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엄마 어울누리 다문화사회 어린이 생활동화 1
임선일 지음, 임다연 그림 / 이담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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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이 읽던 동화책도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시나브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임선일박사의 첫 번째 동화 <언니, 엄마>를 읽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옛 기억을 일깨워주는 기회도 되고, 어느새 우리 사회에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계시다 보니 늘어가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을 많이 경험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일이 더 많이 눈에 띄는 법입니다. 저자께서 다문화가정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읽을거리,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바로 이담북스에서 내놓은 <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다문화 교안;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713354>을 읽고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가 준비할 것을 공부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언니, 엄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농촌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가 딸을 위하여 재혼을 결심하면서도 필리핀에서 신부를 맞어야 하는 상황을 딸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가슴이 울립니다. 아버지를 잘 이해하는 딸이지만 우리와 모습도 다르고 나이도 많지 않은 새엄마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온 젊은 새엄마는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동화는 처음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에 잘 쓰여져 쉽게 읽히고 이해가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외국에서 온 분들이 모두 줄리씨처럼 활달하고 우리네 사회에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의 사례도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아들이 필리핀에서 나타나 당혹해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받아들이기까지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아버지가 보이는 반응이 굳이 필리핀에서 온 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암으로 아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된 어머니가 헤어진 아버지에게 보낸 것인데, 재혼을 앞두고 들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헤어진 어머니를 떠올리는 아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학교행사는 어머니가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아버지가 가면 쑥스러워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진이도 아빠가 학교에 오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외국에서 온 새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이나 지원체계가 갖춰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시골학교에서 영어회화교육을 맡게 된 줄리씨처럼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안으로 보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이들과 함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임선일박사의 동화 <언니, 엄마>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따님이 그린 삽화도 예쁜 이야기를 한층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 같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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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 그린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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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소개하는 책은 타이먼 스크리치교수의 <에도의 몸을 열다>입니다. ‘몸을 열다’라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도의 몸을 열다>라고 대상이 구체화되면 에도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본 18세기의 일본’이라는 부제를 보면 난학과 해부학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이 에도시대에 들어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하는구나’ 정도로 좁힐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여는’ 주체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닫혀 있는 문을 여는 힘이 안으로부터 작용하는지, 혹은 밖으로부터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힘에 대한 반응의 크기도 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입니다. 그렇다면,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고, 에도가 난학을 수용하면서 에도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오늘의 일본이 가능하게 된 전환점이 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겠다고 미루어 짐작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내부에서 평가하는 것과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다싶은데, <에도의 몸을 열다>는 18세기에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타이먼 스크리치교수라는 영국인의 눈으로 에도문명이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는지 살피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13세기 경기병을 앞세운 몽고제국의 유럽침략은 유럽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송을 거쳐 금-원-명으로 이어지는 중국문명의 발전은 눈부신바 있어 암흑기라 부르던 유럽문명을 앞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문명은 유럽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명에는 부침이 있기 마련, 유럽이 르네상스운동을 통하여 대두된 인문주의의 확산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이번에는 동아시아문명이 침체기에 들어섰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저자는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풍부한 미술작품을 인용하여 18세기 당시의 에도사회가 서양문명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일본 역시 근대에 이를 때까지 외국과의 교류에 적극 나서지 않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럽 열강과 당시 부상하던 미국이 아시아항로를 개척하여 유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일본을 개방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역사학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적 요구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 3국에 전해진 서양의학을 중국과 우리나라는 적극 수용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일본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을 버리기까지 하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에도의 몸을 열다>를 통하여 그 윤곽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칼’을 이야기의 키워드로 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근대미술에 등장하는 칼, 특히 정물과 해부학실습에 관한 그림에 등장하는 칼에 담긴 의미와 일본의 전통 사무라이문화에 등장하는 칼의 의미를 좇아 일본이 난의학, 특히 외과영역의 서양의학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사유로서는 사물을 전체로 조감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네덜란드 문화에서는 닫힌 사물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에 내부를 열어보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역시 전국시대까지는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다음 내린 무기몰수령 이후 사무라이계급의 ‘칼’은 상징적인 존재로 무력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칼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네덜란드의 문물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칼과 가위와 같은 날붙이들에 대한 문화적 공감이 가능했던 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2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의학, 특히 칼을 매개로 하는 해부학, 외과학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이미 18세기 초반부터 네덜란드로부터 외과도구들이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1800년에는 니시구라쿠(西苦樂)가 <난의 두부외과수술도(蘭醫 頭部外科手術圖)>를 그렸다고 하니 서양의학의 외과수술법이 일본에는 크게 거부감을 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동아시아국가들의 전통의학 영역에서는 해부나 외과수술에서 주로 하는 신체를 절개하는 행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시각에서 서양의학의 해부학이나 외과수술은 경이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난의학을 행하는 자들에게 해부학 지식은 필수사항이었던 관계로 유럽해부학교과서를 저본으로 하여 <해체신서>가 출간된 것은 1774년이었지만, 일본전통의학에서는 신체를 절개하는 시술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난의학에 관심을 많은 일부의 호사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체신서의 저자가 강조한 다음 글을 보면 현재의 의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의학에서의 해부학의 중요성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겠습니다. “해부학 책은 도보(圖譜)를 비교해 보며 읽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각 조목에 반드시 그림이 있다. 또 부인(符印)을 적어서 관람하는 데 편리하게 했다. 독자는 적절하게 서로 비교해 보는 데 소홀함이 없게 하라.(169쪽)”


