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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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요리강습을 받으러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혼자서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이가 들어 자식들은 독립해 떠났는데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가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재혼도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밤에 우리 영혼은>은 배우자와 사별하고 각각 혼자 살아오던 70이 넘은 남녀가 어느 날부터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실험을 해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여성이 먼저 제안하고 남성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두 사람의 이런 행동은 금세 마을 사람들의 입초시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도 두 사람, 특히 여성인 에디 무어는 초연합니다. 이 나이에 남이 뭐라든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란 생각입니다.


애디가 루이스에게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내자는 제안을 하게 된 이유는 낮에는 일상적인 일을 하기때문에 문제없이 지내지만 밤이 되면 심해지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따듯하 손길이 잠드는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관계까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 비슷하지만 결혼은 아니고 가끔 밤에 루이스가 애디의 집으로 와서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서 소문은 금세 났고 마을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지만, 두 사람이 낮에도 식당에 함께 가서 식사를 하는 등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나서는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두 사람은 저녁에 만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공유합니다. 성장할 때의 이야기는 물론 결혼하게 되는 과정, 결혼생활 등. 두 사람은 모두 상대의 과거를 이해하는 쪽입니다. 심지어 루이스의 바람까지도. 결국 루이스는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거네요.(109)"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자식들입니다. 루이스의 딸은 잠시 걱정하다 말았지만 애디의 아들 진은 다른 반응입니다. 아내와 갈등을 빚어 아들 제이미를 애디에게 맡기게 됩니다. 소극적이던 제이미는 애디의 집에 와서 야구도 하는 등 활발해졌습니다.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는 제이미에게 문제가 되지않습니다.


진은 어렸을 적에 집에서 누이와 놀다가 짓궂게 쫓는 바람에 도로로 달아나던 누이가 차에 치어 숨지면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아버지가 누이의 죽음이 진의 책임인 것처럼 냉담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 배경 탓인지 진을 매사에 열린 마음은 아닌 듯합니다. 아내가 친정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제이미를 애디에게 맡겼던 것인데 아내와의 갈등이 풀어지면서 제이미를 데려갑니다.


제이미가 떠난 뒤에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짐작했을 터이나 사실 두 사람은 하지않았던 일, 성적으로 결합하는 일도 시도해봅니다. 서로를 안고, 애무해보지만 결합에 이르지 못합니다. 루이스가 발기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루이스는 애디가 실망했을까 걱정사지만 에디는 걱정하지말라고, 다음에 다시 해보자고 합니다.


진은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두사람이 만나지 말라고 강요를 하게됩니다. 애디도 아들의 강요를 수용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콜로라도에 있는 홀트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진행됩니다. 그런 까닭에 주민들 성향이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젊어서 아내가 살아있을 때 바람을 피웠던 적도 있어서 딱히 보수적이라 하기에도 조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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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
마르크 오제 지음, 서희정 옮김 / 황소걸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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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라는 소개글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은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노년에 쓴 수필집입니다. 마르크 오제는 젊었을 적에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토고에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이데올로기와 사회 조직, 종교, 주술 등의 주제를 다룬 저작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장년에는 비서구 사회에 대한 연구에서 서구사회로 연구범위를 확장하였는데, 전통적인 장소에 대비되는 비장소(non-places) 개념으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은 마르크 오제가 노년에 이르러 인류학적 관점으로 쓴 행복에 관한 짧은 수필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문학작품, 샹송과 음식, 여행과 영화 등을 통해 풀어 썼다는 것입니다. 


제목 ‘일상 속 행복’은 프랑스어 제목 <보뇌르뒤주르(bonheur du jour)>를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였는데, 굳이 저자의 전공인 인류학자를 들먹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보뇌르뒤주르는 1760년 무렵 처음 등장한 작은 여성용 책상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책상과 화장대를 겸한 부인용 가구였습니다. 그 무렵 취미로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여성들이 하는 활동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데서 행복을 추구했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국제연합(UN)이 행복을 국가발전정책의 핵심과제로 삼았고, ‘사회적 행복’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국제행복전망대도 설립했다고 전합니다. 국제연합은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를 통해 세계 행복 순위도 발표합니다. 2024년 우리나라는 세계행복순위에서 143개국 가운데 52위에 올랐습니다. 7년 연속 1위에 오른 핀란드를 비롯하여 10위 이내에 든 나라들의 면면을 보면 개인의 삶의 만족도, 사회적 지지, 기대 수명, 관대함, 부정부패 유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산출한 국가별 행복 지수에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50위에 오른 이탈리아와 비교해보아도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비슷할지 의문이 듭니다.


