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5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석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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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으로 처음 만난 가즈오 이시구로는 난해하면서도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 <녹턴> <나를 보내지 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즈오 이시구로 전작 읽기의 과정입니다.


199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저명한 피아니스트 라이더씨가 연주회에 초청받아 중부 유럽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서 시작하여 도시를 떠날 때까지 34일 사이에 벌어지는 해괴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라이더씨는 이 도시를 처음 찾는다고 합니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시감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영국인 친구들을 다수 만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피아노연주가를 초대하였다면 일정을 관리해주는 누군가가 배치되어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고 일정을 관리해 줄만도 한데, 이 책에 나오는 도우미는 이야기 앞부분과 끝부분에 잠깐 나타나는 것으로 끝입니다. 화자의 행보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면 연주회장을 점검하고 연주할 피아노의 상태도 확인할 겸해서 연습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연주회 당일 겨우 두 시간의 연습시간을 낼 수 있었고, 연주회장의 피아노는 확인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라이더씨가 숙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그런 식입니다. 심지어는 누군가와 함께 일을 보러가는 라이더씨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동행하던 사람을 기다리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더구나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서 길사정도 모르는 그가 전차나, 버스 심지어는 차를 운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라이더씨가 방문하는 장소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옛 시가지와 주거지 그리고 황량한 시 외곽 지역까지 두루 섭렵하는데, 우연의 연속인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중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중간에 내려 찾아가도록 방치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막무가내이다 보니, 읽는 제가 화가 치밀 지경입니다. 그런가 하면 호텔의 포터인 구스타프는 딸과 외손자를 만나달라고 하는데, 구스타프의 딸 소피와 그녀의 아들 보리스를 만나면서 그들이 아내와 아들이라는 관계로 전개가 됩니다. 그렇다면 구스타프가 장인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보리스의 친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상황이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이어가는 라이더씨이지만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하늘에 여명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광장을 계속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점점 화가 치밀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온갖 일에 휘말려 가장 우선해야 할 일들은 뒷전으로 돌려버리고 엉뚱한 데에만 정신을 쏟았다. 게다가 내 평생 가장 중요한 밤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절망감이 분노와 뒤섞였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2192)”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일에 휩쓸려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도시 사람들 모두 라이더씨를 마치 영웅처럼 대우해주었지만, 이야기 끝에 이르면 평범한 것도 부족해서 무시를 당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라이더씨의 관심을 끌어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모습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인 까닭을 알 듯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각자 속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라이더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의욕만 앞섰을 뿐 해답을 주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요약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구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머물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빚어내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의 하모니라는 구절에 함축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독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입니다.


사람들도 라이더씨의 연주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과연 라이더씨는 일정이 잡혀있던 연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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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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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가 2012년에 기획한 여름 특집 문학방송 <몽테뉴와 함께 하는 여름>이 대중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방송 내용은 몽테뉴와 함께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이라는 부제를 단 <인생의 맛>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습니다. <인생의 맛>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몽테뉴 수상록>을 읽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앵테르의 기획은 프루스트, 호메로스,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등 10 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나라에 소개 되는대로 따라 읽고 있습니다.


<파스칼과 함께 하는 여름>은 지난해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습니다. <인생의 맛>을 맡았던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앙트완 콩파뇽교수가 맡았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의 말미에 방송에 나간 서른다섯 편에 여섯 편을 더하여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한편을 마지막에 썼다고 하는데 맞춰보라고 했지만, 저는 짐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파스칼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바로 <팡세>에 나오는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대목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인간은 사유하는 능력을 제외하고는 힘이 없는 약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팡세(Pensée)>의 원래 제목은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의 팡세>였던 것을 <팡세>로 줄였다고 합니다. ‘팡세는 사상, 생각, 회상, 금연 혹은 사색집이라는 의미입니다. 1662년에 파스칼이 죽은 뒤에 가족들이 발견한 유고를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924꼭지의 글이 담겨있습니다. 주로 기독교를 옹호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파스칼과 함께 하는 여름>의 머리말에서는 <팡세><몽테뉴를 반대함>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다룬 거의 모든 주제가 몽테뉴가 틀렸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몽테뉴의 <수상록>과 같은 형태를 따랐다는 점입니다. <수상록>을 읽는데 몇 년이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팡세> 역시 만만치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몽테뉴가 틀렸다를 전제로 한 글쓰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구절을 소개했습니다만, <팡세>에는 기억해둘만한 문구가 많다고 합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어를 제대로 사용한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도 수학자이며, 탁월한 물리학자, 철학자이면서도 독보적인 신학자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천재가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앵테르 방송의 ‘~와 함께 하는 여름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방송되는 것입니다. 책은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을 거친다고는 하지만 몇 쪽 분량의 짧은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주체가 되는 인물이 발표한 주요 작품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한편, 그 내용이 소략하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을 담당한 앙투안 콩파뇽을 파스칼의 사유를 다양한 이들의 생각과 비교하고 있어서 다른 인물에 비하여 이야기의 범위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스칼의 <팡세> 읽기에 도전해보려는 이유입니다.