결국은 외과시술을 통하여 극적인 치료효과가 주목을 받으면서 해부학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커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럽사회에서도 사체를 훼손하는 것을 금하던 시절이 있어 의사들이 해부를 위한 사체확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비상식적 행위까지도 불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멜라키 킹 지음,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사람의 무늬 펴냄) 일본 역시 사체해부는 주로 사형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사체해부는 역시 중국에서도 드물게 이루어졌 것으로 차이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해부결과를 기록한 그림이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일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집권층이 일본의 전통의학을 폐하고 서양의학을 나라의 주류의학체계로 세우게 된 배경을 생략하고 있습니다만, 서양의학에 일본에서만 적극적으로 수용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양의학이 유독 일본에만 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북경에는 서양문명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중국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북경에 왕래가 잦았던 조선의 선비들 가운데 서양의학에 관심을 두었을 법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을 터입니다.


18세기 들어 조선의 실학자들이 남긴 서양의학에 대한 기록이 이를 증거한다 하겠습니다. 서양의학의 생리학, 혈액, 호흡, 신경계에 관한 내용을 적은 이익의 〈성호사설 星湖僿說〉전염병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헌길의 〈마진방 麻疹方〉이나 정약용의 <마과회통 麻科會通> 등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마과회통〉에는 천연두 치료를 위한 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실학자들 대부분이 권력과 거리가 있는 남인세력이었던 까닭으로 국가정책으로 적극 채택되지 못하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란과 호란으로 어수선한 국내상황으로 외래 문물에 대한 관심이 크지 못하였던데다가 1621년 허준에 의하여 <동의보감 東醫寶鑑>이 완성된 것이 전통의학에 대한 의존을 키웠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뛰어난 점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네덜란드 의학이 에도시대에 전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문화, 지리학 그리고 여행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에도시대의 문화를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설을 인용하여 심장과 동정맥에 대한 해부도를 설명한 부분에서 오랫동안 눈길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혈액이 지장없이 원활하게 흐르려면 신체 내의 모든 동맥, 정맥이 깨끗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통일 상태를 유지하려면 모든 길이 자유자재로 통해야 한다. 일본에는 오랜 전통이 있어서 지도는 정치적 분할 뿐 아니라 주요한 길도 나타냈다(뜻밖으로 서양지도는 그렇지 않았다.(300쪽)”