국제연합의 세계행복지수를 거론한 이유는 공공선의 의식과 사회의식에 바탕한 이 지수가 과연 개인의 행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종전 방식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인류학적 접근법으로 우리가 각자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의 순간과 움직임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22쪽)”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수가 아닌 복수의 행복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인생에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이 행복은 어떤 풍파에도 버티고 살아남아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된다.(24쪽)”라고도 했습니다. 그 찰나의 행복이 품고 있는 비밀은 그 행복이 사라진 뒤에야 우리가 그 진가를 절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행복의 형이상학’을 정립하기보다 행복한 순간, 찰나의 감상, 변하기 쉬운 추억을 다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이란 정의하기 어렵고,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손에 잡기도 어렵다.”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은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문학작품, 샹송과 음식, 여행과 영화 등을 인용하여 설명했는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 즉 일상속에서 느끼는 작고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던 행복, 여행과 만남, 그리고 첫 번째 경험, 글쓰기를 통한 창작, 노래부르기, 심지어는 늙어감도 작은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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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해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장홍규 옮김 / 소화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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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도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선가 나와서 읽어보게 된 책입니다. 어렵게 책을 구해 읽기 시작하면서 <검푸른 해협>은 고려 충렬왕 때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야기는 1214년 금의 중도를 함락시키고 중국의 동북면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던 몽골은 1225년에 발생한 몽골 사신 저고여의 피살사건을 구실로 1231년 살례탑이 이끄는 군대를 보내 고려를 침공한 1차 침략을 시작으로 1254년 차라대의 6차 침입이 1259년까지 이어졌다. 무려 29년에 이르는 기간 간헐적으로 고려를 침입하여 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2321차 침입한 몽골군이 퇴각한 뒤에 고려 조정은 강화로 천도하여 해군이 없는 몽골의 침략에 대처하게 되었다.


