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해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장홍규 옮김 / 소화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아마도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선가 나와서 읽어보게 된 책입니다. 어렵게 책을 구해 읽기 시작하면서 <검푸른 해협>은 고려 충렬왕 때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야기는 1214년 금의 중도를 함락시키고 중국의 동북면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던 몽골은 1225년에 발생한 몽골 사신 저고여의 피살사건을 구실로 1231년 살례탑이 이끄는 군대를 보내 고려를 침공한 1차 침략을 시작으로 1254년 차라대의 6차 침입이 1259년까지 이어졌다. 무려 29년에 이르는 기간 간헐적으로 고려를 침입하여 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2321차 침입한 몽골군이 퇴각한 뒤에 고려 조정은 강화로 천도하여 해군이 없는 몽골의 침략에 대처하게 되었다.


<검푸른 해협>의 이야기는 1259년 오랜 계속된 몽골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고려 내부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몽골과의 화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시작합니다. 몽골은 고려와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중국 본토에서도 송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고종의 태자 전(원종)은 고려의 항복 의사를 전하기 위해 몽골에 갔을 때 몽골의 헌종이 죽고 세조(쿠빌라이)가 제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원종은 세조에게서 따듯한 느낌을 받아서 오랫동안 세조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고려에서 제안한 화친을 받아들이면서도 고려를 지배할 야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고려인들 가운데는 몽골에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최탄이라는 자는 60개 성을 들어 몽골에 투항하여 고려의 영토를 몽골에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조이라는 자는 일본과의 통교를 세조에게 권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조는 일본으로 가는 사신을 안내할 것을 원종에게 명령하였고, 일본이 통교를 거부하자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고려에서 담당할 것을 명령합니다. 결국 고려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골의 일본 정벌을 전적으로 지원하게 되는데, 두 차례의 출전은 때마침 닥친 태풍으로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에 따르면 <검푸른 해협>은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 <몽골침략의 신연구(元寇新硏究>에서 영감을 얻어 분에이노에키(文永)와 코안노에키(弘安)라고 하는 두 차례의 몽골침략이 이루어진 과정을 고려 측의 입장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는 물론 <고려사(高麗史)><원사(元史)>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원제목은 <후토(風濤)>라고 했는데, 이는 원 세조가 고려 원종에 조서를 내려 원이 일본에 보내는 국사의 길잡이를 하는데 있어 파도와 바람이 험하여(風濤險阻)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일찍이 통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삼지 말지어다.”라고 한 문장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붙인 <검푸른 해협>이라는 제목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모두에 태자 전(원종)이 몽골에 입조하기 위하여 강화를 나서는 장면에서 나오는 섬의 북단 산리포(山里浦)에서 한강 하구로 배를 띄웠다. 강화도와 본토 사이의 수역은 이 근처가 가장 넓었다. 그리고 한강의 물줄기와 조수가 만나는 곳에서, 검푸른 파도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 기슭 사이를 넘나들었다.(13)”라는 대목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2차 정벌에서 실패한 김방경이 전장을 회고하는 장면 시체는 모두 반라 상태로, 머리를 바닷물에 처박은 것처럼 바다 속에 잠겨 있었고, 시체와 시체 사이에는 검푸른 바닷물이 일렁거리며 서로 부딪쳤다.(337)”라는 대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역사소설 <검푸른 해협>은 오랜 저항 끝에 원나라에 복속하여 원나라의 압제에 놓인 고려의 비극을 태평양전쟁에서 패하여 미군에게 점령된 일본의 사정에 비유한 우의(寓意)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제외하고는 일본 본토에서 전투가 치러진 유일한 외란이었던 원구(元寇) 혹은 몽골습래(蒙古襲來)라고 하는 국가적인 난을 당사국이 아닌 조정국으로서, 그리고 몽골의 일본정벌의 전진기지로서 가혹한 수탈을 당해야 했던 고려의 사정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일본에서는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침입, 삼별초의 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 정도로 이해하고 있던 당시의 사정을 삼자의 시각, 조금은 고려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서에 가까운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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