저자의 맺음말에서 그가 이 책을 통하여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해부학과 해부도보의 역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이 자신의 저편으로 빠져나가 있던 알지 못하는 역사를 다루려 한다. (…) 그리하여 해부라는 수사학이 의학에서 나아가 더 넓은 사상의 지평에 영향을 끼친 양상을 그리려는 바가 이 책의 요점이다.(356쪽)” 즉 고대 철학자들이 인체를 ‘미크로코스모스(소우주)’라 하여 신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는 마크로코스모스와 대칭점에 두었던 것처럼 인간의 신체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자리매김하여 더 넓은 외부세계를 축약해서 자신에게 재현한다는 유럽의 초기해부학자들의 발상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꽤 오래 전에 정부조직에서 일하고 있을 적에 느꼈던 점입니다. 조직 간의 경쟁이 지나치고 조직 간의 소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의학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신체의 각 기관이 각각 맡은 역할을 효율적으로 함으로서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즉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체의 항상성에 문제가 생겨 질환이 발생하면 적절한 약을 투여하거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여 치료를 하는 것이 의학입니다. 즉, 의학은 작은 사회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관리하는 기본철학을 익힐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의학, 의학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주(1)

해체신서[解體新書(かいたいしんしょ)]

일본 에도시대에 번역 소개된 해부학교과서입니다. 독일 의사 쿨무스의 《Anatomische Tabellen》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Ontleedkundige Tafelen》을 저본으로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이 중심이 되어 중역한 것입니다. 중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과 설(設)은 전부 해체에 관한 화란의 여러 책을 비교연구하여 가장 명료한 것을 채택하고 이를 베껴서 손쉽게 정통하게 한 것(169쪽)”이라 설명한 것으로 보아 타펠 해부학을 근간으로 하여 다른 해부학책에 소개된 내용을 뽑아 편역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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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3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3710
 

 

지난해 10월부터 보건의료분야의 인터넷매체 라포르시안에 매주 북리뷰를 올리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리뷰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댓글을 달아주신 한 분께 해당 도서를 보내드린 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리뷰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라포르시안에서는 이벤트의 규모와 방식을 다소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라포르사안에 올린 북리뷰에 대한 의견을 SNS를 통하여 알리는 5분에게 해당 도서를 보내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리뷰의 필자 입장에서 냉정한 지적을 더 환영한다는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족한 리뷰를 더 나은 방향으로 써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라포르시안에 기고하는 북리뷰를 이곳 블로그 커뮤니티에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당 리뷰의 덧글에 남긴 라포르시안의 북리뷰 포스팅주소를 클릭하셔서 방문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라포르시안으로 직접 찾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라포르시안의 홈페이지<http://www.rapportian.com/>를 방문하시면 오른쪽에서 [양기화의 북소리] 난에 최근에 올린 리뷰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 주에 소개하는 책의 리뷰를 찾아서 클릭하신 다음에 트위터나 레이스북 등을 통하여 소개하시고 그 내용을 라포르시안에 메일로 통보하시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기화의 Book소리'에 트위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평에 관한 소셜댓글을 남겨주시면 매주 5분을 추첨해 해당도서를 보내드립니다. 댓글을 남긴 후 메일(bus19@rapportian.com)로 주소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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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원식물 - 초본류 한국의 정원식물 시리즈 1
박석근.정현환.정미나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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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이라서 실감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산책길에 조성한 화단 혹은 도로변에 놓아둔 화분 등,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다양한 꽃들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꽃들도 적지 않습니다. 식물원 혹은 정원에서는 꽃이름을 적은 팻말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새로 만난 꽃도 즐기고 새로운 이름도 익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억력이 예전같이 못해서 쉽게 잊기도 합니다만, 꽃사진과 함께 꽃이름도 같이 찍어서 이름을 새기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만나게 되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꽃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뒤져 이름을 확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블로그 커뮤니티에 있는 꽃박사님들께 여쭈어 보는 편이 훨씬 빠르게 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아내와 함께 주말걷기를 열심히 다니면서 만나는 꽃이름을 두고 갑론을박하면서도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이야기는 절대로 끄집어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담북스에서 <한국의 정원식물> 시리즈의 첫 번째 초본류의 사진과 특성을 담은 그림책을 펴냈기 때문입니다. 원예/화훼분야와 식물원에서의 오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박석근과 정현환박사님 그리고 정미나님 등 세분의 저자들께서 최근 우리네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88개과의 650종의 초본류의 꽃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을 펴낸 것입니다.

