님은 자신의 옛집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개발 사업에 밀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자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흐려져 가는 기억을 붙들어 매둘 요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면서 최근의 기억은 형편없이 희미해지는 반면 오래된 젊은 날의 기억은 변함없이 생생하고, 어린 날의 기억 중에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하셨는제, 제 경우는 그마저도 흐릿해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어머니보다 연배가 1년 정도 적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시골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도 선대와 비교하여 그리 나을 것이 없던 시절인지라, 저의 어렸을 적 생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등장하는 그런 부분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는 6.25동란이 휴전협정으로 끝난 뒤에 태어난 탓에 전란의 어수선함은 겪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들께서는 전후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시느라 고초가 심하셨지만, 그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오늘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런 고생마저도 겪지 않은 천운을 타고 났지만, 그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하고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일을 요즈음 일과 비교하는 일은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지’하고 혼자서 새겨보는 일까지 그만 둘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