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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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도 인연을 따라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에서 자신의 책을 찾아 불태우는 작가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인 리처드 오벤든이 쓴 <책을 불태우다>는 이라크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 앗시리아 제국의 앗슈르바니팔이 니네베에 조성했던 거대한 점토서판의 도서관으로부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의 파괴와 발굴 과정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박물관과 기록관들이 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저자는 진실이 있었고, 거짓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온 세상과 맞서면서까지 진실을 고수한다면 당신은 미친 것이 아니다(11)”라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서관과 기록관이야말로 진실을 고수하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역사의 모든 시기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공격의 대상이었고, 사서와 기록관리자들은 지식 보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잃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책을 불태우다>역사 속의 중요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탐구해 지식 보관소 파괴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그에 저항하기 위해 종사자들이 개발한 대응을 제시해보려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영국이 가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국교로 정하면서 국내에 산재한 가톨릭 수도원을 폐쇄하면서 소장도서들이 파괴된 사실을 비롯하여 현대에 들어서도 정치적, 이념적인 이유로 도서관들이 파괴된 사례들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건축물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파괴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만, <책을 불태우다>에서는 당시 도서관과 기록관이 파괴의 중점 대상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제압하기 위하여 출정한 영국군은 미국 의회 도서관을 파괴하여 소장품을 불태웠습니다. 벨기에 루뱅대학의 도서관은 독일군에 의하여 불탔습니다. 침략군은 도서관이나 기록관을 불태우기도 했지만, 소장품들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주로 유럽에서 일어난 도서관 파괴행위의 역사적 사례들을 정리하는 한편 미주대륙과 아프리카, 중동지역까지 대상을 넓히고 있습니다. 약탈과 파괴행위를 막기 위하여 도서관이나 기록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대응했는지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의 한계 때문인지 동아시아 지역은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사건을 비롯하여,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조선왕조의 기록물을 약탈해간 사건도 포함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실록(實錄)을 편찬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분산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의 사관과 해인사에 보관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내사고인 춘추관 실록관과 외사고인 충주, 전주, 성주 등 4대 사고에 보관하였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사고를 비롯하여 충주와 성주사고가 불타 멸실되었지만 전주사고가 살아남아 조선왕조실록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선의 역사기록물을 파괴한 행위와 이를 지키기 위한 조선의 저항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관련부서에서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 저자에게 알려 이 책의 개정판에 반영토록 하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도서관과 기록관의 파괴의 역사를 소개한 끝에 이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첫째, 그들은 사회 전체 및 그 안의 특정 공동체의 교육을 지원한다. 둘째, 그들은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셋째, 그들은 시민의 행복과 개방 사회의 원칙을 뒷받침한다. 핵심적인 권리를 보존하고 의사결정의 완전성을 고무한다. 넷째, 그들은 고정된 평가기준을 제공해 진실과 거짓이 투명성검증인용재생력을 통해 판단될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그들은 각 사회가 그들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속에 뿌리내리도록 돕는다. 그 사회와 문화의 문자화된 기록을 보존함으로 써다.(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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