 

‘온누리를 꽃과 정원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노력하고 계신 세분의 저자들은 2006년 12월에 열린 싱가폴 가든 페스티발에 참석했다가, 1,000여 종의 열대식물을 정리한 “1001 Garden Plant in Singapore”라는 책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심고 가꾸는 식물들을 정리해보자고 의기투합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만드는데 있어 열정이나 의기투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초본류에 대한 좋은 정보를 담은 책을 세상에 내놓아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백합과의 아가판투스와 알리움 기간테움을 다룬 페이지를 찍은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맨 위쪽에는 가래과에서부터 흑삼릉과에 이르기까지 꽃이 속하는 88종류의 과(科)이름에 따라서 분류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꽃이 개화하는 시기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주 좋은 질의 꽃의 컬러사진을 실었고, 그 아래로, 식물명, 학면, 영명, 생활형, 개화기, 화색, 초장, 조폭, 용도, 번식방법, 생육적온, 내한성, 광 요구도, 수분 요구도 등 전문적인 사항을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원에 심어 관상하시고자 하는 분을 위하여 관리포인트까지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식물이름과 과명 및 학명 등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식물은 “국가표준식물목록”을 기준으로 하였고, 외국 식물의 경우는 RHS(영국왕립원예협회)의 “Plant Finder"를 참조하였다고 합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고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꽃이 마침 이름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반갑고 예뻐 보인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한국의 정원식물>을 읽고서 저자들께서 예고한대로 2편 목본류, 3편 실내식물 등이 어서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도 야생화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도 만들어주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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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지능 -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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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 들어 진화론에 대한 논의가 많았던 것은 2009년이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자 다윈이 진화론의 이론을 담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이 2009년을 ‘다윈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학술행사를 진행하였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학계는 물론 언론 등에서도 진화론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행사의 중심에 있던 최재천교수님께서 그동안 다루어왔던 진화와 관련된 글들을 모아 묶어 결실을 맺은 것이 <다윈 지능>입니다.

 

<다윈 지능>에서 진화를 주제로 한 25꼭지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글은 연관성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이어서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둘러싼 흥미로운 일화에 대한 글도 있습니다만, 최교수님이 그동안 많이 다루어왔던 성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글이 많은 것은 진화 역시 생명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까지 우주 만물은 창조주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믿음을 감히 뒤집어 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유럽 사회에 던진 다윈의 진화론의 충격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 역시 자신의 도전적인 이론을 보다 완벽하게 가다듬기 위하여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고 사유의 시간을 가지는 신중함을 견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150년, 진화론은 어느 덧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기원을 논하는 생물학적 범주를 뛰어넘어 사회학,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의학, 심지어는 예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에드워드 윌슨교수가 예측한 학문 간의 통섭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가능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이 그동안 연구해온 생물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진화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얼리 어댑터(early adaptor)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O눈에는 X만 보인다’는 우리네 속담은 바로 지금 같은 경우에 제가 상투적으로 써먹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25개의 글 가운데 당연히 제 눈길을 붙든 것은 ‘진화의 실험실, 병원’입니다. 의학 역시 진화론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당연한 한 꼭지 넣었을 것입니다. 바로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진화의학(evolutionary medicine)입니다. 아쉽게도 학문 간의 통섭을 주창하는 최재천교수님께서 의학 영역에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항생제와 미생물의 관계를 예로 들거나, 조류독감과 HIV를 극히 피상적으로 인용하는 정도여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몸과 마음 역시 오랜 진화의 산물이며, 자연선택은 애당초 우리의 건강과 장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서양의학은 우리 몸을 거의 기계 다루듯 하는데, 삐걱거리는 자전거 바퀴에 기름을 치듯 손쉽게 약물을 투여하고 중고 자동차에 부품을 갈아 끼우듯 장기이식시술을 한다.(116쪽)”고 적고 있어 현대의학을 공부한 입장에서는 시야를 조금 더 넓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화의학에 대한 의구심이 슬며시 자리잡게 되었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서울의대 강병수교수님은 “진화의학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진화의학’은 말 그대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의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고, 인간은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자연환경은 물론 사회환경에 열려 있는 존재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탄생한 이래로 환경에 적응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 합니다.

