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5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석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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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으로 처음 만난 가즈오 이시구로는 난해하면서도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 <녹턴> <나를 보내지 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즈오 이시구로 전작 읽기의 과정입니다.


199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저명한 피아니스트 라이더씨가 연주회에 초청받아 중부 유럽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서 시작하여 도시를 떠날 때까지 34일 사이에 벌어지는 해괴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라이더씨는 이 도시를 처음 찾는다고 합니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시감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영국인 친구들을 다수 만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피아노연주가를 초대하였다면 일정을 관리해주는 누군가가 배치되어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고 일정을 관리해 줄만도 한데, 이 책에 나오는 도우미는 이야기 앞부분과 끝부분에 잠깐 나타나는 것으로 끝입니다. 화자의 행보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면 연주회장을 점검하고 연주할 피아노의 상태도 확인할 겸해서 연습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연주회 당일 겨우 두 시간의 연습시간을 낼 수 있었고, 연주회장의 피아노는 확인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라이더씨가 숙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그런 식입니다. 심지어는 누군가와 함께 일을 보러가는 라이더씨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동행하던 사람을 기다리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더구나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서 길사정도 모르는 그가 전차나, 버스 심지어는 차를 운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라이더씨가 방문하는 장소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옛 시가지와 주거지 그리고 황량한 시 외곽 지역까지 두루 섭렵하는데, 우연의 연속인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중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중간에 내려 찾아가도록 방치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막무가내이다 보니, 읽는 제가 화가 치밀 지경입니다. 그런가 하면 호텔의 포터인 구스타프는 딸과 외손자를 만나달라고 하는데, 구스타프의 딸 소피와 그녀의 아들 보리스를 만나면서 그들이 아내와 아들이라는 관계로 전개가 됩니다. 그렇다면 구스타프가 장인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보리스의 친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상황이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이어가는 라이더씨이지만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하늘에 여명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광장을 계속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점점 화가 치밀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온갖 일에 휘말려 가장 우선해야 할 일들은 뒷전으로 돌려버리고 엉뚱한 데에만 정신을 쏟았다. 게다가 내 평생 가장 중요한 밤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절망감이 분노와 뒤섞였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2192)”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일에 휩쓸려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도시 사람들 모두 라이더씨를 마치 영웅처럼 대우해주었지만, 이야기 끝에 이르면 평범한 것도 부족해서 무시를 당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라이더씨의 관심을 끌어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모습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인 까닭을 알 듯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각자 속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라이더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의욕만 앞섰을 뿐 해답을 주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요약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구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머물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빚어내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의 하모니라는 구절에 함축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독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입니다.


사람들도 라이더씨의 연주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과연 라이더씨는 일정이 잡혀있던 연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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