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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
하랄트 하르만 지음, 이수영 옮김, 강인욱 해제 / 돌베개 / 2021년 1월
평점 :
세상구경을 하다 보니 인류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을 거슬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겨우 이집트, 한 곳을 다녀왔지만, 우한폐렴 사태가 마무리되어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미진한 곳을 찾아가보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 혹은 유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로 고문헌학과 선사시대의 역사를 전공한 하랄트 하르만이 쓴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도 그런 맥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유허는 남아있으되 실체를 증명할만한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25개의 인류문명을 다루었습니다. 서문의 제목을 ‘세계사의 불가사의한 의붓자식들’이라고 적은 것은 부제에 들어가 있는 ‘오솔길’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사의 주류에 끼어들지 못한 그런 문명들이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심지어는 주류 문명을 꽃 피웠던 곳에 있는 흔적들도 있습니다.
저자가 고른 세계사의 의붓자식 같은 25개의 인류문명의 흔적이 있는 장소는 아주 다양합니다. 남극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 문명이 사라진 이유를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문화적 기억이 사라진 문명의 원래의 주변 환경에 배치할 수 있게 할 방향 지시선이나 기준점을 제공하기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단초적이나마 그러한 기준점의 역사적 관계망을 펼치려했다고 합니다. 즉 수수께끼를 풀 단초라 할 만한 추리를 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쇠닝겐 창을 재료로 하여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사냥문화를 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신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속을 시작하는 크로마뇽인에 선행하는 구인류에 속합니다. 쇠닝겐 창이 발견된 유적은 33만7천년부터 30만 년 전으로 하이델베르크인의 후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유적지의 형태로 보아 하이델베르크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언어와 관련이 있는 유골이 발견된 바가 없어서 예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터키의 챠탈회위크 유적에 이르러서는 남겨진 유골들 가운데 말라리아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형적 뼈를 토대로 하여 기원전 5800년 무렵부터 시작된 기온 상승의 결과로 습한 저지대에 말라리아모기가 번창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챠탈회위크를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물론 챠탈회위크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단서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챠탈회위크를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챠탈회위크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하질라르라는 도시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챠탈회위크의 도시 구성이 초기 문명의 발전에 있어 모형과도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세계4대문명이라는 개념은 청나라 말기의 변법자강운동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1900년에 발표한 저서 <20세기 태평양가(二十世紀太平洋歌)>에서 처음 주장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아 마저도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것은 아니고, 당시 서구 학계에서 통용되던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에 포함되었던 비옥한 초승달지대(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 인더스 문명, 황허문명을 포함하는 중국문명, 잉카문명을 포함한 안데스문명, 아즈텍문명과 마야문명을 포함하는 메소아메리카문명 등 6개의 문명 가운데 우리가 익히 아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그리고 황허문명을 꼽을 것이라고 합니다. 서구의 문명의 요람이라는 개념도 처음에는 이집트문명 하나로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인더스문명이 추가되는 등 시대에 따라서 추가되어 여섯이 되었으며, 에게문명을 포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5개의 유적지 가운데 일부는 아직은 문명이라고 할 만큼의 고고학적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있어 문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