 

인체를 고립계(closed system)로 보고 주로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을 통하여 항상성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에 주목해온 현대의학과는 달리 진화의학은 인체를 열린계(open system)로 파악하며 주로 포지티브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통한 유기적 질서의 적응과정을 추구하고 있는 점이 다른 점이라는 것입니다. 진화의학적 연구가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과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된다 하겠습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창조주에 의하여 세상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종교의 힘겨룸이 점차 과학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 같습니다. 그 선두에 진화생물학이 서있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화생물학자임을 천명하고 있는 최재천교수님의 종교에 대한 입장이 애매하다 싶은 느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은 물론 사회학 등의 모든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심지어는 종교에 이르기까지도 통섭을 이루어야 진정한 학문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통섭의 선구자라는 입장을 고려해달라는 주문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쟁점에서 비껴서 있으려는 인상을 받는 독자도 있겠다 싶습니다.

 

국내의 신학자, 종교학자 그리고 과학철학자들이 자기를 비우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상대를 포용하려는 의도를 담은 책 <종교전쟁>에 대하여 “대한민국에서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은 여기 다 모였군”하셨다는 노학자의 꼬집음에 대하여 “남의 학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내 학문이 깊어진다.”고 답한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학문에 깊이가 없다 할 제가 보기에도 그 답이 진정성을 갖추려면 자신의 전공분야 이외에 학문을 들여다보는 정도로 익히는 것으로는 학문 간의 통섭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귀동냥한 지식은 때로는 커다란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재천교수님께서 최근에 시작하셨다는 영장류연구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남아있는 아쉬움 한 자락입니다. 제가 식약청 산하 연구소에서 근무할 적에 미국의 NTP (National Toxicology Program)을 벤치마킹하여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K-NTP)’을 시작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는 독성물질에 대한 기초자료를 사전에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당시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이 설치류 등에서 영장류로 옮겨갈 것을 예측하고 실험에 필요한 영장류수급을 안정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라 판단하고 영장류센터 설립을 기획하였으나 이를 추진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쫓겨나다시피 그만두었던 아픈 기억입니다.

 

최재천교수님께서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연구 내용으로 보아 그 분이 만들고 싶어 하는 영장류센터는 영장류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라 여겨집니다만, 그 연구의 산물이 국익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서식하지 않는 영장류의 생물학적 연구보다는 국내 서식 생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가 오해할 소지도 있어 보이는 점을 짚어야 하겠습니다. 런던을 방문한 길에 우연히 눈에 띈 존 밴 와이교수의 논문 한 편을 읽고,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뒷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295쪽). 자연선택설의 공적에 관한 다윈과 월리스를 대변하는 그룹들이 오랫동안 해온 논란에 대하여 오랫동안 월리스를 연구해온 마이클 셔먼교수가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02415>를 통하여 다양한 자료를 요악하여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셔먼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는 “다윈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의 생각들을 비밀에 부치다가 월리스의 논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발표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 역시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인다.(297쪽)”는 최재천교수님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생물체가 후세에 종을 전하기 위하여 꼭 암수의 성으로 구분되었어야 하는가하는 의문에서부터 짝짓기 과정에 숨어있는 신비, 일부일처제가 최선인가 하는 등 흥미로운 글은 진화생물학의 연구성과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으로 <다윈 지성>이 보다 적합한 제목이 아니겠나 싶었습니다만, 2088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용어에 최교수님은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집단행동에서 지성을 운운하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보신 탓으로 <다윈 지능>으로 정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언젠가 우리의 사회적 행동이 지성공동체의 성숙함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희망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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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2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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