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 단편소설선 1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총서 3
루쉰 외 지음, 이주노 옮김 / 어문학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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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바뀌었습니다만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2>를 읽고서야 이 기획이 전3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획의 특징은 중국의 현대소설에 관심을 가진 전공자들의 요청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문학은 대체적으로 1980년 이후, 그 이전의 작품들은 루쉰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 특히 장편소설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의 사정으로는 다양한 시대의 여러 작가와 상이한 창작 경향의 작품을 맛보려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1>에서는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평가받는 <광인일기>를 비롯하여 주로 1920년대에 발표된 단편소설들을 소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발아한 중국 현대소설은 량치차오(梁啓超)가 제창한 소설계 혁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심심풀이 오락수단으로 간주하던 소설을 사회개량의 수단으로 여기는 효용론적 소설관이 싹텄고, 나아가 인간의 발견과 개인의 자유의지를 담아냄으로써 근대성에 다가가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중반의 신문화운동의 성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향의 대표적 작가가 바로 루쉰(鲁迅)으로, 중국사회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 되는 봉건주의를 비판하고 중인인의 의식구조의 열근성을 폭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중국 근대화의 핵심적 과제인 국민성 개조를 자신의 문학적 실천과제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가정신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광인일기>이며, 중국인의 수구적 보수성과 허위적 기만성을 보여주는 대표작품이 <쿵이지(孔乙己)>라는 것입니다.


중국 사회에 대한 루쉰의 비판정신은 5·4운동 이후 결성된 문학연구회에 계승되었고, 연구회에 속한 작가들의 창작경향은 문제소설(問題小說)이라고 했답니다. 인생의 가치와 의의, 중국의 갖가지 사회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현실 사회와 인간의 삶을 개량하고자 하는 창작의도를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1>에는 왕통자오(王統照)상념에 잠겨(沉思)’, 쉬디산(許地山)그물 치는 거미(綴網勞蛛)’, 예사오쥔(葉紹鈞)곤경 속의 판 선생(潘先生在難中)’ 등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소설은 실제생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아니라 작가의 관념적 세계관이나 인생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때로는 작가의 주관적 관념이 지나치게 개입됨에 따라 관념화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자연주의였다. 작가의 주관적 서정과 관념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실제적 관찰과 객관적 묘사를 강조했다. 자연주의 작가들 가운데 베이징과 상하이에 거주하는 농촌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농촌 사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하자 루쉰은 이런 경향의 작품들을 향토소설(鄕土小說)이라고 했답니다.


