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지능 -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근년 들어 진화론에 대한 논의가 많았던 것은 2009년이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자 다윈이 진화론의 이론을 담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이 2009년을 ‘다윈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학술행사를 진행하였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학계는 물론 언론 등에서도 진화론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행사의 중심에 있던 최재천교수님께서 그동안 다루어왔던 진화와 관련된 글들을 모아 묶어 결실을 맺은 것이 <다윈 지능>입니다.

 

<다윈 지능>에서 진화를 주제로 한 25꼭지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글은 연관성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이어서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둘러싼 흥미로운 일화에 대한 글도 있습니다만, 최교수님이 그동안 많이 다루어왔던 성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글이 많은 것은 진화 역시 생명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까지 우주 만물은 창조주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믿음을 감히 뒤집어 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유럽 사회에 던진 다윈의 진화론의 충격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 역시 자신의 도전적인 이론을 보다 완벽하게 가다듬기 위하여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고 사유의 시간을 가지는 신중함을 견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150년, 진화론은 어느 덧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기원을 논하는 생물학적 범주를 뛰어넘어 사회학,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의학, 심지어는 예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에드워드 윌슨교수가 예측한 학문 간의 통섭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가능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이 그동안 연구해온 생물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진화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얼리 어댑터(early adaptor)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O눈에는 X만 보인다’는 우리네 속담은 바로 지금 같은 경우에 제가 상투적으로 써먹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25개의 글 가운데 당연히 제 눈길을 붙든 것은 ‘진화의 실험실, 병원’입니다. 의학 역시 진화론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당연한 한 꼭지 넣었을 것입니다. 바로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진화의학(evolutionary medicine)입니다. 아쉽게도 학문 간의 통섭을 주창하는 최재천교수님께서 의학 영역에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항생제와 미생물의 관계를 예로 들거나, 조류독감과 HIV를 극히 피상적으로 인용하는 정도여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몸과 마음 역시 오랜 진화의 산물이며, 자연선택은 애당초 우리의 건강과 장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서양의학은 우리 몸을 거의 기계 다루듯 하는데, 삐걱거리는 자전거 바퀴에 기름을 치듯 손쉽게 약물을 투여하고 중고 자동차에 부품을 갈아 끼우듯 장기이식시술을 한다.(116쪽)”고 적고 있어 현대의학을 공부한 입장에서는 시야를 조금 더 넓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화의학에 대한 의구심이 슬며시 자리잡게 되었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서울의대 강병수교수님은 “진화의학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진화의학’은 말 그대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의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고, 인간은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자연환경은 물론 사회환경에 열려 있는 존재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탄생한 이래로 환경에 적응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 합니다.

 

인체를 고립계(closed system)로 보고 주로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을 통하여 항상성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에 주목해온 현대의학과는 달리 진화의학은 인체를 열린계(open system)로 파악하며 주로 포지티브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통한 유기적 질서의 적응과정을 추구하고 있는 점이 다른 점이라는 것입니다. 진화의학적 연구가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과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된다 하겠습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창조주에 의하여 세상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종교의 힘겨룸이 점차 과학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 같습니다. 그 선두에 진화생물학이 서있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화생물학자임을 천명하고 있는 최재천교수님의 종교에 대한 입장이 애매하다 싶은 느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은 물론 사회학 등의 모든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심지어는 종교에 이르기까지도 통섭을 이루어야 진정한 학문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통섭의 선구자라는 입장을 고려해달라는 주문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쟁점에서 비껴서 있으려는 인상을 받는 독자도 있겠다 싶습니다.

 

국내의 신학자, 종교학자 그리고 과학철학자들이 자기를 비우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상대를 포용하려는 의도를 담은 책 <종교전쟁>에 대하여 “대한민국에서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은 여기 다 모였군”하셨다는 노학자의 꼬집음에 대하여 “남의 학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내 학문이 깊어진다.”고 답한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학문에 깊이가 없다 할 제가 보기에도 그 답이 진정성을 갖추려면 자신의 전공분야 이외에 학문을 들여다보는 정도로 익히는 것으로는 학문 간의 통섭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귀동냥한 지식은 때로는 커다란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재천교수님께서 최근에 시작하셨다는 영장류연구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남아있는 아쉬움 한 자락입니다. 제가 식약청 산하 연구소에서 근무할 적에 미국의 NTP (National Toxicology Program)을 벤치마킹하여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K-NTP)’을 시작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는 독성물질에 대한 기초자료를 사전에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당시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이 설치류 등에서 영장류로 옮겨갈 것을 예측하고 실험에 필요한 영장류수급을 안정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라 판단하고 영장류센터 설립을 기획하였으나 이를 추진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쫓겨나다시피 그만두었던 아픈 기억입니다.

 

최재천교수님께서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연구 내용으로 보아 그 분이 만들고 싶어 하는 영장류센터는 영장류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라 여겨집니다만, 그 연구의 산물이 국익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서식하지 않는 영장류의 생물학적 연구보다는 국내 서식 생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가 오해할 소지도 있어 보이는 점을 짚어야 하겠습니다. 런던을 방문한 길에 우연히 눈에 띈 존 밴 와이교수의 논문 한 편을 읽고,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뒷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295쪽). 자연선택설의 공적에 관한 다윈과 월리스를 대변하는 그룹들이 오랫동안 해온 논란에 대하여 오랫동안 월리스를 연구해온 마이클 셔먼교수가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02415>를 통하여 다양한 자료를 요악하여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셔먼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는 “다윈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의 생각들을 비밀에 부치다가 월리스의 논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발표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 역시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인다.(297쪽)”는 최재천교수님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생물체가 후세에 종을 전하기 위하여 꼭 암수의 성으로 구분되었어야 하는가하는 의문에서부터 짝짓기 과정에 숨어있는 신비, 일부일처제가 최선인가 하는 등 흥미로운 글은 진화생물학의 연구성과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으로 <다윈 지성>이 보다 적합한 제목이 아니겠나 싶었습니다만, 2088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용어에 최교수님은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집단행동에서 지성을 운운하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보신 탓으로 <다윈 지능>으로 정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언젠가 우리의 사회적 행동이 지성공동체의 성숙함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희망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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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2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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