<팡세>에서는 생각하는 법, 글 쓰는 법, 읽는 법에 관한 글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파스칼의 글은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소개하고, 두 주장이 다 틀렸음을 제시하고, 둘 중 각각의 올은 것은 간직하고 틀린 것은 거부하면서 둘을 조합하여, 결국 그 둘을 지양(止揚)하는 제3의 주장을 제안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제가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유해물질>을 쓰면서 채택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팡세>를 읽기로 한 성과가 더해지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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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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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을 읽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폴란드가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태고[太古, 폴란드어로는 프라비에크(prawiek)라고 합니다.]는 폴란드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작가는 태고가 우주의 중심에 놓인 작은 마을이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태고는 실제 폴란드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는 곳으로, 공간이지만 시간을 대변하는 장소이며, 시공을 초월하는 개념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단어라고도 했습니다.


이야기는 1914년에 시작됩니다. 폴란드는 18세기 후반부터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세 나라가 잠식하기 시작하여 1795년에는 삼국이 폴란드를 분할하여 1918년 독립을 선언하기 까지 분할 통치하였습니다. 폴란드가 독립한 상황은 잠시였을 뿐 1939년 나치 독일과 러시아가 분할했다가 1945년에 다시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태고의 시간들>은 태고에 있는 다양한 존재들, 태고 자체를 비롯하여 사람, 천사, 악령, 게임, , , 버섯균, 과수원, 죽은 자들, 넷으로 이루어진 것들 등, 인간과 유무형의 존재들의 시간들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 84개 꼭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태고는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명, 관념과 실제, 환상과 현실, 변화와 반복 등, 다양한 것들이 대립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곳입니다. 시간과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에 대한 지형학적 설명이 담긴 태고의 시간 다음에는 게노베파의 시간입니다. 1914년 여름 태고를 찾아온 러시아 군인들로부터 징집명령을 받은 남편 미하우가 전장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태고의 시간들>은 미하우와 게노베파로부터 3대에 걸친 인물들과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199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태고가 독일 군인에게 점령되고 이어서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와 전투가 벌어지면서 태고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삶이 파괴됩니다. 독일군이 점령했을 때는 유대인들이 잡혀가고,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태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개됩니다.


러시아군과 독일군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현재 진행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을 폴란드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심오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크워스카의 삶의 방식에 관한 부분입니다. “크워스카는 외부의 것을 내면으로 동화시키면서 세상을 배웠다. 쌓이기만 하는 지식은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거나 단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저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배우는 사람은 끝없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이 존재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19)”


상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 특히 빈번하게, 집중적으로 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경우, 상상은 물질의 파편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삶의 기류에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뒤틀리면서 변화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그것이 충분히 강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물론 기대했던 바가 전부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131)”