<검푸른 해협>의 이야기는 1259년 오랜 계속된 몽골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고려 내부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몽골과의 화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시작합니다. 몽골은 고려와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중국 본토에서도 송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고종의 태자 전(원종)은 고려의 항복 의사를 전하기 위해 몽골에 갔을 때 몽골의 헌종이 죽고 세조(쿠빌라이)가 제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원종은 세조에게서 따듯한 느낌을 받아서 오랫동안 세조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고려에서 제안한 화친을 받아들이면서도 고려를 지배할 야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고려인들 가운데는 몽골에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최탄이라는 자는 60개 성을 들어 몽골에 투항하여 고려의 영토를 몽골에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조이라는 자는 일본과의 통교를 세조에게 권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조는 일본으로 가는 사신을 안내할 것을 원종에게 명령하였고, 일본이 통교를 거부하자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고려에서 담당할 것을 명령합니다. 결국 고려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골의 일본 정벌을 전적으로 지원하게 되는데, 두 차례의 출전은 때마침 닥친 태풍으로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에 따르면 <검푸른 해협>은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 <몽골침략의 신연구(元寇新硏究>에서 영감을 얻어 분에이노에키(文永)와 코안노에키(弘安)라고 하는 두 차례의 몽골침략이 이루어진 과정을 고려 측의 입장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는 물론 <고려사(高麗史)><원사(元史)>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원제목은 <후토(風濤)>라고 했는데, 이는 원 세조가 고려 원종에 조서를 내려 원이 일본에 보내는 국사의 길잡이를 하는데 있어 파도와 바람이 험하여(風濤險阻)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일찍이 통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삼지 말지어다.”라고 한 문장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붙인 <검푸른 해협>이라는 제목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모두에 태자 전(원종)이 몽골에 입조하기 위하여 강화를 나서는 장면에서 나오는 섬의 북단 산리포(山里浦)에서 한강 하구로 배를 띄웠다. 강화도와 본토 사이의 수역은 이 근처가 가장 넓었다. 그리고 한강의 물줄기와 조수가 만나는 곳에서, 검푸른 파도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 기슭 사이를 넘나들었다.(13)”라는 대목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2차 정벌에서 실패한 김방경이 전장을 회고하는 장면 시체는 모두 반라 상태로, 머리를 바닷물에 처박은 것처럼 바다 속에 잠겨 있었고, 시체와 시체 사이에는 검푸른 바닷물이 일렁거리며 서로 부딪쳤다.(337)”라는 대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역사소설 <검푸른 해협>은 오랜 저항 끝에 원나라에 복속하여 원나라의 압제에 놓인 고려의 비극을 태평양전쟁에서 패하여 미군에게 점령된 일본의 사정에 비유한 우의(寓意)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제외하고는 일본 본토에서 전투가 치러진 유일한 외란이었던 원구(元寇) 혹은 몽골습래(蒙古襲來)라고 하는 국가적인 난을 당사국이 아닌 조정국으로서, 그리고 몽골의 일본정벌의 전진기지로서 가혹한 수탈을 당해야 했던 고려의 사정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일본에서는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침입, 삼별초의 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 정도로 이해하고 있던 당시의 사정을 삼자의 시각, 조금은 고려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서에 가까운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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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미니북)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1
위다 지음,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 원화 그림, 손인혜 옮김 / 더모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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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오래 별러왔던 베네룩스 여행을 떠나려고 예약을 했습니다. 아내의 치료가 끝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합니다. 여행 일정에는 벨기에의 앤트워프도 포함됩니다. 앤트워프는 북쪽에 있는 네덜란드를 지나 북해로 흘러드는 스헬트 강변에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입니다. 그 앤트워프에는 대성당과 중세시대의 요새인 헤트 스테인을 구경할 예정입니다. 특히 대성당의 경우는 미사가 없다면 안으로도 들어가 볼 예정입니다. 루벤스가 그린 천정화 <성모 승천>과 제단화 <십자가 세우기>, <십자가에서 내리기>, <그리스도의 부활> 등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앤트워프의 성모 대성당의 루벤스 명화와 관련이 있는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읽어본 이유입니다. 어렸을 적에 동화와 만화영화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만, 오래전에 읽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아내 덕에 저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영국 작가 위다(본명은 마리아 루이스 드 라 라메)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인 아버지가 플랑드르 지방을 여행하다가 듣게 된 플랜더스의 개에 대한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위다의 <플랜더스의 개>가 먼저인지, 일본에서 이 작품을 토대로 만든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가 먼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주인공인 개 파트라슈를 모른다고 합니다. <플랜더스의 개>가 영어로 쓰였는데, 정작 이 지방에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안트베르펜 관광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얀 코르텔이 이곳을 찾아온 일본 관광객들이 프랜더스의 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으면서 원작을 찾아 읽고 이 작품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합니다.