향토소설들은 주로 피폐한 농촌 사회와 비참한 농민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농촌의 봉건적 악습과 농민의 우매하고 마비된 의식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 문명에 대한 회의에서 농촌을 목가적인 전원으로 묘사하여 향수를 드러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왕루옌(王魯彦)쥐잉의 출가(童年的悲哀)’동년의 비애(童年的悲哀)’, 쉬제(許傑)노름꾼 지순(賭徒吉順)’, 펑자황(彭家煌)천쓰뎨의 소(陳四爹的牛)’, 젠셴아이(蹇先艾)수장(水葬)’ 등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1929년대의 중국문학계에는 문학연구회와 더불어 새로운 창작 경향을 보인 창조사(創造社)라는 동인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면서 문학을 공리적 도구로 사용하는 기존의 문학관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주관적 서정과 내면세계의 묘사, 자아의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적 창작법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강렬한 반봉건정신으로 기성의 권위와 질서에 반발하였기 때문에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특히 자아의 내면세계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소설(私小說) 형식의 자전적 소설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전적 소설의 대표작으로 위다푸(郁達夫)의 타락(沉淪)/ 봄바람에 취한 밤(春風沉醉的晩上)을 선정하였습니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 루쉰의 광인일기쿵이지그리고 위다푸의 타락등 세 작품은 읽어보았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작가마저 생소하였습니다. 다만 작품들을 읽으면서 20세기 초 중국사회의 분위기를 조금은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 근대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감성을 끌어당기는 무엇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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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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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장샤오위안의 <고양이 서재>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은 뒤에 생긴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었거나,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장샤오위안 (江曉原)은 과학사학자, 천문학자, 성학자性學者이자 저자, 번역가, 편집자, 서평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활자 중독자이자 책벌레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징대학교 천문학과를 나와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과학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과학원 상하이천문대에서 오래도록 일했고 상하이교통대학교에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과 인문서에 탐닉하고 커서는 과학사를 공부한 그는 인문과 과학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중국의 융합적 교양인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책내용도 좋았습니다만, 모두에 실린 출판평론가 표정훈 교수의 추천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7세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서유기(西遊記)>, 13세기 칭기스칸의 참모 야율초재가 쓴 <서유록(西遊錄)>, 20세기 초의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 등의 공통점은 서쪽 세상의 경험을 적은 서유(西遊)’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서 서쪽(西)을 서()로 바꾸어 서유견문(書遊見聞)’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책을 유람하며 보고 들은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유람하듯 책을 읽고 실제로 보고 체험하며 사람들에게 들어서 배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마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칸트를 흉내에서 체험 없는 읽기는 공허하고, 읽기 없는 체험은 맹목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문화대혁명을 겪었다고 합니다. 문화대혁명으로 문화는 거대한 재난을 만났다고 한 저자는 이를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했습니다. 마오쩌둥이 신격화되어 있는 중국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경천동지할 일이지 싶습니다. 마오쩌둥의 어록이나 루쉰의 책만이 허락되었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자는 그런 길을 찾아내 다양한 책들을 두루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소소한 독서사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서재>를 읽다보니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저자와는 닮은 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가 천문학자로 순수과학을 하고 있다면 필자는 의학이라는 응용과학을 하고 있어서 이과계라 할 수도 있는데도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인문계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였던 아버지가 학교에서 책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도 저와 닮은 점입니다.


물론 저자처럼 책읽기를 좋아하는 동무들과 연락망을 만들어 감시자의 눈을 피해 책을 읽었다는 저자처럼 다양한 책을 두로 섭렵하지 못했던 차이가 있고 체계적으로 책을 수집하는 장서가라 할 정도는 아니고, 잘 정리된 서재를 가지고 있지 못한 필자와는 차별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을 때는 책을 복사한 다음 장정을 해서 서재에 꽂았다는 것입니다.


책벌레이기도 하면서 다수의 책을 쓴 저자인 그는 책을 쓰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책의 집필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뇌의 노동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쓸 때는 집 안이 고요하고 정적에 휩싸여야 한다. 내가 당나라 시인 노조린(盧照隣)의 시에서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쓸쓸하고 고요한 구석의 집. 해마다 언제고 시렁 가득 책뿐. 오로지 남산의 계화꽃잎만이 옷자락 사이를 팔랑팔랑