특히 태고의 지배계급인 상속자 포피엘스키가 시작하는 게임에서는 신화와 성경의 일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예술은 신화적 언어의 수호자이다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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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이후의 슬픔 - 상실의 아픔과 함께 삶으로 나아가는 법
호프 에덜먼 지음, 김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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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넘어서는 코로나 사태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고,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응급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등, 이유도 다양합니다. 코로나 초기에는 확진자를 유가족과 격리하여 장례를 치르게 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상실의 아픔과 함께 삶으로 나아가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슬픔 이후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저자는 열네 살에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뒤 상실감과 슬픔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겪어온 자신을 살펴보기 위하여 연구에 착수하였고, 어릴적 어머니를 잃은 여성 92명을 인터뷰하여 엮은 <엄마 없는 딸들>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그리고 39년이 지났지만 그 슬픔을 삭이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할 손쉬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중한 사람과 사별한 아픔이 있는 남성과 여성 8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슬픔 이후의 슬픔>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사별을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흔히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집전하신 스님께서는 곡을 하지 말고 마음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라 하셨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애통해하면 돌아가신 분들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좋은 곳으로 가실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픔 이후의 슬픔>의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경우에는 평생을 두고 애도하라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 자연스럽게 엷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상을 통하여 기억을 강화하면 기억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을 통하여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별을 겪은 이의 단기적인 고통을 완화하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애도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별을 극복한다는 생각을 극복하고 사별은 물론 사별이 수반하는 모든 결과를 함께짊어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20)”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사별한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애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은 저자의 인터뷰에 응한 81명의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저자의 질문을 받고 사별한 사람과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고, 인터뷰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응답을 만들어내기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저자를 비롯하여 저자와 인터뷰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삶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특별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저자가 미처 착안하지 못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을 하고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저자를 비롯하여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람들로 전문가들의 돌봄이 필요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사례를 일반화하여 잘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생 애도하면서 살아가게 만들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의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책 쓰기에서 피해야 할 요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구 뒤섞어서 글 읽는 흐름을 휘저어놓기도 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을 삶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않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딱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더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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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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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도 인연을 따라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에서 자신의 책을 찾아 불태우는 작가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인 리처드 오벤든이 쓴 <책을 불태우다>는 이라크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 앗시리아 제국의 앗슈르바니팔이 니네베에 조성했던 거대한 점토서판의 도서관으로부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의 파괴와 발굴 과정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박물관과 기록관들이 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저자는 진실이 있었고, 거짓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온 세상과 맞서면서까지 진실을 고수한다면 당신은 미친 것이 아니다(11)”라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서관과 기록관이야말로 진실을 고수하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역사의 모든 시기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공격의 대상이었고, 사서와 기록관리자들은 지식 보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잃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책을 불태우다>역사 속의 중요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탐구해 지식 보관소 파괴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그에 저항하기 위해 종사자들이 개발한 대응을 제시해보려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영국이 가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국교로 정하면서 국내에 산재한 가톨릭 수도원을 폐쇄하면서 소장도서들이 파괴된 사실을 비롯하여 현대에 들어서도 정치적, 이념적인 이유로 도서관들이 파괴된 사례들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건축물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파괴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만, <책을 불태우다>에서는 당시 도서관과 기록관이 파괴의 중점 대상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제압하기 위하여 출정한 영국군은 미국 의회 도서관을 파괴하여 소장품을 불태웠습니다. 벨기에 루뱅대학의 도서관은 독일군에 의하여 불탔습니다. 침략군은 도서관이나 기록관을 불태우기도 했지만, 소장품들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주로 유럽에서 일어난 도서관 파괴행위의 역사적 사례들을 정리하는 한편 미주대륙과 아프리카, 중동지역까지 대상을 넓히고 있습니다. 약탈과 파괴행위를 막기 위하여 도서관이나 기록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대응했는지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의 한계 때문인지 동아시아 지역은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사건을 비롯하여,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조선왕조의 기록물을 약탈해간 사건도 포함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실록(實錄)을 편찬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분산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의 사관과 해인사에 보관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내사고인 춘추관 실록관과 외사고인 충주, 전주, 성주 등 4대 사고에 보관하였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사고를 비롯하여 충주와 성주사고가 불타 멸실되었지만 전주사고가 살아남아 조선왕조실록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선의 역사기록물을 파괴한 행위와 이를 지키기 위한 조선의 저항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관련부서에서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 저자에게 알려 이 책의 개정판에 반영토록 하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도서관과 기록관의 파괴의 역사를 소개한 끝에 이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첫째, 그들은 사회 전체 및 그 안의 특정 공동체의 교육을 지원한다. 둘째, 그들은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셋째, 그들은 시민의 행복과 개방 사회의 원칙을 뒷받침한다. 핵심적인 권리를 보존하고 의사결정의 완전성을 고무한다. 넷째, 그들은 고정된 평가기준을 제공해 진실과 거짓이 투명성검증인용재생력을 통해 판단될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그들은 각 사회가 그들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속에 뿌리내리도록 돕는다. 그 사회와 문화의 문자화된 기록을 보존함으로 써다.(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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