가난하지만 그림 그리기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넬로는, 산타클로스인 성 니콜라스의 애칭이라고 합니다, 풍차 방앗간을 운영하는 마을 부자의 딸 알루아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본 알루아의 아버지 코제씨가 들어 훼방을 놓게 되면서 마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넬로가 마지막 희망으로 삼은 안트베르펜에서 열리는 미술대회에서도 부잣집 아들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넬로가 나무꾼 미셸이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본 유명화가는 그를 제자로 삼고자 했고, 눈이 내리는 날 안트베르펜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 재산이라 할 2천 프랑이 든 지갑을 잃어버려 낙심한 코제씨도 넬로가 이를 찾아주면서 마음을 열게 되지만 모두 늦어버렸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 들어 살고 있던 집마저 주인에게 돌려주게 된 넬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안트베르펜에 있는 대성당에 들어가 루벤스의 명화를 바라보면서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넬로가 작품을 출품한 미술대회는 상금이 200프랑이었기 때문에 넬로에게는 살아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술대회에 출품되는 작품을 국외예술(outsider art) 혹은 원시미술(primitive art)이라고도 하는 순진 미술(naive art)이라고 한다는 것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있는 순진미술관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순진 예술은 공식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배운 예술가가 자신만의 형식을 창조하여 예술적 경지에 이른 작품을 말합니다당시에도 그림을 그려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코제씨같은 부자도 그림을 그리는 넬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할아버지와 넬로 그리고 노쇄한 파트라슈까지 숨을 거두는 비극적 결말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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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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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도쿄를 방문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가와사키, 요코하마를 거쳐 가마쿠라까지 가면서 구경한 도쿄만 풍경을 떠올리는 다음과 같은 독자의 감상평의 한 대목이 <동경만경>을 읽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풍경 묘사가 매우 뛰어나고, 등장인물도 각기 개성이 또렷해 인상적이다.” <동경만경>은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입니다.


물론 도쿄를 무대로 하지만 핵심 배경은 시나가와와 만 건너편의 오다이바입니다. 남자주인공 료스케는 시나가와에 있는 물류창고에서 일하고, 여자주인공 미오(료코)는 오다이바에 있는 고층건물에 있는 홍보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발전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조연으로는 료스케의 동료이자 기숙사의 옆방에 사는 오스기와 그의 애인 유코, 그리고 유코의 소개로 료스케와 만나게 되는 마리, 그리고 료스케가 일하고 있는 물류창고를 비롯하여 시나가와 주변의 풍경을 취재하러 온 작가 아오야마 등이 등장합니다. 여자주인공 쪽은 회사 동료 요시노, 상사 구보과장, 그리고 아버지의 권유로 맞선을 보게 된 초등학교 동창 유키하루 등이 등장합니다.


만만치 않은 숫자의 조연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관계의 촘촘하게 엮어 긴박감이 느껴지도록 만든 작가의 역량이 느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작가 아오야마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동경만경>이라는 제목의 연재소설을 통하여 이름은 다르지만 역시 이 책의 주인공이 펼쳐내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간다는 점입니다. 소설 속에 소설이 등장하는 액자소설에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는 많이 보았습니다만 같은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특이한 액자소설을 처음 만났습니다.


앞서 이 소설이 풍경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고 적었습니다만, 풍경 묘사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프루스트 풍의 묘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료스케와 료코가 처음 만나 도쿄만 모노레일을 탔을 때의 장면을 소개합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모노네일 차창 밖으로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아름다운 공항풍경이 펼쳐졌다. 광활한 활주로를 따라 밝혀진 파랑, 노랑, 빨강 불빛을 받으며 터미널에 정박한 여객기들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29)”


앞서 주연과 다수의 조연들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최근의 일본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행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학생과 여선생, 여직원과 직장상사 사이의 일회성 관계, 티격태격하면서도 5년을 이어가는 사랑, 친구 애인의 소개로 만난 여성과의 의미 없는 사랑. 그런가 하면 남자주인공에 관심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작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리망에서 만나 일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관계가 깊은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관계가 이 이야기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첫 만남에서 가명을 쓰고 직장도 속였던 여자주인공에 대하여 어떤 감정이 남아있었던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메일을 보낸 남주인공이나 그 메일에 대해 답신을 보낸 여주인공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몇 차례의 만남 끝에서야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은 류스케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출근을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합니다만, 이별을 통보한 여친이 여주인공의 실체를 밝히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발전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위기로 치닫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이야기를 발전시킬 여력이 없는 작가가 연재를 쉬는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소설 속의 작가가 토로하는 고민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작가의 재능으로 전개하는 것 아니냐는 료스케의 질문에 재능? 그런 건 데뷔작을 쓰는 시점에서 모두 버리고 없어요. 그 후에는 같은 걸,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반복해 쓸 뿐이에요. () 내 소설은 거의 다 이런 패턴의 반복이에요.(180)” 사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작가들은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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