필자 역시 남원의료원에서 첫 번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를 쓸 때와 <치매 고칠 수 있다>와 유성 선병원에서 <치매 걱정 없이 10세까지 살기>를 같이 쓸 때는 시간 여유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소에 자투리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로 초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든 초고를 주말에 집중해서 가다듬어 원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책읽기와 책쓰기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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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일 죽는다면 -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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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은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삶의 궤적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이 될 것 같습니다만, 스웨덴의 광고기획자이자 미술가인 마르가레타 망누손의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정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쓰는 방이나 사무실에는 온갖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아내는 쓰지 않는 것은 버리라고 합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벌써 70고개를 넘은데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고 있으니 주변정리를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덜컥 죽음을 맞게 되면 제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는 엄청난 일을 아내가 해야 할 것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죽은 이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거나, 죽음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어로는 데스테드닝(döstädning)이라고 하는데, (dö)죽음, 스테드닝(städning)청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죽음청소가 될 터이나 그보다는 이미 굳어진 유품정리라는 단어를 써도 될 것 같습니다. 필자처럼 살아온 흔적을 엄청나게 쌓아놓아 치울 엄두를 내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품정리사라는 전문가가 등장한 지도 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데스테드닝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ㅇ 들 때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집을 말끔히 정리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답니다. ‘세상을 하직한 뒤에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어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데스테드닝을 했다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경우는 유품정리라는 개념이 딱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데스테드닝은 죽음을 앞둔 이가 스스로 정리한다는 뜻이 들어가는 것이므로 사전(死前)’ 혹은 자가(自家)’ 유품정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추억과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나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유품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에 따라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그 물건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데스테드닝은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청산할지 결정하고 처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평소에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 즉 절제된 삶(minimalism)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의 물건들을 처분하는 방식으로는 그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거나, 그 물건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관에 제공할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물건은 팔거나, 팔 수 없는 물건은 버리게 될 것입니다. 물건에 따라서는 버리는 비용을 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작가 자신이 유품정리를 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가(自家)’ 유품정리를 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 저는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을 모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제 사진들도 있어서 제가 살아온 날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처럼 저의 평범한 인생을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자료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의 작가는 자가 유품정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품들을 누가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고, 사진은 유품정리의 마지막 단계에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자가유품정리에 착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유념해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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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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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기행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분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현대문학과 당대문학으로 구분하고 있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중국의 당대 문학 시기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으로부터 현재까지의 문학을 포괄합니다.


그 중에서도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는 시기까지는 위화와 옌롄커가 대표작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중국의 현대문학작품들을 읽다 보니 위화와 옌롄커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도 섞여서 읽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서구의 모더니즘 기법을 도입하여 전통적인 서사 방식을 탈피한 실험적인 작품을 쓰고 있어서 선봉문학 (先鋒文學)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43일 사건>1987년부터 1992년 사이에 쓴 중편소설들 가운데 작가가 직접 고른 43일 사건, 여름 태풍, 어느 지주의 죽음, 조상등 네 작품을 담았습니다. 작가의 실험적인 작법의 영향인지 어느 지주의 죽음을 제외한 세 작품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43일 사건은 강박증에 휩싸인 화자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피해망상에 빠져 있는 것인데, 알 수 없는 누군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계획인데, 이들은 화자의 친구, 이웃, 심지어는 부모까지도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바로 43일입니다.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정체를 밝히려 애를 쓰던 화자는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자, 결국은 음모를 피하기 위해 화물열차에 몸을 싣고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음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면 화자의 강박증 혹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여름 태풍은 천재지변에 맞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첫 번째 재해는 지진이었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유라시아판에 속하지만 영토가 워낙이 넓다 보니 작은 지각판들과도 만나고 있기 때문에 지진이 잦은 편입니다. 사회기반이 취약하다보니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킨 대지진도 적지 않았습니다. 기억이 나는 것만으로도 1975년의 탕산대지진은 242,400명이 사망하고, 164,000명이 중상을 입는 등 20세기 최악이 지진이었습니다. 2008년에도 공식 사망자 87,227, 실종자 17,923, 부상자 374,653명 등의 피해를 낸 쓰촨 대지진이 있습니다.


사실 지진을 예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합니다만, 여름 태풍에서는 지진이 날거라는 예보가 나오자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세우고 생활하기 시작하지만 지진이 아니라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지진이 예보되었을 때는 학교에 있는 지진관측기를 지키는 소년 바이수는 지진이 올 거라는 신호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지진예보는 취소되었지만, 그리고 얼마 뒤에 지진이 발생하여 주민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어느 지주의 죽음은 중일전쟁이 벌어진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내용의 문학이 주를 이루던 항일 문학 시기(1937~1949)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중국 양민들을 괴롭히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살해하곤 했습니다. 이때 한겨울에 접어드는 시기에 지주의 아들 왕샹훠는 쑹황으로 이동하려는 일본군 부대를 엉뚱하게도 호수로 둘러싸인 구산으로 안내하면서 다리를 무너뜨려 고립시키고 말았습니다. 속은 것이 분노한 일본군이 그를 죽이고 말았지만, 다가오는 추위에 결국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묵숨을 바쳐 적을 물리치겠다는 항일의 의지가 읽혀지는 작품입니다.

