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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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으나 읽을 때마다 소박한 듯 정제된 느낌을 얻습니다.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는 고인이 타계한지 10년을 앞두고 나온 수필집입니다. 선생님께서 생전에 쓰신 660편의 수필 가운데 35편의 글을 골라 묶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에 대하여 선생님의 맏딸이신 수필가 호원숙님은 어머님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젊은이들이 밝고 자유롭게 미래를 펼쳐가기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알 듯하다고 했습니다.


서른다섯 편의 글들은, 마음이 낸 길, 꿈을 꿀 희망,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사랑의 행로, 환하고도 슬픈 얼굴, 이왕이면 해피엔드 등의 여섯 가지 주제로 묶였습니다. 중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이라는 설명이 납득이 가는 글들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말을 골라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읽는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외래어도 이미 굳어진 것들은 그냥 사용했기 때문에 수월하게 읽히는 느낌입니다.


2004년에 발표한 <그 남자네 집; http://blog.naver.com/neuro412/221936043136>에서 선생님께서 보문동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보문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문동 집의 뒷이야기를 이 책에 적어놓으셨습니다. “조그만 한옥인 그 집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 집이 있는 좁은 골목은 한 쪽의 집들이 헐려서 큰 한길이 되어있었다. 골목 속에 다소곳이 있던 집이 아무런 단장도 안 하고 별안간 큰 한길로 나앉은 것은 어딘지 무참한 느낌을 주었다.(64)”


저도 예전에 살던 동네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살았던 집이 바로 이런 상황이되었습니다. 큰길에서 세 번째 집이었는데, 도로를 넓히면서 두집이 헐렸고, 제가 살던 집은 두 번째 집이 남은 부분과 합쳐서 새로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동네 분위기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문화집시라고 일컫는 J페페님은 자신의 옛집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개발 사업에 밀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자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흐려져 가는 기억을 붙들어 매둘 요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면서 최근의 기억은 형편없이 희미해지는 반면 오래된 젊은 날의 기억은 변함없이 생생하고, 어린 날의 기억 중에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하셨는제, 제 경우는 그마저도 흐릿해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어머니보다 연배가 1년 정도 적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시골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도 선대와 비교하여 그리 나을 것이 없던 시절인지라, 저의 어렸을 적 생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등장하는 그런 부분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는 6.25동란이 휴전협정으로 끝난 뒤에 태어난 탓에 전란의 어수선함은 겪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들께서는 전후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시느라 고초가 심하셨지만, 그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오늘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런 고생마저도 겪지 않은 천운을 타고 났지만, 그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하고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일을 요즈음 일과 비교하는 일은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지하고 혼자서 새겨보는 일까지 그만 둘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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