 

조상은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나왔음 직한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함께 밭일을 하던 아내가 마을에 찾아든 방물장수의 물건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숲에서 나온 털북숭이 괴수가 아이를 안아 들고, 아이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놀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달려들고 마을사람까지 합세하여 괴수를 숲으로 쫓아냅니다. 괴수가 아이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기겁을 한 것을 보면 괴수가 조상이라는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4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296

2010915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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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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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중국현대문학기행을 함께 다녀온 분이 주신 책입니다. <평범한 인생>은 체코의 국민작가라고 불리우는 카렐 차페크의 작품입니다. <호르두발>, <별똥별>과 함께 차페크의 철학 3부작 소설의 완결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 소설은 각각 독립적인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특히 <평범한 인생>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서술로 삶에 대한 물음을 진솔하게 녹여낸 걸작이라고 합니다. <호르두발><별똥별>을 앞으로 읽어보겠습니다만, <평범한 인생>은 공감하는 바가 많았던 책읽기였습니다. 책을 주신 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평범한 인생>의 구조는 노신사 포펠씨가 정원을 가꾸는 의사를 찾아와 같은 학교를 다닌 벗의 안부를 묻으면서 시작합니다. 의사는 정원 가꾸는 취미를 함께 나눈 그가 이미 동맥경화증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참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면서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 대목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도입부에 해당하며, 1에서 34까지의 단락이 이어집니다. 첫단락은 쪽수를 달리하여 편집을 했는데, 34단락이 끝난 뒤에 포펠씨가 책을 돌려주러 정원에서 의사를 만나는 장면을 줄만 바꾸어 이어낸 것은 아쉬움이 남는 편집이었습니다. 의사는 죽은 이가 자신의 삶을 적은 이유를 우리 집에서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한 권 집어 보더니, 언젠가는 평범한 사람의 전기가 써져야 할 거라더군요.”라고 전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년퇴직한 철도공무원이 남긴 삶은 모두 34개의 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7단락까지는 어린 시절, 8단락은 청소년기, 9단락은 대학생 시기, 19단락까지는 직장과 가정의 평범한 삶을, 20단락에서부터는 다른 자아가 등장하여 갈등을 빚고 33-34단락에서 화합과 합치를 이루는 내용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전기를 남겨야 한다는 점에는 저도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젊어서는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꾼 적도 있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 꿈이 툏색되고 말았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른 지금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삶도 정리를 해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라는 것도 시작했을 때 끝까지 밀고 가지 않으면 중간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은 하고있는 일도 있고 해서 생각했던 책들을 시작하지 못한 경우도, 시작했다가 시나브로 중단한 경우도 있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은 언젠가는 정리해야할 저의 평범한 삶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삶이었다고는 하지만, 철도청에 취직이 되어 역무원으로 시작한 삶은 역장의 눈에 들어 역장의 딸과 결혼을 하고 나이들어 역장이 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철도청의 고위관리가 되었다는 점이나, 전쟁 중에는 역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적의 전략물자의 수송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전달하는 위험한 일도 불사한 작은 영웅이었습니다. 어찌보면 평범하지 않은 삶이었음에도 화자는 굳이 평범한 인생이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전기를 읽은 포펠씨가 자신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을 본 의사는 전 자신의 내면을 뒤져 보는 일 따위에 쓸 시간이 없습니다. ()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추악함을 볼만큼 봤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살아가면서 책을 한권 써보는 것도 좋겠다고 자주 권하곤 합니다. 세상에 나왔다는 흔적을 남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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